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꿀렁꿀렁한 평화를 지향한다”

[344호 평화를 살다]

2019-07-01     문아영
   
▲ 출처: www.svgsilh.com

얼마 전 참여했던 한 포럼에서 ‘평화 감수성’이라는 주제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기한 모임이었다. 도시전환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평화’를 이야기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도시’와 ‘평화’가 한 자리에서 토론 주제로 다뤄졌다는 사실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그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더욱더 흥미로웠다. 둘러앉은 사람들은 한참 동안 나눈 이야기의 핵심 문장을 이렇게 골랐다.

“우리는 꿀렁꿀렁한 평화를 지향한다.”

문장만을 들었을 때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평화가 아닌 다양한 존재들의 역동이 반영된 꿀렁꿀렁한 평화라면 오르고 내리는 그 움직임 사이에 숨을 공간과 쉴 공간들이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우리’와 ‘그들’
한국 사회는 현재진행형의 오랜 분단을 겪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남북 분할점령을 기준으로 한다면 73년, 남북한 개별의 정부 수립을 기준으로 한다면 70년 동안의 분단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분단은 세대를 이어가며 한국 사회에 사는 구성원들에게 언젠가 해결해야 하는 숙제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평화가 무엇인지 묻는 것은 낯설다.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며 평화는 언제나 중요한 것이라고 배워왔지만, 정작 평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거나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통일은 당위로서 주어졌고 평화는 분단의 상황 속에서 안보를 중심으로 상상되는 한계 속에 갇혀 있었다. 전쟁의 기억은 전쟁에 대한 공포로 환원되었고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을 대비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준전시태세를 갖추도록 훈련받았다. 국민은 공교육을 통해 통일안보, 호국안보, 나라사랑교육을 받았다.

안보라는 틀이 성립되려면 외부의 적은 필수다. 항상 공격의 틈을 노리며 경계를 늦출 수 없게 하는 외부의 적은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분리된 외부의 ‘그들’은 ‘적’으로 상정되고 그 ‘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행위는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세계인권선언〉도 〈제네바 협약〉도 ‘적’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앞서 말했듯, ‘적’의 공격을 예상하고 대비하며 살아가도록 교육하는 사회에서 두려움은 교육의 양분이자 근거가 된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타이완으로 이주했던 한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일화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공산당 소년병이 복부에 입은 총상을 치료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녀였던 수녀님은 아버지에게 ‘수술하면서 공산당의 뱃속을 열어보았느냐’고 ‘뱃속의 살이 새까만 색깔이었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외부의 적이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그를 제압하고 무찔러서 도달해야 하는 평화에 의문이 생기므로 안보교육에서 ‘그들’에 대한 악마화(Demonization)는 불가피하다. 이렇게 악마화를 동원하는 안보교육은 분단 상태를 지속하게 하는 심적 토대와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안보교육은 학교 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9년 지금도 대한민국의 대중교통에서는 거동 수상자를 발견할 시 신고할 것을 요청하는 안내 방송이 여전히 흘러나온다.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이 메시지는 ‘수상(殊常)한 존재’, 즉 일반적이지 않은 존재는 색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잠재적 교육과정은 안보를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이질적인 존재, ‘보통’과는 다른 존재들을 의심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예멘 난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패닉(panic)과 한국 땅을 밟는 이주자들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은 ‘단일한 우리’를 지키고자 하는 ‘안보론’과 매우 밀접하게 닿아있다.

우리와 그들, 그리고 교회
제주에 도착한 예멘 난민을 대하는 일부 교회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일부 개신교 교회들이 예멘 난민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선호하는 방식의 일방적 지원을 쏟아냈는데, 그 모든 지원의 끝에는 ‘선교’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 정서가 들끓는 것처럼 보이던 시기, 일부 개신교 관계자들은 이 혐오의 정서를 누그러뜨리고자, ‘하나님이 예멘 난민들을 한국에 보내주시는 것은 한국교회의 선교 역량과 통일 역량을 강화하시기 위한 계획’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일방적인 직접 지원이나 예멘 난민들을 한국교회 역량 강화의 기회로 보내주셨다는 관점의 공통점은 예멘 난민들에 대한 ‘대상화’(objectification)이다. 그리고 이런 ‘대상화’는 ‘인종주의’ ‘문화절대주의’ ‘선민의식’ ‘개신교 우월주의’의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백인 중심으로 구성되고 작동되어 온 개신교의 역사는 ‘선택받은 자’들로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숙명과 더불어 극복해야 할 너무 많은 과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선교’를 중시하는 개신교에서 ‘평등’을 상상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복음’을 알려줄 수 있는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는 자들은 ‘계몽’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지식’은 ‘계몽’을 이루려는 주체에게만 있는 것으로 인식될 때, 대상과 주체 사이에는 쉽게 전복되거나 폐기되지 못하는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일방성’을 전제로 하며 그 일방성은 ‘폭력’의 원인이 된다.

개신교가 취하는 폭력적인 태도는 난민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개신교가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일부 ‘수구보수세력’이라 칭해지는 이들이 ‘동성애 척결’을 내걸고 군복을 입고 찬양을 부르며 북을 칠 때, 일부 온건한(?) 신자들은 ‘동성애는 치료될 수 있다’고 설득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울며 기도한다. 더 나아가 ‘동성애를 인정한다’는 일부 신자들은 ‘동성애’를 ‘치유될 수 없는 질병’에 비유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이야기한다. 명시적인 폭력성의 정도는 다르지만, 이 세 가지 입장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매우 폭력적이다. 모두 성소수자들을 대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말씀처럼, 남과 대등하게 만나는 것은 매우 성경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개신교에서 ‘남’은 대접의 대상이기보다는 ‘판단’의 대상이요, ‘혐오’의 대상이지 않은가? 동성애를 인정하면 가정이 파괴되고, 나아가 이 나라가 파괴될 것이라는 메시지는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해 이성애 중심 정상가족주의를 지키려는 안보주의를 강화한다. 그리고 정상가족의 안보를 위협하는 모든 존재는 비정상이거나 열등하다는 입장으로 개신교가 취하는 안보론의 순환논리를 만들어낸다.

