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계획을 멈추고, 철없이 나이 들기

[363호 커버스토리]

2021-01-29     임자헌

한 달 전에 2021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덩달아 나는 한 살 더 먹었다. 참 덤덤하게 기꺼이 한 살을 섭취했다. 이제 몇 살이 된 건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제처럼, 그제처럼 또 그끄제처럼 자고 일어나 여느 날처럼 일상을 시작했다. 부모님께 새해 인사를 드린 것과 11일이 휴일이라 평소보다 TV를 많이 본 것을 빼면 다른 날들과 다를 것이 전혀 없는 싱거운 새해맞이였다. 올해 할 일을 하나씩 짚어보고, 몇 월까지 어떤 원고를 끝내야 하는지, 언제 어떤 원고를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책과 분야를 섭렵해야 하는지 대략 계획을 세웠다. 내가 몇 살이 되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문을 시작하다
나이가 참 버거웠던 때가 있었다. 한문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한문에 처음 발을 내디딘 때는 20대 후반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미술평론가가 되어야 내 일을 좀더 전문적으로 확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대학원 시험은 내게 제2외국어를 요구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지만 어쩐지 다시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미술잡지에서 고전 쪽을 맡고 있었던지라 대학원에 가서도 동양 고전미술 쪽을 전공하려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한문을 선택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다른 제2외국어는 아예 배운 적조차 없지만, 한문은 학교 다닐 때 구경이라도 해봤으니 새로 배우기에는 한문이 그나마 적합해 보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문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지도, 무슨 책으로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너무 몰라서 용감무쌍하게 한문을 선택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함께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가 열심히 정보를 찾아준 덕분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여름 특강으로 한문 교실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 한문이 시작되었다.

여름 특강에서는 논어(論語)를 강독했는데, 첫 번째 시간에 내 한자 수준은 아들 자(), 가로 왈(), 사내 남(), 계집 녀(), 아비 부(), 어미 모(), 어조사 야()를 아는 정도에 그쳤다. 모르는 글자가 대다수였고, 공부는 새 한자의 음과 뜻 찾기와의 전쟁이었다. 이래서야 시험을 치를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내용이 재미있어서 계속할 수 있었다. 구석에 혼자 앉아 누구의 간섭도 없이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읽어 내려간 논어의 내용은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재밌는데? 꽤 합리적인데? 흥미로워!’ 이게 20대 후반에 처음 만난 논어에 대한 내 반응이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다음으로 읽어야 했던 책은 맹자(孟子)였다. 논어는 예상과 달리 흥미로운 정도였는데, 맹자에는 반하고 말았다. 내용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맹자가 왕 앞에 당당히 나서서 당신의 식탁에는 끼니마다 살이 잘 오른 고기가 올라오고, 당신의 마구간에는 윤기 흐르는 말이 가득한데 국민들은 굶주려서 얼굴은 누렇게 뜨고 눈은 퀭하기 그지없으며, 성 밖 교외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뒹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짐승에게 사람을 먹여 기른 것이죠.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짐승들끼리 서로 먹고 먹히는 것도 사람들이 질색하는데,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국민들을 지배층이 키우는 동물들의 먹잇감이나 진배없는 처지로 내모는 지경이라면 어딜 봐서 지도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자신을 등용해달라고 청하는 자리에서 왕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며 환심을 사는 것이 아니라, 백성에 대한 아픈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그의 실정(失政)을 지적하는 모습이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대체 왜 이제껏 이 책의 진면목을 말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왜 사람들은 공자나 맹자를 고루하다고 했을까.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직선적인 문제 제기로 가득한 책이라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의문이 들었다.

공부할수록 미술사보다는 한문에 더 끌렸다. 결국 대학원 진학은 접고 한문을 선택했다. 20대 후반에 나는 그간의 내 이력을 다 덮고 새로운 길에서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며 안정을 얻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하는 즈음, 직장도 그만두고, 홀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대개 한문은 10년을 공부하면 비로소 운동화 끈을 맸다고 얘기할 정도로 투자 기간이 오래 걸리는 공부에 속한다. 이력의 확장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에 선 나는 스스로 마음을 잡기에도 힘든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의 숱한 질문을 들어야 했다. “대체 뭘 하려고 이제 그걸 시작했어?” “넌 앞으로 뭘 할 거야?”

