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작은 존재들에게 눈인사를!

[359호 커버스토리]

2020-09-22     김미영

요즘 나는 일어나자마자 고양이 화장실을 먼저 확인한다. 집사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깔끔한 환경을 좋아하는 고양이를 위해 매일 감자 캐기맛동산을 치우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나서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주고 다른 일과를 시작한다. 문득 이런 하루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고양이집사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초여름에 만난 '하루' 
3년 전 초여름, 집 앞 놀이터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밖에서 지낸 지 꽤 되었는지 털이 까칠하고 빼빼 마른, 덩치가 작은 아이였다. 초록빛과 노란빛이 살짝 도는 동그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코는 분홍빛이 돌았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보니 누군가의 손에 길러지던 아이인 듯했다. 동네 사람들이 이 고양이에게 이런저런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나도 야옹아하고 덩달아 불렀다. 그러면 꼬리를 스윽 문지르며 지나갔고 만나면 큰 눈을 살포시 감으며 인사를 보내왔다. 신기했다.

그 전에 나는 고양이를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무서워했다. 어쩌다 고양이의 꼬리가 내 다리를 스쳐 지나가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1년 전부터 아들이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졸랐지만, 그때마다 발톱이 무섭고 털 알레르기 때문에 안 된다는 핑계를 대곤 했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내가 무섭지 않은지 부르면 나타나고, 부르지 않아도 숲에서 나와서 꼬리로 인사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골골골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간식 캔을 따서 주었더니 신발을 붙들고 자기 배를 드러내 보이며 뒤집기를 몇 번이나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이렇게 한 달 동안 매일 만나면서 점점 친해졌다. 나는 이 아이가 날마다 궁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고양이는 어쩌지? 설마 놀이터에 오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꾸 고양이가 걱정이 되었다. 마침 장대비를 피해 미끄럼틀 아래에서 떨고 있던 이 고양이를 이웃이 발견하고 결국 우리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이렇게 나는 기꺼이 고양이를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고양이의 이름을 하루로 지었다. 우리 가족과 함께 하루하루 잘 살아보자는 마음에서. 처음 하루에겐 고양이 화장실도 없었고, 고양이 밥그릇도 없었다. 부랴부랴 마련을 하고 고양이와의 함께 살기가 시작되었다. 책을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고양이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그런데 우리 집으로 온 지 3일 후에 고양이가 병이 든 걸 알게 되었다. 엉덩이에서 나오는 진주알 같이 하얀 고름을 보았다.

자궁축농증입니다. 밖에서 생활해서 세균에 감염된 것 같아요. 지금 상태로 그냥 두면 패혈증으로 죽을 수 있어요.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동물병원 의사의 말에 순간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수술비와 치료비가 만만치 않게 든다고도 했다. 전후 사정을 아는 의사는 나보고 선택하라는 말을 했다. 가정경제는 넉넉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당연히 수술을 선택했다.

하루야, 걱정 마. 네가 병들어도 버리지 않아. 우리가 잘 돌봐줄 거야!’

다음 날 하루는 허리에 붕대를 감은 채 병원 케이지 너머로 나를 보고는 가냘픈 목소리로 울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고양이 코에 인사를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잘 견디어줘서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무사히 퇴원한 하루에게는 이날부터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진정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주신 것처럼, 하루는 우리에게 입양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하루는 어떤 시선으로 이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나는 그림책 짓는 일을 하고 있는데(아주 가끔 세상에 나온다), 상상을 하다가 시놉시스를 써보았다.

 

그림책 고양이, 하루(가제) 줄거리

#1. 나는 길냥이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옛 주인이 나를 아마 잃어버렸나 봐요. 안전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여기 놀이터 근처까지 왔어요.
 

#2.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어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까이 들렸어요. 곧 동네 꼬마들이 신기해하며 나를 쓰다듬었지요. 그중 한 아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어요. 나는 코끝을 닿으며 인사를 했어요. 이 아이 냄새가 좋았어요. 그래서 내 멋진 꼬리로 부드럽게 아이 다리를 쓰다듬어 줬어요.

