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들을 형제자매로 돌보길 하나님도 원하실 거예요”

[361호 그들이 사는 세상] 6년 넘게 세월호 유가족들과 연대해온 조미선 독자

2020-11-30     조미선
조미선 독자. ⓒ복음과상황 김다혜 

20214월이 되면, 세월호 참사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이를 앞두고 유가족과 연대인들은 세월호 참사 특별법 개정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3년이 훌쩍 지났으나 여전히 밝혀진 것들이 많지 않아 지난 10월에는 특별법 개정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련 기록물 공개 결의에 관한 청원이 진행되었다. 특별법 개정 요구안에는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 정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의 활동기한 연장과 조사인력 정원 확대, 사참위에 사법경찰권(수사권) 부여 및 사참위 활동 기록물 이관 근거 규정 마련이 담겼다. 두 청원 모두 10만 명이라는 정족수가 확보되어 마감되었고, 112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등의 관련 법안들을 대표 발의한 상황이다.

청원 기간 동안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릴레이 단식이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단식 농성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노란색 피켓을 들고 있는 적지 않은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현장에서 만난 한 분에게 즉석 인터뷰를 요청했다. 2014년 당시 뉴스앤조이와 인터뷰한 적 있는 조미선 집사였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보수 대형교회의 해외 단기선교 프로그램에 해마다 참가하던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진상규명특별법 제정 서명 운동을 하는 것으로 단기선교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알고 보니 복음과상황 독자이기도 한 그의 단기선교6년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데, 작년 7월부터는 이곳 청와대 사랑채 앞으로 자리를 옮겨 피켓을 들기 시작했다. 인터뷰는 지난 1028일 사랑채 근처 벤치에서 진행했다.

 

주로 언제 이곳에 오시나요?

저는 거의 매일 와요.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하고 있어요.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 운동에는 언제부터 참여하신 건가요?

20147월에 광화문 분향소가 세워지기 전 세월호 부모님 다섯 분은 국회에서, 다른 부모님 다섯 분은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을 하셨어요. 그분들이 세월호진상규명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는 걸 보고 저도 서명지기가 됐어요. 계속 그 일을 해오다가 작년 8월부터는 여기서 피켓을 들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진상규명이 안 되니까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요.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하시게 된 계기가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을 방문하셨다가 겪은 일 때문이었다고요.

당시 단원고에서 출발해서 진도로 내려가 12일간 봉사하는 프로그램에 몇 차례 참여했어요. 거기서 많은 충격을 받았죠. 사망한 지 32일이 된 마지막 아이의 시신을 부모님과 같이 봤거든요. 시신이 수습된 아이를 위해 거기서 상주하던 한 스님이 가서 기도해주겠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나는 기독신자라서 됐다고 하시기에 제가 남편이랑 다가가서 바들바들 떠는 어머니를 감싸 안고서 기도를 했죠.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머니가 아이 학급의 단체 사진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수학여행 전에 교생 선생님이 오셔서 벚꽃이 날리는 교정에서 찍은 거라고요. ‘이 건장한 아이들 중에 단 두 명만 살았다고 하시는데, 그때 마음이 무너졌어요. 그 어머니랑 검안소까지 들어가게 되었죠. 굉장히 충격이었고 마음속에 팽목항이 깊이 남게 됐죠.

 

"여전히 진척은 없는데 가족들이 옛날만큼 전방에서 안 싸운다는 거죠. ‘지금 진상규명이 안 되는 게 정치권 때문만이겠냐, 제대로 똑바로 안 싸우는 부모들 때문이다’라고 공격해요. 저는 거기에 더 가슴이 아픈 거죠.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을 외면하고, 함께했던 이들도 가족들을 공격하니까요." (이하 조미선 독자) ⓒ복음과상황 김다혜

현장에는 기독교 천막도 있었는데 깊숙이 들어오진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시던 인터뷰를 읽었어요.

