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타인이다

[357호 오수경의 편애하는 리뷰]

2020-07-28     오수경

가족은 나에 관해 모르는 게 많다. 나도 가족을 잘 모른다. 사실 ‘가족’ 사이에 뭘 더 알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서로 잘 안다고 착각하면서 무심하게 방치하거나 무례하게 침범하는 게 ‘가족’이니까. 누군가는 가족의 사랑을 표현할 때 ‘찐한’이라고 표현하지만, 나에게 가족은 ‘찐득찐득한’ 상태에 가깝다. 사랑하지만, 사랑 외의 복잡한 감정이 들러붙은 상태랄까. 그래서일까.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 둘째 딸 은희의 독백이 반가웠다. “가족인데, 우리는 가족인데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가족에 관해 쿨한 고백을 하다니!

tvN 드라마 화면 갈무리.

찐함과 찐득찐득함 사이 어딘가, 가족

운수 노동자인 김상식과 주부 이진숙은 지극히 평범한 부부다. 성실하게 노동하고 살뜰하게 살림을 불려 서울에 번듯한 집을 마련했다. 똑 부러진 전문직 여성인 장녀 은주는 의사와 결혼했고, 둘째 딸 은희와 막내아들 지우도 자기 삶을 잘 꾸리고 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던 어느 날 진숙이 ‘졸혼’을 선언하며 가족은 혼란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상식은 산에서 낙상하여 ‘22살 청년’ 시절의 기억에 멈춘 상태로 깨어난다. 그와 동시에 가족 구성원 각자가 품고 있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며 흔하디흔한 가족 드라마는 “가족 같은 타인과, 타인 같은 가족의 오해와 이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설명답게 각종 오해와 이해가 ‘찐득찐득’하게 얽히고설켜 전개된다.

초반부터 기억상실, 출생의 비밀 등 익숙한 막장 서사를 배치한 이 가족 서사가 특별해지는 순간은, 가족으로 알고 있던 관계가 사실 가족이 아니었음을(더는 가족일 수 없음을) 알게 되거나 선언하는 순간이다. 가족의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20대를 오롯이 헌신한 장녀 은주는 사실 상식과 진숙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아니다. 한편, 유산한 이후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거듭되는 실패로 결국 부부 사이마저 서걱거리게 된 은주와 윤태형의 관계는 태형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위장 결혼한 사실이 밝혀지며 위기를 맞는다. 이런 관계의 변화는 진숙이 겪은 여성이자 엄마로서 겪은 소외를 드러낸다. 또한 ‘두 집 살림’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 상식의 수상한 행동의 진실을 알게 된다. 사고의 충격으로 ‘22살 청년’의 관점으로 부부 사이를 보게 된 상식 또한 서울 출신 대학생인 진숙을 향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진숙을 무시하고 학대한 과거를 직면한다. 은주는 ‘장녀’로서 가지고 있던 상처와 무게를 드러내고, 예민한 가족들 사이에서 애써 밝게 지냈던 은희와 지우 또한 켜켜이 쌓아왔던 설움을 쏟아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가족 서사가 특별한 다른 이유는 박찬혁이라는 ‘외부자’의 존재감 때문이다. 은희의 대학 친구이자 지우가 다니는 ‘황금 거위 미디어’ 대표이기도 한 찬혁은 누구보다 이 가족의 비밀을 많이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가족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알고 있을 정도다. 이런 관계의 변화와 외부자의 존재는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과 범위를 해체하며 질문하게 한다. 혈연으로 얽히지 않아도 가족일 수 있을까? 부부의 정을 더는 공유하지 않아도 가족일 수 있을까?

tvN 드라마 화면 갈무리.

매순간 새롭게 감각해야 하는 낯선 몸, 가족

우리 사회는 가족을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으로 한정한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가족에 관한 사회적 정의가 더는 불가역적 정의가 될 수 없음을 촘촘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가족에게 찬혁이라는 외부자의 시선, 상식을 ‘아버지’라 부르는 영식이라는 뜻밖의 존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각각 “누가 가족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매개가 된다. ‘졸혼’이라는 부부 관계의 매듭은 도리어 상식과 진숙의 어긋난 부부 관계를 복원하게 한다. 은주는 태형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후 태형이 그동안 가족에게 당한 폭력적 정황을 알게 되고, 그를 인간으로 이해한다. 또한 상식과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와 쌓은 부녀의 시간을 허물지는 못한다. 이런 변화는 “가족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모두 가족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이런 진실은 가족을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인식하게 한다. 그래서 오해와 상처를 굳이 알려 하지 않고 애써 묻지 않음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게 가족이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반대로 서로를 오해할 수도 있고, 적극 이해하기를 선택하고, 끝내 이해하기를 포기할 수도 있는 ‘관계’이자 ‘과정’으로서의 가족을 말한다. 또한 ‘혈연’이 가족을 구성하는 유일한 조건이라는 명제를 해체하여 가족을 재구성할 공간을 넓힌다.

이 드라마는 특이하게 ‘가족입니다’라는 선언적 제목 앞에 ‘아는 건 별로 없지만’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한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과 ‘가족입니다’ 사이에 어떤 이음말이 필요할까? 그럼에도, 그래서, 그렇지만 등의 말을 넣으며 달라지는 의미를 생각한다. 이 사이에서 서성이며 고민하며 노력하는 게 진짜 ‘가족’이 아닐까? 어쩌면 가족은 매순간 새롭게 감각해야 할 가장 낯선 몸이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