 

중요한 건 내가 지금 하고 있다는 것
서른을 맞을 준비를 하던 해, 아무것도 꿈꿀 것이 없는 나를 보았다. 내 일상은 한문과의 전쟁이 아니라 한자와의 전쟁으로 바빴다. 글자를 알아야 문장을 할 수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한자의 음과 뜻을 찾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가뜩이나 한문은 세로쓰기라서 계속 보고 있자면 한자 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몇 년간 나는 영화 매트릭스의 장면처럼 세로로 끊임없이 후드득 떨어지는 한자 비를 맞으며 허우적거렸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앞으로는 별 의미가 없었다. 한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먼 미래였다. 서른 넘어 공부하면 머리가 굳어 효율이 없다는 말에 맞서기 위해 온몸으로 버둥거렸다. 가학(家學, 집안에서 전해지는 학문-편집자)도 없는데 너무 늦게 시작해서 결국 한계가 올 거라는 말에 잠식되지 않고자 고군분투했다. 나이 자체를 잊기 위해 노력했다. 한문을 계속해나갈 가치가 있는지, 무얼 이룰 수는 있을지 끊임없이 의심하던 내게 깊은 위로가 되어주던 논어의 구절이 있다.
 

공자가 말했다. “산을 쌓는 일을 한번 생각해볼까요? 한 무더기만 더 쌓으면 산이 완성돼요. 근데 그걸 못하고 그만두잖아요? 산은 완성되지 못하고 끝난 거예요. 거의 다 쌓을 뻔했는데 이런 건 의미가 없어요. 완성되지 못한 건 결국 내 탓이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땅을 편평하게 고르겠다고 흙 한 무더기 퍼다 날랐잖아요? 그럼 이미 시작된 거예요. 그 무더기만큼 땅이 골라진 거고, 그 크기가 얼마든 나는 전진한 거죠.”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簣, ,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 吾往也.


결국 산을 만드는 것도 평지를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의 일이라는 말이 내게 위로가 됐다. 한 무더기만 더 쌓으면 산이 완성되는 상태라면 외부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산을 잘 쌓았다고 칭찬해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산을 어느 정도 크기로 쌓으리라 결심했는지는 나 자신만이 아는 일이고, 그래서 그 일이 성공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하든 나 자신이 안다. 남이 뭐라고 하든 내가 그 한 무더기를 포기했으면 나는 그 산에 대해 실패한 것이다.

반대로 땅을 편평하게 고르겠다고 흙 한 무더기를 퍼다 나르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어느 세월에 그걸 하겠느냐고 비웃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한 무더기 퍼다 나르기 시작하면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그만큼 전진한 것이다. 모든 것은 내 할 탓이다. 내가 얼마를 갈 수 있든 가기 시작하면 나는 그만큼 전진한 것이다. 남이 뭐라 하든, 산이 다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든, 평지를 고르는 게 까마득하게 보이든, 주체는 . 내가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바깥에서 보는 완성이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인생을 보는 이러한 시각은 막막한 시작 앞에 그저 배울 만한 내용이라는 이유 하나로 서 있는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일
유학(儒學)이 흥미로운 점은 결과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말로, ()나라 호인(胡寅)盡人事 待天命’(진인사 대천명)이있다. 사람의 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나라 유비의 책사였던 제갈량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일을 계획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謀事在人, 成事在天’(모사재인 성사재천)이 그것이다.