그 어머니한테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여기서 예배를 어떻게 드리셨는지 여쭤봤는데 한 번도 못 드리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기독교 텐트에서 예배드리러 오라고 했는데 가고 싶지 않아서 안 드렸다고 하셨어요. 반면 천주교 같은 경우엔 미사도 드렸지만 장례지도사 자격증이 있는 일반 신도 분들이 수습된 시신을 단장했어요. 불교 쪽은 어느 여자 스님 한 분이 아예 상주하면서 시신이 수습될 때마다 기도하러 오셨고요. 제가 조금 화가 났던 것도 그 점 때문이었어요. 기독교 텐트가 있는데 스님이 왜 기독교인까지 찾아와서 기도해주겠다고 하는지. 불교 텐트가 가장 중앙에 있고 24시간 목탁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수시로 절하고 그랬어요. 나중에 기독교인 부모님들도 나도 거기 가서 절 많이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스님이 데리고 가서 기도해야 좋은 데 간다고 하니까 너무 미안해서, 아이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절했다고요. 알고 보니 그 스님은 가족대기실에 계셨던 다른 봉사자 분들께 미수습자가 올라오면 무조건 자기한테 연락해달라고 부탁하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기독교 텐트를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했죠. 스님은 종교와 상관없이 무조건 기도해주시는데, 적어도 기독교인은 우리가 챙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목사님이 미처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죄송하다고 하셨죠. 다른 봉사자 분들께도 목사님 연락처를 알려드리면서 기독교인들도 우리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이후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6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기도 했지만 의견이 많이 갈라진 것 같아요.

그게 가장 가슴이 아파요. 모두가 분노했고 안타까워했고 미안하다, 절대 잊지 않겠다, 유가족과 함께하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제 주변에도 피곤하다, 지겹다, 그만하자는 목소리들이 있어요. 지난한 진상규명 과정에서 활동을 멈춘 사람들도 있고요. 5-6년을 이 일에 쏟아 부은 사람들은 세월호 아이들이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하는 건데 내년 4월에 공소시효가 만료가 되잖아요. 유가족들은 지금까지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온 사참위가 연장되고 정부로부터 수사권을 받아서 일을 마무리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그런데 그걸 기다리기 힘든 사람들이 있는 거죠. 그리고 유가족과 보조를 맞춰 연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유가족들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가거나 좀 다른 방향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7주기가 다 되도록 제대로 밝혀진 것들이 없다보니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책임자들이 처벌 받지 않을까 봐 우려하는 절박감 때문 아닌가 해요.

 

세월호는 아직 침몰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대법원 서류에 침몰 원인이 미상이라고 되어 있죠. 정말 알고 싶어요. 그 큰 배가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침몰했는지,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시각에 국가와 관련 기관은, 선장과 선원은 왜 304명을 구하지 않았는지. 청와대와 해군과 기무사와 국정원은 왜 자꾸 거론되며 그들이 감추고 있는 게 뭔지 낱낱이 밝혀야겠지요.

 

진상규명이 안 되는 걸 유가족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진척은 없는데 가족들이 옛날만큼 전방에서 안 싸운다는 거죠. ‘지금 진상규명이 안 되는 게 정치권 때문만이겠냐, 제대로 똑바로 안 싸우는 부모들 때문이다라고 공격해요. 저는 거기에 더 가슴이 아픈 거죠.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을 외면하고, 함께했던 이들도 가족들을 공격하니까요. 아무리 절박해도 자식을 잃은 유가족만큼 절박할까 싶은데. 지금 유가족들은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고요. 저는 내년 4월이 걱정돼요. 혹시라도 공소시효가 만료돼서 어떤 분 말대로 5·18처럼 과거사가 되어버리면 유가족들이 공격받게 될까 싶어서요.

 

“목사님 어떡하죠, 전 믿음이 없나 봐요. 사람들은 피 흘려가며 싸우고 있는데 교회는 잠잠하고 하늘만 바라보며 하나님 사랑만을 외치고 있어요. 옛날엔 수요예배 금요예배 다 갔는데 요즘엔 주일예배도 못 드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집사님, 이게 예배예요”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이 예배라고요. 끝나고 나서는 밥을 사주시는데 “집사님, 우리는 성찬을 하고 있는 거예요”라고도 하셨어요.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이 예배라는 말씀이었죠. 눈물 나게 감사했고, 당시 제게 큰 위로로 다가왔어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당시 다니시던 교회는 이런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는 분위기였나요?

