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냄새가 나서 미안해요”
[319호 쪽방동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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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정제일교회 청년들과 함께 쪽방 청소 (사진: 이재안 제공) |
아픔을 함께하며, 그 너머를 보며
4월 16일 세월호 3주기이자 부활절에 우리 공동체는 부산 민주공원에서 야외 나들이로 함께했다. 김밥, 생일 케이크, 과일을 준비해서 돗자리 두 개 깔고 맛있는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오후 3시에는 부산지역 기독인들이 연합하여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다. 부산 민주공원 야외 마당이다. 새날교회, 믿음교회, 좁은길교회 등 100명이 넘는 분들이 함께했다. 성공회 부산교구도 참석했다. 성찬을 나누고 전례에 따라 예배를 드렸다. 이주 노동자분들도 계시다. 예배 후 나눔 마당으로 노래와 시 낭송, 기타 치며 하나님 나라의 생명과 평화를 나누는 성경원 성공회 신부님의 노래 시간이 참 좋았다.
세월호 3주기 3일 후, 19일에는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 토크 마당’으로 유대칠 선생님과 스물다섯 명이 함께했다. 풀꽃강물 식구들이 처음 마련한 토크 시간이었다. 반빈곤센터 사회과학세미나팀, 노래패 회원들, 대구에서 직접 오신 기독단체 성서대구 회원 서선희 선생님의 작은 후원금도 감사했다.
고뇌해서 아름다운 철학자 유대칠 선생님은 페이스북(페북)에서 만난 하나님의 인연이다. 주빌리협동조합의 하봉철 사무장님과 든든한 직원분들, 반빈곤센터 친구들, 사회과학 공부를 비롯해 항상 배우려는 노동자 김민수 님, 노동하며 시를 쓰는 이민중 동지, 무엇보다도 고난 중에서도 한 걸음씩 걸어가시는 우상태 선생님, 부산을 대표하는 미술 작가 김경화 박자연 왕덕경 선생님도 함께했다. 풀꽃강물 식구들의 첫 이야기 마당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아픔과 고통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최선이기에 우리가 걷는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사는 드리고 싶다
그날, D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하늘나라로 가신 59년생, 김◯◯ 어머님. 한 달에 한 명씩은 하늘나라로 가신다. 지난 3개월간 특별히 자주 찾아뵈었다. 몸이 아프다고 힘들어하셨다. 천식이 있어서 연신 천식약을 입안을 뿌리셨다.
25일에야 동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결국 돌아가신 지 6일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상담소에 3일간 부고 공지를 띄웠다. 페북 타임라인에도. 사망신고서를 받지 못해 동 주무관에게 연락하니, 아직 가족이 사망신고서를 내지 않았다 한다. 자꾸 전화해서 미안하지만, 꼭 연락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었다. 그동안 함께한 시간들이 눈앞에 아른아른하기에 어머님의 ‘뒷모습’도 자꾸만 알고 싶은 것이다. 옆방 사시는 김씨 아저씨가 응급차를 불렀단다. 며칠 전 이사를 하신 것이 무리가 되셨을까? 응급실로 옮긴 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중환자실로 찾아갔으나 상태가 좋지 않아 면회가 어려웠다고 한다. 알고 보니 멀리 있는 딸이 다른 외지인들 면회를 금지하도록 했단다. 섭섭한 마음이 든다. 딸인 자기보다 더 자주 찾아뵙는 사이들인데, 면회를 금지하다니….
화장하신 추모공원과 납골 여부는 홈페이지로 확인했다. 돌아가실 때 혼자 가지 않으셔서 고독사는 아닌 것 같으나 마음이 아리다. 5월에는 누가 하늘나라로 가실지…. 마지막에 인사는 꼭 드리고 싶다.
중앙동 쪽방 청소, 한 번 더!
