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더호프에서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읽으며
〔서평〕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 조현 지음 / 휴 펴냄
17년 전 경쟁에만 몰두하지 않고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삶을 찾아다녔을 때 나는 조현 기자가 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읽었다. 물질주의에 끌려다니는 대신 마음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용기를 얻었고, 그 책을 지도 삼아 다른 삶을 실험하는 국내외의 공동체를 방문했다. 그리고 몇 년의 체험과 탐색 끝에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진정한 내면의 자유와 삶의 환희를 경험한 뒤에 이곳의 식구가 되었다. 경쟁 상대가 아닌 형제가 된 이들과 더불어 일하고, 마음 터놓고 교류하고, 갈등이 생기면 서로의 마음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게 좋았다. 그리고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게 그렇게 신이 날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한 형제가 되고, 아빠가 되고, 새로운 일을 맡아 일상을 살아가지만, 이따금 이 삶을 사는 이유를 돌아보지 않으면 금세 관성에 빠지는 걸 경험했다. 나와 우리를 계속 찾아야 하고, 작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친구를 통해 요즘 한국의 청년들 중에는《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서 구해 읽었다. 곳곳에 사진들이 곁들어 있지만 43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바쁜 일상에서 언제 다 읽을까 싶었는데 며칠 만에 읽어버렸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이 알콩달콩, 희희낙락 살아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쓴 글이라 여느 소설 못지않게 재미있게 읽혔다. 어떤 부분은 함께 사는 재미가 쏠쏠한 정도가 아니라 진하게 풍겨 나와서 다시 음미하기 위해 다시 읽기도 했다.
이 책이 가슴에 확 와 닿는 이유는 공동체나 마을을 쭉 열거해가며 그저 그곳들의 장점을 적어서 괜한 부러움만 사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대로 오늘 개인과 사회를 옥죄는 고독과 갈등, 불확실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해답과 대안을 찾아내어 실제 살아가는 이들의 분투를 추적했기 때문에 공감이 갔다. 그들의 길을 따라가다 보니 고독과 경쟁에 맞서는 방법이 하도 기발해서 덩달아 신이 났고 동시에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 실제적인 해결책을 본 것 같아 뿌듯했다.
몇 곳만 예를 들어보자.
파주시 문발동 공방골목길에 사는 이들은 탁구대 하나가 시작해준 인연으로 이웃들과 어울려 놀면서 삶의 재미를 되찾고, 질병과 싸우고, 아이들을 지루한 삶에서 구출했다. 서울 인수동 골목길 구석구석에 방을 구해 모여 사는 밝은누리공동체는 육아품앗이를 통해 엄마들을 독박육아에서 구해냈고, 마을밥상과 찻집, 집짓기 사업을 공동창업해 청년실업 문제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 나아가 강원도 홍천에 학문과 삶이 따로 놀지 않고 통합되는 삼일학림을 열어 다음 세대가 기성세대를 닮아가는 관성에서 벗어날 배움의 길을 터주었다. 남한산성 아래에 위치한 거주여건이 열악한 논골마을에서는 마을센터와 주민이 손수 운영하는 문화축제를 통해 주민들의 숨통을 틔워주었고, 아이들에게 목공과 설비 기술을 가르쳐 홀로 사는 노인들의 집을 수리하는 ‘떴다 홍반장’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과 노인 문제에 깊은 태클을 걸었다. 고정관념과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과 유럽에서 돈에서 자유로운 상생의 길을 실험해온 야마기시즘 실현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권력추구와 불통으로 정체되자 과감히 부를 버리고 명령 대신 자율, 성과 대신 행복이 있는 도시락 공장을 창업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해방을 만끽하고 있다.
이렇게 저자는 돈과 성공에 엄마와 아빠, 친구, 그리고 자신을 빼앗긴 이들이 어울림과 지지를 통해 새로운 관계와 삶의 터전을 회복해 나가는 국내외 23곳의 현장을 관찰자로서는 지닐 수 없는 가까운 거리에서 기록했다. 그 비결은 아마도 지난 20년을 변두리나 오지, 해외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뒹굴며 벗이 되어가는 과정에 공을 들인 덕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탐사기인 동시에 이 공동체들에 애정을 지닌 동네 삼촌(또는 ‘조반장’)이 정성 들여 쓴 삶의 기록인 동시에 깊은 애정이 담긴 연애편지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고 나서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왜 저자는 이런 공동체 삶에 주목하게 된 걸까?’ ‘그런 삶의 어떤 점이 한 사람이 겪는 문제에 해답을 준다고 생각한 걸까?’ 물론 이 궁금증을 푸는 일은 독자 각자의 몫이겠지만, 책의 내용을 보고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변화가 필요하며 치유할 때라는 신호다. 실제 공동체가 더 필요한 사람들은 현대 문명으로 인해 좌절을 겪고 상처 입은 사람이다.” (226쪽)
“사람들의 근원적인 욕구는 관계의 욕구입니다. 제대로 된 소통이 되는 게 하나님 나라겠지요. 그게 바로 공동체고, 태평성대이지요.” (234쪽, 은혜공동체 박민수 대표의 말을 인용하며)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면서 치유할 길을 은연중에 찾기 마련이고, 그런 점에서는 저자도 예외가 아니었을 거다. 조현 기자가 쓴 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런 상처 입은 사람들을 향하고 있으며 이 책을 쓴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스스로 책 말미에 밝히고 있다.
“부모 형제나 친인척, 연인, 친구, 동료, 이웃에게 입은 상처 때문에 ‘관계’를 포기하고 숨어든 분들이 다시 아픔의 동굴에서 나와 서로 의지하고 돕고 사랑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425쪽)
‘한 번도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는 이 말이 ‘용서하고 용서받아 상처가 말끔히 나았다’라는 말로 다가왔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게 말이다. 내가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살기로 결심한 것도, 오늘도 이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도 이런 새로운 시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인터뷰에 응한 어떤 사람이 말한 대로 젊은 세대는 아무리 근사한 공동체 삶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통 관심이 없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재미와 기쁨의 근원은 무엇일까? 내면의 상처와 갈등이 치유되어 마음과 관계의 평화를 얻게 될 때 그런 기쁨이 샘솟고 지속되는 게 아닐까?
다시 한번 저자의 글을 인용하며 어설픈 나의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인간 세계, 그대들을 돌봐주고 사랑해주고 지켜주고, 그대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로 돌아올 용기를 내기를 빈다.” (25쪽)
이 책을 읽고 나도 용기를 얻었다.
원마루
계간 〈쟁기〉 편집자. 영국 남동부 로버츠브릿지에 있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일원으로, 브루더호프에서 만난 아내 아일린과 함께 자녀들을 키우며 산다. <복음과상황> ‘무보수’ 독자통신원으로 자원하여 활발히 활동중이다. 지금까지 옮긴 책으로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나이 드는 내가 좋다》 《숨어있는 예수》 《공동체 제자도》 《바닥난 영혼》 《아이들의 정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