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만난 하늘땅살이의 기쁨
[364호 커버스토리]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
할머니. 어제 홍천에는 눈이 참 많이 내렸어요. 작년 3월 홍천으로 이사하고 소복이 쌓인 눈을 전보다 자주 만나요. 해남에는 눈이 와도 싸락눈이 내리잖아요? 바람에 흩어지고 땅에 쓸려가고요. 또 해남의 겨울은 바다가 가까워서 매서운 바람이 부느라 대문이 덜컹거릴 정도로 나무 사이로 다니는 바람 소리가 거세지요. 그런데 이곳 강원도 숲속 겨울은 깊고 어둡고 참말로 고요해요. 고요한 겨울 깰세라 마을 강아지들이 낯선 냄새와 소리 살피며 짖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와요.
며칠 전은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 지 네 해째 맞는 기일이었어요. 겨울이면 갯것들 더 살아난다고 손 호호 불며 바지락이며 굴이며 캐러 다니시던 할머니. 칼바람 피하려 목도리를 눈 아래까지 칭칭 여미고 눈만 빼꼼 내놓고 바다 냄새 한껏 품고 집에 들어오시던 할머니. 이불 아랫목 찾아 시린 손 뭉개며 몸 녹이시던 할머니. 홍천에 와서 종종 할머니를 떠올렸어요. 할머니께 막내 손녀 지내는 이야기 나누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처음 해보는 하늘땅살이의 시작
홍천으로 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지냈어요.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산과 가까운 마을이었어요. 낮에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과 절기마다 달라지는 산과 숲 산책하며 우리말 배우고 글 쓰며 즐거웠고, 밤에는 마을 언니·동생들과 공동체방에서 함께 살림하며 지냈어요. 공동체방에서 생활하면서 친언니들과 자취할 때, ‘부모님과 같이 지낼 때, 모르고 누려온 숨은 살림과 살핌이 참 컸구나’ 깨닫기도 했지요. 필요한 살림 구석구석 건강하게 채워가는 법도 배워갔어요. 같이 사는 언니·동생들이 해준 맛있고 건강한 밥상을 함께 나누고 자지러지게 웃고 잠들던 풍경도 종종 기억나요.
2017년 겨울. 처음으로 하늘땅살이를 시작했어요. 하늘땅살이? 할머니에게 낯선 표현일 수도 있겠어요. 하늘땅살이는 이웃하고 지내는 이들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명살림, 농생활을 달리 부르는 말이에요. 가까운 언니는 하늘땅살이를 이렇게도 말하더라고요. “하늘땅 흐름 따라 씨앗 떨어뜨리고 거두는 일, 또 그렇게 사는 삶 모두가 우리 하늘땅살이야.” 뜻 살피면 낯선 것 아니고 할머니가 이미 살았던 삶이 하늘땅살이지요. 할머니 하늘나라로 가시고 엄마와 할머니 집 찾은 날, 마루에 있던 큰 유리병에 할머니가 내내 키우고 받아온 메주콩, 서리태 씨앗을 얻어온 게 시작이었어요. 그해 서울 집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3평 남짓 되는 작은 텃밭에 할머니가 남겨두신 씨앗을 심었어요. 텃밭에서 흙 매만지다 할머니 장지에서 한 줌 재가 된 할머니 몸과 섞일 붉은 흙 쓸어 담던 장면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어요. 여기 이 흙들도 바람 따라 물 따라 이곳까지 왔겠지 싶었지요. 고민도 많고 자책도 많을 때였는데 이 흙이 할머니 품이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어요. 잘 살고 싶은 마음 꾸준히 이어가지 못하고, 쉽게 용기내기도 어려웠거든요. 다시 새로운 마음 품을 때,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마음먹었고 그게 하늘땅살이였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하늘땅살이를 이어오고 있어요.
그해에는 물날(수요일) 아침마다 마을에 사는 친구들과 텃밭에 갔어요. 열두 달 24절기를 처음 알았고, 관련된 책을 함께 공부하기도 했어요. 4월 초부터 감자, 흰꽃 피는 완두콩, 청아욱, 뿔시금치를 연이어 심었어요. 외래종이나 종묘상에서 파는 모종이 아닌 흙 속에 사는 벌레들과 어우러지도록 토박이 씨앗을 선택했어요. 앞서 토박이 씨앗 심고 길러 씨앗 받은 언니들이 겨우내 씨앗을 잘 간직했다가 이른 봄 되어 나눠주었고, 텃밭에 심을 수 있었지요. 심은 지 일주일 남짓 지나니 콩알이 흙 속에서 불어 흙을 비집고 올라왔어요. 하늘 향해 두 팔 벌리듯 움튼 모습 보았을 때를 잊지 못해요. 새싹의 생명력을 보니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나왔어요. 하지만 새싹을 만난 기쁨도 금세 가시고, 다른 일이 생겨 바빠지면서는 밭에 가서도 걱정과 근심, 고민은 늘 부산하게 머릿속을 떠돌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마을 어린이들과 종이접기 수업을 하는데 그 모습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딴생각 없이 종이 접는 순간에 오롯이 몰입하는 어린이들의 손짓과 표정에 많이 웃었고 힘이 났어요. 그리고 다시 찾은 밭에서 김매며 복잡한 생각이 비워지는 경험도 했지요.
