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비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355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2020-05-20     전수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린 시절 종종 감기로 들르던 소아과의 의사선생님은 진료 때마다 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거침없이 ‘엄마’라고 답하면, 이번에는 엄마 대신 제 손을 잡고 병원에 와준 ‘할머니’로 비교대상이 바뀝니다. 엄마가 좋아, 할머니가 좋아? 이렇게 어른들은 가끔 ‘사회적 말하기’ 방식에 익숙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곤 하지요.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와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끊임없이 묻고 있는 듯합니다. 누가 진정한 국민들인지. 같은 영토 안에 많은 사람들이 숨을 섞고 살아가지만, 그중에 국가가 인정하고 애정하는 ‘찐’ 구성원은 누구인지. 누구에게 공적 마스크에 대한 접근을 허락하고 긴급재난지원금을 줄 것인지. 누굴 먼저 살릴 것인지.

마스크 대란 속 난민과 이주민
우리 사회에서 공적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대상이 어떻게 확대되어왔는지를 보면 ‘애정서열’의 양상이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극에 달했던 시점인 3월 5일경 마스크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마스크 5부제’를 발표했지요. 생년에 따라 주 1회 마스크 2매를 구입할 수 있게 했는데, 외국인의 경우에는 외국인등록증과 건강보험증이 모두 있어야 구입이 가능했습니다. 난민신청자(건강보험 가입대상에서 배제되어 있음)를 비롯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6개월 미만의 체류 이주민, 유학생, 사업자등록 없이 농어촌지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미등록 체류자 등 120만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유일한 자기방역 도구인 마스크를 한동안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으니, 제가 돕는 난민 가정은 “요즘 집 안에만 있는다”고 했습니다. 

마스크 없이 공공장소에 돌아다니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게 무서웠고,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다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은 더 무서웠다고 합니다. 게다가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부의 공식발표와 발생장소, 경로 등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이 한국어로만 제공되다 보니, 출입국이나 체류 관련 사항, 마스크 구입방법, 학교 개학여부 등에 관한 정보 습득에서도 배제되었고, 이로 인해 몰려오는 두려움은 더욱 총체적이었을 것입니다. 

   
▲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코로나가 드러내는 인종차별의 민낯 증언대회’가 열렸다. (사진: 이주공동행동 제공)

이후 난민과 이주민 관련 단체들의 성토 때문인지 정부는 입장을 바꿔 ‘외국인등록증’이 있으면 공적 마스크 구입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변경했고, 확진자 수가 한 자리로 줄어든 4월 말이 되어서야 “방역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 외국인이 ‘신분 걱정 없이’ 마스크를 공급받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지시가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코로나가 발발한 지 이미 3개월이 지나고, 신규확진자 수가 한 자리에 접어든, 이제 ‘우리’는 좀 살았네 하고 안도할 즈음에서야 미등록외국인을 위한 방안을 ‘마련한’ 것도 아닌 ‘마련하라’는 내용이었지요. 이제라도 생각해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한 지 3일차에 받은 해고 통보
많은 이주민들이 1차적으로 자기 건강과 안전에 대한 보호체계에서 소외되어 있는 상황에서, 제가 만난 난민들을 힘겹게 짓누른 문제는 ‘갑작스런 해고 통보’였습니다. 난민 A씨의 해고 소식을 접했던 것은 2월 말경이었습니다. 난민불인정 상태를 소송으로 다투고 있는 난민 A씨와 소송에 관한 상담을 마치던 참에, A씨는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변호사님, 그런데 제가 어제 일을 잘렸어요. 어렵게 구한 식당 일자리였는데, 일한 지 3일 만에 주인이 장사가 안 되니 나가달라고 했어요. 정말 힘들게 구했는데….” 코로나 시국에서 장사가 안 되어 속만 끓였을 주인의 처지도 이해갔지만, 12만 원은 받으셨으려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난민신청자들이 일을 하려면 출입국에 ‘취업활동허가 수수료 12만원’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차마 수수료만큼은 버셨냐는 질문을 입 밖에 내지는 못했습니다.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결말로 끝나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몰라 짧은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지요. 

제3국에 발이 묶였는데, 난민신청까지 취소되다
코로나19로 인해 타국에서 발이 묶이는 바람에 한국에서 진행되던 난민신청절차가 직권취소된 분도 있습니다. 난민신청자 B씨는 본국에 있는 가족을 제3국인 P국에서 만나기 위해 출국을 했다가 한국에서의 비자갱신이 다가오고 있어 다시 한국에 들어오려 했으나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하필 그때가 전 세계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고 있던 3월, B씨가 가족을 만나러 간 P국도 주요 공항을 폐쇄했고 한국행 직항 비행기도 무더기로 결항되어, 결국 P국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입니다. 

B씨가 가족을 만나러 제3국으로 출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잠시라도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난민 심사를 진행 중인 분들의 가족은 대부분 출입국 심사에서 입국이 거부되었습니다. 난민신청자의 가족까지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할 것을 염려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제가 지원하는 난민신청자들은 위와 같은 이유로 수년째 가족과 생이별 상태로 지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B씨 역시 가족들을 한국 땅에서 잠시라도 보고 싶었지만, 공항에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입국거부가 되어 어렵게 모은 돈으로 마련한 항공비만 날리기를 수차례, 결국 어쩔 수 없이 제3국으로 가족들을 만나러 간 것이지요. 

