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와 사람들 1

[337호 반디마을 한몸살이] 명수 이야기

2018-11-28     정동철

형만한 아우 많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은 뿌리 깊은 유교문화가 만들어낸 허위임에 틀림없다. 형은 형대로 아우는 아우대로 그 문화에 눌려 어느새 그 자리에 서게 되는 듯하다. 누가 공동체를 방문하거나 질문을 해도 희한하게 형인 내가 응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식되는 중심성과 대표성은 부인할 수 없었으며 누군가는 또 그렇게 해야만 했으므로 피할 수도 없었다. 다만 함께 사는 아우들의 생각이 묻혀 있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 공동체는 한 사람의 이상에 동의하여 모인 구성원의 집합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는 매주 모이는 회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다듬어가고 있다. 나는 그런 시간을 통해 형보다 나은 아우들로부터 많은 영역에서 배우고 있다. 그래서 지금껏 내 생각인양 소개했던 공동체 이야기를 잠시 접고 아우들의 생각을 담아보려고 한다. 이는 지난 글들에서 말한 것과 중복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우리가 얼마만큼의 합의를 이뤄가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 '형보다 나은 아우'들 이야기 명수(맨오른쪽)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그와 함께 공동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 정동철 제공)

명수 생각
명수는 공동체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친구다. 아우들의 이야기를 명수로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는 아내 최유정, 아들 하빈(11세), 딸 유빈(8세)이와 함께 우리 옆집에서 살고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는 내 질문에 명수는 군대 시절의 기억을 되뇐다. 군종병이었던 그는 군생활 중 대천덕 신부님의 《우리와 하나님》(홍성사)이라는 책을 탐독했다. 그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라는 존재도 부르셨지만 ‘우리라는 공동체’를 함께 부르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전역 후 복학하여 IVF(한국기독학생회)라는 선교단체에서 함께 훈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단다. 신앙훈련을 받고 성경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성경은 더 구체적으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며 예수님도 제자들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기를 원하셨다. 그런 성경의 가르침을 깨달아 갈 무렵 선교단체(IVF) 형제들과의 동거도 이뤄졌다. 이것은 단순히 비용 절감의 유익을 넘어 그리스도의 제자로 최선을 다해 살도록 삶을 훈련하는 것이었으며 그때의 경험이 공동체를 갈망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명수는 신학 공부를 하고 교회 사역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여러 모양으로 동역하며 그때의 갈망이 이뤄질 것을 기대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깊이 삶을 공유하는 데까진 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명수의 갈망은 정확히 나의 목마름과 일치했고 목마른 자들이 우물을 파듯 우리는 주저 없이 주거지를 옮기고 평탄했던 사역지를 포기하며 하나 되기를 결심했다. 명수의 주저 없는 결단과는 달리 갓 결혼한 그의 아내 유정은 공동체로 사는 것이 생소하여 망설였다. 또한 나고 자라 직장생활을 하기까지 한 번도 고향 부산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터라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낯설고 어색한 울산으로 이주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을까? 공동체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살아갈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이사 갈 아파트의 환경도 일조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도심에서만 살았던 유정은 울산 외곽으로 흐르는 태화강과 강 건너 푸르른 산을 마주 보는 아파트의 풍경에 매료되었다. 뜻하지 않은 하나님의 선물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공동체적 삶의 실태를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완전히 공개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결코 거리낌이 있거나 수치심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달리 낯선 삶의 방식 때문에 그분들이 겪게 될 충격과 염려 때문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재정까지 통합한 것을 알게 된 가족들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신앙이 없었던 우리 가족들의 반응이 이랬다면 신실한 기독교 집안인 명수네 처가는 어땠을까? 하도 궁금하여 명수에게 물어보았다. 재밌게도 그의 처가의 반응도 별 차이는 없었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신앙 여부와 상관없다.

