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들에게 기도가 가장 큰 힘입니다”

[358호 커버스토리]

2020-08-18     임왕성
ⓒ복음과상황 정민호

임왕성 목사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제주평화순례의 기획과 준비, 행사 진행 등 여러 역할을 맡아 참여했다. 2001년 학생 시절부터 청년대학생 복음운동단체인 새벽이슬에 참여하여, 졸업 후인 2005년부터 2017년까지 간사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 새벽이슬교회 담임목사이며 성서한국 사회선교국장을 맡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제주평화순례를 실무자로 참여해왔는데, 이번 순례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원래 제주평화순례는 강정마을 주민들과의 만남의 장이었어요. 마을 안에 해군기지 찬성 측이나 반대 측 포함하여 다양한 주민분들이 계신 상황에서 빠짐없이 농활을 계속했거든요. 하루 중 아침에 묵상기도회, 점심에는 인간띠잇기, 그리고 저녁 기도회 시간 빼고는 일주일 내내 전부 농활이었거든요. 마을 주민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어요. 이전 기수부터는 농활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여기 있는 지킴이들과 논의해서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자체적으로 진행하게 된 게 올해로 두 번째입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부득이 일정을 하루 줄여서 3박4일로 하게 된 거죠.

강정 평화활동가이신 송강호 박사님이 수감되어 있는 제주교도소 앞에서 기도회를 열기도 했는데요.
신앙 동역자로서 송 박사님의 평화운동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차원에서 기도회를 연 건데요. 박사님은 기독 청년들이 강정을 잊지 않고 찾아오고 지킴이들과 함께하기를 바라고 계시죠. 원래 독방 수감을 원하셨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허용이 안 되어 조금 힘드신 것 같아요. 교도소 내 자가격리 조치 때문에 물리적으로 독방 수감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여러 수감자들과 같이 지내는 불편함 가운데서도 강정 일만 생각하고 계시는데, 지난 면회 때도 강정 상황을 청와대에 국민청원으로 올리고 이슈화할 구상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제 경우만 보면 박사님의 기대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제주평화순례 참가하기 전까지는 저도 강정 문제를 잘 알지 못했거든요. 저 같은 청년들을 위해 지금까지 쌓여온 강정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강정 문제는 너무 오래됐어요. 사연들도 너무 많고 대부분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죠. 기억에 남는 장면들 중 하나는 해군기지 공사 당시 지킴이들의 모습이에요. 아파트 8층 규모의 콘크리트 덩어리인 케이슨을 만들기 위한 레미콘 차량 진입을 막는 싸움이 24시간 계속될 때가 있었어요. 매일 오전 11시에 공사장 진입로에서 가톨릭 미사를 드리고 오후 2시에는 개신교 기도회를 열었는데, 그 외의 시간에도 하루 종일 마을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진입로를 지키고 있었죠. 그때 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레미콘 차량이 10여 대가 진입하면 지킴이들이 나와서 레미콘 기사 한 분 한 분에게  ‘우리 마을이 죽어간다’ ‘제발 오지 말아달라’ 사정하고 엎드려서 절하기도 하면서 매달리는 거죠. 지킴이들은 노숙자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옷차림도 엉망인데, 이 마을 출신도 아닌 사람들이에요. 그런데도 경찰들에게 끌려나가고, 레미콘 기사들에게 사정사정하고,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버티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분들 중에는 아기 엄마도 있었고 나이가 굉장히 많은 분도 계셨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분 중에 크리스틴 할머니라고, 하와이에서 오신 분이 있었어요. 강정의 상황이 세계적으로도 알려져서 전 세계적인 연대와 교류가 일어났는데, 휴양지로만 알려진 하와이도 실은 미군기지로 인해 섬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기지 반대운동이 있었고 거기 참여하신 분이에요. 어느 날 레미콘이 들어오니까 멋진 백발의 할머니가 길 한복판에 서서 손을 들어요. 그러면 레미콘이 일단 멈추는 사이 경찰들이 몰려가서 할머니를 도로 밖으로 들어 옮기면 레미콘이 지나가요. 외국인이라고 경찰이 다르게 대하거나 봐주질 않았거든요. 나중에 왜 그러셨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가 하신 얘기가 있어요. “내가 여기서 이 차를 5분 막으면 세계의 전쟁을 5분 지연시킬 수 있지 않겠어요?” 굉장한 충격이었죠. 제가 지금 하는 이 일이 무슨 대단한 평화신학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때의 경험들, 그분들에 대한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여기까지 저를 이끄는 게 아닌가 해요.