공자 역시 사람들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혼탁한 사회에서 많은 지식인은 세상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은둔을 택했는데 공자는 기어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고 질서를 다시 세울 기회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내면의 바른 가치를 성장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제자에게 이렇게 답한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그 결과로 얻게 될 이득 같은 건 따지지 않는 게 내면의 바른 가치를 성장시키는 방법 아니겠는가!”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요시하는 학문이라는 점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결과에는 운이나 각종 변수가 개입하지만, 과정은 오롯이 내 몫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철저히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해지길 요구한다. 신에 대해 언급하는 자세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번지라는 제자가 지혜로움이란 어떤 것이냐고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에 힘쓰고, 귀신이나 신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은 갖지만 의지하지는 않고 거리를 둘 줄 안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네.” 이에 번지는 다시 사람다움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진짜 사람다움이란 어려운 일을 먼저 해내고 나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지. 그렇게 하면 제대로 사람답다고 할 수 있네.”

공자의 이런 자세는 기독교인인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살아야 할 삶의 자세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공자는 귀신이나 신에게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미루지 않았다. 기복(祈福)하지 않았다. 그가 매우 아팠을 때 천지신명에게 빌어보자고 제자인 자로가 청하자, 자신은 평소 천지신명에 어긋난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 이미 삶으로 오랫동안 기도해온 셈이라고 말한다. 공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것과 하늘이 알아서 해야 할 일, 하늘에 맡겨야 할 일을 정확히 판단하며 자기 삶에 주어진 몫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고 결과를 정해놓지 않고 인간으로서 달려야 할 그 길만 최선을 다해 달리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데에는 이런 마음가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신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몫을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과를 묻지 않으신다. 나는 내 과정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남이야 뭐라 하든, 그것이 원하는 결과를 내든, 그렇지 않든,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진실한지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이 반가웠다.

 

신앙의 과제가 된 가르침
공자는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이런 탄식을 남겼다. “3년 공부하고 나면 다들 출세나 번듯한 직장 쪽으로 머리를 돌리는 것 같습니다.” 염유라는 제자는 세상에 휩쓸려 옳음을 놓치면 안 된다는 가르침에 반기를 들어, 스승이 제시한 길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힘으로 감당하기 벅차다고 했다. 공자는 그런 제자에게도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 “벅차기는! 힘이 부족한 사람도 길을 걷긴 한다네. 길을 걷다가 중간에 그만두게 될 뿐이지. 지금 자네는 걸음을 떼지도 않고 지레 선부터 긋고 본 것이네.”

기독교인으로 사는 고민도 이런 것들 아니던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힘을 이용해서 어떻게 좀 잘살아 볼 길이 없을까 고민한다. 나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며 복을 비는 기도의 이유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성경을 말씀 그대로 믿고 행동하는 것은 도통 세상에 먹힐 일이 아니라며 내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신앙도 다치지 않고 세상에도 그럭저럭 묻어갈 길을 찾으려 한다.

나이에 맞서 한문을 시작하며 직시했던 것은 내 신앙이었다. 세상의 나이와 어긋나는 삶 때문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적당히 타협하는 선택을 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신뢰가 필요했다. 나를 책임져주실 분이라는 믿음이 수사적 표현이 아닌 현실인지, 무엇을 입고 먹을지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과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나는 믿는지 직면해야 했다.

내가 세상과 소통할 전문적 창구로 찾아낸 것은 한문이었다. 그렇다면 내게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내가 이 공부에 진실하게 임하고 세상과 진실하게 소통하고 내 삶을 통해 만나는 이들에게 사랑의 이야기를 건네는 일이다. 내가 신앙인이라면 걱정해야 할 것은 내 이력이나 인생 설계가 아니라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에 정직과 성실을 다하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다. 명실상부(名實相符)가 내 신앙의 과제이다. 명실상부하게 해나가는 데 나를 다하고 있으면 내 삶에 필요한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결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했다.

 

인생 계획 세우기를 멈추다
한문 공부를 시작으로 나는 내 인생에 계획 세우는 것을 멈췄다. 결과를 설계하는 것을 멈췄다는 말이다. 시도하는 일은 오히려 많아졌지만 억지로 어떤 길의 문을 열려 하지는 않는다. 내게 다가온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열심을 쏟으려 애쓸 뿐이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중용(中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우기 시작했으면 능하게 되지 못하였으면 놓지 말고, 묻지 않을지언정 묻기 시작했으면 알게 되지 못하였거든 놓지 말며,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하기 시작했으면 깨닫게 되지 못하거든 놓지 말고, 분변하지 않을지언정 분변하기 시작했으면 분명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하기 시작했으면 정성스럽고 지극하게 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아야 한다. 남이 한 번에 해내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해내거든 나는 천 번을 해야 한다.

