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성도’들과 함께 걷기 시작한 순례
[322호 커버스토리] 어느 목사의 가나안교회 실험
가나안교회의 시작
지난 6월 18일 주일 아침 나는 스스로 ‘아름다운 실험’이라고 부르는 가나안 성도(교회 ‘안 나가’는 성도)를 위한 소위 ‘가나안교회’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첫 출발을 ‘마지’라는 사찰음식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시작을 알리는 첫 출발점이 1777년 권철신 등의 남인파 유학자들에 의해 경기도 여주의 ‘주어사’라는 절에서, 중국에서 들여온 가톨릭교회 관련 서학 책을 연구하는 강학에서 시작된 것처럼, 우리 가나안교회도 사찰음식점에서 불교인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이렇다.
2016년 1월 중순께, 경북 김천에 위치한 절 ‘개운사’에 한 개신교인이 난입하여 불상은 우상이라며 그 불당을 모두 훼손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한 기독교인이자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의 교수로서 큰 충격과 함께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웃 종교의 시설물을 훼손하고 또 이웃 종교를 폄하하는 행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큰 잘못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교 측에 사과하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훼손된 불당 회복을 위한 모금 운동을 펼쳤다. 모금된 돈은 사찰의 요청에 따라 개운사 대신 기독교와 불교 간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한 종교평화운동 단체에 기부되었다. 그리고 나는 황당하게도, 모금 운동을 벌인 것이 화근이 되어 오랫동안 봉직하던 서울의 모 신학대학에서 지난 2월 파면 처분됐다. 이유는 ‘우상숭배죄’였다.
학교에서 해직된 후, 나는 목사로서 어떻게 교회를 섬길까 고민하던 중 가나안 성도를 돕는 가나안교회를 설립하여 목회하기로 마음먹고 그 뜻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런데 마침 ‘마지’ 대표께서 그 글을 보고 내게 연락한 것이다. 마지는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사찰음식점인데, 조합원들 중 상당수가 놀랍게도 기독교인, 정확하게 말하면 가나안 성도라면서 그들의 요청에 따라 음식점에서 가나안 신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가나안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찌보면 마지에서 시작된 가나안교회는 일종의 ‘주어사’급 교회인 셈이다. 한국교회 역사에서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고 있는 때에 매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매월 한차례 모일 때마다 ‘나와 불교, 그리고 가나안교회’와 마지의 인연을 살려서 ‘기독교와 이웃 종교, 특히 불교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우 아름다운 실험이 아닐 수 없다.
‘마지 가나안교회’가 시작되고 필자는 넉 주에 걸쳐 가나안교회를 하나씩 더 설립하여 장소를 달리하여 운영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성막을 옮기며 하나님께 예배했던 것처럼, 가나안교회도 그렇게 순례자처럼 매주 장소를 옮기면서 순례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는 초대교회의 참모습을 찾아 그 원형을 추구하면서 매주 성찬예배를 기본으로 하되, 2부에는 가나안 신자들의 독특한 요구에 따라 각자 다른 주제의 모임을 갖는다. 매주 모이는 순서에 따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매월 첫째 주에 모이는 가나안교회는 ‘열두광주리 가나안교회’이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열두광주리 영성센터에서 예배를 드린다. 여기에서는 필자가 펼치고 있는 예술목회운동을 중심으로 하여 예술 영성의 형성에 관심을 갖고 가나안교회 모임을 갖는다. 둘째 주에 모이는 가나안교회는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카페 그라찌에에서 모이는 ‘그라찌에 가나안교회’이다. 이 교회는 ‘신학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모인다. 평신도의 신학 수준을 신학교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논의되는 모든 신학 이슈들을 다룬다. 개념을 설명하는 언어만 쉽게 할 뿐 내용은 신학대학에서와 같다. 평신도들과 비판적 대화로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셋째 주의 ‘마지 가나안교회’는 앞서 설명한 그대로이고, 넷째 주에 모이는 가나안교회는 ‘부천 가나안교회’다. 영성 수련을 중심으로 모인다. 여기서는 최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명상이나 치유 명상, 혹은 관상기도 등을 전문가의 안내로 실습한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주가 있을 경우에는 별도의 가나안교회로 모이지 않고, 향후 출석하고 싶은 교회를 방문해 예배드리도록 권면하고 있다.
