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앗싸아”

[332호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지적장애인 청년 박시원 이야기

2018-06-26     김영준
▲ 뭘 물어봐도 웃음으로 먼저 대답하는 박시원 씨 (이하 사진: 김영준·박시원 제공)

#01
멀리서도 웃는 얼굴이 보인다. 시원 씨는 스물두 살 지적장애인 청년이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시원 씨는 이미 웃고 있다. 사람들의 인사에 웃음으로 대답한다기보다, 시원 씨의 웃음에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반응한다. 새솔학교 전공과에 다니는 시원 씨가 33번 버스를 타고 카페 ‘민들레와달팽이’에 왔다. 새솔학교에서 점심으로 먹은 스파게티가 맛있었고, 멸치볶음이 고소했고, 오징어 무국은 시원했다고 한다.

특유의 웃음으로 점심 메뉴를 소개하는 시원 씨에게 곤란한 질문을 대뜸 해봤다.

“지금껏 살면서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요?”

힘들었던 때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시원 씨의 표정이 환했기 때문에, 고통으로 기억될만한 힘들었던 때가 없을 것이라 짐작됐기 때문에 그따위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물었지만, 시원 씨 특유의 웃음을 기대했던 것이다. 혹 힘들었던 순간마저도 시원 씨는 웃음으로 대답할 것이다. 예상대로 시원 씨는 찬찬히 웃었지만, 마냥 환하진 않은 얼굴로 “자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처음엔 불면이 있다는 건 줄 알았다. 아니면 자고 싶지 않다는 것인 줄 알았다. 둘 다 김 목사의 오해였다. 시원 씨에겐 고통 같은 잠이 있었다.

#02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시원 씨는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기도(氣道)와 폐에서도 종양이 발견됐다. 수술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서, 처음 진단한 의사는 남아 있는 시간이 3개월이라고 했다. 다른 의사를 만나보았다. 심각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생명의 남은 시간을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 의사에게 진단과 처방을 맡기기로 했다.

기도에 자리 잡은 암이 점점 자라더니 너무 커져서 시원 씨는 누울 수가 없었다. 누우면 암 덩어리가 기도를 막아 숨을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4시간을 직각으로 꼿꼿하게 앉아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잠을 자다가 몸이 옆으로 기울어도 기도가 막힐 수 있기 때문에, 잠들었다가도 바로 앉기 위해 허리와 등을 다시 곧추세워야 했다. 직각으로 앉아 잠을 자면서 항암 치료를 받을 때, 시원 씨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만 왜 이래?”

자신이 왜 장애인이고 심각한 암에 걸려야 하는지, 시원 씨는 묻지 않을 수 없었고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할 수 없었던 엄마는 병원에 있는 기도실에서 똑같은 질문을 신에게 퍼부었다.

#03
하나님은 기도하는 엄마에게 시원스런 답을 주진 않았다. 다만, 고통 중에 작은 소망이 일었다. 기도에 있던 종양의 크기가 줄어든 것이다. 초진 의사가 시한으로 잡았던 3개월이 지났을 때, 생명의 남은 시간을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던 의사가 치료의 효과가 있으니 좀 더 센 약을 투여해보자고 했다. 누울 수 없는 병원 침대에서 고통스럽게 잠을 자며 3개월이 또 지나갔을 때, 기도에 있던 암 덩어리가 괴사되었다. 암 덩어리는 여전히 기도에 남아있지만, 크기도 줄고 죽은 세포가 되어 걸리적거리긴 해도 위험하진 않다. 폐에 남은 암을 제압하기 위해 3년 동안 항암치료를 더 받았는데, 그 암 덩어리도 더 이상 커지지 않고, 활동을 멈추었다. 하루하루가 버거웠지만, 하나님에게서 특별한 응답이 없었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이렇게만, 이만큼이라도 치료된다면.

직각으로 앉아 잠을 자야 했던 시간이 지나고 통원 치료를 하며 집과 병원을 오가던 어느 날, 시원 씨가 푹,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독한 항암치료로 기도에 있던 암 덩어리만 괴사된 게 아니라, 허벅지 뼈도 푸석푸석 부서지고야 말았다.