앞의 세 입장과는 또 다른 입장도 존재한다. 성소수자들을 인정하지만 나는 당신들의 존재가 여전히 불편하다는 입장으로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기호를 표현하는 일부 기독인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입장 역시 매우 폭력적이다. 타인의 존재는 개인의 기호가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호가 작동할 수 없는 영역에서 기호가 작동하는 것처럼 믿게 하는 우등과 열등 신화는 인류의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도 쉼 없이 작동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통해 나치 독일은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어지는 모든 존재들을 말살하고자 했다. 유대인뿐 아니라 로마족(집시), 장애인과 슬라브계의 타민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 동성애자와 여호와의증인들도 말살해야 할 대상에 포함했다.

나치 독일 당시 이러한 학살을 담당했던 독일인들은 ‘민족의 우월한 혈통 유지를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한 것이며, 그 행동을 통해 다수인 ‘우리’를 보호했다는 이유로 죄책감은 삭제되었다. ‘우리’라는 정체성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은폐되고 ‘그들’이 ‘우리’가 아닌 이유는 쉽게 확산되었다. ‘우리’라는 감정이 작동되는 방식에 대해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이렇게 분석한다.

비슷하게 되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하는 ‘우리’라는 감정은 타인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를 회피하는 방법이다. 공동체의 일관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에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실제 참여를 회피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공동의 경험 없이 공동의 유대를 느끼는 것은 애초에 사람들이 참여, 참여의 위험과 도전, 참여의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불확실하고 불편한 타자를 포함하기보다는 확실하고 안전한 우리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확정하고자 하는 욕구는 타자를 배제하기 유리한 조건을 기반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확정했다. 나치 독일은 유태인들을 ‘돼지’라 불렀으며 르완다의 후투족은 투치족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등 ‘그들’을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로 호명함으로써 어쩌면 ‘우리’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바깥의 존재에게만 행해지지 않았다. ‘우리’라고 믿어졌던 공동체도 특정한 이념이 덧입혀지면 언제든지 ‘그들’로 방출될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역사 속에서 빈번히 목격된다.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 담론은 팩트와는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패턴이 되어버렸다. 빨갱이 담론은 간첩이나 거동수상자 색출이라는 국정원의 대국민 메시지와 더불어 반공/안보/사상 교육을 통해서 전달 및 강화되어왔으며 북한을 타자로, 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메시지는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분단이 지속되도록 하는 힘이자 토양이 되어 도시라는 환경 곳곳에 자리 잡아 온 것이다.

또한 한국을 찾은 난민들 모두가 ‘선교의 대상’으로 환치되는 현재의 상황들은 한국교회가 낯설고 불편한 ‘그들’을 ‘우리’와 동일하게 만들어 ‘우리’의 ‘안보’를 보장하고픈 욕망과도 맞닿아있다. 한국 개신교의 반동성애 또는 동성애 혐오는 교회의 가부장제를 통째로 뒤흔드는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든 억압하여 흔들리는 가부장제를 안정화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기도 한 것이다.

교회의 변화와 평화 감수성
평화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었을 때 사람들은 ‘큰 문제없이 사는 것’ ‘조용한 숲 속’ ‘잔잔한 호숫가’ ‘비둘기’ ‘전쟁이 없는 것’이라는 대답을 하고는 한다. 평화는 정말 잔잔하고 조용한 것일까? 전쟁이 없으면 평화롭다고 볼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평화롭다고 보아도 괜찮은 것일까? 전쟁이 없지만 전쟁의 공포 속에 산다면 평화롭다 할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누군가 지속적인 착취와 억압에 희생당하고 있다면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평화학 연구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평화와 폭력을 개념화했다. 폭력을 직접적 폭력, 간접적 폭력, 문화적 폭력으로 구분하고,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하였는데 이 개념화는 평화/폭력을 구분하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직접적 폭력(direct violence)은 말 그대로 전쟁, 폭동, 테러와 같은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을 말한다. 간접적 폭력(indirect violence)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불평등과 차별을 지속시키는 구조를 말하며, 또 다른 이름은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이다. 그리고 문화적 폭력(cultural violence)은 이런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회문화적 요소들을 지칭한다.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는 직접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는 구조적 폭력이 없거나 개선되어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여기서 소극성과 적극성은 ‘타자’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초대하고 환대하는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교회들은 어떤 교회인가? 내가 관계 맺고 있는 교회는 평화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교회가 그리는 정상적인 평화의 그림으로부터 배제되는 자는 누구이며 그 그림에 속하는 자는 또 누구인가?

평화에 대해 종교가 많은 배움을 가지고 있다고들 말하지만 종교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종교 때문에 일어난 잔혹한 폭력의 역사에 대해서도 함께 말해야만 한다. 그리고 ‘교회’가 이야기하는 평화가 대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그동안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던 질문, ‘교회와 평화’에 관한 질문의 목록은 생각보다 길고 풍성하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지는 일은 아직 채 시작되지도 않았다.


문아영
피스모모(www.peacemomo.org)라는 평화교육 단체를 2012년에 설립하여 함께 운영해오고 있다. 실천적으로 사유하는 삶에 관심이 많다. 네 마리의 고양이, 새촘이, 우아, 레오, 라라와 함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