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의 ‘제안’에 관하여

[361호 박용희의 독서일기]

2020-11-30     박용희
정혜윤 지음 / 푸른숲 펴냄 / 2008년

다시읽는 일에 관한 글을 계속 쓰고 있다. 다시 나온 책을 읽는 독자의 경험에 대하며(3월호), 리뷰를 쓰는 일에 대하여(6·9월호) . 라임을 맞추듯 다시에 방점을 찍고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이번에는 책방에 관한 이야기다. 책방과 다시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책방에서 세상을 다시만나는 경험
며칠 전 일이다. 한 손님이 입구에서 한참 쭈뼛쭈뼛하더니 손잡이를 힘껏 밀고 서점에 들어왔다. 갓난아이를 안고, 세탁소를 들렀는지 옷 짐이 잔뜩이다. 그동안 오며 가며 책방을 눈여겨 보았는데, 들어온 건 처음이라고 했다. 우선 짐을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내온 뒤에, 손님이 숨을 돌리길 기다렸다가 대화를 시작했다. 어떤 책을 주로 보시느냐고. 오늘은 어떤 책을 보러 오셨느냐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느라 그동안 자기계발을 못 한 것 같다고, 스펙을 쌓기 위해 도움이 될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이전에도 그런 자기계발 서적을 주로 읽어왔다고 한다. 손님들이 주체적으로 책을 고르고, 읽고, 심지어 실패하는 것까지도 권장하는 서점이지만 이럴 경우에는 살짝 주관적으로 관여를 한다.

한 생명을 낳고 키운다는 게 작은 일이 아니라서, 그 일에 집중하느라 정작 자기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냐는 물음을 던졌다. 다행히 손님은 그 질문 앞에 정직하게 본인의 속마음을 들려줬다. 세계가 좁아진 것 같다고. 그래서 더 자기계발에 목을 맨 것 같다고. 그렇게 대화를 나눈 끝에 권한 책들은 손님이 처음 찾던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세상 돌아가는 눈을 키우시라고 명견만리를 권했고, 엄마의 자리에서 인문을 공부해보시라고 엄마 인문학을 권했다. 독서의 매력에 빠지시라고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도 소개했다. 다행히 손님은 책방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고, 종종 와서 책을 읽으며 머물러도 되느냐는 최고의 질문을 건넸다.

이런 일들은 책방에서 거의 매일 일어난다.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책방에 중구난방으로 꽂힌 책들 사이에서 독자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생각, 세상을 다시만나는 경험을 한다. 책방은 서가에 의뭉스럽게 배치한 책으로 독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제안한다. 가끔은 말도 보태가면서.

 

책방의 제안: 중세 교회사 다시 읽기공의회 역사를 걷다

얼마 전부터 책방에서 기독 독자들에게 최종원 교수의 신간 두 권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홍성사)공의회 역사를 걷다(비아토르)는 둘 다 낯선 주제, 오래된 이야기를 다룬다. 중세교회사…》는 앞서 2018년 출간한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의 후속작이다. 다시 읽기 3부작으로, 이제 종교개혁사 다시 읽기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중세에 대한 재발견 작업은 최근 인문학계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한 중세시리즈는 4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마찬가지로 최종원 교수의 책도 그동안 암흑의 시기로만 이해했던 중세 시대를 다시 읽도록 돕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세 시대, 천 년이 넘는 그 기간을 암흑의 시기로만 단순하게 정의하는 건 무리가 있다. 단순명쾌한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중세를 낯선 이야기 그 자체로 읽도록 권한다. 우리는 해석하기 이전에 우선 중세를 만나야 한다.

공의회 역사를 걷다는 비아토르 출판사의 낯선 전통 시리즈첫 번째 책으로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관통하는 공의회를 다룬다. ‘공의회가 세상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아 출판사의 만나다시리즈와도 닿는 지점이 있다. 개신교인으로서 공의회는 낯선 단어다. 교회사에 조금 관심 있는 이라면 첫 번째 소집되었던 니케아 공의회정도를 알 것이고, 가톨릭을 좀 아는 이라면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공의회로 개혁적인 메시지가 담겼다는 정도를 알 것이다.

이 책은 동방과 서방 그리스도교가 나뉜 후에 일어난, 그러니까 서방에서 인정하는 8번째부터 21번째까지의 공의회를 다룬다. 열네 차례의 공의회가 서방 그리스도교, 유럽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다룬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며 나는 책방에 방문했던 손님의 마음이 되어 저자에게 제안을 받는다.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낯선 주제, 낯선 시대의 이야기 세계로 초대받는다. 그렇게 초대된 세계가 매력적일 경우, 책방에 오는 다른 손님들에게도 기꺼이 초대장을 전달한다. 큐레이팅, 제안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그러고 보니 책도 책방도 리뷰어도, 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누군가를 향한 제안으로 가득하다. 부디 그 제안들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가 닿으면 좋겠다. 그런 제안을 하는 책방들이 동네마다 다시생겼으면 좋겠다.

 

 

 

박용희
부천시 역곡에서 동네책방 용서점을 운영한다. 동네에서 이웃들과 온갖 작당을 하며 산다. 12, 책방 문을 엽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