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의 퇴근길’이 안녕하기까지

[363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2021-01-29     이한솔

 

국회 본청 앞, 그 모순적인 공간
국회 본청 앞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꽤나 아름답습니다. 여의도의 거대한 빌딩 숲이 그리는 스카이라인과 빽빽한 도시 속에서도 희소하게 펼쳐져 있는 드넓은 국회의사당 광장이 제법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작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푸른 하늘을 여유롭게 감상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본청 앞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는 일터로 들어가는 입구일 뿐이고, 고급 리무진 차량으로 오가는 국회의원들에게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볼 만한 곳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한 달간은 국회와 전혀 관계없을 사람들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예쁜 하늘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단식 농성을 진행했던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님(김용균 재단 이사장)과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님(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이렇게 두 유가족입니다. 덧붙이자면 고 이한빛 PD는 저의 친형이기도 합니다.

지난 연말연시는 역설적이면서 모순적인 비극이 가득했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이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끼니를 끊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단식농성장이라는 농성장 이름부터가 이미 아이러니했지요. 자식을 살려야 한다며 농성장을 지키고 단식을 이어갔던 사람들은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님이었습니다. 법안을 반대하는 자들의 대표 구호는 기업이 죽는다입니다. 사람이 있어야 기업도 존재할 수 있지만, 사람이 죽어야만 기업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사당의 높은 담장 안쪽에서 수많은 혜택과 권한을 누리며 살아가는 국회의원들이 울타리 밖에서 위험을 직면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2021년에는 이러한 모순들이 사라지길 바랐지만, 결국 해가 넘어갈 때까지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지난 12월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단식 농성 기자회견. (이하 사진 제공: 이한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싸워온 시간
적어도 2020년에는 법안이 통과될 줄 알았습니다. 한국의 산재사고는 1년에 무려 2,400명입니다. 하루에 7명이 일터에서 무사고 퇴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임기 내에 산재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지난 9월 법안은 국민 10만 명의 국회 청원 동의를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2012월 국회가 열릴 때까지, 국회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않고 법안 처리를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2021년이 되면,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등 미룰 이유가 더 많아질 것이기에 20년의 마지막 임시국회 회기 때까지는 제정이 꼭 필요했습니다. 결국 다시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던 두 명의 유가족이 나섰습니다. 1211, 국회 본청 앞에는 조촐한 천막이 하나 세워졌고, 혹한의 한파를 맞이하며 기나긴 단식 농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유가족들의 절규를 통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고, 사회적 관심은 다시 높아졌습니다. 여당의 대표는 단식농성장을 찾고 임시국회 내에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단식 농성자들의 혈색은 점점 어두워졌지만, 무산될 줄 알았던 법안 통과에 대한 희망 덕분에 모두가 힘을 내서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국회 안으로 들어간 법안은 정부와 국회의원들로 인해 본질이 훼손되었습니다. 안전 책임을 안전 보건 담당자에게 국한하고 경영책임자는 꼬리 자르기를 하고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안이 나왔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원청과 발주처 처벌의 조항도 삭제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김용균, 김태규, 삼성중공업, 한익스프레스 사고 등 수많은 비극의 원인이 진짜 사장에게 있음이 분명함에도 국회와 정부만이 뜬구름 잡는 해결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씨랜드, 세월호 등 사회적 참사가 공무원의 불법적인 인허가로 인해 발생했지만, 소극적인 행정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무원의 처벌 조항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거나, 사건 발생 시 노골적으로 조사를 방해하는 문제를 바로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빼자는 논의까지 나왔습니다. 상당수의 재해가 발생하고 있는 50인 미만 사업장을 법안 적용 대상에서 4년 유예하자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모여서 반대를 시작했고 정치권이 이에 반응한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7명씩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는 한국에서 코로나만큼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일터의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위한 선택이 우선되고 있지 않기에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13)도 어떤 법안이 통과될지, 통과는 될 수 있을지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부디 2021년에는 하루 7이 매일 무사 퇴근을 할 수 있는 날이 꼭 오길 바랄 뿐입니다.

 

유가족과 연대자, 그리고 우리의 투쟁
결과가 좋든 나쁘든, 임시국회가 끝나는 18일에는 한 달이라는 끔찍하게도 길었던 단식이 마무리됩니다. 18일 이후가 어떨지도 걱정입니다.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세상과 맞선 유가족들의 다음 단계가 무엇일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투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죽음이 존재합니다. 유가족이기도 한 저도, 죽음을 정의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 사회는 죽음의 의미를 대단히 무겁게 부여합니다. 물론 죽음의 무게감 덕분에고 이한빛 PD의 명예 회복을 위한 투쟁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 김용균 씨의 투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엄중한 무게감은 유가족의 싸움이라는 틀을 만들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투쟁의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듭니다. 이번 단식 농성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이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약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지만, 유가족이라도 나서면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어 내다보니, 불가피한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새해 첫날 단식농성장 앞에서 찍은 고 이한빛 PD 가족

투쟁의 과정에서 유가족이 실제로 가족의 죽음을 그런사회적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어떤 무게로 느끼고 있는지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유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벌어진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를 개선하는 데 앞장설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죽음의 의미를 넓게 돌아보기 전에, 무거운 사회적 사명감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일은 개인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유가족과 함께하는 투쟁이 때때로 와해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큽니다. 제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묻는다면, ‘7명의 퇴근길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쟁의 전면에 나선 두 유가족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매우 컸습니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있지는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유가족과 유가족이 나서지 않으면 귀 기울이지 않는 한국 사회가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적어도 저는 어려서부터 죽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보니유가족이 되었고, 내 이성과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한빛 형도 동의했을 법한 일이라면, 당연하게 감당했습니다. 사회가 의미를 무겁게 부여하면 힘을 모아 무게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였고, 그렇지 않아야 할 때에는 메마른 사람인 양 가볍게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활동가, 시민 그리고 다른 유가족들로부터 제 모습이 유가족 같지 않다거나 이질적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저의 삶을 독립적으로 분리하고 죽음의 의미를 오래 고민하고 살아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죽음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유가족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법안이 제정되는 일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가족의 죽음이 어떤 의미일지 긴 호흡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엔 다층적인 상황이 겹겹이 쌓여 있기에, 함부로 해석을 하기도 의미를 부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사랑하고 존중했던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조금은 가볍게 투쟁의 현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이 짐을 나누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유가족의 투쟁은 한국 사회의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활동가든 유가족이든 상처가 덜 되고, 떠난 가족에게도 떳떳할 수 있고, 서로가 죽음 이후 다시 만나는 날까지 이 투쟁이 오래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8일 단식농성이 끝난 이후를, 함께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이한솔
사단법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hanbit.center)와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minsnailcoop.com)에서 활동 중인 투잡러. 노동과 주거 영역에서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자, 다양한 작당과 기획을 벌이고 있다. 대학 때 복수전공으로 신학을 선택하며, 기독교의 사랑에 대해 작게나마 관심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