탈종교시대의 도래, 가나안 성도의 증가
가나안교회를 시작한 배경은 최근에 두드러진 탈종교시대의 도래와 가나안 성도의 폭발적 증가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많은 종교 연구자들과 목회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지적하며 염려해왔다. 걱정만 할 뿐 기존 교단과 교회에서는 가나안 성도들을 위한 구체적인 목회적 돌봄을 거의 실천하고 있지 않은 게 문제다. 평소 교실에서 기독교적 앎과 삶의 일치 및 ‘실천’(praxis)을 강조하던 나로서는 조촐하게나마 이번 기회에 목사로서 의미 있는 활동으로써 ‘가나안교회 설립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목회 현장에 나섰다. 그렇다면 탈종교 현상과 가나안 신자의 증가에 대한 더 구체적인 현황은 어떤가?
주지하듯이 지난 2015년은 한국의 종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기억해야 할 매우 의미 있는 해였다. 바로 그해 정부의 인구조사 발표에서 종교 인구가 역사상 처음으로 비종교인 수보다 적은 것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탈종교사회’로 접어든 셈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 2015년 정부는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라 종교인구 통계를 발표하였다. 불교는 15.5%(761만9천 명), 개신교는 19.7%(967만6천 명), 그리고 천주교는 7.9%(389만 명)로 나타났다. ‘종교 없음’이 무려 56.1%(2,749만9천 명)인 점은 흥미로웠다.
이 결과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사실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개신교가 한국 내에서 최대 종교 집단으로 집계되었다는 사실이다. 가톨릭까지 포함하면 총 27.6%(1,356만6천 명)로써 범기독교가 한국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지배 종교 세력이 되었다. 정확도 여부를 떠나 매우 흥미로운 조사 결과였다. 10년 전 이루어진 직전 인구조사(2005년) 결과와 비교하면, 기독교인(개신교) 수가 844만6천 명(18.2%)에서 967만6천 명(19.7%)으로 약 123만 명 정도 더 증가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세습과 목회자의 윤리적 탈선, 그리고 극우 이데올로기적인 정치 행태 등 적잖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왔고, 그 과정에서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많이 감소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는 오히려 한국 기독교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더욱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더욱 강조하게 만드는 부분으로 교회가 사회의 발전을 위해 그 책임을 잘 감당하도록 다시 기회를 준 것 아닌가 싶다. 한국교회는 이번을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역사적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특히 정의로운 사회 구현과 계층 간 불평등 해소, 민주주의의 정착과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또 다른 하나, 종교인구 조사 이래 최초로 무종교인 수가 종교 인구를 추월했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 사회가 이제 본격적으로 종교로부터 벗어나는 ‘탈종교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탈종교사회가 됨으로써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은연중 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당연시되던 수많은 사회적 관습과 법률들에 수정의 필요성이 지금보다 더 강조될 것이다. 그중 동성애나 종교인 과세 이슈 등은 아마도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유사한 다양한 이슈들이 탈종교 현상과 맞물려 앞으로 계속 불거질 것이다. 따라서 각 종교는 한국 사회가 탈종교사회로 본격 진입했음을 명심하고, 교세 확장을 위한 종교 간 경쟁보다는 오히려 탈종교 현상에 대한 종교인들의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
한편 2015년 종교인구 조사 발표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적지 않은 성찰거리로도 다가왔다. 특히 내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기독교인이지만 현재 교회에 안 나가는 가나안 성도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정부 인구조사와 각 교단의 교인 조사를 비교하면 명백히 드러난다.
