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태클 거는 언론들

[360호 미디어 솎아보기]

2020-10-30     김성원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2일 열린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영상 갈무리)

이 지면을 통해 국내 주요 언론들의 사설을 비평하고 있다. 왜 사설이냐고, 다른 것도 비평해 달라고 할 독자들도 있을 텐데, 개인 칼럼이나 기사는 글 쓰는 이의 성향을 반영할 수밖에 없기에 비평의 잣대를 대기가 애매한 지점이 있다. 사실 극우 유튜버를 대상으로 하면 비평도 쉽고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 중 상당수가 센세이셔널하면서도 넌센스이기 때문에 비평을 읽는 독자들은 황당하면서도 흥미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 사설은 다르다. 사설은 그 신문을 대표하는 글이고, 그렇기에 가장 논리적이다. 어느 신문의 사설을 보더라도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현혹되기도 쉽다. 더욱 예리한 비평이 필요한 이유다.

사설비평이라고 해서 문학비평이나 문화비평처럼 현학적이거나 전문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상식의 눈으로, 독자의 식견으로 읽고, 문제를 제기하고, 의문이 있으면 팩트를 체크해보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더 많은 독자들이 사설(신문)비평에 나서면 좋겠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평화를 추구하겠다는데
성경 디모데후서 4장은 전체가 바울의 절절한 유언 같다. 2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여기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공동번역>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NIV>“in season and out of season”으로 되어 있다. 상황이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언제나,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뜻이다.

평화는 어떤가? 때가 좋으면 평화로 가고, 때가 안 좋으면 평화의 반대, 즉 대결이나 전쟁으로 가야 하는 것인가? 전쟁의 상흔은 오래 남는다. 한국전쟁을 치른 지도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북은 화해가 요원하지 않은가. 그 전쟁의 성격을 놓고, 또 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북한을 놓고 남한은 또 얼마나 다투고 분열하고 있는가. 단 한 번의 전쟁과 대결이지만 그 상흔은 그만큼 깊고 오래간다. 금세 평화로 전환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여러 언론은 지금 평화를 반대하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대통령을 사사건건 걸고넘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923일 제75차 유엔총회 영상 기조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계속된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가 반드시 이뤄질 수 있다고 변함없이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언론들이 일제히 문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종전선언제안이 집착?
동아, 유엔서 終戰역설비핵화 빠진 정치적 선언 집착 말아야제목의 923일 사설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제안에 대해 미국은 종전선언을 한국의 어젠다일 뿐이라며 자칫 실질적인 비핵화는 없이 김정은 체제의 안전만 보장해줄 수 있는 종전선언의 역효과를 우려하고 있다면서 북한도 미국의 선()비핵화 요구에 종전선언 기대를 접은 분위기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은 이제 북-미 대화를 되살리는 카드가 되기보다는 한국만의 집착으로 비치기 십상인 형국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중앙비핵화 없는 종전선언, 안보 공백 자초한다제목의 924일 사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사실상 조건 없는 한반도 종전선언을 촉구했다매우 위험한 제안이라고 했다.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조치도 없이 종전선언을 체결할 경우 안보 공백을 자초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이번 문 대통령의 촉구는 미국과의 상의 없이 이뤄진 듯해 걱정을 더하게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다음 날인 924일은 어업지도원인 우리 국민이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고 시신까지 불태워졌다는 국방부 발표가 있었다. 문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시점과 비슷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다음 날 김정은 위원장은 통일전선부명의의 통지문에서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언론은 또다시 문 대통령의 평화 추구를 문제 삼았다. 중앙북한의 엽기적 만행에 평화매달리는 대통령제목의 926일 사설에서 문 대통령은 이씨가 피살됐는데도 23일 유엔에서 당초 녹화한대로 화상 기조연설을 했다. 핵심 메시지는 북한과 종전선언’ ‘평화였다면서 엄중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종전선언이 국민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여긴 것인가라고 물었다. 동아도 같은 날 만행 축소 급급한 정권, 김정은의 미안하다로 퉁칠 건가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이 만행을 저질러도 북한 눈치를 보는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김정은의 어설픈 유감 표명으로 책임 추궁을 대충 덮고 가려 한다면 국민이 용납지 않을 것이며, 안보는 물론이고 남북관계의 진정한 정상화에도 씻지 못할 해악을 남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선9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민주당이 종전선언과 북한관광촉구 결의안을 상정한 다음 날 사설을 통해 북이 2008년 우리 금강산 관광객을 사살했을 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북이 바다에 표류하던 우리 공무원을 사살하자 오히려 북한 관광을 하자고 한다고 지적하고 궤변과 억지로 북한 감싸기가 해도 너무한다고 했다. 동아도 이날 국민 피살 일주일도 안 됐는데 종전선언으로 환심 사려 하나제목의 사설을 냈다.