풀꽃강물 친구들, 임기헌 선생님과 협력해서 중앙동 쪽방을 청소했다. 장 반장님이 선두에서 지휘를 하시고 청소가 시작되었다. <복상> 열혈구독자인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 목사가 연락이 왔었다. <복상>을 통해 소식을 들었단다. 교회 청년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하고 싶단다. 두 달 동안 준비하면서 괴정제일교회 대학생들도 함께 연대해서 청소를 하게 되었다. 교육방송 <다큐프라임> 팀이 와서 허락을 받고 촬영도 했다.
계단이 가파르고 건물 천장에 거미줄이 너무 높다. 3층은 비어 있고 2층에 한 분 1층에 두 분이 사신다. 수세식 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앉기에는 비좁다. 봉사 온 친구들이 있는 힘껏 온몸에 힘을 주어 청소한다. 1층 할아버지의 벽들이 새까맣다. 곰팡이다. 검은 무늬 벽지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곰팡이 천국이다. 곧 다시 방문해서 도배와 장판을 깔고 침대 매트를 준비하기로 교회 부목사님과 의견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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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시간 남자 공동체 훈련방'의 푹신한 요 (사진: 이재안 제공) |
“피 냄새가 나서 미안해요”
지난 28일 드디어, <빅이슈>에 동구 쪽방 상담소 등록 주민이 기사로 실리게 되었다. 홈리스들을 잡지의 판매원이 되도록 해 자립을 돕는 세계적인 잡지이다. 서울에서 기자가 현장 취재를 왔고 나도 그 자리에 동행할 수 있었다. 사진은 재능기부로 전상규 작가가 찍었다. 우리 주민분들 영정사진도 찍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소외된 이들을 돕고자 항상 움직이시는 분이다. <빅이슈>를 구매할 때 카드결제도 가능하게 되었다. 광복동 거리와 남포동 비프광장 근처에서 열정적으로 판매를 하고 계신 종원 선생님, 건투를 빈다. <빅이슈> 판매해 돈 모아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시길 기도드린다.
페북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다. <빅이슈> 판매하는 ‘빅판’이다. 부산에는 현재 6명의 빅판이 활동 중인데, 그중 제일 막내다. 지난 금요일 또 자해했단다. 그런데 상처가 경미해서 집으로 귀가했다. 다음날 밤 11시경, 지인과의 약속을 마치고 그의 집으로 갔다. 수원에서 잠시 내려온 큰아들과 함께 갔다. 월세 8만 원짜리 방이다. 엉망이다. 영화의 세트장으로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입구 장판에는 이미 마른 핏자국들이 선명하다. 이 친구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피 냄새가 나서 미안해요. 아직 청소를 못 했어요.”
준비해 간 식료품을 손에 전해주면서 이걸로 식사 좀 하라고 말했다. 내일 교회를 간단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이 정도면 시시각각 자살 충동이 올라올 수 있다. 걱정이 되지만 방에서 같이 잘 수가 없었다. 시급히 병원에 입원시켜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가족이 있어도 강제로 입원시킬 수가 없다. 본인 인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어진 손목을 살짝 잡고 기도했다. 이 친구의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건강하기를…. 그런데 기도하면서 호흡을 하기가 어렵다. 가슴에서 복받쳐 오르는 게 아니라 숨이 막힐 지경이다. 주님께서 이 친구를 지켜주시기를! 주님, 이웃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교회 남자들, 24시간 공동체 훈련
‘큰 행님’이 방이 너무 더럽다고 오지 말란다. ‘작은 행님’과 셋이 밖에서 만났다. 두 분 모두, 나라의 지원비를 받고 살고 계시지만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쓰는 분들이다. 부산 근교, 양산 사시는 큰 행님 집 근처에서 만나 돼지김치찌개 3인분을 배부르도록 실컷 즐겼다. 억지로 설득하여 밖에서 밥을 먹고, 큰 행님 집에 가기로 했다. 황금연휴 5월 초, 아내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교회 행님들과 1박 2일을 보내기로 했다.