오랫동안 이곳을 찾으셨는데,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 여기 강정마을은 어떤 의미인가요?
 2012년 3월 처음 강정에 와서 만난 송강호 박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예수전도단의 제주열방대학이 여기서 가까운데 수많은 기독 청년들이 거기까지 와서 훈련받고 간다고요. 그때 한창 불리던 유명한 CCM이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땅끝까지>라는 찬양이었대요. 그런데 그런 찬양을 그토록 부르고 훈련을 받고 가는 청년들이 가까이에 있는 이 강정을 한 번도, 한 명도 안 왔다는 얘기였어요. 도대체 한라에서 백두까지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찬양을 하면서 정작 그 노랫말의 시작점인 한라(제주)의 남쪽 끝 이 강정 땅에서 평화가 깨지고 국가 폭력으로 숱한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데 어떻게 한 명도 오지 않는가, 반문하신 거죠. 제 얘기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이 피해갈 수 없는 현장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화, 팔복 가운데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예수님 말씀을 믿는 자들이 외면할 수 없는 현장이 있다는 거죠. 최소한 강정이 바로 그런 현장 가운데 하나 아닌가 해요. 이런 현장들을 외면하면서 우리의 찬양들, 기도들을 온전히 올려드릴 수 있을까 싶어요.

여기 와서 시간과 마음을 들여 연대하는 게 적잖은 부담이 되기도 할 텐데, 힘들지는 않은가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수도 없이 오는 것도 아니고, 제 일정에 맞춰 움직이니까요. 단지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죠. 언젠가 개신교 기도회를 공사장 앞을 막고 했는데, 공사 방해로 제가 고소를 당한 일이 있어요. 경찰에서 조사받고 검찰로 넘어갔는데 그 뒤로 아직 연락이 없긴 하지만요. 또 한번은 이사를 갔는데 며칠 지나고 관리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경찰에서 전화가 와서, 이 사람이 여기 사는 게 맞냐고 물었다는 거예요. 이사한 지 얼마 안 될 때였는데, 당시 제 주소지 이전까지 경찰이 계속 체크하고 있나 싶었죠. 그밖에도 일정상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여기서 살면서 싸우고 있는 지킴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찬양을 그토록 부르고 훈련을 받고 가는 청년들이 가까이에 있는 이 강정을 한 번도, 한 명도 안 왔다는 얘기였어요. 도대체 한라에서 백두까지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찬양을 하면서 정작 그 노랫말의 시작점인 한라(제주)의 남쪽 끝 이 강정 땅에서 평화가 깨지고 국가 폭력으로 숱한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데 어떻게 한 명도 오지 않는가, 반문하신 거죠. 제 얘기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이 피해갈 수 없는 현장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화, 팔복 가운데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예수님 말씀을 믿는 자들이 외면할 수 없는 현장이 있다는 거죠. 최소한 강정이 바로 그런 현장 가운데 하나 아닌가 해요. " ⓒ복음과상황 정민호

