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
[356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떡볶이 프로젝트’의 출범(?)
지난 4월, 종로의 한 카페에서 활동가 세 명이 만났습니다. 코로나 문제로 온 사회가 힘들어하고 있는데, 활동가들이 무언가라도 기획하자며 모인 것이었지요. 각자의 의중은 조금씩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군가는 코로나19로 인해 힘들어하는 프리랜서 동료를 보면서 당장 도움을 주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서사를 지나치게 부여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저로서는, 그러한 이유가 동력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불안전한 노동시장 문제는 고용보험 개선 등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기에, 우리 프로젝트가 문제의 해결책을 왜곡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위선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모든 문제를 구조와 시스템으로만 풀어낼 수는 없기에, 지금의 모임이 나름의 역할을 해낼 수는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경계를 잘 설정하는 것이 저희 세 활동가에게는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프로젝트 이름으로 ‘떡볶이’를 강력하게 밀었던 이유도, 의미 부여가 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그럼 잠시,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이하 떡볶이 프로젝트)는 이름의 저희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떡볶이 프로젝트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 활동가를 후원하는 운동입니다. 저를 포함한 청년들이 좋아하고 평소에 자주 먹을 수 있는 떡볶이를 사먹을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라도 지원해보자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구조는 아주 단순합니다. 청년 활동가를 조건 없이 후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설하고, 후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집합니다. 신청자를 제한하는 자격 조건 따위는 없습니다. 기부받은 기금의 총액을 신청자의 수만큼 n분의 1로 나눠서 지급하면 프로젝트가 끝납니다. 운영진은 규모 있는 단체가 아닌, 딱 세 명의 활동가로 구성합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두 시간 정도 이야기하다 보니 떡볶이 프로젝트가 뚝딱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떡볶이 프로젝트는 운이 좋게도 주변에 많이 알려지면서, 메이저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 당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코로나 국면에 집중하다 보니, 현재의 상황 인식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어떠할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럴싸한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코로나 시대의 거대한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었을 뿐더러,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확 뒤집어질 것 같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난지원금이든 비대면 관계맺기든, 그리고 떡볶이 프로젝트든, 코로나가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유사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회가 그동안 조금씩 다뤄온 영역이거나,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주요하게 논의해야만 하는 이슈들이, 예상보다는 빠르게 우리 사회의 과제로 던져졌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조금 일찍 바뀌었으면 좋았을 일들이 요새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비대면 시대가 강조되면서, 거창한 행사가 온라인으로 소소하게 전환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꼭 필요할 것 같았던 사업이 축소, 취소되어도 조직은 굴러간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지요. 만나서 하지 않아도 집중이 가능한 회의가 있음이 확인되면서, 이동약자들도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눈치 안 보며 논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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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떡볶이 프로젝트’ 결과 포스터 |
후원받을 이유는 묻지 않았다
기존 후원과 지원 시스템 또한 꽤나 사족이 많았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기획들에서 말이지요. 청년수당이든, 민간에서 운영하는 기금이나 장학금도 비슷비슷했지요. 증명하고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이치라고 한다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습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공정한 원칙에 따른 배분은 중요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경제·사회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가난 혹은 어려움을 증명하는 것은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세금을 써야 하는 공공 영역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민간 영역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장학금을 원하든, 후원모금을 기획하든, 거대하고, 정의롭고, 절실한 이유를 요구받습니다. 여유 좀 있는 사람들에게 소위 기부를 받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중대한 목적이 필요하다고들 말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함께 행복해지자’ 수준의 구호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돈을 그냥 줄 리도 없고, 입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줄 필요도 없다는 말이겠지요.
저는 통장에 돈을 두둑하게 쌓아본 적이 없다 보니, 후원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턱이 없습니다.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꼭 절실함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는 안 들지만, 사회 통념이라고도 하고 대다수 후원 기획이 그렇게 설계되니 그러려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국면에서는 그동안 망설였던 금기를 깨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심지어 마음의 여유가 없는 주변 동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기획이기도 했습니다. 떡볶이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기분 좋게 시도해볼 법한 사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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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떡볶이 프로젝트’ 진행 구조 |
코로나 이후에도 이어질 연대의 경험
그러나 저는 떡볶이 프로젝트에 담긴 메시지가 코로나 이후에도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온 세상이 ‘포스트 코로나’를 외치는 시대이고 이를 지렛대 삼아 그동안 묵혀온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던질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 ‘코로나’라는 키워드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떡볶이 프로젝트든 무엇이든 코로나는 계기일 뿐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세상이 꼭 ‘합리적’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반례를 제시하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 세계가 힘든 상황에서, 고작 떡볶이 따위를 같이 먹자는 기획은 2주간 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서 800만 원 가까이를 모을 수 있었고, 약 150명의 청년들에게 떡볶이를 입금하는 성과를 냈으니 말입니다. 그럴싸한 조직이나 배경이 없는 청년 세 명이 종로의 한 카페에서 끄적이며 만든 홍보물과 링크가 작은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코로나와는 별개로, 저는 떡볶이를 정말 좋아합니다. 하루를 열심히 보낸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는 최애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상은 온전히 이어집니다. 일상을 지켜내는 것은 참 어렵지만, 또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습니다. 떡볶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2주간, 서로의 일상을 함께 지켜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이렇게나 많이 존재함을 입증했습니다. 한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통장에 숫자가 두둑이 쌓였습니다. 한 분 한 분 떡볶이를 입금할 때마다, 앞으로 계좌이체를 하면서 이렇게 신나는 날이 또 올 수 있을까 싶은 기분도 가져보았습니다. 더불어 공공에서는 못할 법한 새로운 시도를 민간 차원으로 성공해내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기에 여러모로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떡볶이 프로젝트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는 여러 형태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도 있고, 지자체와 민간 차원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떡볶이 프로젝트만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저 역시 다른 노력을 이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문제 해결과는 별개로, 시민들의 움직임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함께 일상을 견디고 버텨줄 사람들이 지금 곁을 내어주고 있다는 경험이 바로 그것입니다.
재난지원금은 코로나 시국에서만 빛을 발하지만, 연대의 경험은 포스트 코로나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2주간의 프로젝트, 100여 명의 후원, 100여 명의 떡볶이.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의 내역입니다. 별 게 없어 보이는 이 숫자가, 이제 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한 숫자가 되었습니다.
이한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minsnailcoop.com)과 사단법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hanbit.center)에서 활동 중인 투잡러. 노동과 주거 영역에서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자, 다양한 작당과 기획을 벌이고 있다. 대학 때 복수전공으로 신학을 선택하며, 기독교의 사랑에 대해 작게나마 관심을 가져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