명수와 유정 역시 처음엔 부모님께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단지 신앙의 선후배들이 가까이에 사는 정도라고 생각하셨다. 시간이 많이 흘러 공동체가 지금의 형국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우리 공동체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렸다. 그때 부모님은 재정을 통합했다는 이야기에 심한 충격을 받으셨는지 시간을 내어서 공동체를 방문하고 싶어 하셨다. 명수네가 혹시 이단에 빠진 것은 아닐까, 걱정하신 것이다. 장인 장모님은 목사인 둘째 사위에게 검열을 부탁하셨고, 명수네는 검찰 조사를 받듯 손위 동서와 긴 면담을 해야 했다. 면담 끝에 우려는 위안으로 다가왔다. 손위 동서도 이들의 삶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부러워했으며 이후부터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었다.

얼마 전 명수네에 반가운 손님들이 오셨다. 둘째형님네와 고모네 가족이 방문한 것이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족이 해체되는 깊은 상처를 겪었으며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혼돈 속에서 화해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명수에게 가족의 방문은 기쁨과 긴장이 교차된다. 바비큐 그릴에 연기가 피어오를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각별한지를 나는 알 수 있다. 그래서 두툼한 그의 형의 손을 잡는 내 손아귀에도 더욱 힘이 들어가고 어금니를 드러내며 환희 웃는 웃음도 결코 가식이 아니다. 잠시 후 명수네 아이들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이 집 저 집을 드나든다. 방문자들의 권유로 우리에게까지 음식이 날아드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명수는 이런 일로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가족의 이해와 용납을 확인했으며 그로 인해 남몰래 감격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만났고 그런 삶의 기쁨을 누구보다도 혈육에게 먼저 나누고 싶다. 그러나 삶의 방식의 괴리는 생각보다 넓고 이 때문에 기쁨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될 때가 많다.

예수님을 찾아온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을 보며 ‘누가 나의 가족이냐?’ 반문했던 예수님의 심정은 공적 사역에 몰입한 성자의 무정함이었을까?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가족과 예수님 사이엔 분명 정서적 괴리가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투박하고 짤막했던 아들 예수의 외마디 말 속에 서린 투정과 아픔을 헤아린다. 이해를 바란다고 이해되진 않을 것이기에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십자가에서 마리아를 내려다보시며 요한에게 어머니를 위탁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이는 우리 공동체 일원의 혈육들을 넘어 더 멀리까지 이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명수도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공동체의 미래적 과제에 대한 나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공동체가 더 안정되면 지역사회를 어떻게 품고 가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빌리지 스쿨이 발전하여 지역의 아동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고,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를 생각할 때 부모님 세대를 어떻게 섬겨야 할지도 미리 준비해야 된다고 봅니다.”

가보지 않은 길
나를 비롯한 명수와 형기는 현재 몸된교회의 목회위원회에 속해 있다. 독점할 수 있었던 목회 사역을 위원회 조직에 위임하면서 우리는 독선을 견제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었다. 작은 교회에 많은 사역자의 팀사역이 여유롭고 아름다운 것을 누군들 모르겠냐만 설립 초기에 현실적인 재정부담 때문에 한 사람의 목회자도 생존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결국 고독과 독선의 범주를 넘나들며 위태롭게 사역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자비량 사역자가 되었고 그중 명수는 ‘카페잇다’의 자영업자로 생계를 꾸렸다. ‘카페잇다’는 캠퍼스 선교단체 사역의 연장과도 같았다. 사역자로서 학생들에게 전한 이야기를 명료하게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대기업만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이런 삶도 있을 수 있다는 도전,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소통의 공간을 만드는 일들, 신앙이 일터에서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들을 기대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6년여 동안 커피 향기 속에 묻혀 지내던 명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명수의 답변이다.

“지금 돌아보면 ‘카페잇다’를 통해서 보여준 것보다 나 스스로의 변화가 더 많았습니다. 수많은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죠. 나의 직업으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고민하지 않을 때 세상의 강력한 조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렵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라 생각합니다.”