중학생 때부터 35년 동안 순복음 교회를 다녔어요. 은연중에 목사님 설교를 통해서 제게 하는 말씀이 들리더라고요. 세월호 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걸 아신 거죠. “이웃 사랑도 좋고 불의에 항거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것은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라고도 하셨고요. 그때부터 갈등이 많이 되었어요. 워낙 오랫동안 그런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하면서도 마음 가운데는 내가 인본주의인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건가?’ 싶었던 거죠. 멈추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옛날처럼 돌아가려고 했고요. 하지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던 저를 위로해주신 게 광화문에 찾아온 목사님들이셨어요. 그 가운데 특히 다드림교회 김병년 목사님 영향이 컸죠. 월요일마다 옆에서 같이 피켓을 들고 서명 받는 일을 오랫동안 하셨어요. 목사님한테 얘길 했어요. “목사님 어떡하죠, 전 믿음이 없나 봐요. 사람들은 피 흘려가며 싸우고 있는데 교회는 잠잠하고 하늘만 바라보며 하나님 사랑만을 외치고 있어요. 옛날엔 수요예배 금요예배 다 갔는데 요즘엔 주일예배도 못 드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집사님, 이게 예배예요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이 예배라고요. 끝나고 나서는 밥을 사주시는데 집사님, 우리는 성찬을 하고 있는 거예요라고도 하셨어요.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이 예배라는 말씀이었죠. 눈물 나게 감사했고, 당시 제게 큰 위로로 다가왔어요.

 

이만큼 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없으셨나요?

당연히 흔들렸죠. 그런데 언젠가 4.16 합창단에 같이 있는 창현 엄마가 해준 말이 저를 다시 붙들어주었어요. 창현 엄마는 저랑 나이도 같고 저처럼 보수교회에서 하나님만 알고 살았던 사람이에요. 지금은 교회를 안 다니지만 예은이 엄마랑 목사님들과 함께 기독교 예배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고요. 수년간 기도로 아이를 키웠는데 그 기도가 어디로 갔냐고 울면서 기도하시는 분들이었고요. 그런데 그 창현 엄마가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세월호에 대한 기도응답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고요.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걸 깨달았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흔들리지 않게 됐어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예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자연스레 신앙의 색깔도 변하셨을 것 같아요.

저는 세월호 활동을 신앙적 동기로 시작했어요. 세월호 진실 찾기는 정치나 이념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생명 존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또 저도 아이가 셋이고 유가족 부모들과 또래이다 보니 세월호 아이들이 내 자식 같이 느껴지기도 했죠. 예전엔 교회의 단기선교 외에는 무슨 사회활동 같은 건 전혀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 팽목항에서 아비규환의 현장을 본 거죠. 그곳에서 봉사를 하다가 서명지기가 되었고 1주기 때는 최전방에서 부모님들과 끌려가며 싸웠어요. 그러면서 신앙도 좀 현실(참여)적으로 변하게 된 거죠.

 

자녀들은 세월호 피켓을 드는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옛날만큼 적극적으로 지지하진 않아요.(웃음)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막내가 중1이었고 둘째가 고3, 첫째가 대학생이었어요. 학교에서 서명 다 받아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엄마가 가족 대표로 하는 걸로 생각해요. 막내딸은 세월호 언니 오빠들한테 엄마를 양보한 것 같아하더라고요.(웃음) 저는 부모 입장에서 하나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요. 하나님도 당신만 우러러보는 것보다 당신이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더 돌보길 원하실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저희 아이들이 동생이 아프면 부모인 저보다 동생한테 잘하는 게 더 좋거든요.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 위해 합창단을 만들었지만 ‘가족들이 돌아다니면서 노래할 때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실 부모님들은 하도 우니까 노래를 못 부르시거든요. 일반 단원들이 노래 부르려고 함께 가는 거죠. 우리는 노래 부르고 부모님들은 울고, 그러면 또 다 같이 울고…. 부모님들 중에는 합창단에 오셨다가 애들 생각나서 못 부르시겠다고 되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요. 아이의 죽음이라는 공동의 경험 뒤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집안에 있는 부모도, 힘을 내어 나와서 잊지 말자고 노래하는 부모도,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싸우는 부모도 똑같이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예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유가족들의 심정이나 모습이 어떻게 변하신 것 같으세요?