여기서 이들 신문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평화 매달리는’ ‘북한 눈치’ ‘궤변과 억지’ ‘북한 감싸기’ ‘남남 갈등등이다. 뒷부분의 사설에서는 평화쇼’ ‘중증’ ‘코리아 패싱등의 단어도 등장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포함해 한반도 평화 추구를 북한 눈치보기’ ‘평화에 매달린다’ ‘평화쇼다’ ‘그것도 중증이다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평화를 추구하면 왜 남남 갈등이 생기고 미국이 코리아 패싱을 한다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갈등패싱을 지레 겁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평화를 추구하는 데 갈등과 패싱이 따라온다면, 그건 평화를 추구하는 쪽보다는 평화를 반대하는 쪽의 태클 걸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종전선언추진을 평화쇼’ ‘중증이라는 조선
108일 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코리아소사이어티(The Korea Society) 화상 기조연설에서 다시 한번 종전선언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전쟁을 억제하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고 제도화할 때 우리의 동맹은 더욱 위대해질 것이라며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한미) 양국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그러자 조선109“‘종전선언또 꺼낸 , ‘마음 아파는 진심 아닐 것제목의 사설에서 북은 미안한마디 던져놓고 우리 측 공동 조사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데도 문 대통령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종전선언을 하자고 한다. ‘평화 쇼집착도 이 정도면 중증이라고 비아냥댔다.

다음 날 1010일 김정은 위원장은 당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사랑하는 남녘 동포” “남북 손 맞잡는 날등의 표현을 쓰며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하지만 중앙1012북한 변한 게 없다냉철히 대응하라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이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형 ICBM, 신형 SLBM 등의 무기를 언급하며 “(북한이) 입으론 유화 공세를 펴면서 손으론 한미의 뒤통수를 친 것이나 다름없다정부는 김정은의 눈물대신 본심을 직시하고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한미 동맹의 균열과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내부 결속을 다지겠다는 속내를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1013일 사설에서 북한이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형 무기들을 언급하며 우리 군도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정권이 평화쇼를 벌이는 동안 3대 한·미 연합 훈련은 모두 없어졌다며 우리의 안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동아도 같은 날 사설에서 최근 대남 유화 제스처도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후보에 맞춰 한국을 징검다리 삼겠다는 의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종전선언하자는데 웬 한미 동맹걱정?
이들 사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한미 동맹언급에서 드러난다. 앞서 중앙924일 사설에서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종전선언에 대해 이번 문 대통령의 촉구는 미국과의 상의 없이 이뤄진 듯해 걱정을 더하게 한다고 했다.

조선106일 사설에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0월 초 일본은 방문하면서도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것을 코리아 패싱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불편한 심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미국이 사전 양해를 구했다. 한미 양국이 잘 소통해 오고 있다고 했다. 조선은 또 남북 쇼와 중국 시진핑 방한에 목을 맨 우리 정부는 비핵화는 외면한 채 남북 대화 재개에만 집착했다. 동맹 전략보다 중국에 경사된 모습을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조선은 다음 날 사설에서도 한미 동맹은 북한의 오판과 중국의 패권욕을 막는 유일한 안전판이다. 다른 방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 신문들은 그야말로 한미 동맹을 금과옥조처럼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사설에서도 그런 시각이 곳곳에서 배어난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얼마나 이 문제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언론들인가.) 남북대화도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한중 외교도 한미 동맹의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국익을 위한 길이라고 하면서도 오히려 국익보다 한미 동맹을 더 숭상한다는 느낌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그 틀 안에서 남북대화를 추구해왔다. 오히려 지나친 미국 눈치보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근거도 희박한 한미 동맹 훼손을 이유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다.

문 대통령은 2017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면 워싱턴, 베이징은 물론 도쿄, 평양에도 가겠다고 했다. 그야말로 국익 우선, 한반도 평화 우선의 정책 방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1년도 안 돼 한반도엔 평화가 싹을 틔웠다.

‘4·27 판문점선언에도 ‘9·19 평양공동선언에서도 그리고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에서도 완전한 비핵화를 명문화했다. 남북이 ‘7·4 공동성명을 비롯해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왔고, 앞으로 회담이 재개될 경우도 그러한 원칙은 지켜질 것이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한반도를 평화의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김성원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뉴미디어학(석사)을 공부했다. CCC 간사, 국민일보기자,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상임이사로 일했다. 지금은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유코리아뉴스편집장을 맡고 있다. 통일은 장밋빛 환상이 아닌 분단의 아픔과 죄악을 회개하고 고치는 데서부터, 나 자신과 일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를 썼고, 독일 통일, 자유와 화합의 기적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