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바로 지옥이었구나”
[355호 편애하는 리뷰]
마라맛 드라마. JTBC 방영작 〈부부의 세계〉 별명인데 누군지 참 잘도 지었다. 얼얼하게 맵고 강해 다른 감각을 어느 정도 마비시키니 말이다. 농담 같지만, 성경에도 ‘마라’가 있다. 구약성서 룻기를 보면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가 며느리 룻과 함께 귀향하자 동네 사람이 “이게 정말 나오미인가?” 하며 떠들썩하게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오미는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들 마십시오.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도 괴롭게 하셨으니 이제 나를 마라라고 부르십시오.” ‘마라’는 히브리어로 고통을 의미한다.
TV 드라마가 가진 여러 기능 중 하나를 꼽자면 현실성이다. 드라마를 포함한 대중문화는 사회 변화를 비교적 빠르게 반영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집스럽게 변화하지 않는 현실을 반복 재생하며 정당성을 강화한다. 즉 대중문화는 이미 도착한 미래와 아직 떠나지 않은 과거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셈이다. 사회 변화를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흐름’으로 이해한다면, 드라마가 무엇을 반복 재생하는지 관찰·비평하는 일이 미래로 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부의 세계>가 보여주는 ‘마라맛’ 현실은 무엇일까?
‘잘난 여자도 빠지는 가부장제의 함정’
“완벽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부부의 세계〉는 고산시에서 인정받는 의사이자 엄마이며 아내인 지선우(김희애)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완벽하던 그의 세계는 어느 날,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불륜을 알게 되면서 박살난다. 재력가 아버지를 둔 젊은 여성 여다경(한소희)과의 불륜 자체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자기만 빼고 지인들이 비밀을 공유한 불륜의 공모자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완벽하던 세계는 한순간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나를 완벽하게 속이고 있”던 기만의 세계로 재구성된다. 〈부부의 세계〉는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지선우가 남편과 그의 상대 여성을 응징한 후 이혼하는 전반부와, 이태오·여다경 부부가 아이를 낳고 고산시로 다시 돌아온 2년 후를 그린 후반부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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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부의 세계〉 화면 갈무리. |
이혼한 지선우는 여전히 실력을 인정받는 의자이자 다정한 엄마로 살고자 하지만, 그가 속할 수 있는 ‘세계’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불륜이 밝혀져 쫓기듯 떠나야 했던 이태오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성공하여 화려하게 복귀한다. 부정한 남편과 지질한 남성들을 응징하는 데 성공한 지선우는 왜 오히려 고립될 수밖에 없었을까? 그들이 속한 ‘세계’인 고산시가 (빌어먹을) 혈연, 학연, 지연에 기반을 두고 굴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태오의 아내인 여다경의 아버지는 지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재력가이고, 이태오의 친구들은 시의원, 회계사 등 지역 사회 주류다. 게다가 그들의 아내들이 속한 ‘고산 여우회’는 남편들의 재력과 권력에 따라 위계가 정해지는 배타적 사교 집단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고산시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위태롭게 걸쳐 있던 지선우는 완벽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그 이방인이 구성원으로 인정받은 이유는 ‘고산시에서 태어난 남성’이라는 점 빼고는 쓸모가 없는 이태오가 남편이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졌으니 지선우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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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여자도 빠지는 가부장제의 함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황진미 평론가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현대 사회 여성들이 빠진 가부장제라는 함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산시’로 압축된 가부장 사회는 여성들의 위치와 성취를 불안정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SBS <하이에나>의 정금자(김혜수)는 실력과 야망을 갖춘 변호사지만,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린 과거의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선우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불륜을 안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한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두 인물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정금자는 가부장 사회를 비웃고 뒤흔들며 성장하는 반면, 지선우는 트라우마를 ‘정상가족’을 향한 욕망으로 덮으며 그 안으로 축소된다는 점이다. 그는 홀로 빛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지만, 그의 능력은 가족이라는 세계를 유지하는 데 낭비된다. 지선우가 껍데기만 남은 가부장의 민낯을 폭로하고도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트로피인 정상가족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부정한 동기로 엮인 부부라도, 이미 깨어진 채 겨우 유지되는 쇼윈도 부부라도 그들이 사회 주류인 ‘고산 여우회’의 주요 멤버일 수 있는 이유는 껍데기일지언정 ‘정상가족’이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과 그것을 선망하는 설명숙(채국희)과 같은 여성의 이해관계가 맞아 기만적이고 불의한 가부장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탈출해도 무사하다는 강력한 증거가 필요하다
〈부부의 세계〉는 마치 ‘가부장제가 전쟁터 같지? 바깥은 지옥이야’라는 점을 주입하려는 듯 드라마 속 여성들을 그 세계 안에 머물도록 주문을 건다. 민현서(심은우)가 애인에게 지속적인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를 ‘사랑’이라 믿게 만들고, 지속적인 남편의 외도에 지쳐 마침내 이혼을 선언하고 탈출하려는 고애림(박선영)에게 남편에게 한 번 더 속을 이유를 만들고, 최 회장의 아내처럼 남편의 외도를 눈감는 대신 재력과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지선우에게는 ‘모성’이라는 주문을 건다.
실제로 가족 관계를 깨트리고 아들 이준영(전진서)을 방황하게 만든 주범은 아버지인 이태오인데도 지선우의 모성에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남성들은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류의 근자감을 보이며 뻔뻔하게 자기 삶을 영위하는 사이, 여성들은 ‘가족’이라는 세계에서 벗어나면 끝이라는 메시지를 교환하며 서로 적대적 관계를 형성한다는 면에서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퇴행적 ‘가스라이팅’ 드라마다.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던 민현서가 마침내 폭력의 사슬을 끊고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우리한테 미래가, 희망이 있을까?”라고 질문했기 때문이다. ‘우리’였던 ‘세계’가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자각과 그 누구의 무엇도 아닌 자신으로 살아낼 용기만이 이미 망한 그 낡은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황폐해진 내면을 위선과 기만으로 감춰야만 하는 이 비루함”으로 가득한 “여기가 바로 지옥이었구나”라는 지선우의 고백처럼, 〈부부의 세계〉는 ‘결혼’이라는 거울을 통해 여성에게 결혼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와 여성에게 결혼이 지옥일 수밖에 없는 고통(마라)의 맛을 동시에 보여준다.
모든 ‘부부의 세계’가 그렇지 않겠지만 여다경의 미래가 지선우이고, 지선우와 고애림의 미래가 최 회장의 아내인 ‘부부의 세계’라면 탈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결혼이라는 낭만적 인질극의 정당성보다는 그 세계에 속하지 않아도, 탈출해도 무사하다는 강력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가족 바깥으로 탈출하지 못해 자신을 죽이고 사는 지선우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반드시, 최소한 당분간은 여성중심적(woman-centered)이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가능한 한 가부장적 사고를 떠나야 한다.”(거다 러너, 《가부장제의 창조》)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