일반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니까 다 하나로 싸워야 한다고 보시지만 그러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저는 4.16 합창단을 하고 있는데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20여 명이고 일반 시민들이 30-40명 정도예요.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 위해 합창단을 만들었지만 가족들이 돌아다니면서 노래할 때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실 부모님들은 하도 우니까 노래를 못 부르시거든요. 일반 단원들이 노래 부르려고 함께 가는 거죠. 우리는 노래 부르고 부모님들은 울고, 그러면 또 다 같이 울고. 부모님들 중에는 합창단에 오셨다가 애들 생각나서 못 부르시겠다고 되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요. 아이의 죽음이라는 공동의 경험 뒤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집안에 있는 부모도, 힘을 내어 나와서 잊지 말자고 노래하는 부모도,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싸우는 부모도 똑같이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예요. 그래도 시민들과 함께했을 때 잘 극복해 나가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전국을 다니면서 아직 세월호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리는 과정에서 저희를 초대해주시는 분들 가운데는 저희와 비슷한 이들이 많다고 느꼈어요.
 

비슷한 사람들이라면요?

삼성반도체 반올림이나 메탄올 실명노동자, 스텔라데이지호, 쌍용차 투쟁 현장처럼 열악한 환경에 놓인 아픈 사람들이요. 처음에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면 부모님들이 세월호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달라지더라고요. 4.16 합창단이 어떤 곳을 찾아갈 때 그곳 분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 공부를 하시는 거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얘기는 조금 하고 그분들 얘기를 더 많이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위로를 하시는데,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니까 더 큰 위로가 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런 부모님들을 보면서 노래하는 거리의 치유자 같다고 생각했죠. 저희 같이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눈물 나게 감사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6년 동안 저도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곳 청와대 광장에 세월호 말고도 참 많은 사연을 지닌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계신 걸 보고 놀랐어요.

개중에는 세월호 유가족 분들을 부러워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자신들은 혼자 투쟁하는데 세월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서요. 사실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은 이곳뿐 아니라 전국에서, 심지어 해외에서도 하고 있어요. 2014년 당시 국민 650만 명이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에 서명했는데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서 지금까지 서명을 받고 있잖아요.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오래, 이렇게 많은 서명을 받았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많은 국민의 마음을 모아야 진상규명이 될까요? 도대체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 걸까요? 6년이 넘는 시간동안 유가족은 할 수 있는 투쟁의 종류는 다 했다고 생각해요. 피켓시위는 기본이고, 노숙농성, 단식, 삭발, 삼보일배까지 했으니까요. 진도에서, 광화문에서 그리고 이곳 청와대에서 부모님들의 절망과 피눈물을 여러 번 목격했어요. 공권력이 이들에게 휘두르는 폭력과 비열한 토끼몰이도 봤고요. 온갖 조롱과 모욕, 회유 속에서도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지금까지 오신 분들이에요. 정권 교체 이후에는 희망고문으로 버티고 계시고요. 부모님들이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시민들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얼마 전 지인의 SNS에서 한때 제 신앙의 모토로 삼았던 요한 웨슬리의 문구를 봤어요.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문장이요. 예전 같으면 분명 아멘이라고 댓글을 남겼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문구를 바꾸고 싶어요. “사람이 기도하면 사람이 기도할 뿐이지만 사람이 행동하면 하나님도 일하신다라고요.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기도라고 생각해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말처럼 독자 분들도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해주세요.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