그리스도의 구속과 외계 생명체의 존재?
〔독자 서평〕 외계인과 기독교 신앙 / 한국교회탐구센터 / IVP
‘내가 왜 고대 근동의 역사까지 알아야 하나?’
이미 기독교에 충분히 익숙해진 이들은 전혀 문제가 될 리 없겠지만, 기독교를 처음 접한 이들은 한 번쯤(혹은 더 자주)은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우리가 나사렛, 베드로 등 처음 듣는 지명과 이름을 비롯하여 정화 의식, 공희(供犧) 등 낯선 의례까지, 이 모든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낯선 근동 땅에 강림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고등학교 시절 유홍준 씨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읽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던 나는 스물셋에 일면식도 없던 기독교와 조우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는 벽안(碧眼)에 풀어헤친 머리, 통으로 된 시믈라(simla)를 몸에 걸친 그리스도를 상상하는 일이 퍽 기이한 일이었다.
만일 그리스도가 고대 근동이 아닌 구한말 조선에 오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특히 민족종교에 관심이 많은 터라, 대순진리교의 경전인 〈전경〉(典經)의 일부를 발췌한다.
십이월 초하룻날 고부인이 상제의 분부대로 대흥리에서 백미 한 섬을 방에 두고 ... 상제께서 "불과 물만 가지면 비록 석산바위 위에 있을지라도 먹고 사느니라"고 말씀하시고, 그 백미로 밥을 지어 이 날 모인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도다."
- 공사편 2장 18절
인류를 구원한 그리스도가 나와 친숙한 문화권에 있는 존재라는 상상만으로도 근거 없는 자부심이 불타오르지 않는가? 이처럼 우리는 전능한 신이 나와 특별한 연관이 있는 존재로 귀결시킴으로 타자를 하찮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제국주의적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게 왜곡된 사상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를 넘어서 외계에 존재할 수도 있는 외계지성체에게조차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오류로 확장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베들레헴이 과연 우주의 중심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오래전부터 '외계에서 문명을 이루고 있는 지적생명체'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과학 앞에서 기독교는 여전히 베들레헴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 나사렛 촌동네 출신 예수의 죽음이 히브리, 헬라어는커녕 인류를 알지 못하고, 문명사에 걸쳐 조우할 확률이 0%에 가까운 외계지성체와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만일 그들과 예수의 죽음이 관련이 있다면 인류는 외계지성체의 구원을 위해 선교사를 '우주'로 파송할 의무가 있을까?
이런 '터무니' 없어 보이는 질문들 앞에서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와 외계 생명체의 존재의 양립 가능성을 꽤나 조심스럽고 설득력 있게 타진하고 있다.
첫째, 외계인 담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품고 있다. 현실은 합리와 비합리가 혼재되어 있다. 이를 정직하게 인정할 때, 낯선 존재를 '두려움'의 표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미지의 대상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비로소 기울일 수 있다.
둘째, 천체 과학은 외계 문명이나 외계 지성은 물론, 외계 생명의 흔적도 전혀 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적어도 거주 가능한 외계 행성을 발견했다는 정보는 만물의 영장인 인류가 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암묵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셋째, 우주신학(astrotheology)은 외계 행성에 존속하는 외계지성체의 존재가 확증되는 순간, 두 가지 논점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논점은 지구 역사상에 나타난 성육신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외계 문명을 향한 창조주의 또다른 성육신을 인정해야 하는가? 둘째 논점은 인류를 향한 신의 구속사가 파괴된 창조세계를 고치려는 시도인가? 아니면 창조계의 타락과 관계없는 자기전달인가?
이런 질문들은 다분히 사변(思辨)적이다. 이런 신학적 질문들에 몰두해봤자 신뢰할만한 대답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을 곱씹다보면, 적어도 인류가 온 우주의 중심이라는 헛된 망상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은 구한 말 조선의, 로마의 속국 이스라엘의 독립만을 위해서도 아니라, 온 인류를 너머 온 우주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는 창조주임을 믿는다면,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지성체'를 향한 신학적 물음에 대답하는 일은 결국 온 우주를 향한 창조주의 의도를 바르게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롬8:19)
고종구
아름마을교회 간사. '청년'을 좋아한다. 소싯적 시골에서 신앙공동체를 일궜던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