미처 끝나지 않은 항암치료를 멈추고, 다리뼈에 생긴 염증을 긁어내고 콘크리트를 바르듯 인공뼈를 삽입했다. 인공뼈를 삽입하고, 항암치료를 재개했는데, 다리뼈가 다시 부서져 내렸다. 항암치료를 계속하면 괴사가 진행되어 다리를 잘라야 했었다. 항암치료를 계속하면 다리를 잘라야 하고, 다리를 자르지 않으면 암을 막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04
병원에 있는 기도실에서 어머니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수건을 입에 물고 기도했다고 한다. 장애 아이를 낳았고, 아이에게는 악성 암이 생겼고, 어쩌면 아이의 다리를 잘라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신에게 기도할 때 어떤 말을 터져 나올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수건을 입에 물었지만, 사람이 없는 시간이면 욕을 해댔다. 하나님을 향해 신랄한 욕을 퍼붓는 것이 당시 어머니의 기도였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아들 시원 씨에게도 기도하자고 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묻는 지적장애인 아들에게 어머니는 기도를 가르쳐주었다.

“하나님, 됩니다.”

다리뼈가 녹아 부서지고 있을 때, 시원 씨는 “하나님, 됩니다”를 반복하며 기도했다. 항암 치료를 멈출 수밖에 없어 폐에 있는 종양을 제압할 수 없을 때, 시원 씨는 “하나님, 됩니다”라고만 기도했다. 기도하는 시원 씨에게 어머니는 하나님께 감사하자고 했다. 사람 없는 자리에서 은밀히 하나님께 욕을 하셨다는 어머니는 아들 시원 씨에게 감사하자고 했다. 어떻게 하는 게 감사하는 거냐고 시원 씨가 묻자, 가장 기분 좋을 때 하는 말을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시원 씨는 엄마의 제안을 따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앗싸아”

시원 씨는 3년 동안 항암치료를 했고, 항암치료로 무너진 다리뼈 속 염증을 긁어내고 두 번 인공뼈 이식 수술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중도에 멈췄지만 폐에 남아 있던 암세포는 다행히 활동을 멈추었고, 거친 운동을 할 순 없지만 시원 씨는 혼자서 시내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고 있다. 시원 씨는 걷는다. 수건을 입에 문 어머니의 침묵 기도와 인생 전체를 버무려 욕으로 바친 울음, “하나님, 됩니다”를 반복했던 시원 씨의 순한 기도와 “하나님, 앗싸아” 속에 담긴 감사에 하나님은 응답하신 걸까.

   
▲ 시원 씨는 줄곧 목사가 될 거라고 얘기한다.

#05
시원 씨는 목사가 되고 싶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시원 씨는 어머니와 함께 성경을 읽었다.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어머니와 시원 씨는 함께 연필을 입에 물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연필을 입에 물고 성경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하는 목사에게 손짓하며 “엄마 저게 뭐야?”하고 물었고, “성경을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는 목사님”이라 대답했더니, “그러면, 나 저거 할래!”라고 말했다. 이후로 시원 씨는 줄곧 목사가 될 거라고 얘기한다.

김 목사가 신대원 3학년 2학기 때, 설교 실습이라는 걸 했다. 설교 원고 9장을 제출하고, 두 장으로 압축해 12분 동안 동료 학생들 앞에서 설교 실습을 했다. 밤새워 원고를 다듬고 입에 볼펜을 문 채 원고를 외웠던 적이 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제법 잘해서, ‘C+’를 받았다. 그 이후로 설교를 준비하며 볼펜을 입에 물진 않는다.

시원 씨가 3년 동안 연필을 입에 물고 성경을 읽었다면, 마땅히 B는 더 받아야 하겠고, 적어도 김 목사의 설교보다 시원 씨의 성경 봉독이 훨씬 하나님의 말씀에 근접하겠다. 지적장애인 시원 씨가 비장애인처럼 설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시원 씨가 읽는 성경을 통해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말씀하실 수 있잖은가. 3년 동안 연필을 입에 물고 성경 읽기를 수련한 시원 씨가 예배의 한 복판에 하얀 마스크를 쓴 채, 하얗게 웃으며 성경을 봉독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여느 목사보다, 적어도 김 목사보다 시원 씨가 더 목사다. 성경을 다 읽고 나면 이렇게 덧붙이면 좋겠다.
“하나님, 됩니다.”

