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줘서 고마워》 태어나줘서 고맙습니다, 모두

[독자 서평] 태어나줘서 고마워, 오수영 지음, 다른 펴냄

2020-07-06     이지혜
오수영 지음 / 다른 펴냄 / 16,000원 

아동학대사건이 연이어 보도된 요즘,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드러난 학대사건을 마주하고, 드러나지 않지만 여전히 어디선가 고통 받을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이 괴로웠다. 사람이 소중하게 대해지지 못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괴로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이런 어그러진 세상에 대해 욕하는 것만으로는 이 괴로움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새로운 생명을 원했던 고위험산모들의 임신/출산기를 보며, 모든 생명은 또 다른 생명()에게 빚을 지며 태어나는 것이고 결코 쉽게 태어나는 생명은 아무도 없기에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2017년 겨울, 처음 임신을 확인하고 다음해 여름 출산을 하면서 이 시기에 겪었던 소소한 일상과 그 사이에 마주했던 불안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고위험산모들의 임신/출산기에 비해 나의 임신/출산기는 거의 별일 없는 수준이긴 했지만, 이러나저러나 한 생명을 몸 안에서 오롯이 품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몸소 느꼈더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기의 안녕을 걱정하는 마음이 들 때, 저자와 같이 산모들과 함께 호흡해주었던 의사 선생님 덕분에 조금은 안심하며 그 여정을 보냈던 기억이 스쳐갔다. 이 저자도 수많은 산모들이 임신/출산 시기에 겪는 여러 어려움들을 함께 감당해주었고, 무엇보다 인격적으로 산모들을 대한 흔적을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학병원 의료시스템에 대해 잘 아는 바는 없지만,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업무량, 구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찾아오는 이를 한 인격으로 대하려고 했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신앙서적은 아니지만, 결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한 생명의 소중함을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산모의 서사를 돌봐주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 마땅한 아기들을 마음으로 받아 낸 저자. 자신에게 찾아오는 산모와 아기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사, 더 나아가 이 세상 많은 산모와 아기가 무사히 출산/출생할 수 있도록 구조에 관심을 갖고 움직이는 의사. 현실은 수많은 결정과 그 결정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 책임이 때로 과중하게 느껴지기도 했겠지만,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하나님나라 운동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저자가 크리스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세상에서도 모든 존재들이 서로를 이렇게 바라봐주면 얼마나 좋을까? 산모와 아기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이 세상 모든 생명들로 자연스럽게 시야를 넓혀주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나 아기였거나, 아기다. 엄마/아빠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통해 소중하게 이 세상에 등장했다. 굳이 신앙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엇보다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으로서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안에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이다. 이것을 모두가 안다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를 학대하고 배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성을 착취하여 돈벌이 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익명 뒤에 숨어서 인격모독적인 악플을 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교회를 다닌다고,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사람을 존귀하게 대할 줄 안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시고, 다른 사람들도 존귀하게 여기신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어그러진 세상에 대해 덮어놓고 욕하는 마음을 넘어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갖게 된다.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분투하는 모습은 이렇게 전염이 되어간다.

고맙습니다,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