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가고 싶다"
〔독자서평〕 루터 로드 / 구영철 / CBS북스
“독일에 가고 싶다.”
구영철의 《루터 로드》를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첫 번째 든 생각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많은 종교개혁의 유적과 유물들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가 루터의 발자치를 따라 독일의 구석구석을 방문하고 그곳에 종교개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직접 찍은 수많은 사진들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독일의 매력에 푹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전통의 기독교 국가만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수도원들, 교회들, 그리고 기독교 유물들 참 부럽다. 독일 어디 한 곳도 루터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독일은 ‘루터의 나라’라는 인상이 깊이 다가왔다. 그래서 독일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찰스 포스터의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를 보면 초기의 켈트족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장소, 하나님의 빛이 특별히 강렬하게 비춰드는 장소에 대해서 말한다. 그들은 그런 곳을 ‘막이 얇은 곳들’(thin places)이라 부른다. 하늘과 땅이 맞닿아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유독 서로 가까운 곳이고, 조용히 있으면 하나님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고 한다. 이전에 이스라엘에 가서 갈릴리 호수가에 앉아 있을 때 초원을 거니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마치 보이는 듯 느껴졌는데 그렇게 하늘이 가깝게 느껴지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거룩한 장소를 방문하고 순례하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 예수님의 말씀을 읽을 때는 예루살렘을 거닐고 싶고, 사막의 교부들의 글을 읽을 때는 이집트 사막에 텐트를 치고 싶고, 켈틱의 성인들의 글을 읽을 때는 아일랜드의 거친 파도 소리를 듣고 싶고, 중세 영성가들의 글들을 읽을 때는 이탈리아의 고적한 수도원에 머물고 싶고, 신비주의자들의 글을 읽을 때는 스페인 아벨라 성을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독일의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난다. 그곳들은 막이 얇은 곳들일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나 악행이 장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기도하는 장소는 언제나 대개 푸근하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반면, 악이 자행된 장소는 햇빛 속에서도 그 음침한 기운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의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책에는 10가지 이상의 질병에 시달렸던 루터가 때로 그 힘든 여행을 불평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독일 곳곳을 누비며 복음을 설교 했던 루터의 발자취를 따르다보면 그곳에서 비쳐드는 하나님의 빛, 그 복음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루터가 면죄부에 반대하는 95개 조항을 발표하고 2주 만에 온 독일에서 유명해지고 많은 교회들이 그 개혁의 사상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그 장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독일은 우리 개신교도들의 순례를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서 교회가 길을 잃고 있을 때 언제든 다시 처음에 자리로 돌아오도록 영감을 주는 그런 신성한 장소로 말이다.
이 책의 가장 강점은 이미 말했듯이 루터가 태어나고 자라고 루터가 복음을 전하고 죽었던 거의 대부분의 장소를 작가가 방문하며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과 수많은 사진들을 담았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나는 올해에는 루터의 글을 많이 읽어보자 그런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루터의 글을 조금씩 읽어가고 있다. 나는 루터의 글을 읽으며 그의 글이 나로 하여금 십자가나 칭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고 때로는 내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나는 루터의 책을 읽는 일이 지성과 마음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루터로드》를 보면서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수많은 사진들을 접하면서 루터의 이야기가 내 감각으로, 몸으로 그리고 상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가 걸었던 길을 걷고, 그가 마셨던 샘물, 그가 머물던 마을과 설교하던 교회들을 사진으로 구체적으로 보면서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루터가 훨씬 더 생생하게 감각적으로 내게 다가옴을 느꼈다.
루터가 태어나고 죽었던 도시 아이스레벤, 그의 소년 시절이 담긴 만스펠트, (루터의 도시라는 호칭이 붙은 아이스레번과 비텐베르크처럼 앞에 루터의 도시라고 붙이지 못하고 뒤에 ‘루터의 도시’라고 붙인 유일한 도시라 한다.), 루터가 대학 교육을 받고 수도사생활을 했던 에어푸르트, 루터의 도시라 불리며 루터의 삶과 신학사상의 온상지였던 비텐베르크, 그곳에 루터가 95개 논제를 게시했다고 알려진 성교회, 그가 파면 경고장을 불 태워버렸다는 참 나무, 그의 제자들과 탁상담화를 하던 루터하우스의 방, 루터의 용기를 보여주던 보름스 대성당,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라고 주장하던 하이델베르크, 내주는 강한 성이요의 장면을 보여주는 오펜하임의 성 카타리나 교회, 루터를 죽음으로부터 건져 낸 기적의 샘이 있던 탐바흐, 루터의 죽음을 기록한 도시 할레 등 이 책에는 루터의 흔적들을 구체적으로 만나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루터가 발을 디딘 지역은 실로 엄청 많았다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2017년 까지 객관적으로 확증된 곳만 200여 곳이라고 한다. 여행하는 것을 단지 낭만으로만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루터가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며 작은 장소 하나 놓이지 않고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리고 그 동일한 열정들을 나는 작가에게서도 본다. 작가도 우리에게 이 모든 지역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열정이 넘쳐나는 것 같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이 책을 루터를 알기 위한 기초 자료로 삼는다면 루터의 이야기는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 루터를 만나기 위해 독일로 달려가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 책을 통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그의 숨결이 담긴 독일 곳곳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