제주 해군기지가 이미 들어선 지 수 년이 지난 마당에 활동가들은 왜 계속 자리를 지킬까 궁금했는데요. 목사님은 어떻게 이해하세요?
제 개인 삶이나 여러 활동을 돌아볼 때, 강정 이전과 이후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그중 하나가 ‘관점’의 변화예요. 우리는 항상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지, 못 얻었는지에 따라 운동의 성공 실패를 가리잖아요. 그렇게 보면 성공은 불가능할 것 같아요. 오늘날 국가권력에 맞서 시민들이나 시민운동단체가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을까,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묻는다면 그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운동이 ‘끝났다/끝나지 않았다’ ‘성공했다/실패했다’를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강정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해군기지 입장에서는 이게 얼마나 귀찮겠어요. 매일 아침에 와서 기도회 하고, 점심에 미사 드리러 와서 시끄럽게 하면 그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민간인들이 기지 밖에서 저러고 있으면 날마다 체크하고 보고해야 하니까 꽤 신경 쓰이는 일인 거죠.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주민들에게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가 1차적인 싸움일 수 있어요. 여기가 삶의 터전이고 생계와 직접 관계된 일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 해군기지는 눈에 보이는 사안이고, 더 크고 중요한 것은 전쟁 반대와 지속가능한 평화, 국가폭력 반대와 4·3의 아픔을 지닌 제주에 지으려는 또다른 군사기지 건설반대를 위한 싸움이에요. 우리는 아직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군사기지를 4·3의 아픔이 있는 제주에 강행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에 아직 끝난 싸움이 아닌 거예요. 군사기지를 막기 위한 싸움은 졌지만, 평화를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진행중인 거죠.

강정이나 제주라는 지역을 넘어서는 평화운동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거네요.
의도하건 하지 않았건 강정은 한국의 군사기지 반대운동, 평화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이정표가 된 것 같아요. 왜냐면 이곳은 세계가 주목한 군사기지 반대 평화운동의 현장이 되었고, 여전히 세계의 시선이 주목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기지는 이미 들어섰지만 평화를 위한 싸움을 어떻게 계속 이어가는지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 군사기지 반대운동이 강정 주민만을 위한 싸움은 아니거든요. 이 기지가 강정을 상대로 지어진 건 아니니까요. 이 운동 자체가 이 지역을 넘어 국가와 민족의 평화를 위한 시민운동이고, 제주도민들은 외지인들이라 하시겠지만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그 오랜 시간을 여기 와서 연대하는 이유가 거기 있거든요. 미사 천막 앞에 있는 날짜판을 보니까 기지 반대운동을 이어온 지 오늘로 4천8백 며칠째더라고요. 이렇게 오래 평화를 위해 이어온 싸움이 있는가 묻는다면, 강정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강정은 군사기지 반대와 평화운동에서 정말 상징적인 곳이 된 것 같아요. 그런 만큼 이곳의 싸움을 어떻게 이어가느냐에 따라 제2, 제3의 강정이 생겨나지 않게 막을 수 있고, 이후에도 국가 차원에서 군사기지가 필요할 때 더 이상 강정과 같은 방식으로는 못하게 막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강정이 정말 중요한 거죠.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강정에 남아 활동하는 지킴이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활동했던 지킴이들이 많이 떠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빈자리를 ‘개척자들’을 비롯한 개신교 신앙 배경의 지킴이들이 메워주고 있어서 참 감사했어요.

이곳 강정의 평화운동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소개해주세요. 일상 생활인들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방법까지 포함해서요.
일반인들과 신앙인들이 다를 것 같아요. 신앙인으로서는 기도가 가장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상투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송강호 박사님을 비롯해서 많은 개신교 활동가들이 기도의 힘으로 버텨왔거든요. 불가능으로만 보였던 많은 일들이 기도 속에서, 기도를 통해 변화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어요. 직접 강정으로 와서 참여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 해도 이곳 주민과 활동가들을 위해 잊지 않고 기도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거예요. 또 하나는, 강정을 잊지 않고 있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주시면 마을 분들이나 지킴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겁니다. 이곳이 한창 뜨거운 이슈였을 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찾아왔고 관심을 표명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영영 잊히지 않을까 두려움이 있을 정도거든요. SNS에서 강정 소식을 보면 ‘좋아요’나 공유, 격려 댓글로 응원해주시면 활동가들에게는 굉장히 큰 격려가 될 거예요.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제주에 오시거나 강정을 지나가실 때 잠시 짬을 내서 인간띠잇기에 참여하시거나, 마을에서 활동하는 지킴이들과 인사라도 나누며 격려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반대 측 주민들의 활동이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이는 지금, 처음엔 반대였다가 어쩔 수 없이 침묵으로 찬성 측에 동조하신 분들의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치유가 안 된 걸로 보여요. 엄청난 패배감과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잠복해 있는 거죠. 그래도 예전에는 그걸 표출했어요. 반대 투쟁을 하면서요. 지금은 전부 안으로 누르고 사시는 거고요. 그렇다고 찬성 측 주민들과 화해가 되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여전히 서로 거리가 있고, 마을의 관혼상제 의식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에요. 그렇기에 강정을 위해 기도할 때 가정 먼저는 주민들의 마음의 상처와 아픔, 분노와 패배감, 서로에 대한 미움과 증오 등 깊은 ‘쓴뿌리’들이 치유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면 좋겠어요. 다음으로는, 비록 군사기지가 이미 들어섰지만 그럼에도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소망하는 의지와 행동, 기운이 꺾이지 않게 해달라고, 강정에서 경험한 평화의 가치와 소망이 전 세계로 흘러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세요. " ⓒ복음과상황 정민호

