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이 지배하는 세계, 택배기사 24시간 동행기
[361호 사람과 상황] 19년차 택배 운송기사 한산석 집사의 하루
“택배일이 힘들다고 소문이 난 것은 대부분의 날들을 날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19년 동안 택배 운송업에 종사해온 한산석 집사(52)는 성문밖교회 40년사 책자에 이런 문장이 담긴 글을 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하루는 그날 받는 물량이 지배한다고 한다. 그날의 물량이 그가 걸어다녀야 할지, 뛰어다녀야 할지, 날아다녀야 할지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날아다녀야 한다’는 표현은 이 일을 하면서 자기 능력 이상을 요구받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잇따른 택배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언론을 장식한다. ‘아니 또…?’ 하며 잠시 놀라고 안타까워하는 게 내 반응의 전부였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건네야겠다 싶지만, 비대면 시대라 그런지 택배를 문 앞에 놓고 가는 기사님과 마주치는 일조차 드물다. 나와 단절된, 다른 삶의 세계가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택배 운송은 대표적인 미지의 영역이었다.
영등포산업선교회와 성문밖교회 김희룡 목사를 통해 성문밖교회에 출석하는 집사이자, 19년째 택배업을 해온 한산석 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하루 동안 동행하고 싶다는 취재요청에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물량이 적어서 택배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요일과, 물량이 너무 많아 취재에 틈을 내줄 정신조차 없는 요일을 제외한 날을 골라서 전날 밤에 본인의 집으로 오라고 선뜻 제안해주었다. 덕분에 24시간 그를 따라다니며 택배 노동의 업무 강도와 노동환경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출근길
한산석 기사의 하루는 오전 5시 30분에 시작된다. 밥에 물을 말아먹고, 정수기 앞에서 물통에 물을 채우며 하루 일정을 준비한다. 6시 8분, 현관문을 닫고 집을 나선다. 이날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택배기사들은 모자만 쓴 채 비를 맞는다고 했다.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는 게 택배 기사들에게 비현실적인 차림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계단을 빠르게 오르내리는 데 방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 주어진 물량을 다 배송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택배 물류 터미널로 향한다. 6시 40분 터미널에 도착하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똑같은 크기의 탑차가 자기 자리를 찾아 줄을 지어 멈춰 선다.
#분류작업
오전 7시, 레일이 움직이자 차에서 내린 택배기사들이 하나둘 레일 앞에 모여들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분류 작업은 4시간 30분 동안 멈추지 않았다. 택배 상자가 움직이는 속도는 빠르게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송장에 적혀있는 주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어보니 20초 동안 상자 16개가 지나갔다. 기사님들은 빠르게 흐르는 물건 중에 본인이 맡은 배송 구역에 해당하는 물건을 척척 빼냈다.
택배물품 분류작업은 임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 작업을 택배기사들이 맡은 건 어떻게 정해졌나.
구조다. 택배 노동은 철저하게 플랫폼 노동이다. 틀이 딱 짜여 있어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레일이 돌기 시작하면 끝나는 순간까지 멈춰지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해온 것이다. 2011년 한 대리점주가 ‘분류작업 비용을 달라’는 취지로 씨제이지엘에스(현 대한통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있었고 대법원은 회사 쪽 손을 들어주었다. 택배사들은 이 판결을 인용하며 ‘기존 수수료에 분류작업 대가도 포함돼 있다’는 입장이다.
이 물건은 다 어디에서 왔나.
택배사엔 허브 터미널과 서브 터미널이 있다. 허브 터미널은 전국 단위의 큰 터미널인데, ◯◯택배 허브 터미널은 대전과 군포 등 여러 곳이 있다. 쇼핑몰 업체나 개인이 발송한 모든 상품은 허브 터미널을 거쳐 각 지역에 있는 서브 터미널로 분류된다. 허브 터미널에서 출발한 간선차가 아침 일찍 서브 터미널에 도착해 상품을 하차하면, 화물들은 레일을 타고 택배 기사들이 분류작업 하는 공간으로 온다. 간선차들이 서브 터미널에 물건을 다 내릴 때까지 분류작업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 시간이 너무 길어서 기사들은 진이 다 빠진다.
기사마다 정해진 배송 구역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 물건은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데, 내 구역에 해당하는 주소가 적힌 물건을 레일에서 빼내야 한다. 그러려면 주소와 번지를 알아야 한다. 또 물건이 지나가는 속도에 익숙해야 한다. 그래서 단기간 인력을 투입한다고 택배기사들한테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엔 지금 인력을 투입해봐야 분류작업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마 이번 명절에 투입된 많은 인력은 분류작업이 아니라 간선차 상하차 쪽에서 일했던 것 같다.