 

#3. 밥만으로는 살 수 없어요

이곳이 마음에 들었어요. 동네 사람들이 나타나서는 내게 먹이를 줬어요. 사료도 주고 물도 주고 아주 친절하게 대해줬어요. 어제 만난 그 아이도 내게 간식 캔을 따줘서 맛있게 먹었지요. 깃털이 달린 놀잇감으로 놀아주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그 아이가 집으로 들어갈 때는 나도 아이를 따라 가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나는 길에 사는 고양이일 뿐이에요.

 

#4. 제발 나를 데려가 주세요

아이를 다시 만났어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만나서 즐겁게 놀았어요. 나는 그 아이가 좋았어요. 아이 신발을 붙들고선 그 앞에서 배를 보이며 이리저리 뒹굴었어요.

 

#5. 사실 나는 많이 아파요

언제부턴가 몸이 무거워졌어요. 사뿐거리던 걸음걸이도 느릿느릿해졌어요. 눈을 뜨고 감는 것도 힘이 들었어요.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렸어요. 사람들이 줬던 사료 그릇에도 물이 가득 찼어요. 사냥을 하기에는 몸이 너무 느려졌어요. 배가 고팠어요.

 

#6. 나를 살려주세요

미끄럼틀 아래로 가서 비를 피했지요. 털은 이미 비에 다 젖었어요.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어요. 이상하게도 잠이 계속 쏟아졌어요. 점점 눈이 감기고 흐려지는 그 사이로 달려오는 아이 모습이 보였어요. 나를 급하게 불러댔어요. 그 목소리가 점점 작게 들렸어요.

 

#7. 이제 당신을 믿어요

눈을 떠보니 집 안이었어요. 부드러운 천으로 나를 감싸고 털을 말려줬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료도 주었고 연어맛 간식도 주었어요. 한결 힘이 났어요. 아이의 가족들도 따뜻하게 나를 안아줬지요. 그러고 나서 나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갔어요.

 

#8. 나를 불쌍히 여겨줬어요

수의사 선생님이 내가 병에 걸렸다고 했어요.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고요. 아이와 엄마는 나를 살리기로 마음먹었대요.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병들었어도 버리지 않아. 이제 너는 우리 가족이야. 우리가 잘 돌봐 줄게.”

 

#9. 사랑해주어서 고마워요

수술한 다음 날, 아이와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어요. 아이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어요. 내게도 가족이 생기다니!

 

#10. 새로운 이름이 생겼어요

아이가 내 이름을 하루라고 지어줬어요. 지금까지 잘 견딘 것처럼 하루하루 잘 살아보자는 뜻이래요.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었어요. ‘하루라고 부를 땐 휘파람소리가 나는 것 같거든요.

 

#11. 나는 지금 안전해요

밖에 있을 때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자주 화들짝 놀랐어요. 그래서 언제나 귀를 열고 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아이와 함께 있는 우리 집은 심장이 쿵!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밥그릇은 날마다 채워 주었어요. , 내가 앉고 싶은 곳 어디든 앉을 수 있고, 자고 싶은 곳 어디든 잘 수 있어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나를 사랑해주는 아이와 함께 있다는 거예요.

 

#12. 나도 기쁨을 주고 싶어요

아이가 잘못을 해서 엄마에게 혼이 났어요. 내가 엄마에게 가서 말했어요. 너무 많이 혼내지 마시라고, 앞으로는 잘 할 거라고요. 엄마는 내 말을 이해하셨는지 혼내는 걸 금방 멈추셨어요.

 

#13. 나는 날마다 고양이다움을 회복하고 있어요

이제 수술 받은 상처도 모두 아물었어요. 새살이 돋아서 딱딱해졌지요. 창가에 앉아서 밖을 보고 있으면 엄마는 내가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줄 알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나는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스크래처에 발톱을 뾰족하게 갈아둬야 해요. 그리고 새들을 보며 입으로 사냥연습을 하고 있지요.

