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물처럼 느껴졌어요"

[352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2020-02-19     전수연

 

‘인신매매’를 주제로, 게다가 성을 착취당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로 첫 연재를 시작해도 되는 걸까 고민이 들었습니다. ‘낯섦’에 대한 고민이었지요. 피해자들이 외국인 여성이다 보니, 뉴스에 한 해에 한두 번 정도, 짧은 꼭지로 소개될까 말까 하는 숨겨진 주제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성 착취 인신매매를 합법화하는 E-6-2 비자
예술흥행비자(E-6-2)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에서 공연 등을 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려는 외국인들이 받아야 하는 체류비자입니다. 이름부터가 수상쩍긴 합니다. 예술을 흥행하기 위한 비자라니…. 순수예술활동을 위한 E-6-1비자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순수’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참고로, E-6-2는 한국정부가 보장하는 시스템 안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성 착취 인신매매를 묵인하는 비자가 아닌지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해당 비자의 존폐여부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 최근 도망 나온 여성들이 쉼터에서 손수 만들어서 가져온 선물

예술흥행비자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한국의 여러 업소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아무런 추측도 못한 채, 그저 ‘나는 노래를 잘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본국에 있는 가난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겠지’라는 순박하고도 막연한 기대를 하며 입국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업주에게 여권을 압수당하고, 밖에서 문이 잠겨 업주의 허락이 있어야 외출이 가능한 사실상의 감금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노래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여성들이 기대했던 공연 기회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끔찍하게도 손님들로부터 유사성행위 혹은 성매매까지 강요받았습니다. 업주에게 “이런 것은 하기 싫다” 하소연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야! 너 처녀야? 이런 거 하기 싫으면 여기 왜 왔어?” 하며, 맥주잔으로 머리를 맞기도, 머리채를 잡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여성들은 틈만 나면 행해지는 업주의 상습적인 성추행(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등)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진 신고’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의자’가 되다 
여성들은 몇 개월간 지옥을 견디어내듯 버티다가 끝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여성들은 성매매 관련 ‘피의자’로 체포되었고, 업주 또한 수사를 받았습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여성들은 성 착취 인신매매의 피해자임이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피해 사실을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련법상 ‘피해자’가 아닌 ‘범법자로서 피의자’ 취급을 받으며 강제퇴거명령(한국에서 출국 당함) 및 보호명령(구금시설에 갇혀 지냄)까지 발부된 채, 결국 교도소와 동일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습니다. 

이후 ‘어필’(APIL)에서는 피해 여성들을 대리하여 업주와 프로모터(기획사 대표)를 고소하고 형사소송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업주는 법원에서 고작 1년의 징역형과 함께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실제로 교도소에서 복역하지는 않았지요. 

   
▲ 어필이 만든 '인신매매' 관련 영상 갈무리

형사소송을 마쳤다는 것만으로 여성들이 당해온 피해가 온전히 회복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외에도 수사기관에서 여성들이 인신매매 피해자인 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성매매 범죄에 대한 ‘피의자’로 간주하고 수사를 개시하는 바람에, 연쇄적으로 여성들이 받았던 강제퇴거명령, 이로 인한 체류자격 박탈이나 외국인보호소 구금, 구금기간 동안 이뤄졌던 불리하고 위법한 조치들에 대해 행정소송이나 국가배상, 민사소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최근까지도 다퉈오고 있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 되고 있습니다. 

수법이 진화한 업주의 간교함
얼마 전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위 여성들이 도망쳐 나왔던 같은 업소에서 또다시 몇 명의 여성들이 도망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탈출한 여성들은 쉼터에 머물고 있지만, 혹여나 업주가 주소를 알아내어 자신을 붙잡으러 올까 봐 매일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급해진 마음으로 여성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만났습니다. 한국에 오게 된 과정, 한국에 온 이후 업소에서 겪게 된 끔찍한 상황들, 이를 견딜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취약함, 그리고 이를 악용하는 업주의 간교함과 악함….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 필자의 방송 인터뷰 화면 갈무리


업주의 ‘간교함’이라 표현한 것은 여성들을 (유사)성매매로 내모는 업주의 수법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너 여기서 돈 벌려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해”라고 직접 지시했던 반면, 이 여성들은 이미 일하고 있던 다른 여성들을 통해 무슨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전 형사 사건에서 아마도 ‘재수 없게 걸렸다’고 생각했을 업주는 반성이나 참회대신 법망에 걸리지 않을 수법들을 고민했을 것이고, 그 수법이 진화해 있었습니다.

“내가 동물처럼 느껴졌어요. 내 마음과 상관없이 그런 일들을 하고 나면,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수는 있지만, 내 몸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나는 본국에 있는 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거든요. 본국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아요. 엄마는 바느질을 하고, 아빠는 막노동 일을 하지만 월급을 몇 달째 못 받고 있어요. 언니는 지금 몸이 많이 아파요. 간에 큰 문제가 있지만, 병원비와 약값이 없어요. 그리고 저는 싱글맘이에요. 아이를 내 부모님이 키워주고 있거든요. … 내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을 내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었어요.”

여성들을 인터뷰한 후 며칠은 평소보다 짙어진 무력감에 시달렸습니다. 처음 도망 나온 여성들을 만났던 게 4년 전인데, 지금도 같은 업소의, 같은 업주로부터, 같은 피해를 입은, 이름과 얼굴만 다른 여성들이 도망쳐 나오고 있다니. 영리해진 업주의 수법으로 강요에 의한 성 착취라기보다는 ‘자발적 탈법 행위’로 보일 가능성이 많은, 제3자적 시선으로는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경계 어디쯤에 있는 이 사건의 법적 판결의 향방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터뷰 중 던진 “업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라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그녀들의 붉어진 눈시울을 기억하며, 다시, 마음을 다져봅니다. 

 


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어필에서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일을 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부당함에 맞서 정의를 지어가는 것이 어필의 꿈이다. 어필 홈페이지(www.apil.or.kr)에서 어필의 활동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