기사들끼리 사이가 좋아 보인다.
매일 보는 사이인데다, 같은 입장이니까 말이 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기사들이 모두 같은 처지에 있는 건 아니다. 대다수가 개인사업자지만, 고정급을 받는 택배기사도 있고, 개인사업자가 아닌 사람도 있다. 신용불량자인 경우 등은 개인사업자가 되기 어렵다. 개인사업자가 아닌 기사들은 이번에 재난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말하자면 제도권에 있는 사람들만 받은 것이다.
11시 30분, 택배 분류 레일은 모든 물건을 기사들에게 전달하고 멈췄다. 한산석 기사의 차량 앞에는 하루 물량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택배 상자가 쌓여 있었다. 한산석 기사는 택배 상자를 화물칸 안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었다. 이날 그의 탑차엔 총 235개의 상자가 실렸다.
#식사
대다수 택배기사들이 점심을 먹지 않는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배송해야 하는데 식사를 하면 몸이 처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날아다녀야 한다는 말이 조금은 실감이 났다. 또 택배기사들은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저녁식사를 하지 않는다. 모든 물량을 배송하고, 집하를 마무리하고 나서야 집에 가서 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고’가 미뤄진다. 먹는 일보다 택배 물량이 우선되는 상황에서 그는 ‘택배기사들 하루 세끼 먹게 하자’는 말이 굉장히 혁신적인 구호로 들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구호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배송
오후 12시 5분, 탑차를 세우고 짐을 내린다. 짐을 들고 아파트 공공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송장에 적힌 호수를 확인하며 층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가 열릴 때마다 화물을 놓는다. “택배요~” 근처에 있는 모든 건물로 들어가며 배송을 하고 나서, 다시 차를 이동한다. 이 과정이 쉴 틈 없이 반복됐다.
물량이 많았던 지난 화요일에는 380개의 택배를 배송했다고 한다. (물량이 많아서) 분류작업이 늦게 끝나 오후 1시부터 시작한 배송이 저녁 8시까지 총 7시간 동안 그야말로 “미친 듯이” “속도를 제어하지 못할 만큼” 배송을 한 것이다. 계산을 해보니 1시간에 54개의 물건을 배달한 셈이다.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를 정도로” 뛰어다니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배송은 한 시간에 몇 개정도 하는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배송지마다 다르다. 배송지는 A급지, B급지, C급지로 나뉜다. A급지나 B급지는 빌딩이나 아파트, 상가가 많은 지역이다. 이런 데는 시간당 60개도 할 수 있다. C급지는 배달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인데 언덕이 많고 배달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이런 곳은 시간당 30개 이상 배달하기가 힘들다. 급지마다 배달수수료가 다르다. A급지는 시간당 많은 물량을 배송할 수 있지만 배달 수수료가 낮다. C급지는 시간당 많은 물량을 배송할 수 없지만, A·B급지보다 배달 수수료를 많이 받는다.
그럼 어떤 급지가 더 유리한가?
아무래도 배송을 편하게 할 수 있는 A급지가 유리하다. 배송이 힘든 지역에 가면 몸이 힘들고 차도 고장이 많이 난다. 힘들어서 금방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얼마 전 ◯◯택배에서 한 택배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 ‘모집하면 안 되는 구역인데 보증금을 받고 권리금을 만들어 팔았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맡은 구역은 배송물량이 적고 배달은 힘든 C급지 같은 곳이었다. 일이 많고 수입이 적은 구역인데 보증금에 권리금까지 내고 그 구역을 맡았으니 지점에 사기를 당한 게 분명하다. 그 이후로도 갑질이 이어진 것이 안타깝다. 맡은 구역에 따라 수입 격차가 생기고 누군가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
무거운 물건 배송은 어떻게 하나.
그냥 하는 거다. 예전에 가끔 쌀이나 절인 배추를 엘리베이터 없는 구역에 배송한 적이 있다. 만약 절인 배추 20개를 5층에 배달해야 한다면? 나는 3개씩 들고 올라간다. 쉬면 안 된다. 쉬는 순간 몸이 처지기 때문이다. 천천히 올라가더라도 멈추면 안 된다. 하다 보면 배추를 든 손이 미끄러진다. 힘이 빠져서.(웃음)
그러다 다음날 몸져눕는 거 아닌가. 아픈 곳은 없나.
아니다. 다들 그렇게 한다. 아픈 데는 없다.
그래도 몸이 안 좋은 날이 있을 텐데….