아빠의 농사와 달랐던 하늘땅살이
한여름 장마와 태풍 지나면 아침에 눈뜨자마자 흙물과 빗물 뚝뚝 떨어뜨리며 씻으러 들어가는 아빠의 모습을 자주 봤어요. 8시 출근 전에 새벽 논에 나가 장맛비에 쓰러지는 벼들 붙잡고 묶고 돌아오셨지요. 내가 벼인지 네가 벼인지 큰 바람에 흥청거리는 제 몸 가누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서울에서 텃밭을 처음 시작하고, 작년 홍천에서 하늘땅살이를 중심으로 생활을 꾸리기로 마음먹었을 때 아빠가 많이 속상해하셨어요. 고생시켜 대학까지 보냈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게 아빠 입장에서 기막힐 노릇이었지요. 농부 아빠가 씨앗을 곡식으로 거두는 뿌듯함 누리고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모습이 고되면서도 행복해 보인다 싶었는데. 아빠에게는 제발 그것만은 안 했으면 싶던 것, 그야말로 생고생이던 게 농사라고 하셨지요. 한참 뒤에 아빠랑 통화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는 선택할 게 이거밖에 없어서 마지못해 했던 게 농사였다고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배운 게 농사뿐이고 형편이 어려워 무시당하고 소외받았던 당신 경험 속 농사와, 돌고 돌아 찾은 제 하늘땅살이의 기쁨은 시작도 달랐고 과정도 참말로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아빠의 고생으로 입학한 대학에서 전공 공부할 때, 졸업 후 배운 대로 살아보겠다고 지역에서 활동할 때,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을과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참 그리웠어요. 하면 좋은 것들은 세상에 너무 많은데 그게 지금 나에게 필요한지 헤아리고 살펴 권하는 관계는 도무지 찾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때 새로운 마을을 만났고 그 마을에서 만난 친구들이 지금 이곳 홍천에 닿게 했어요. 서울에서 지낼 때 홍천 마을에서 앞서 생활하는 이들을 만난 적 있어요. 하나님 뜻 구하며 생명 순환하는 삶 일구는 이들, 지금 여기의 삶이 재미있고 기쁘고 행복하다던 언니들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자주 붙여 부르는 두 낱말, 자급과 자족. 이 낱말을 자주 붙여 부르는데, 사실 자족 없이 자급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어요. 자기 마음 들여다보고, 욕망을 전환하지 않으면서 자급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 문익환 할아버지도 그러셨지요.
어떻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뜨거운 마음이 이루어지는 일일까요? 일용할 양식 아쉬운 사람이 없이 되는 일, 모두 일용할 양식만으로 만족하게 되는 일이 아니겠소? 그게 그대로 안 되는 데서 얽히고 꼬이는 일이 일어나거든요. 그것을 풀지 않고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하느님의 나라도 오지 않고 결국 하느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 거 아니겠소?
― 《늦봄의 편지 - 문익환 옥중서신》 중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욕심 부리지 않으면서 고마운 마음으로 내어 맡기며 사는 것이라는 그 말이 하늘땅살이하는 이에게 나온 말이어서 더 소중하다 느꼈어요. 그리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먹고살 농사 기술보다 자족하는 마음이구나’ 깨달았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이 깨달음은 꾸준히 가꾸고 살펴갈 영역이라는 것도 알아가요. 자연과 더 가까이 지내며 내 마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로, 공부하고 노동하며 기도하는 삶 이어가고 싶어 지금 여기 홍천에 왔어요. 그렇게 홍천살이가 시작되었지요.
