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과 ‘공화국’의 주인

[327호 시사 잰걸음]

2018-02-01     박제민 기독시민운동가
   
 

다시 불붙는 개헌 논의

현재의 헌법이 만들어진 1987년과 지금은 사회 환경 자체도 근본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중략)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1987년 때와 같이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국민들의 약 70%가 개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없는 20대 국회의 여야 구도도 개헌을 논의하기에 좋은 토양이 될 것입니다.  (중략)
이제는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2017년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중략) 정파적 이익이나 정략적 목적이 아닌 대한민국의 50년, 100년 미래를 이끌어 나갈 미래 지향적인 2017(년) 체제 헌법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미래를 위해 새로운 정치체제의 필요성을 역설한 감동적인 연설이다. 2016년 10월 24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 시정연설의 일부다. 평소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부정적이셨는데 입이 방정이라고, 개헌하겠다고 말한 바로 그날 저녁에 국정농단의 전말이 밝혀지기 시작해서 정말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지금은 교도소에서 계시다. 비록 몸은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저때 저 마음만은 변치 않았으리라.

정파적 이익이나 정략적 목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개헌하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바람처럼, 정파가 다른 문재인 대통령도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월 10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지난 대선에서 모든 정당과 후보들의 공약이었다면서, 2월 안에 국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개헌특위)가 개헌안 논의를 마무리 짓고 3월 안에 개헌안이 발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국회에서 합의가 안 되면 정부가 개헌에 대한 준비를 자체적으로 해나가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날지 관심이다.

   
 


아홉 번의 개헌, 여섯 번째 공화국
우리 헌법은 1948년 제정된 이래로 9차례 개정되었다. 그때마다 거창한 이유가 나붙었지만 결국 개헌의 핵심은 권력을 누가 어떻게 차지하느냐의 문제다. 민주시민으로서 교양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헌법이 언제 어떻게 개정되었는지 하나씩 찾아보았다.

1차 개헌(1948.07.17)은 한국전쟁 중에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이뤄졌다. 직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이승만이 국회에서 열리는 간접선거로는 도저히 재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전쟁 중에 집권세력을 잘 교체하지 않는 민심에 기대고자 직접선거로 개정을 강행했고 결국 재선에 성공했다.

2차 개헌(1954.11.27)은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이다. 대통령을 더 하고 싶었던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을 폐지해버렸다. 이를 위해 재적의원 203명 중 3분의 2의 찬성, 즉 계산적으로 135.333…명의 찬성이 필요했는데, 135명의 찬성 밖에 얹지 못해 부결됐다. 그런데 다음날 사사오입(四捨五入, 4는 버리고 5는 올린다는 뜻), 즉 반올림을 들먹이며 0.333…은 한 사람이 아니니까 버리고 135명의 찬성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고 우기며 통과시켜버렸다.

 3차 개헌(1960.06.15)은 4·19혁명 이후 총선에서 국회 다수당이 된 민주당 정부에 의해 이뤄졌다. 국회는 정부 수립 초기부터 국회 다수파가 정부를 구성하는 의원내각제를 선호했는데 이때 드디어 도입했다. 그런데 이 헌법체제는 1년도 안 되어 한 무리의 군인들에 의해 무력화된다.

4차 개헌(1960.11.29)은 3차 개헌 후 불과 5개월 만에 이뤄졌는데 직전 개헌 때 담지 못한 반민주행위자, 부정축재자 등을 처벌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것은 법 개정 전에 있었던 범죄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이라서 이른바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어겼다고 논란이 많았다.

5차 개헌(1962.12.26)은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에 의해서 이뤄졌는데,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복귀했다. 국회가 해산된 상태였기 때문에 곧장 국민투표를 거쳐 개정해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개헌으로 평가된다. 박정희의 폭주는 시작에 불과했다.

