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에서 지천명에 이르러

[363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2021-01-29     옥명호

30대 시절, 어서 40대가 되기를, 속히 마흔에 이르기를 줄곧 바랐습니다.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는 나이’〔而立〕라는 그 시기 내내 늘어나는 책임의 무게가 버거웠기에, 흔들림 없는 인생을 산다는 불혹(不惑)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미혹됨 없이 살아가는 마흔’이 착각이었음은 40대 내내 체감했습니다. 반중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무력함에 흔들리고, 죄성에 좌절하며, 남의 인생을 시새우는 마음에 비틀대곤 했습니다. 삼십이립, 사십불혹, 오십지천명…. 이게 다 원작자인 공자님에게나 적용될 말이지 애초에 제가 그리 살 수 있으리라 한 바람부터가 언감생심, 가당찮은 일이었던 거지요.

지천명이라는 오십 중반이 되었음에도, 하늘의 뜻〔天命〕은 고사하고 함께 사는 이의 마음 하나 헤아리고 귀 기울이는 일에도 여전히 서툽니다. 다만, 30대의 버거움과 40대의 어지러움에서는 빠져나와 다소 내적 안정과 여유가 찾아온 듯합니다. 겪을 당시에는 속히 지나기를 바랐건만, 이제 와 그저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여깁니다. 그래서 인생은 앞으로 살아가고 뒤돌아보며 해석한단 걸까요.

스스로 안정기를 보내는 듯 흡족한 마음에 젖을 즈음, 죽비처럼 말씀 한 줄이 영혼을 후려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묵상 중 만난 이 말씀은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잠언 16:18을 떠올립니다. “진정한 세속성은 시간의 작품”이라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홍성사) 한 구절과 함께, 악마 사령관 스크루테이프가 신참 악마에게 들려준 조언도 생각났지요.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낼 경우에는 우리의 입지가 한층 더 확고해진다. 풍요로움은 인간을 세상에 엮어 놓거든.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내는 인간은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사실은 세상이 자기 속에서 자리를 찾은 것인데도 말이야.”

이번 호에서는 저마다 다른 연령대의 필자가 자신의 나이 든 삶이나 영화 속 주인공들이 함께 나이 드는 이야기, 노년의 어르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이 듦을 성찰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냅니다. 이와 함께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전 합동신대원 조직신학 교수)의 ‘하나님 뜻 탐구’도 새로 연재됩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겠으나, 기독윤리학자 김혜령 이화여대 교수의 ‘낙태죄 폐지에 관한 여성신학적 고찰’도 정독을 권합니다.

마흔 중반에 계획에도 없던 옛 일터로 복귀한 이래 쉰 중반을 바라보기에 이르렀습니다. 달마다 이 잡지를 읽고 응원하고 반겨주시는 독자·후원 공동체가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녹록잖은 여건에도 늘 주도적으로 일하는 동료들이 있어 더불어 즐겁게 일해 왔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독자·후원 그룹의 일원으로 돌아갑니다. 깊은 감사와 함께 ‘복상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리스도의 평화를 빕니다.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