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영’에 장악당한 사회?
[360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부동산 이슈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만큼, 저희도 꾸준히 다뤄왔습니다. 창간 후 토지 정의에 입각해 우리 사회의 주거 문제를 진단하고,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의 해악을 알려 왔지요. 직접적으로 “아파트의 영을 대적하라”(2008년 12월호)는 특집을 꾸린 적도 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정작 우리는 아파트의 영에 완전히 장악당한 사회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집.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밥줄이고, 마음의 안식이기도 한 이것은, 또 누군가에게는 ‘넘사벽’이 되었다.”(커버스토리_박진영)
“집값 상승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아마도 그 현상이 가리키는 대상은 우리 시대의 불안정성일 것이다. 불안정한 세계에서 집값 상승으로 인한 자산 증식을 통해서라도 붙잡고 싶은 삶의 안정성.”(커버스토리_박일준)
집은 언젠가부터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사철 난민 신세를 면하고, 영혼과 육신의 쉼을 보장받으려면 집을 꼭 ‘소유’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지요. 단순히 소유를 넘어 내가 사는 곳은 곧 나의 계층과 신분을 드러내는 기준이 되기에 많은 사람들이 중앙으로의 진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지없이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에 터를 잡아야만 하고, 누군가에게는 작은 집을 마련하는 일조차 ‘넘지 못할 사차원의 벽’이 됩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 탈출구 없는 미로에 빠졌을 때는 ‘기본(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지요. 이번 호에서 ‘집’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이유입니다. 아파트 투기 광풍과 내집마련 열풍 속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집의 의미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특히 영원한 본향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실낙원하여 추방당한 ‘유배자’(exiles)요, 이 땅에 잠시 살다 가는 안개와 같은 존재인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지 되물을 필요를 느꼈습니다.
“저는 집보다는 자차를 마련하는 게 꿈이에요. 캠핑카를 사서 스크린 달아놓고 방방곡곡을 누리면서 내가 만들었던 혹은 좋아하는 영화를 틀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제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커버스토리_‘2030 꼼마집 청년들 좌담’에서)
“우리 형편에 맞으면서도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 좋았어요. 다른 기준은 크게 생각 안 한 것 같아요.”(그들이 사는 세상_30대 후반 직장인 가장의 도시 탈출기)
아직 아파트의 영이 사로잡지 못한 영역이 남아있음을 확인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