6차 개헌(1969.10.21)은 대통령을 더하고 싶었던 박정희가 헌법에 “대통령의 계속 재임은 3기에 한한다”라는 말을 집어넣었다. 야당이 정족수를 줄이기 위해 당을 해산하고 국회 단상을 점거하는 등 고육책을 써서 거의 막을 뻔 했지만 새벽에 날치기로 통과돼버렸다.

7차 개헌(1972.12.27)으로 악명 높은 ‘유신헌법’이 들어섰다. 대통령 4선을 허용하자고 바꾸는 것이 민망했는지 아예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를 금지하는 등 초강력 무리수를 뒀다. 국민의 기본권은 심각하게 제한당했고 듣도 보도 못한 독재정치가 이뤄졌다.

8차 개헌(1980.10.27)은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당한 10·26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끝장난 이후 곧이어 12·12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과 신군부에 의해 이뤄졌다. 그런데 그동안 하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헌법 개정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지 헌법에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는 내용을 넣었고, 이는 지금까지 유효하다. 전두환 무리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9차 개헌(1987.10.29)으로 지금 시행되는 헌법이 완성됐다. 전두환 정권이 간접선거를 유지하겠다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직접선거 요구가 폭발했다. 이 와중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났고 결국 전두환 정권이 직접선거 요구를 수용하는 ‘6·29 선언’을 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헌법은 총 9차례 개정되었는데 그에 따라 지금 대한민국을 ‘제6공화국’이라 부른다. 공화국 앞에 숫자는 언제 어떻게 붙이는 걸까? 선거를 할 때마다 붙이는 것이면 총 19번 했으니 제19공화국이라고 해야 하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붙이는 것이면 총 대통령을 11명이 했으니 제11공화국이라고 해야 하고, 헌법이 바뀔 때마다 붙이는 거면 총 9번 개헌했으니 제9공화국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사실 공화국을 구분하는 기준은 없다. 다만 정치체제가 바뀌거나 헌법이 그 정치체제를 보장하는 임기가 바뀔 때마다 새로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처음 대통령제가 도입됐을 때가 제1공화국, 4·19혁명 이후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바뀌었을 때가 제2공화국, 5·16군사쿠데타의 여파로 다시 대통령제로 복귀한 때가 제3공화국, 유신헌법으로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바꾸고 연임제한을 없앤 것이 제4공화국, 유신체제 이후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으로 바꾼 것이 제5공화국, 그리고 1987년 이후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바꾼 현재를 제6공화국으로 부른다.

10차 개헌, 제7공화국을 차지하여라
헌법을 9번이나 바꾸고 공화국의 일련번호를 6번까지 달았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속해 국민이라 불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거의 늘 고통스러웠다. 4·19혁명 이후에도, 6월 항쟁 이후에도 부패한 권력을 몰아낸 뒤 헌법을 개정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혁명과 항쟁의 주역이었던 평범한 사람들은 뒤로 물러났고 극소수의 정치꾼들만 참여해 서로 권력을 나눠가졌다.

때마다 거창한 이유가 나붙었지만 결국 개헌의 핵심은 권력을 누가 어떻게 차지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이 말이 맞다면 10차 개헌으로 들어설 제7공화국의 권력은 반드시 평범한 사람들에게로 항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유일한 권력 수단은 선거 때 표 한 장뿐이다. 이것이 어떻게 극대화되고, 다음 선거가 있을 때까지 반영구적으로 발휘될 수 있을지 연구되어야 하고 이 결과가 개헌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말 할 것 없이 모든 선거에 사표(死票)를 줄이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특히 의회 선거에는 민심을 정확히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난해 겨울,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어 마침내 무도한 권력을 몰아냈다. 새 정부가 들어섰고 이제 헌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예전처럼 뒤로 물러서 있지 말고 광장으로, 국회로, 청와대로, 동네방네 골골샅샅 뛰어나와야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약 55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치개혁 공동행동’을 만들어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보적이거나 복음적이거나, 어쨌거나 그리스도인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10차 개헌으로 들어설 제7공화국의 권력은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차지해야 한다.

“복 받은 사람들아, 와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마 25:34)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