有弗學, 學之, 弗能, 弗措也. 有弗問, 問之, 弗知, 弗措也.

有弗思, 思之, 弗得, 弗措也. 有弗辨, 辨之, 弗明, 弗措也.

有弗行, 行之, 弗篤, 弗措也.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그냥 읽으면 숨이 막힐지도 모르겠다. 멋지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계속 밀고 나가서 남이 한 번에 해낼 때 나는 백 번을, 남이 열 번에 해낼 때 나는 천 번을 하라는 문장은 숨도 쉴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묘는 이 행간에 숨어 있는 여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성실함에서 여유를 발견하지 못하면 성실은 계속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성실이란 단어를 주로 타인과의 관계나 일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사실 성실은 내가 나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는 단어이다. 남이 시켜 남의 눈에 들려고 하는 성실 말고, 내가 나에게, 나의 삶에 성실한 것이 진짜 성실이다.

내가 내 인생에 성실하다는 것은 숨 쉴 틈도 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방향, 지향을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쉬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고, 클럽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종종 절망 때문에 잠시 주저앉을 때도 있지만 결국은 계속해나가는 일이다. 쉬어야 궁극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스스로 성실하려면 나이를 잊어야 한다. 남들이 사는 모습을 돌아보고 그것에 나를 비교하면 내 속도에 맞는 내 인생을 살아가기 어렵다. 남에게 성실하다 보면 나의 성실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시간에 따른 과업이 나를 몰아치기 때문이다. 굳이 나이를 떠올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경험을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서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있는지 성찰해볼 때 정도가 아닐까.

한문을 시작한 이래 세상이 그 나이의 과업이라고 하는 것들과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다. 처음에는 아주 불안하기도 했고,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얼른 달려가려고 애쓰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그만하고 슬쩍 샐까 생각 했다. 다만 도피하려는 문들이 죄다 쉬이 열리지 않아 도망갈 수는 없는 거라 여기고 마음을 잡았을 뿐이다. 마음을 잡았더니 새로운 모험의 문이 속속 열리기 시작했다. 그 문을 따라간 지금 내 인생은 매우 흥미롭긴 하지만 안정적인 길에서 꽤 멀어진 것 같기도 하다. 한때는 이런 삶을 내가 선택해놓고서 불안증과 건조한 우울함에 시달리기도 했다.

역설적이지만, 고리타분하고 정적일 것 같은 한문을 시작하며 내 인생은 신앙과 함께 모험하는 듯한 역동적인 인생이 되었다. 한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내가 봐야 하는 책도 무궁무진하다. 매일 사료를 들여다보고, 역사서와 철학서에 둘러싸여 있다. 읽고 공부해야 할 책들이 끝도 없다. 나이를 생각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공자 선생님도, 내 신앙도 나에게 나이를 묻지 못하게 한다. 요새 나이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라곤, 노년이 되면 내 학문의 수준도 지금보다는 덜 허덕일 만큼 깊어져 있을지 궁금해하는 것뿐이다. 돈을 모아 내 미래를 대비하기보다는, 내 공부가 사회에 보탬이 되고 더욱 안전하고 인간다운 사회의 혜택을 누리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나님도 그편을 더 옳다 하시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철없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

 

 

임자헌
잠시 미술 잡지 기자로 일했으나 한학의 매력에 빠져 진로를 변경했다. 일성록번역을 시작으로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조선왕조실록현대화사업에 참여해 실록을 번역하고 있다. 깨어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사료와 함께하면서 자연스레 과거와 오늘의 상호 교차를 통해 지금-여기를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중서도 썼다. 역저서로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군자를 버린 논어》 《오늘을 읽는 맹자》 《시민을 위한 조선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