 

#14. 나는 고양이, 하루입니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나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있어요. 나는 새로운 시간을 사는 고양이, 하루입니다.

두 번째 가족, 경계심 많은 시오
고양이와의 만남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하루를 데려오고 2년 뒤, 작년 광복절 즈음에 또 다른 길냥이’(길고양이)를 데려 오게 되었다. 어느 여고 운동장 기슭에서 살던 어미 고양이가 다른 동물로부터 공격을 받고 뒷다리를 다쳐서 새끼 고양이를 돌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동물단체에서는 어미를 구조해 가면서 새끼 고양이까지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구조단체에도 돌보는 고양이가 포화상태인데다 태어난 지 4개월이 다 되어가는 아이라 스스로 살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 아이도 그리 안전하지 않았다. 흰색 고양이여서 유독 다른 동물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다고 했다. 그 학교 직원과 나의 지인은 새끼 고양이를 구조해서 나에게 돌봄을 부탁했다. 나는 두 번째 고양이의 집사가 되었다. 한 번 해보니까 두 번째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아이의 이름은 시오. 일본어를 좋아하는 딸이 지은 이름. 소금이라는 뜻이다. 소금처럼 털이 온통 하얗기 때문이다. 발바닥은 선명한 분홍젤리이며 씩씩하고 호기심이 많다. 구조해서 보니 시오도 날카로운 발톱에 할퀸 상처가 있었고 귀에는 진물이 계속 나왔다. 동물병원에서 귀 안쪽 깊이 자란 폴립(작은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치료비도 많이 들었다. 멀리서는 건강한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이 아이도 상처투성이였다. 야생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사진: 필자 제공) 

처음 시오는 야생의 아이라서 사람을 무척 무서워하여 도망다니기 일쑤였다. 어디든 숨었고 쓰다듬으려 하면 여지없이 손을 물거나 발톱을 내밀었다. 자주 긁혀서 팔다리에는 피가 나곤 했다. 그럼에도 계속 이름을 불러주었고 놀잇감으로 흥분시켰다. 기가 막힌 맛의 간식을 주고 겁먹지 말라고 눈인사를 수없이 보냈다. 이렇게 인내의 시간을 보내며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더니 점차 우리 곁으로 나아왔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면 기적 같은 행동을 한다. 침대 위에서 같이 자고 품에 안겨서도 한참이나 있어준다. 졸리면 와서 기대어 자기도 한다. 시오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러 가지다. 싫을 때의 울음소리는 약간 신경질적이고, 엄마가 없을 때는 아주 서럽게 울고, 간식을 줄 때는 노래하듯이 맑은 소리로 운다. 간식을 안 줄 때는 곁에 앉아서 계속 불쌍한 목소리로 힘을 빼고 운다. 이 녀석 참, 다채롭다. 아니 고양이는 모두 다채롭다. 하루도 그렇다. 사람만 다양한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고양이도 비슷하다. 생명이란 참 신비롭다. 저마다의 빛깔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런 존재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하루와 시오는 털에 윤기가 흐른다.
 

고양이의 사랑에 놀라다
언젠가 아주 힘든 일로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가까이 있던 하루가 자신의 혓바닥으로 나의 눈물을 핥아주는 게 아닌가. 세상에나, 고양이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위로를 하다니! 그뿐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낯선 누군가가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시오가 우리 집에 오고서 처음에는 영역싸움을 하느라 하루를 귀찮게도 하고 물기도 하였다. 시오가 어려서 그런지 어설프게 그루밍(혀로 털 고르기)을 하면 하루가 시오에게 가서 그루밍을 해주곤 했다. 아픈 귀도 핥아주고 자신을 괴롭히기까지 하는 시오를 돌보는 하루를 보면서 마음이 찡했다. 이 고양이 안에 있는 사랑의 크기가 나보다 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돌보는 것, 그 사랑 안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생명이 살아남을 경험한다.

매일 하루와 시오를 기르는 즐거움이 크다. 나는 사십 중반을 넘고 나서야 고양이라는 신비한 동물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고양이라는 족속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몸짓 언어가 풍부한지, 그 눈빛을 보고 있으면 엄마하고 말을 할 것만 같다.

