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학도들에게 ‘안녕’을 묻는다

[348호 커버스토리]

2019-10-23     이희영

호신대 학우·원우 여러분 안녕들하십니까.

여러분을 설득하려는 것보다 먼저 저 자신에게 정직해지고 싶어 펜을 듭니다.

총회 ‘수습안’ 어디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까
우리 호남신학대학교가 소속되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이번 104회 총회에서 명성교회의 세습을 사실상 용인하는 수습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어른들은 이 수습안이 총회와 명성교회를 모두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총회를 살리고 명성교회를 살리고 이 상황을 빨리 무마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입니까?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뜻은 이 수습안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2013년 총회에서 교회세습 방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개교회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세습이 주로 돈과 교인이 많은 대형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물림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라 부와 권력임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소명이란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것이지 혈연으로 대물림할 수 없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명성교회의 세습은 혹자가 말하듯, 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이어받는 정도의 사건이 아닙니다. 명성교회는 어느 변방의 작은 교회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재정과 교인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곳의 담임목사는 수많은 장학관을 운영하고 개척교회를 후원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통령이 사적으로 만나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줄 것을 부탁하는 권력을 가진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명성교회 교인들은 커다란 변화 앞에 불안함을 느끼고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주길 바랄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습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담임목사 개인의 것도, 교인들의 것도 아니며 오직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공동의 책임을 가진 공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명성교회의 교인들이 새로운 변화의 시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의지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도록 총회는 격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총회는 그들의 눈을 가리고 교회를 구덩이로 이끄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신으로 군림하던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셔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왔을 때 부와 권력 앞에 타협하지 않고, 도리어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이들과 어울리며 작은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한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그 놀라운 선언을 드러내고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는 교회가 그 구실을 하고 있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서 힘을 가진 개인이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고 그 자리를 혈연으로 이어주며 차별을 공고히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총회마저도 작은 자의 친구였던 예수의 삶이 아니라 명성교회의 부와 크기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 그런 결정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망령되이 일컬어졌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할 십자가는 나의 욕망을 위해 만만한 타자를 못 박는 용도로 인용되었습니다. 예수의 뜻은커녕 명성교회와 총회 모두를 ‘진정으로 살리는’ 결과조차도 내지 못한 채,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치심과 좌절감만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 통합 총회의 ‘명성교회 세습 수습안’에 항의하여 필자가 학내에 써 붙인 대자보. (사진: 이희영 제공)

우리의 몸 된 공교회가 썩어가는데 이 일에 냉소할 수 있습니까
호남신학대학교 학우·원우 여러분. 이런 상황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야 합니까? 이 일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이기에 좌절합니다. 우리들 중 이 문제에 맞설 수 있는 힘과 정치력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는 서울 중심부와는 네 시간 가까이 떨어져 있는 지방의 작은 산 위에 있는 학교에 다닐 뿐인데, 우리의 목소리가 들려봤자 어디까지 들리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의 몸에서 일어난 일이고, 우리의 몸 된 공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가 이 일과 무관합니까, 아무 책임이 없을 수 있습니까? 몸의 한 부위가 썩으면 모든 몸이 아프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의 몸이 썩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이 일에 냉소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일과 상관없는 것처럼 서 있는 우리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어느 순간 썩습니다. 저 자신이 썩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일 앞에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아무리 작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보일지라도, 소망되신 하나님 때문에 낙심치 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근거가 되는 성서가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성취됨을 증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과 그의 진리는 영원하시기에, 더뎌보일지라도 결국엔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성취될 때까지는 그 어느 것도 끝난 것이 아닌 줄을 믿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으로 주의 날을 소망합시다. 그리고 그 날을 볼 때까지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냅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렘 33:14-16)

이 대자보는 일주일 후에 걷겠습니다. 법안이 통과되었어도 말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길 기도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진정으로 사는’ 길은 나를 버리고, 나의 욕망을 죽이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2019. 9. 26. 호남신학대학교 신대원 2학년 이희영.  

 

* 이 글은 필자가 쓴 학내 대자보를 본지 요청으로 내용을 더하고 보완한 것입니다. 

 

이희영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학년에 재학중이다. 호남 지역 청년 중심의 찬양사역 단체인 FLOW Ministry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TGIW라는 작은 여성주의예배 모임을 꾸려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