명수는 올해부터 재무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정리된 생각의 결과로 시작하게 된 일이다. 세상의 모든 영역에 회복이 필요하므로 모든 곳으로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역과 일을 병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항상 사역자의 자세로 일하려다 보니 둘 다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느라 애쓰고 있으며 옆에서 봐도 쉴 틈이 없다.

사서 하는 값비싼 고생
그리도 바쁜 명수가 안 해도 될 일에 휘말려 사서 고생을 하기도 한다. 3년 전 함께 모여 살던 아파트의 마을 정치에 관여하면서 우리는 불편한 민원의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았다. 평생 누구와 맞서 본 적도 항의를 받아 본 적도 없었던 우리가 온갖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이기적인 주장들로 가득한 독설 앞에 서야 했었다.

시작은 이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관심을 가지고 소소한 제안들을 했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운영자들에게 적잖은 문제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의감에 공동체 식구들이 그들의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었다. 마을 정치의 입문은 부녀회에 들어간 자매들의 활약이었다면 이를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한 것은 선거관리위원회를 조직하고 감사하여 새로운 운영자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게 한 명수와 형기의 공로가 크다. 그때의 심정을 명수는 이렇게 토로한다.

“아파트 회의에 참여하면서 자치회 운영자들의 행태를 볼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횡령과 권력 남용까지 아파트 자치회가 추잡스러운 작은 정치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동체 형제들이 선거관리위원으로 참여해서 동대표와 입주민 대표를 선출했습니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유익이 없으면 전혀 움직이지 않으려는 주민들을 독려해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모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지만 공정한 선거 방법을 정리해주고 법을 준수할 것을 권하며 일할 만한 사람들을 세웠을 때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잠깐이지만 선한 방법으로 부정한 것들을 이기는 것을 통해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그의 정의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명수의 기쁨은 일의 결과에만 있지 않다. 결과가 주는 행복감은 어쩌면 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는 항상 윤리적 문제를 고민해 왔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부정함과 불공평과 악한 것들에 분노했으며 기회가 없을 때 저항했고 기회가 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의롭고 투명하게 하려고 애써왔다. 그의 기쁨은 그런 노력의 과정 안에 있고 그래서 결과가 시원치 않아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 걸어간다
공동체도 그렇다. 쉽게 좋은 열매를 맛보지 못한다. 공동체 안엔 수많은 갈등이 있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으며 때론 고역과 궁핍과 막막함이 공존한다. 명수는 그런 어려움을 어찌 이겨내고 있을까? 싱겁게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이 어려운 질문에 술술 대답해버린다.

“공동체의 갈등과 불안은 매우 다양하게 발생합니다. 가끔씩 공동체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함께 생활하는 우리는 연애하다가 결혼한 부부와 같습니다. 연애할 때는 모르던 것이 결혼하면 더 많이 보이게 되고 그중엔 좋은 것도 있겠지만 보기 싫은 부분이 더 많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13년차지만 아직도 아내와 조율하는 과정을 가집니다. 어쩌면 그것은 평생 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사랑으로 배려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모든 요소가 갈등과 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도 계속해서 조율을 해야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고 난 뒤에도 포기하거나 체념해선 안 됩니다. 공동체 안의 문제는 쌍방의 문제가 더 많기 때문에 당사자가 정직하게 문제를 대면하며 대화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부부의 문제도 그러하듯이 공동체의 문제 해결도 대화밖에 없습니다.”

명수의 이야기를 들으면 홍이삭이라는 CCM 가수가 부른 <하나님의 세계>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묵묵히, 참으로 열심히 달려왔고 또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사랑하는 아우에게 이 노래가 힘이 되길 바란다.

나는 계속 걸어갑니다 수 없이 넘어져도
사람들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다 해도
내가 가는 길이 주가 가르쳐준 길이니
이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정동철
1971년생으로 울산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뒤 IVF(한국기독학생회) 캠퍼스간사로 14년 동안 섬겼다. 지금은 ‘디자인 잇다’ 대표로 일하면서, 몸된교회 전도사로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