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성교육을 합니다》 성범죄 예방 교육, 제대로 하려면
[363호 심에스더의 독서일기]
새해 첫 성이야기는 어느 중학교에서 이뤄졌다. 학교는 주로 학년별 단체교육을 공식적으로 의뢰한다. 이번엔 조금 달랐는데, 학교 상담실을 통해 살짝 조심스럽게 중2, 중3 남학생 각각 한 명씩과 그들의 양육자를 함께 교육 및 상담해달라고 했다. 사정인 즉 한 학생은 또래 친구에게 지속적인 음란문자를 보내다 신고를 당했고, 다른 학생은 같은 반 학생 몇몇의 얼굴을 성적인 사진에 합성하는 이른바 ‘지인능욕’ 의뢰를 했다가 사이버 교도소의 덫에 걸려 학교에 일파만파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시간들이 어느 정도 지나간 후 학교는 징계 차원에서 두 학생 모두에게 ‘성범죄 예방교육’이라는 타이틀로 성교육 5시간씩을 받게 했다.
첫 번째 일과 거의 동시에 들어온 두 번째 요청은 초등학교 6학년이 대상인 ‘디지털미디어 성폭력 예방교육’이었다. 학교 방송실에서 방송반 친구들의 프로페셔널한 진행 아래 쇼 같은 강의를 마치고 난 뒤 스태프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게 되었다. 시장조사 겸 은근슬쩍 오늘 들은 이야기에 대한 반응과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듣고 싶은 성이야기가 있나 물었다.
“애들이 ‘사고’치지 않는 한 성교육 안 할걸요?”
“사고? 무슨 사고?”
“아, 이번에 6학년 애들 중 몇몇이 단톡방에 자기 반 여자애들이나 엄마, 누나, 막 야한 몸 사진에 얼굴 합성해서 올리고 그러다가 걸렸거든요. 그래서 아마 이 교육도 하는 걸 거예요.”
두 상황은 생각할 거리가 충만하여 한동안 성과 관련된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할 때 다양한 소재로 종종 소환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책을 소개하는 이 글에는 어떻게 적용이 될까? 바로 이렇게.
사전예방도 사후해결도 ‘제대로’ 성을 아는 데서부터
해는 거듭 바뀌어도 잘 바뀌지 않거나 더디게 바뀌는 일들이 있는데 위와 같은 상황도 그중에 속한다. 그러니까 일이 터지기 전에 변화를 꾀하기보다 사후에 급한 불을 끄는 방식의 선택, 뭐 특정 학교의 특정 선택이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에 익숙한 문제해결 공식으로 보인다. 물론 성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쉬쉬하고 무작정 터부시하던 지난날에 비하면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는 사전이든 사후든 의미는 있다. 의미에 뒤따르는 효과가 미미할 뿐. 많이 양보해서 예전엔 몰랐다지만 지금은 알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다양한 연령대가 다양한 방식으로 행하는 성착취/성범죄가 왜곡된 성인식과 쌍으로 그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가 교묘하게 숨기를 반복 중이다.
여기서 핵심은 성을 제대로 알자는 거다. 사전예방도 사후해결도 미리, 일찍이, 제대로 성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불난 뒤 급한 불도 꺼야 하지만 애초에 불이 나지 않게 다룰 수 있도록 우리도 배우고 주변에도 알려줄 필요가 매우 있다. 불날까 봐 아예 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잘 사용하고 안전하게 사용하면서 불이 주는 이익과 즐거움을 누리려고 한다. 성도 마찬가지다. 성은 여러 모습―즐겁고 따뜻하고 진지하고 일상적이고 야하고 지루하고 위험한 등―을 가졌고 몸과 마음과 다양한 관계들 속에 있다. ‘성=범죄예방교육’으로만 퉁치기엔 성은 너무 풍성한 우리 삶의 부분, 중요한 지체다.
남성, 나아가 누구에게나 유효한 성적 지식이 촘촘한 책
《일단, 성교육을 합니다》라는, 내 마음과도 꼭 같은 제목의 이 책은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남성을 겨냥하여 만든 듯하다. 아무래도 성을 누릴 기회가 더 주어진 만큼 더 왜곡된 성가치관을 가진 남성들에게 적극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유효한 성적 지식이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쌓여 있다. 스웨덴 전역을 돌아다니며 청소년과 시민들을 만나 나누었던 다양한 고민들에 대해 정말 할 수 있는 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차를 한 번 살펴보면,
1. 너―허리아래: 자기 것을 꼼꼼하게 관찰해 봅시다, 음낭은 움직이는 거야, 자연발기, 성기를 씻는 법 등 / 외모: 섹스를 못할 만큼 못난 사람은 없습니다 / 성기의 크기: 정확한 치수, 약과 수술 / 성욕: 성욕이 없을 때 / 포르노: 포르노도 종류가 가지가지, 포르노에서 섹스를 배울 수는 없다, 도와줘요 중독 됐어요! / 남성성: 문화의 일부, 남자들끼리가 더 문제, 힘의 불균형
2. 여자들―몸: 다리 사이, 여성 사정, 남자와 여자의 닮음 / 이상화: 여성의 성기에 대한 억압 / 성생활: 여성의 자위 / 월경: 월경이라는 괴물의 역습
3. 사랑―관계 맺기: 과감하게 먼저 다가가기, 대화의 물꼬트기, 관심의 표현, 남자인데 남자를 좋아한다면? 등
4. 상호 존중―남자들의 집단: 존중의 기술1 나부터 존중하세요 / 추행: 존중의 기술2 다른 사람의 경계를 침범하지 마세요 …
5. 섹스 기초 강의―섹스의 이미지 / 사랑해준다는 것 / 발기가 되지 않을 때 / 동의와 거절을 분명히 표현하기: 거절의 신호들, 예외는 없다 …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성이야기는 세세하게 모두 챙겨 넣었다. 남성이 구체적인 대상이지만 다른 성별에게도 성에 대한 충분히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주고 생각해볼 만한 가치관을 제공한다. 더불어 성별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더 많은 같은 인간이자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동료시민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건 성을 잘 누리고 다루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어떤 성별이든, 어떤 성별의 양육자를 돌보든 어떤 파트너와 만나고 있든 성 지식 전반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있다. 당연히 책 한 권으로 현존하는 성문제들을, 왜곡된 가치관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책은 성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전에 우리 일상과 다양한 관계 속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러니 《일단, 성교육을 합니다》를 읽고 부족하다면 졸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달아….
심에스더
성을 사랑하고 성 이야기를 즐겨하는 ‘성과 성평등’ 강사이자 의외로 책 팟캐스트 〈복팟〉 진행자. SNS 중독자. 최근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