달라진 밥상
이사하고 이튿날, 밭 둘러보며 뒷산에 오르고 나무에서 난 표고버섯을 땄어요. 버섯이 나무에 이렇게 붙어사는구나! 처음 보았지요. 집에 데려와 뜨끈한 물에 데쳐서 깨소금과 들기름 섞어 살짝 찍어먹으니 맛이 아주 좋았어요. 겨우내 흙에서 들뜬 밀 밟아주고, 장다리 박을 씨무와 씨감자 묻은 곳 삽질하고, 무와 감자가 담긴 큰 상자를 꺼내기도 했지요. 다음 날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을 담갔어요. 작년에 거둔 메주콩 가마솥에 삶고 띄워 봄볕에 말린 메주들, 소금물에 재워 항아리에 담고, 그 위에 숯, 고추, 대추 동동 띄우고 소나무가지 올렸지요. 붉은 고추, 푸른 소나무, 깜깜한 숯은 항아리 속에서 어울리고, 미리 꼬아둔 볏짚 사이로 한지 끼워 금줄 만들어 항아리 주변에 두르니 ‘장을 담근다는 건 하늘땅 기운을 이 항아리에 담는 일이구나’ 싶었어요. 어렸을 때 할머니가 담근 장으로 차린 밥상 맛나게 먹고, 할머니 집에 가면 처마에 달아둔 메주는 구경이나 했지, 할머니가 장 담그는 솜씨, 지혜 배워 누릴 생각 못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즐겁게 배울 수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지요. 여름에는 고추장 만들기도 시도했어요. 직접 해보기 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함께 사는 이들의 마음과 손 보탠 시간 지나고 보니 “아, 그냥 이렇게 되는 거구나!” 싶어 너털웃음이 나왔어요. 처음 만들어본 고추장에서 고추장 색이 나고, 고추장 맛이 나서 신기했어요. 홍천에 와서 처음 보고 처음 해본 게 참 많아요. 그런데 돌아보니 여태껏 살면서 처음이 아닌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전에 보았고, 먹었고, 느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조차도 처음이었던 걸요. 하늘땅살이는 그렇게 처음을 처음으로 오늘을 오늘답게 맞이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밭에 씨앗 심고 가꾸는 하늘땅살이와 함께 밥상 차림도 달라졌어요. 산과 들에서 절로 나는 메들나물 모습과 이름 알아 밥상에 올려 맛있게도 먹었어요. 꽃다지, 벼룩이자리, 고사리, 단풍취, 우산나물, 풍년초, 쑥 뜯으러 다니며 봄에 피는 꽃구경 실컷 했지요. 진달래와 철쭉의 생김과 때가 다른 걸 알고, 생강나무 잎, 다래나무 잎을 뜯어 맛보고. 숲에서 오르고 기고 미끄러지며 멧나물 하던 날에는 엄지손톱 아래가 새까매졌는데 이게 지워도 지워지지가 않더라고요. 할머니 손톱에 까맣게 낀 게 잘 안 씻어서 생긴 때꼽자국이 아니라 풀물이 든 거란 걸 그제야 알고 많이 웃었어요. 굶어죽지 말라고 하늘이 준 선물이라던 메들나물, 손끝으로 뜯느라 그랬던 거지요. 여름에는 달큼한 오디가 뽕나무에서 후드득 떨어지고, 새콤한 멧딸기가 산길을 물들였어요. 절로 떨어진 오디는 주워서 오디청 담그고, 지천에 널린 쑥은 한 움큼 베어다 쑥 효소 담그고, 남은 쑥은 쑥국 끓이고 쑥전 부치고 쑥밥 해먹고. 그래도 남은 건 쑥버무리 해다 참으로 먹었고요. 겨울 지난 뿔시금치는 밭에서 뜯어다 더운 물에 살짝 데쳐서 깨소금과 들기름에 무쳐먹었어요. 밭에서 뜯은 나물을 밥상에 올려서 내 몸에 들인다는 건, 유전자 조작되지 않은 토박이 씨앗으로, 식품첨가물을 더하거나 방사선 처리 할 필요 없이(포장 비닐 나올 시간도 없이!), 한 식구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 조리한 시간을 온전히 지나온 생명을 들이는 순간이었지요. 또 그 시금치가 얼마나 달고 맛있었게요? 뒷간에서 만난 똥과 오줌은 한데 모아 숙성하고, 남은 음식 재료들과 퇴비로 만들어 밭에 다시 돌려주었어요. 밭이 내어준 선물을 다시 밭으로 돌려주며 고마운 마음 나누고, 쓰레기 없이 순환하는 삶에 뿌듯함도 한몫 늘었지요.
팬데믹의 근본대책은 더불어 사는 삶
혼자라면 엄두도 못 냈을 마을 친구들과 함께한 공부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싶어요. 마을에 살면서 학교 다닐 때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있어요. 그만큼 공부의 필요도 주제도 다양해졌어요. 한자가 많아 마냥 어려울 거라 여겼던 책 《동의보감》(내경편)을 봄여름 친구들과 꾸준히 읽어갔어요. 코로나19 돌림병으로 온 생명이 함께 앓는 때 읽은 책이라 더 새롭게 읽혔어요.