#06
갓난아기 시원 씨는 돌이 차가도록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먼 산을 보듯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밖에 나가자며 떼쓰지도 않았고,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억지 부리지도 않았다. 가지고 놀던 유리병이 깨져 파편이 종아리에 박혀 응급실에 가야 했을 때도 울지 않았다. 시원 씨는 자폐성 장애인이기도 하다. 생후 20개월이 됐을 때 장애 판정을 받고, 온갖 모임, 다양한 치료를 받으며 집에 돌아오면 쓰러지듯 잠들었다. 어떤 게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호전되었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간단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대화가 되진 않았다. 사람들이 묻고, 시원 씨가 대답하는 대화는 없었다. 사람들이 물으면, 웃으며 엄마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시원 씨의 응대였다. 시원 씨의 웃음을 엄마는 동시통역한다. 시원 씨의 하얀 웃음을 다채로운 색깔의 사연과 말로, 엄마는 통역한다.

소아암 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 시원 씨에게 어려운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동시통역사인 어머니가 파업을 선언했다. 시원 씨의 하얀 웃음은 엄마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야 다양한 언어로 드러나는데, 프리즘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과 시원 씨 사이에서 빠지기로 한 것이다. 같은 병실의 보호자와 환우들은 직접 시원 씨에게 물어보게 됐고, 시원 씨도 사람들에게 바로 대답하길 연습했다. 종일 병실에서 가족 외의 사람들과 가족같이 지내며, 시원 씨는 엄마의 통역 없이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대답은 희미했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색깔의 말이었다. 그 병실에서 시원 씨는 지금만큼의 말이 트인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불분명한 대상들을 향한 원망으로 엄마가 수건을 입에 문 채 차마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없을 때, 시원 씨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됐다.

   
▲ 장애인 수영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따기도 했는데, 이제 수영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07
사람들과 짧은 대화도 가능하고, 암은 억제되었고, 혼자서 걷고 버스도 탈 수 있지만, 이전에 했었지만 지금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시원 씨는 이제 수영을 하는 게 위험하다. 발로 물을 때리면 인공 뼈가 빠질 수도 있다. 장애인 수영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따기도 했는데, 이제 수영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자전거를 탈 때도 조심해야 한다. 페달을 돌리는 자세가 인공 고관절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물을 치고 나가는 게 위험하고, 페달을 눌러 달릴 때도 아주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시원 씨는 요새 자동차가 좋아졌단다. 발등으로 물을 때리지 않아도 되고, 허벅지를 들어 올려 페달을 누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까. 시원 씨는 자동차가 좋아서, 생일 선물로 레고 자동차를 받고 싶다고 한다. 마음으로는 이미 레고 경찰청을 지었고, 경찰청 앞에 자동차를 주차하기로 작정했다.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시원 씨는 생일을 기다린다. 생일이 12월 31일이라, 시원 씨에게 1년은 하루도 빠짐없이 생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레고 자동차는 김 목사가 사주기로 약속했다. 역시나 환하게 웃는다. 항암치료를 받은 이후 외출할 때면 항상 마스크로 입을 가리지만, 마스크도 하얗게 웃는다. 마스크도 하얗게 따라 웃을 만큼 시원 씨는 환하다. 한 여름 하얀 마스크에도 병색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다 지나고 살아야 할 인생이 가득 차고 나면 12월 31일처럼 선물 같은 날이 올까. 아니면, 12월 31일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선물 같은 날인 걸까. 선물을 기다리는 하루하루도 가고, 선물을 받는 날도 지나갈 것이다. 시간은 가고, 오는 시간도 간다. 오고 가는 시간의 어디쯤에 하나님 나라가 있는 걸까. ‘종말론적’을 관형어 삼아 ‘하나님 나라’와 ‘천국’을 설명하는 학자들의 말을 평범한 김 목사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소아암 병동에서 직각으로 허리 세워 고통 속에 잠을 잤던 발달장애인 시원 씨를 따라, 기도하고 찬양할 뿐.

“하나님, 앗싸아!”

 

김영준
소설을 좋아하고 그림도 즐겨 찾는 목사다. 《그림 속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썼고, 한 달에 한 번 ‘문학 속 성경이야기’라는 모임을 진행한다. 주1회 발달장애인자조모임에 조력자로 참여하면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 및 직업훈련센터를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에서 이사 노릇을 한다. 토요일에는 이주민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달팽이학교’를 연다. ‘민들레와달팽이’라는 카페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민들레교회 목사다. 김포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