종교인구 조사에서는 종교를 기독교(개신교)로 표시한 인구가 10년 전보다 심지어 약 123만 명 늘어나서 약 960만 명이 되었는데, 같은 해 각 교단이 총회 때 발표한 교인 수 통계에 따르면 각 교단의 교인 수는 오히려 줄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경우는 전년 대비 0.8% 감소하여 270만 명, 대한예수교회장로회(통합)의 경우는 0.76% 감소하여 278만9천 명(최근 102차 총회 보고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5만8,202명 감소한 273만900명이다), 그리고 기독교장로회(기장)는 0.14% 감소하여 26만4천 명으로 발표되었다.(101차 총회) 감리교의 경우는 감소 폭이 훨씬 더 커서 전년 대비 5.67% 감소한 137만5천 명으로 파악되었다. 정부의 인구조사에서는 기독교인으로 자신의 종교성을 밝혔으나, 실제 교회 출석은 안 하는 가나안 성도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결국 통계상 개신교인은 증가했으나, 교회에 교적을 두고 실제 교회에 출석하는 등 신자로서의 활동은 줄어드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신학계에서 종종 회자되는 “종교적이 아니라 영성적”(not religious but spiritual)이라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적지 않은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제도 종교(교회 혹은 교단)를 거부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 영성 지향의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위에서 말한 가나안 성도 비율의 증가 추세가 더욱 폭발적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가나안 성도에 대한 통계조사에서도 금방 확인된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는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포이에마)에서 가나안 신자를 약 100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이 수는 2012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그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사람들 가운데 약 10.2% 정도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고, 이에 근거하여 가나안 성도의 수를 대략 100만 명으로 추산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2017년 한국교회탐구센터(대표 송인규)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평신도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017년 현재 개신교인 중 19.2%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2012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조사한 것(10.2%)보다 8.7% 증가한 수치다. 신자 수로 대비하면 개신교 인구 약 1천만 명을 전제할 때, 약 190만 명 정도가 가나안 성도라는 통계이다.(〈뉴스앤조이〉 2017. 6. 11)
가나안 성도의 양적 팽창과 더불어, 그 속도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결국 최근 한국 종교인구의 변동에서 드러난 사실은 급속한 비종교인의 확산과 그에 따른 탈종교사회로의 진입, 그리고 가나안 성도로 표현되는 제도적 종교인의 이탈 현상이다. 그렇다면 탈종교사회로 바뀌고 또 가나안 성도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특히 한국교회는 가나안 성도를 어떻게 돌보며 어떻게 미래의 기독교를 창조할 것인가?
신앙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앞에서 나는 탈종교시대의 특징으로 종교인의 감소와 함께 개신교의 경우 가나안 신자의 확대 현상을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탈종교시대에서 한국교회는 어떻게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결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필자 역시 그에 대한 뾰족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종교인이 줄고, 특히 개신교인의 교회 출석 숫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단지 최근 문제가 되는 교회의 윤리적 탈선 때문만이 아니다. 전통적 교회와 현대적 교회 사이의 신앙 패러다임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시대적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 윤리 의식이 더욱 요청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종교인이 줄고 또 교회 출석 신자가 줄어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교회가 적절히 부응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회는 아직도, 중세적인 권위적 위계성이나 중세적 세계관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성서가 쓰일 당시의 과학적 패러다임은 소위 천동설이었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지동설로 불리는 태양중심설도, 그렇다고 고대사회에서 믿고 있던 천동설도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 곧 우주가 온통 고정된 것 없이 모두 돌고 도는 소위 ‘천지동설’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교회는 현대과학의 세례를 받은 신자들에게 아직도 고대의 천동설적 패러다임만을 강요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교회에 출석하여 목사의 설교를 듣고 의미를 찾으며, 또 누가 현대사회에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목사를 찾고 또 성경을 뒤적거리겠는가?
결국 한국교회는 신앙의 패러다임을 고전적 패러다임에서 현대인에 적절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온전히 탈바꿈하지 않는 한 희망이 없다. 현대사회 맥락에 맞게 신앙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고전적 교회에 부적응하여 교회를 떠난 소위 가나안 신자들을 새롭게 포용하고, 그들과 진지하게 대화함으로써 한국교회를 새롭게 해야 한다. 말하자면 한국교회의 희망을 교회 밖으로 밀려났거나 떠난 가나안 성도들에게서 찾는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그들을 위한 교회 곧 ‘가나안교회’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길을 찾는 것이다.
역사는 늘 그래왔다. 변방에서 변화가 이루어졌다. 예수의 역사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였고, 500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도 교회의 중심지 로마가 아니라 변방 독일에서였다. 마찬가지이다. 탈종교시대에 한국교회를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가? 그 역시 한국교회의 변방인 가나안교회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나안교회는 비록 아주 작은 베들레헴과 같은 교회이지만, 비록 기존 제도 교회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이지만, 분명 새로운 한국교회의 역사를 쓰리라 믿는다.
가나안교회의 100가지 꿈
가나안교회를 시작하면서 ‘내가 꿈꾸는 교회란 무엇일까’ 생각하며 밤을 지새우며 적어본 적이 있다. 마치 500년 전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하면서 비텐베르크 성당 벽에 붙였던 95개조문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가나안교회의 100가지 꿈(바로 뒷면 첨부)’이라고 이름 붙였다. 모쪼록 100가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제 막 출발한 가나안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긴 순례의 여정에서 난파하지 않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빌어본다.