밤이 다하도록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큰 행님은 며칠 동안 연속으로 일하셨단다. ‘노가다’를 하시는 데 노동절에도 쉬지 못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온몸이 쑤신다며 연신 “아이고 다리야” 하신다. 다리도 주물러 드리니 간지럽다면서도 고맙단다. 근데 바닥에 폭신한 요 한 장 없다. 작은 행님과 살짝 의논해서 근처 대형마트에서 간식거리 사 오면서 요를 하나 알아보자고 즉석에서 결정했다. 결정 후 행동은 속행으로,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1킬로미터 거리에 마트가 하나 있다. 영업시간이 20분 남았기에 급히 차를 몰고 가서 오만 원짜리 푹신푹신한 요 하나를 구입했다. 급히 달려와서 바닥에 깔아 드리니 “고마워” 하신다. 그동안 요 하나 챙겨드리니 못한 게 죄송했다.
오전 10시에 피곤한 얼굴로 일어났다. 남자 셋이 아담한 방에서 밤을 보내고 바다를 갈까, 호수를 갈까, 논의하다가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성주에 가기로 했다. 사드 배치로 힘겨워하는 그곳. 간단히 세수를 하고 성주에 도착하니 2시가 되어간다. 오는 길에 세 번이나 헬리콥터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마침 연휴를 맞이해서 ‘캠프촌’이 열렸다. 연휴에 평화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 전국에서 3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 것 같다. 경찰이 막고 있는 입구까지 700미터, 행사 마지막 순서로 그곳까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행진에 동참했다. 원불교 교무님들이 단식으로 저항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몇몇 기독 단체의 현수막도 눈에 뛴다. 행진을 마치고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김치, 사발면, 식수 등이 있어 간단히 요기를 하고 우리가 준비한 작은 물품도 기증했다. 부산으로 가는 길, 소성리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더욱 힘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앞으로 한 달에 하루는 1박 2일로 공동체 훈련을 하기로 했다.
5월의 풀꽃강물교회 첫 예배
오랜만에 아내의 제안으로 19평 우리 집에서 공동 예배로 모였다. 전날 마트에서 장을 봤다. 후식으로는 오렌지를 사고, 메인 요리 재료로는 주꾸미를 준비했다. 오전에는 집안 대청소를 했다. 우리 집은 예배로 모일 때에야 대청소를 한다. 오전에는 베란다 정리, 거실 책 정리를 하고 오후부터 요리를 준비했다. 일명, 주꾸미돼지고기야채볶음이다. 약간의 국물이 있도록 만들었다. 양념의 재료는 마늘, 자연산 후추, 요리용 된장과 고추장 조금, 기름기 없는 돼지고기 목살을 살짝 볶아서 입감을 살렸다. 예배 후 성찬으로 나누었다. 권씨 아저씨는 네 그릇을 뚝딱 드셨다. 엄청 맛있단다. 다들 얼굴이 방긋방긋.
우리에게는 어린이주일도 없고 어버이주일도 없다. 그냥 공동체다. 기초 공동체로 얼굴을 대면하고 말을 스치고 옆에 쪼그려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눈다. 자리가 좁으니 정현이가 기타를 연주할 때, 옆 삼촌과 팔이 부딪힌다. 그렇지만 만원 지하철에서 옆 사람과 부딪히는 그런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원으로 올라가는 큰아들이 “아저씨들 분위기가 좋아요. 교회의 분위기는 뭔가 다르네요. 역쉬!” 한다. 상담소에서 알게 된 세 분 중 두 분이 예배에 참석했다. 이야기가 그칠 줄 모른다. 남자들끼리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주방에서 오렌지를 내오는 아내의 얼굴이 환하다.
이재안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찔끔찔끔 나누며 살아가는 작디작은 풀꽃강물교회 식구이며, 부산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혼살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할배들과 찌지고 뽁고 욕먹고 욕하며 살아가는 40대 유부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