기계도 아닌데, 여러 번 있었다. 그런 날은 식품 위주로 배달하고 다른 화물은 다음날 하면 된다. 그런데 요즘 같은 특수기간은 굉장히 부담된다. 왜냐면 내가 오늘 235개 물건을 받았는데, 만약 다음날도 같은 개수를 받는다면, 하루에 470개를 해야 한다. 계속 밀리면 감당할 수 없어진다.
그럴 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겠다.
동료들이 도와준다. 그런데 동료들도 도와줄 수 없을 만큼 물량이 많은 날이 있다. 그럴 때는 대신 배달해 줄 사람을 구해야 한다. 이를 ‘용차’라 하는데, ‘용차’를 쓰게 되면 건당 수수료가 명절의 경우 2,000원에서 3,000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너무 큰 손실이다. 건당 수수료의 차액을 1,000원만 잡아도 하루 300개 물량이면 하루에 30만 원이다. 택배기사들이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절대 아프면 안 된다.
그는 일할 때 전화가 오면 가장 난감하다고 했다. 일의 흐름을 깨뜨리고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변수는 많다. 엘리베이터를 바로 타느냐, 기다렸다가 타느냐에 따라 그 건물에 있는 택배를 배송하는 시간은 2분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또, 퇴근 시간이 지나면 귀가하는 사람이 많아져 엘리베이터 이용하기가 눈치가 보인다. 한산석 기사는 주민들과 엘리베이터에 동승한 경우 양해를 구하기도 했지만, 택배 물건을 들고 계단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 역시 퇴근 시간 전에 빨리 배송을 끝내야 하는 이유다.
혹시 진상 고객도 있는지.
드물다. 그 보다는 주소가 잘못 기재된 화물이 가장 힘들다. 택배 기사들이 겪는 고충은 이런 경우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거다. 책임을 누구한테 물어야 하는지 모호하고 불필요한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난 주소를 잘못 기재한 사람을 꼭 찾으려고 한다. 고객이 아니라면 송화인한테 전화한다. 그리고 돈을 무조건 받는다. 얼마를 달라고 하냐. 1,000원을 달라고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사람은 자기 주머니에서 얼마라도 돈이 나가야 기억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최근 잇따른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사망 소식으로 인해 택배업 종사자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택배업 종사자들을 위해 어떤 방법, 대책이 있을까.
기사들이 고생할까 봐, 택배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방향을 잘못 잡은 거다.(웃음) 택배는 이용해야 한다. 사실 가장 필요한 건 구조적인 개선이다. 단기적으로는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는 게 맞지만, 인력 채용을 단기간에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택배 단가를 올려서 택배기사들이 조금 덜 일 하고도 수입을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택배기사 한 사람이 맡은 물량을 줄이고 그만큼 신규채용이 되어야 한다. 택배 터미널 확충 등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구조적인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탑차 화물칸에 상자는 남아 있었다. 어두워질수록 한산석 기사의 움직임은 더욱더 빨라졌다. 오후 6시 56분, 마지막 상자를 배송할 때에 고객이 음료수 두 병을 건넸다. 온종일 고되게 뛰어다녔을 택배 기사를 향한 응원과 지지의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집하
오후 7시, 배송이 끝났다고 일과가 끝난 건 아니다. 배송만큼이나 중요한 집하(물건을 수거하여 한 곳에 모음) 작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은 길을 지나, 거래처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배송이 끝나 텅 빈 차 안에 거래처에서 전국으로 보내는 물건을 가득 담아 다시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엔 물건을 하차하기 위해 차들이 긴 줄을 서 있었다. 이걸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택배기사들의 업무 강도를 개선하려면 결국 터미널 확충 등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한산석 기사의 얘기가 와닿았다.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때는 언제인가.
예를 들어 하나만 얘기하자면 차량 도색 문제가 있다. 지금 내 택배 차량은 흰색이다. 도색이 안 되어 있다. 보통 택배기사는 상의 유니폼을 입고, 차량은 전체 도색을 한다. 유니폼을 입는 이유는 고객들이 택배기사를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다. 배송할 때 유니폼을 입은 기사를 보면 그래도 신뢰를 하고 안심이 되지 않겠나. 차량도 마찬가지다. 대로변에 비상 점멸등을 켜놓고 잠시 정차를 할 때, 도색이 되어 있다면 사람들이 배송 중이라고 이해를 해준다. 이건 분명 필요한 일이다. 다만, 비용이 문제다. 유니폼과 도색 비용을 본사가 부담하지 않는다. 차량 도색 현금가가 78만 원인데, 차량 소유자와 본사가 나눠서 부담한다. 난 본사가 100%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차를 팔 때도 흰색으로 원상 복구하는 도색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 비용만큼 차량소유자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차량을 보면 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건 내가 영업을 해서 따낸 건데,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면서 매달 8만 원을 받는다. 만약 택배사 로고로 전체 도색을 하면 이 광고는 못 하는 대신, 오히려 택배사를 광고하고 다니는 셈 아닌가. 그러니 본사가 100% 도색비를 부담하고 광고비로 일정한 액수를 부담하라는 거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도색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웃음)
#퇴근길
근무 시간이 너무 길다.