제목을 가나안교회의 100가지 꿈 |
| 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내속의 모신 하나님이 결코 세분이 아니라 한분임을 깨달은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의 일치 공동체! 2. 기존 교회에 부적응하여 교회를 떠난 가나안 신자들이 어깨 펴고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돕는 가나안 공동체! 3.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예술로 힘 실어주는 예술공동체! 4. 뽀대나게 한 멋진 삶을 추구하는 풍류공동체! 5. 노래하고 춤추고 자전거 타는 놀이공동체! 6. 여행하는 공동체! 7. 목사가 바르게 세금 내는 경제정의 공동체! 8. 목사임기제를 실천하는 책임공동체! 9. 온 교우들이 자신의 적성에 따라 선방이나 피정 혹은 서원을 경험하는 공동체! 10. 현대과학(우주, 생명, 정신)에 개방적인 공동체! 11. 예술을 일상 속에서 생활화하는 생활예술공동체! 12. 성만찬예배를 드리는 성례전 공동체! 13. 재가수도공동체를 지향하는 공동체! 14. 풍류도인으로서 음주가무를 향유하는 공동체! 15.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의 편이 되어주는 해방의 공동체! 16. 성속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통전시키는 불이의 공동체! 17. 성차별이 없는 남녀조화의 공동체! 18. 교회당 건물을 가지지 않는 무소유 공동체! 19. 교인이 원하면 언제든 교회를 해산할 수 있는 종말론적 공동체! 20. 십일조는 없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믿고 감사하는 봉헌의 공동체! 21. 예술목회(예술목회연구원)를 후원하는 공동체! 22. 예술 12분야를 차별하지 않고 모두 골고루 향유하는 공동체! 23. 예수님처럼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삶의 유희를 즐기되 기꺼이 공익을 위해 십자가를 질줄 아는 섬김의 공동체 24. 다른 교회에서 안하는 것을 찾아 즐겁게 실천하는 삐딱한 공동체! 25. 나그네를 환대하는 공동체! 26. 게으름을 미워하지 않고 대신 창의적인 몰입을 칭찬하는 공동체! 27. 목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며 홀로서기를 연습하는 공동체! 28. 교회 내외에서 1인 1봉사를 실천하는 공동체! 29. 교회나 이웃 종교의 이중교적을 존중하는 공동체! 30. 교회재정이 투명한 공동체! 31. 교회의 삼권분립이 분명한 민주적인 공동체! 32. 늘 경전과 영성을 공부하는 수행공동체! 33. 유불선을 존중하되 예수의 영성을 최고로 추구하는 예수살기 공동체! 34. 가톨릭-개신교-정교회 등의 모든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공동체! 35. 남녀노소 모두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평등과 인격적 공동체! 36. 자신의 한멋진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공동체! 37. 평생 영적 도반을 갖는 친구 같은 공동체! 38. 세상에 걱정 끼치지 않고 대신 세상의 착한 벗이 되는 공동체 39. 율법을 존중하되 율법적이지 않은 사랑의 공동체 40. 목회자와 연장자를 존경하되 혹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항의할 수 있는 저항의 공동체! 41. 검소한 삶을 강조하되 거룩한 낭비를 장려하는 베풂의 공동체! 42. 절밥보다 맛있는 교회밥의 식탁공동체! 43. 일소일소의 웃음으로 웃음을 전염시키는 명랑 공동체! 44. 하나님 만나 그를 모시고 살면 그 어디든 하나님 나라로 믿고 사는 하늘나라 공동체! 45. 불교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이웃 종교들과 대화하며 그들과 더불어 배우는 우정공동체! 46. 역사적 예수를 나의 삶의 스승으로 믿고 배우는 예수랍비공동체! 47. 사도신경을 존중하되 그 보다 먼저 자신의 신앙고백을 더 중시하는 고백공동체! 48. 교리보다 성경을 더 강조하는 말씀레마공동체! 49. 한국의 전통문화를 존중하는 무궁화공동체! 50.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은 사랑으로 행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51.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며 용서받는 은혜를 강조하되 쓸데없는 죄의식을 심어주지 않는 은혜공동체! 52. 목사와 교인에게 안식월과 안식년을 주는 희년공동체! 53. 가족들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종교자유의 공동체! 54. 출석교인 200명이 넘으면 분가하는 작은 공동체! 55. 이웃 종교의 상징물을 절대 훼손하거나 모욕하지 않는 종교적 관용의 공동체! 56. 석굴암보다 더 멋진 기독교예술작품을 만들 예술가를 키우는 예술교육 공동체! 57. 기독교학교를 지원하는 배움의 공동체! 58. 갤러리갖기운동을 실천하는 예술공동체! 59. 리마예전과 떼제공동체의 기도모임을 존중하는 영성공동체! 60. 1년에 2회 이상 온 가족이 함께 국내외 순례여행을 권하는 순례공동체! 61. 평생과제로 자서전을 쓰는 자아성찰 공동체! 62. 우리가락찬송으로 종종 예배드리는 아리랑 공동체! 63.