물론 장난을 치거나 청소거리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털도 많이 빠져서 검은색 옷에는 언제나 몇 가닥의 고양이털이 붙어있다. 처음에는 신경이 쓰였으나 이제는 고양이 집사의 표징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내가 이전에 살던 삶과는 다르게 불편한 게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여름에는 모기가 물어도 편하게 모기장을 펼칠 수가 없다. 고양이들이 잎을 먹을 때가 있어서 식물을 기르기도 조심스러워졌고 가죽 관련된 가구는 살 수도 없다. 발톱으로 긁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고양이들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 생명체들
또 하나 나의 일상에서 달라진 일이 있다. 길을 걷다가 동네 길고양이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 내가 먼저 눈을 깜빡이며 경계를 허물고, 손끝을 내밀어 손인사를 건넨다.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라고 응원한다.

두 달 전부터 작업실 근처에서 깡마른 고양이들이 몇 마리 보였다. 도시에서는 먹이와 물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길고양이들의 평균수명은 대략 3년밖에 안 된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주려고 커다란 사료 한 포대를 샀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을 구조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사람들을 사랑하려 애쓰는 것처럼 내게 맡겨진 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소중하다.

하루를 밖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 옆에는 꼬리가 짧고 뭉툭하게 잘린 듯한 고양이 한 마리가 더 있었다. 하루와 비슷한 줄무늬 털에 초록빛이 감도는 눈이 또렷한 아이였다. 하루와 자주 어울리고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 아이를 하루 친구라고 불렀다. 아쉽게도 이 아이는 사람을 아주 멀리해서 손끝으로 코인사를 한 번도 못했다. 사람이 옆에 있으면 아예 오지를 않고 도망을 다녔다. 하루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가끔 1층인 우리 집 창가 앞에서 하루를 보러 왔다. 이 아이는 집근처 고양이 급식소에 들러 먹이를 먹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어디 멀리 다른 동네로 갔나? 아니면 아픈가? 가끔 소식이 궁금했다. 그랬던 하루 친구를 오랜만에 보게 되어 기뻤다. 살아 있어줘서 고마웠다. 나무 사이로 얼른 지나가려는 아이를 불렀다. 평소 가방에 넣고 다니던 고양이 츄르(간식)가 있어서 짜줬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는데 예전 얼굴빛이 아니었다. 까칠한 털과 마른 몸을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3년이 지난 지금 하루와는 너무나 차이가 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돌봄을 받는 것과 받지 못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척박한 도시 야생에서는 더 그런 것 같다.

또 한 번은, 아침에 학교를 가던 아이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길에 아기 고양이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바로 며칠 전에 담벼락 수풀 쪽에서 만나 먹이를 줬던 고양이였다. 아마 출근하는 자동차에 치인 모양이었다. 고양이들은 자동차 밑에 잘 숨는다. 좁은 바퀴 위 틈새에 앉아 쉬기도 하고. 고양이들에게는 도시에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로 자동차 밑이 제격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또 얼마나 위험한 장소인지 어린 고양이들이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다. 그렇다면 사람인 우리가 좀 더 세심하게 살펴주면 어떨까? 야외에 주차된 차를 움직일 때는 차 밑을 한 번쯤 살펴보는 것이 고양이를 돌보는 우리 몸짓의 시작이 될 것이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생명체들. 고양이뿐 아니라 자연의 생명들이 터무니없이 훼손되거나 상처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대로 동물들이 인간과 간격을 두고 건강하게 그들의 시간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냥 지나치지 말고 힘껏 손잡는다면, 우리의 작은 몸짓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될 때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오늘,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거든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눈을 깜빡여 인사해주면 좋겠다.

 

 

김미영
고양이를 좋아하고 나무와 꽃을 좋아한다. 요가로 몸을 돌보고 그림책을 지으며 세상에 말을 거는 일을 하고 있다. 지은 그림책으로는 아빠나무, 보리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