B씨의 비자문제 때문에 같이 애가 탔던 저는 일단 B씨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비자 기간 내에 한국에 들어오셔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놓고, 출입국사무소에는 B씨가 제3국에서 가족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코로나로 인한 제3국의 공항 폐쇄 등으로 인해 한국으로의 입국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점, 따라서 변호인인 제가 B씨를 대리하여 체류기간연장신청을 하니 접수해달라는 취지로 의견을 전달하고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출입국에서는 ‘체류기간연장은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만 신청할 수 있는 것이며, 한국 정부에서 코로나19 대비책으로 외국인들에 대한 입국을 금지한 적도 없고 (즉 B씨가 입국을 못하는 것은 한국 정부 책임이 아니라는 것), B씨와 같이 해외에서 체류하다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 없는 사람들의 체류문제에 대한 상부로부터의 지침이 내려온 적도 없기 때문에 B씨를 따로 배려할 수는 없다. 변호사가 B씨를 대리하여 신청을 하려고 해도 일단 B씨의 국내체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므로 변호사라도 대리신청할 수 없다. 따라서 변호사가 대신한 체류기간연장신청은 접수거부하며, B씨는 체류연장이 안 되어 체류기간 만료했으므로, 기존의 난민신청도 취소된다’는 취지의 매우 ‘수학의 정석’ 같은 답변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통인데 그분이 못 들어오는 것은 우리 정부 탓이 아니지 않느냐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앞에 ‘네, 그렇지만 그분의 탓도 아니잖아요. 그분은 체류연장신청을 원하고, 난민신청을 철회할 생각도 없다구요. 그리고, 애초에 난민신청자의 가족들을 입국거부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요. 방법이 없으니까 제가 대신 비자연장신청을 해보고자 한 거고요. 난민법을 아시아 최초로 제정한 인권선진국이라고 자랑하면서 이런 상황에선 좀 선한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했습니다.(작은따옴표 안에는 제가 실제로 내뱉은 말과 뱉고 싶었던 말이 섞여 있습니다.)

이제 B씨를 다시 한국에서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오려면 비자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난민발생국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비자를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운 좋게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도 난민신청을 할 경우, 기존의 난민신청 이력 때문에 ‘난민재신청’을 한 것으로 볼 가능성이 많은데, 현재 한국에서 난민재신청을 하면 비자를 주지 않고 출국명령을 내립니다. 물론 비자가 없지만 미등록외국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체류자격이 없으니 취업을 할 수 없습니다. 재신청 과정 중에는 출국기간을 유예신청하면, 출입국에서는 보통 3개월씩 출국유예허가를 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3개월씩 한국에서의 목숨을 연명하듯 버텨내기에 난민재신청 과정(소송까지 총 5년 정도 소요)은 혹독한 시간입니다. 즉 난민들에게 ‘난민재신청’ 과정이란, 이미 ‘쫓겨날’ 준비를 당한 채, 취업도 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둔 생존게임에서 누가 용케도 버텨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간이랄까요.  

그럼에도 한국을 돕겠다고 나선 난민공동체들
누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지, 누구를 우리 사회의 안전망 속에 들일지 그 대상을 한창 갈라치기하던 즈음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겪는 한국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나선 이주민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난민공동체들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 난민공동체와 나이지리아에서 분리독립운동을 하는 비아프라 난민공동체, 그리고 코트디부아르와 수단,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난민공동체였습니다. 위 공동체 소속 난민 분들은 ‘난민신청’(‘난민인정’이 아님 주의)을 할 수 있도록 환대한 한국 사회에 보답하고 싶어 헌혈과 의료 자원봉사나 단체봉사활동을 할 지원자들을 모았고, ‘갓 블레스 코리아’라며 기도문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수백만 원의 성금을 모으고, 손수 만든 마스크까지도 기부했습니다. 기사에 실린 난민들의 사진을 볼 때, 비록 사진이었지만 유독 한 분의 눈을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제가 지원을 하다 끝내 난민불인정을 받고 난민재신청 과정에서 비자도 없이 취업불가 상태로 살아가는 분이 다 괜찮다는 듯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에티오피아 난민공동체원들이 마을 방역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이하 사진: 에티오피아 난민공동체 구성원 제공)
   
 

이들의 마음 씀씀이에 대한 고마움에 앞서, 울컥한 감정이 먼저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공적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대상에서 원천 배제하여 당신들이 코로나로부터 안전한지 여부는 알 바 아니라는 태도를 취해온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적어도 저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의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한국 사회 모습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 ‘내 마음 속 한국인, 내 마음 속 한국 사회 내 구성원 서열’을 통해 우리들의 민낯을 본 것 같았습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속 ‘자국민 챙기기’에 바빴던 전 세계 흐름 속에서 마치 무언의 일갈이라도 하듯, 포르투갈 정부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공공방역의 행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는 6월 말까지 이주자와 난민에게 임시로 시민이라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일괄적으로 부여했다고 합니다. 위기상황 앞에 ‘자국민만 먼저’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었고 제게는 한줄기 위로마저 되는 소식이었습니다. 소위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당위만으로 설명될 것 같았던 과업들을 실제 정책으로 이행해가는 국가가 있다면, 한국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겠지요. 다만 선택의 문제일 뿐이지요.

…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집단적 무지 혹은 망각을 기반으로 축적된 부가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의 축적을 위해 한국사회는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한 고통이라 할지라도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시켜 관리한다. …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무지하거나 망각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다. 
- 김연수, 《시절일기》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제가 만난 난민 분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쓰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존재의 힘듦에 무지하지 않고 망각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보호막도 없는 약한 존재들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에서 이후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어필은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일을 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부당함에 맞서 정의를 지어가는 것이 어필의 꿈이다. 어필 홈페이지(www.apil.or.kr)에서 어필의 활동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본지 343호(2019년 7월)에 인터뷰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