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되 전통을 절대화하지 않으며 새로운 전통 만들기를 더 좋아하는 갱신의 공동체! 64. 이단을 미워하되 새로운 공동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낯선 문화나 타자를 환대하는 용기의 공동체! 65.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찬성하고 지지하는 평화 공동체! 66. 건강한 성의식과 성생활을 권장하는 생명공동체! 67. 잡초요리를 기독교음식으로 권하는 만나 공동체! 68. 몸과 영혼을 분리하지 않으며 몸과 영혼을 동등하게 소중히 여기는 그리스도의 몸 공동체! 69. 부정부패를 거부하는 공의의 공동체! 70. 건강하고 민주적인 정치지도자를 공개 선정하고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생활정치 공동체! 71. 주일성수를 강요하지 않지만 거룩한 안식으로서 참 쉼을 강조하는 쉼 공동체! 72. 부모님에게 물질과 마음으로 효도하는 효도 공동체! 73. 재산상속을 가급적 하지 않고 대신 세상을 떠날 때 의미 있는 공익기관에 재산을 기부하는 분배 공동체! 74. 뇌사 판정 시 인공연명을 하지 않고 대신 장기를 필요한 이에게 기증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품에 안기는 참 자유의 공동체! 75.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죽어가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생명의 공동체! 76. 요청이 있을 경우 성도심방 뿐만 아니라 자연심방을 하는 돌봄의 공동체! 77. 일주일에 1일 이상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생태공동체! 78. 매사에 양심을 따라 살아가는 양심공동체! 79.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공동체! 80. 끊임없이 개혁을 추구하는 개혁공동체! 81. 일보다 휴식과 놀이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안식일공동체! 82. 모든 노동과 직업은 신성하다고 믿는 소명공동체! 83. 일상생활의 거룩함을 추구하는 생활영성공동체! 84. 교인 1인 1구좌 비영리단체에 후원하는 자선의 공동체! 85. 설교가 20분을 넘으면 마귀의 소리로 알아 15분을 넘지 않는 말씀의 공동체! 86. 자녀와 늘 하브르타를 실천하는 대화 공동체! 87. 기독교의 일곱 가지 덕인 지혜 용기 절제 정의 믿음 소망 사랑을 하나님의 형상 곧 자신의 인간됨됨이로 늘 형성하는 이마고데이 공동체! 88.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토라인 복음서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예수 토라 공동체! 89. 성경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되 외경(구약, 신약)과 고전(사서삼경, 불경, 꾸란, 천부경 등)을 경홀히 여기지 않는 성경의 공동체! 90. 교회력을 존중하되 한국의 명절(설, 3.1절, 광복절, 추석 등)을 함께 소중히 여기는 달력 공동체! 91. 장수와 남북분단(평양)의 상징인 냉면을 함께 먹는 실향민(나그네) 배려의 공동체! 92. 늘 세월호를 잊지 않은 기억 공동체! 93.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고 굳게 믿는 진실의 공동체! 94. 우리 민족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공감의 공동체! 95. 상해임시정부(1919.4.11)에게서 대한민국의 법통을 찾아 주보에 A.D.와 함께 연호를 ‘대한민국OO년’으로 동시에 표기하는 대한민국의 공동체! 96. 일제 때 애국자(독립운동가, 중국조선족, 러시아 까레스끼야, 재일동포 등)였던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는 애국 공동체! 97. 4.19/5.18/6.10/5.10를 대한민국 민주화의 날로 지키는 민주 공동체! 98. 6.25를 기억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 공동체! 99. 노동자와 희생자를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약자 편애의 공동체! 100.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알아 그를 믿고 따르는 예수제자 공동체! |
손원영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보스톤칼리지와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서울기독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에서 18년 동안 가르치다가 파면 당해, 현재는 해직 소송 중이다. 한국기독교교육정보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사)한국영성예술협회 대표로 있으면서 가나안신자를 위한 가나안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영성과 교육》 《한국문화와 영성의 기독교교육》 《기독교교육의 재개념화》 《테오프락시스교회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