강정을 위해 어떤 기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지 건설 과정에서 주민들이 마음의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반대 측 주민들의 활동이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이는 지금, 처음엔 반대였다가 어쩔 수 없이 침묵으로 찬성 측에 동조하신 분들의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치유가 안 된 걸로 보여요. 엄청난 패배감과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잠복해 있는 거죠. 그래도 예전에는 그걸 표출했어요. 반대 투쟁을 하면서요. 지금은 전부 안으로 누르고 사시는 거고요. 그렇다고 찬성 측 주민들과 화해가 되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여전히 서로 거리가 있고, 마을의 관혼상제 의식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에요. 그렇기에 강정을 위해 기도할 때 가정 먼저는 주민들의 마음의 상처와 아픔, 분노와 패배감, 서로에 대한 미움과 증오 등 깊은 ‘쓴뿌리’들이 치유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면 좋겠어요. 다음으로는, 비록 군사기지가 이미 들어섰지만 그럼에도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소망하는 의지와 행동, 기운이 꺾이지 않게 해달라고, 강정에서 경험한 평화의 가치와 소망이 전 세계로 흘러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세요. 가톨릭 제주교구 교구장이신 강우일 주교님이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평화가 시작되리라”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성경 구절을 빌려온 그 말씀으로 노래도 만들어서 부르기도 하는데, 강정이 그런 곳이 되도록, 정말 작은 이 마을이 평화의 시작점이 되고 평화의 생명을 잉태하는 현장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이곳 지킴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무런 이익이 없는데도 이 현장을 지키고 희생하면서 평화를 위해 버티는 분들인데, 끝까지 용기 잃지 않고 잘 견딜 수 있도록, 아울러 강정 마을의 삼촌 같은 존재로 남아서 싸우고 계신 가톨릭의 문정현 신부님과 개신교의 송강호 박사님 두 분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평화운동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활동가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활동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활동가 구성이 남성이 대다수인데다 연령대마저 20-30대는 드문 현실인데요.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 같아요. 생계 문제나 장래에 대한 고민만 해도 제가 새내기 활동가였을 때와 지금 후배들이 고민하는 무게가 굉장히 다르다고 느껴져요. 제가 새벽이슬이라는 단체에서 간사로 일할 때 처음엔 사례가 아예 없었고 몇 년 지나면서 월 30만 원 받으며 10년 넘게 그냥 했거든요. 그럴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당시만 해도 결혼이나 생계, 장래에 대한 부담감이 요즘만큼 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생활, 생계의 무게가 훨씬 크고 무겁게 다가오잖아요. 그런데도 기독교 단체의 활동가들에 대한 처우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고, 활동가들 자신도 과거에 비해 삶의 압박감이 커지니까 여유롭게 생각할 여지가 없지 않나 싶어요. 또 하나는 경험의 차이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세대의 경우, 활동가 일을 시작하여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대부분 어떤 체계나 매뉴얼도 없는 상황에서 마구 부딪치고 스스로 경험하면서 왔거든요. 잘 짜여진 조직 속에서 인수인계 과정을 거쳐 차근차근 배우면서 온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좌충우돌 흘러온 과정이었지 않나 해요. 그렇게 체득한 것들은 체계적으로 전수받고 훈련받은 게 아니니까 후배들에게 단계별로 체계적으로 전수해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거죠. 그러니 후배들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도 않고 일을 시키나’ 하는 거고, 저희 세대는 ‘아니 왜 이 정도 일을 못하나’ 하는, 서로 경험에서 오는 간극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후배들이나 새내기 활동가들이 볼 때는, 선배들이 체계도 없는데다 꼰대 같은 면들이 있어 보일 거고, 저희 같은 실무책임자들이 볼 때는 지금은 그나마 훨씬 나은 상황인데도 후배들이 너무 쉽고 편하게 일하려는 걸로 보일 거 같고요. 그런데 이런 문제는 세대 간의 문제와 책임이기 전에, 상당 부분 복음주의권 단체들의 오랜 관행과 열악한 현실의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이번 제주평화순례에도 참가자 중 여성 활동가는 아예 없고, 연령이 30대 후반에서 40대가 대다수입니다. 40대 선배 활동가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후배 활동가들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나 후배들이 줄어드는 현실에 대해 저희도 걱정이 많아요. 그들이 넘겨받아서 이어가야 할 일들도 있는 건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버겁기도 하고 어려운 거죠. 기성 세대도 힘들지 않은 게 아니라 지금은 모두 힘든 것 같아요.