어느 기사에서 택배기사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71.3시간이라는 통계를 봤는데 체감상 더 되는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택배 물량이 늘어난 이후로 퇴근 시간이 확실히 늦어졌다. 10월 8일 새벽 5시까지 배달했던 택배기사가 며칠 뒤에 사망한 일이 있었다. 10월 8일은 목요일이었다. 목요일이면 일주일 중에 월요일 다음으로 물량이 적은 날이다. 아마도 화요일, 수요일도 늦게까지 배달했을 듯하다. 그런데도 물량이 남아서 목요일 새벽까지 배달을 했던 것 같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어땠을까? 따져보면, 고인은 그 주간에 100시간 이상 일했을 것이 분명하다. 일주일 내내 아니면 그 이상 이어진 과로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개인 시간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잠깐잠깐 시간이 난다. 집하를 끝내고 차량이 터미널에 줄 서 있을 때, 분류작업을 기다릴 때가 그렇다. 그 짬시간에 책을 읽는데, 옥편을 읽었다. 한자의 부수와 낱말을 공부했다. 성경책도 읽는다. 조금씩 읽는데도 다 읽어지는 게 재밌더라.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은 보지 않았다. 다 읽으면 따분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일요일 하루 쉬는데 매주 교회에 간다. 교회 가는 시간이 가장 재밌다. 내 일상의 중심이다. 거짓말이 아니고, 입에 바른 소리가 아니고 정말 그게 내 삶의 중심이다. 재밌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재미를 느끼나.
사람들이 재밌다. 찬송과 음악도 좋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택배일은 감동이 없다.(웃음) 나는 사실 일보다 교회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들었던 얘기 그런 거 있지 않나. 곱씹어보면 즐겁다.
기사님에게 신앙은 어떤 의미인가.
잘은 모르겠다. 다만 종교(宗敎)라는 한자 단어 그대로 ‘으뜸 되는 가르침’ 아닐까 한다. 내가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생각 말이다. 어떤 사람은 그게 돈일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이 좋다. 나는 김수영 시인을 좋아하는데 그의 산문에 ‘시는 미지의 것을 탐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뻔한 것 말고 알 수 없는 것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종교는 그런 것 같다. 시와 음악과 종교는 그런 점에서 닮아 있다.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점. 으뜸 되는 가치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내 몸으로 부딪치는 삶이 신앙이 아닐까.
대체로 어떤 기도를 하시나.
복을 비는 기도, 기복(祈福)은 안 하려고 한다. 기복이라는 게 상대방의 불행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힘든 것 같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중보하려고 한다. 하여간 내 기도는 기복은 아니라고 본다.
기사님에게 택배는 어떤 의미인가.
가끔 물건 한 상자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물건 하나쯤이야 없어도 그만이라는 마음이 생긴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민 한 명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공’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시간과 공간. 모든 생명은 저마다 하나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한다. 나는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살펴보면 그 시대의 모순을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택배를 통해서도 이 시대의 모순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택배 상자 하나도 의미가 있다.
이 인터뷰를 읽을 복음과상황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복음과상황에서 ‘상황’이라는 말이 정말 마음에 든다. 김수영 시인이 얘기한 ‘현대성’이라는 게 상황이라는 단어와 통하지 않을까. 상황, 이슈를 넘어가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 아니겠나. 나는 종교의 언어로 종교를 강조한다고 해서 종교의 설득력이 생긴다고 보지 않는다. 종교의 언어가 따로 있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에게 뻔하게 들릴 것 같다. 종교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효과가 반감되는 것 같다. 내가 읽기에는 그렇다. 종교적인 언어를 구사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종교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좋다. 신앙인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언어로 할 말은 했으면 좋겠다.
오후 8시 30분, 그는 취재차 동행하는 나를 배려한다며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을 끝냈다. 그는 최근 동업자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어떤 책임감을 느꼈고, 오늘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아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고 했다. 고생 많았다는 인사를 남기고 그는 다시 물량이 지배하는 일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배송 물량 외에 많은 것들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택배 노동자의 세계에 잠시나마 외부인으로 발을 들인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올해 들어 벌써 열다섯 번째 사망 소식이 들렸던 날, 그들이 식사를 거르며 ‘날아다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세 끼 마음 편히 챙겨 먹으며 일하는 날이 하루속히 다가오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마친다.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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