앓이를 치료하고자 하거든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며 반드시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도(道)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앓는 이로 하여금 마음 속 의심과 걱정, 모든 헛된 생각과 불평, 다른 사람과 나라고 하는 구분을 모두 버리고 평생 지은 잘못을 후회하고 깨닫게 한다. 그러면 문득 마음과 몸의 집착에서 벗어나 내 삶과 자연의 법칙이 하나가 되어, 이렇게 오래 하면 신(神)이 모여 자연스럽게 마음이 매우 편안해지고 성정(性情)이 화평하게 된다. … 그러면 깨달음이 떨쳐 일어나 갑자기 모든 의문이 풀어져 곧 마음이 자연히 맑아지고 앓이에서 저절로 놓인다.
― 〈이도요병〉(以道療病), 《동의보감》 중에서
동의보감에서 병은 바이러스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병이 피어나도록 조건 지어진 곳에서 누적되고 드러난 결과라고 배웠어요. 역사적 전환 앞에서 떠돌던 역병들이 피해갔던 곳들은 종교든 철학이든 그 신념을 토대하고 정결 규례를 지켜온 단위였다는 것도 새로 알았어요. 촘촘한 밀도로 생활권 이루는 도시와 거리 두고 시골 마을에서 지내면서 자연에서 자연답게 자연으로 사는 법, 하늘땅살이를 더 집중해서 익혔어요. 그 시간이 돌림병으로부터 나와 마을을 이해하고 지키는 공부였다는 생각을 해요. 먹을거리를 포함한 식습관, 내 몸과 마음의 구체적인 이해에 따른 선택, 그리고 그 일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이 생긴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다른 바이러스를 만나게 될 거예요. 코로나19 돌림병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새로운 삶의 양식, 생활, 온 생명 더불어 사는 삶 헤아린 하늘땅살이라 여겨요. 지구공동체가 깊게 앓는 현실 바로 보고, 함께 고침받기를 할머니도 하늘나라에서 함께 빌어주세요.
할머니, 며칠 지나면 입춘이에요. 입춘에 날이 청명하고 구름이 적으면 그해 곡식이 잘 여문다면서요. 작년 봄에는 지나온 겨울이 예년보다 무척 따듯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밭에서 만난 벌레들도 참 많았어요. 서울이고 홍천이고 매미나방 애벌레가 성해서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았지요. 여름날 비도 참말 길었어요. 큰바람도 여러 번 오고요. 아빠는 작년보다 쌀 소출이 반 이상 줄어서 걱정이라셨어요. 꽃가루 날릴 새 없이 세차게 내리는 긴 비 때문에 맺히는 씨알은 적을 수밖에요. 그런 아빠가 종이컵에 커피 타서 드시고 비닐막 쓰시는 거 보면 엄마는 옆에서 혀를 끌끌 차셔요. 여전히 아옹다옹하시면서도 다정히도 지내는 두 분 모습 그려지지요? 올겨울 너무 춥다 싶어도, 그래 이렇게 추워야 겨울이지! 생각하며 지내고 있답니다.
편지 다 쓰고 나면 올해 밭에서 만날 씨앗들 어디다 심고 언제 만날지 밭 그림을 그려보려고 해요. 작년에 심고 씨앗도 넉넉히 받아둔 얼룩토마토는 필요한 이웃들과 나누려고요. 따뜻했던 겨울, 스산한 여름 날씨로 어려움 겪었던 농부님들 생각하면서, 그런 중에 받은 귀한 토박이 씨앗들이니 더 고마운 마음으로 만나게 돼요. 기회가 된다면 우리 마을에서 하늘땅살이 하는 할머니들 만나 토박이 씨앗과 어우러져 살아온 당신 삶 이야기 듣고 배우고 기록하는 시간도 갖고 싶어요.
아차, 편지 줄이며 반가운 소식 더해요. 마냥 막내였던 손녀가 지난주에 혼인을 했답니다. 함께 하늘땅살이 하는 삶 바라며 함께 걷자고, 손 꼭 맞잡았어요. 마을 이웃들에게 축하도 한껏 받고요. 작년에 언니들과 함께 거둔 들깨 넣은 떡 맞추고 이웃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나누었어요. 할머니도 맛보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요. 저쪽 작은 방 문 열면 할머니 집 이불 냄새가 폴폴 나요. 이불에 스며들어 빠지지 않던 메주 냄새도요. 밭 그림 그리고 씨앗도 나누면 어느새 올해 장 담글 날이 성큼 오겠지요. 그때 하늘 기운 항아리에 가득히 담아주세요. 할머니 떠올리며 오늘도 정성껏 하늘땅살이할게요.
천다연
땅끝 마을 해남에서 나고 자라면서 바다 냄새 맡고 황토빛 흙살 만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에서 청년들과 마을을 배움터 삼아 문화 기획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다가, 마을 ‘활동’보다 마을 ‘관계’를 그리워하던 중 밝은누리 공동체를 만났다. 강원도 홍천 밝은누리움터 삼일학림 학생으로 공부하면서 하늘땅살이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