대안을 고민하신 게 있다면 덧붙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글쎄요. 우선 저도 잘 못하고 있어서 솔직히 대안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보다 더 앞선 세대 선배들, 단체 대표이거나 이사진 등 의사결정 및 인사권을 가진 분들이 사람을 좀 더 소중하게 여겨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운동도 사람이 하는 건데, 운동이 성공적이어도 그 운동을 함께한 사람이 망가진다면 과연 성공한 운동인가 하는 물음표가 남을 수밖에 없잖아요. 조직이나 단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단체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은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사람에 대해 잘 기다려주지 못하고 너무 쉽게 결정하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운동이나 가치를 위한 싸움 자체도 소중하지만, 그 일을 해가는 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좀 더 애정으로 대하고 소중히 여겨야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도 신뢰와 애정으로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처우도 어려운 판에 견뎌낼 힘이 없을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이런 문제들은 처우가 좋아진다고 해결될 것 같진 않아요.

3박4일 일정이 다 끝나가는데 이번 평화순례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기억될 것 같으세요?
사실 저는 현장에 갈 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보다는, 우리의 연대와 활동이 여기 계신 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고 어떤 힘을 줄 수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참가자들에게는 늘 원성을 듣는 편이지만, 마을에 계신 지킴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고 있어요. 원래는 제주평화순례가 끝난 다음주에 ‘생명평화대행진’을 하는데, 강정을 계기로 전국에서 오신 분들이 함께 모여 일주일 동안 제주를 한 바퀴 돌면서 강정 이슈와 제2제주공항건설 등의 문제를 알리는 굉장히 큰 행사거든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그 행사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만큼 이번 평화순례단의 방문은 짧은 일정임에도 지킴이들에게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어느 해보다 더 의미 있는 시간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수감 중인 송강호 박사님에게도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해요. 그분을 평화운동가, 평화활동가로만 아는데 실은 영성가예요. 기독인들이 연대하는 예배와 기도를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이거든요. 교도소 앞에서 한 기도회 소식을 듣고 큰 위로와 힘을 얻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법원 앞에 가서 석방 요구 기자회견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그 작은 기도회가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현장에 갈 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보다는, 우리의 연대와 활동이 여기 계신 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고 어떤 힘을 줄 수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참가자들에게는 늘 원성을 듣는 편이지만, 마을에 계신 지킴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고 있어요. 원래는 제주평화순례가 끝난 다음주에 ‘생명평화대행진’을 하는데, 강정을 계기로 전국에서 오신 분들이 함께 모여 일주일 동안 제주를 한 바퀴 돌면서 강정 이슈와 제2제주공항건설 등의 문제를 알리는 굉장히 큰 행사거든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그 행사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만큼 이번 평화순례단의 방문은 짧은 일정임에도 지킴이들에게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어느 해보다 더 의미 있는 시간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 ⓒ복음과상황 정민호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정리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