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을 상상하는 가장 발랄한 방법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2017-05-24     최은 영화연구가

비정규직 일만 명이 정규직이 되고, 국정교과서가 폐기되고, 정상적인 외교라인이 작동하고,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에서 유해가 발견되었습니다. 대통령이 아침에 출근을 하고, 줄을 서서 밥을 먹고, 유기견과 길냥이가 청와대에 입성하고, 뉴스가 드라마가 되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어요. 새 대통령이 선출되자마자 듣게 된 소식들입니다. 테이프가 빠르게 되감기는 듯 번개 같은 며칠을 지내면서, 이제는 저도 좀 발랄한 영화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찾아왔어요. 마침 이번 호 커버스토리가 ‘희년’이라니, 잘 되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리셋’과 ‘리부트’(양희송, 《이매진 주빌리》, 메디치미디어)가 가능한 삶을 상상하는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를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바바라 오코너의 2007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입니다.

 

개를 훔쳐서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 꼬마의 사연
원작 소설이 발표된 2007년은 미국 사회가 부동산 파동(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으로 심각한 양극화와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소설의 주인공 가족이 집과 가장을 잃고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되는 상황은 당대 독자들에게 익숙한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김성호 감독의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한국적인 가족애와 꼬마들의 우정을 더한 숨은 수작입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쳤던 〈박하사탕〉(1999)처럼, 또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SF 장르 영화들이나 근래 〈아수라〉나 〈더 킹〉 같은 필름 느와르의 관습적인 재현 방식처럼, 파국이 아니고는 차마 ‘리셋’을 그릴 수 없던 것들과는 확실히 다른 화법으로 말하는 영화예요.

   
 

사립학교에 다니는 열 살 지소(이레)는 남동생 지석(홍은택)과 엄마(강혜정)와 함께 작은 피자 배달 차량에서 삽니다. 온 집안에 빨간 딱지가 붙으면서 집에서 쫓겨났는데, 일주일만 기다리라며 집을 나간 아빠는 한 달째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공중화장실에서 씻고 마트 시식코너에서 요기를 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아이들의 일상이었습니다. 단짝 친구 채랑(이지원)에게 들켰을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견디고 있었는데, 생일파티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담임선생님께 새 집에 친구들을 초대할 거라고 덜컥 답해버린 지소는 큰 근심에 싸입니다. 집을 사려면, 못해도 500만 원은 있어야 할 텐데요.

천당 밑에 분당, 분당 옆에 평당 오백
자판기의 동전그림 500원, 버스 노선 500번, 500, 또 500…, 500만 원만 생각하며 걷던 지소의 눈앞에 불쑥 “평당 500만 원”이라고 쓰인 부동산 광고지가 나타납니다. “정말 500만 원이면 이 집을 살 수 있나요?” 심드렁한 부동산 사장님이 참 못되게도 답을 합니다. “음~ 엄마 모시고 와라~~”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지소에게 이제 꿈이 생겼습니다. 500만 원을 모아 집을 사서 아빠도 찾고 멋진 생일파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개를 훔치기로 했습니다. 개를 찾아주면 500만 원을 준다는 전단지를 본 적이 있거든요. 마침 엄마가 일하는 레스토랑 ‘마르셰’의 회장 할머니(김혜자)에게는 애지중지하는 강아지 ‘월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 것이던가요. “됐어. 제 발로 나간 놈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안 찾아.” 어렵게 월리를 훔쳐 숨겨 놓고 할머니를 찾아갔더니, 아들이 집을 나간 상처가 있는 할머니가 우울하게 답합니다. 지소는 이제 할머니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집을 구할 돈도 받아야 합니다. 병 주고 약 주고, 약값까지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선물의 경제, 희망에 지불하는 값 오백 원
난제 앞에 영화가 펼쳐 놓은 상상력은 뜻밖에 ‘희년’에 버금가는 빚 갚음과 희망의 서사입니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어른들이 충분히 어른스럽고 아이들이 천진한, 평범하지만 보기 드문 세상을 만드는, 완벽할 수도 있는 한 방법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손가락이 세 개뿐인 노숙인 아저씨(최민수)는 지소가 월리를 훔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섣불리 아이를 훈계하지 않습니다. 말 없이 월리를 위한 집을 만들어줄 뿐이지요. 네, 바로 그 ‘집’입니다. 지소는 자기 때문에 월리도 집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집은 비싼 거니까, 아저씨가 무언가를 기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냥 만들어준 거라고 말해요. 집을 그냥 만들어줄 수도 있고, 세탁기나 차를 그냥 고쳐줄 수도 있다는 것, 형편 닿는 대로 요구르트 몇 개로 보상을 받는다든지, 여하튼 아저씨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지소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마르셸 할머니는요? 지소의 사연을 다 알고 난 후에도 할머니는 덜컥 유산을 물려주거나 우리 집에 들어와 살자고, 흔히 부자 노인들이 ‘소공녀’를 구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힘든 시간들을 겪다보면 어쩔 수 없이 나쁜 짓을 생각하기도 하는 법이지. 그렇다고 해도 네가 한 짓은 정말 나쁜 거야. 지소야, 그건 변하지 않아.” 할머니가 말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할머니도 나름의 몫을 충분히 해내지요. 꼭 지소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비밀스럽게 돕는다는 건 노숙인 아저씨와 원칙이 다르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도움이나 시혜가 아닌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 그것이 이 영화가 ‘어른스러운’ 어른들과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을 관계 짓는 방식이었어요.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생각해보면, 사연이 어찌되었든지 우리집 아빠가 세 손가락 아저씨처럼 공짜로 일해주고 떠돌아다니며 나타나지도 않는다면 달갑지도 고맙지도 않겠지요? 지소는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아저씨 딸도 아저씨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부끄럽고 미안해서 몇 년 째 딸을 보러 가지 못했다는 아저씨 말이 생각이 났던 겁니다. 지소의 말에 아저씨는 딸에게 진 마음의 빚을 탕감 받은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요?

이름에 ‘석’자 들어가 머리가 나쁘다고 구박받던 지석이는 할머니에게 고백하고 펑펑 울고 나온 누나에게 동전 하나를 쓰윽 건넵니다. 한글도 모르던 녀석이 500 옆에 삐뚤삐뚤 ‘만 원’이라고 써 넣었어요. 집이 있던 시절이 최고로 그리웠던 지소는 이제 잘못을 저지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어린이가 되어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군요. “그렇지만 내가 한 짓에 대한 죄책감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시간을 한참 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애초에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던 때로.”

한 번 뿐인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데 지불해야 할 비용을 우리는 얼마로 상상할 수 있을까요? 얼마면 충분하고 얼마면 모든 사람에게, 어린 아이들에게까지도 공평할 수 있을까요?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두 꼬마는 아빠를 찾는다고 현상금 500원을 걸고 전단지를 붙였는데요. 근래 드물게 발랄한 방법으로 ‘리셋’을 꿈꾸게 하는 이 영화를 보는 데 지불하는 값은 1,200원(다운로드 비용)쯤 되는 모양입니다. 괜찮네요.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