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엔 비건 카페, 주일엔 교회 ‘동네책빵, 괜찮아’
[366호 사람과 상황] ‘교회, 흩어지는 사람들’ 최주광 목사
책과 빵을 파는 비건 카페 ‘동네책빵, 괜찮아’는 “서로의 괜찮음을 묻고 기대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기를 꿈꾼다.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에 자리한 이 카페는, 동네 사람들이 편안하게 와서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다 돌아가는 ‘안전한 공간’을 지향한다. 목수·인테리어 일을 생업으로 하는 최주광 목사가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평일과 토요일에는 비건 빵과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로 쓰이다가 일요일에는 ‘교회, 흩어지는 사람들’의 예배 처소로 바뀐다. 3월 31일 선선한 오후에 ‘동네책빵, 괜찮아’를 찾았다. 카페와 교회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이번 커버스토리 ‘교회라는 공간’과 관련해서도 여러모로 성찰할 지점이 있을 것 같았다. 최주광 목사가 웃는 얼굴로 맞아 주었다.
책과 사람이 있는 안전한 공간
‘동네책빵, 괜찮아’는 2020년 7월, 여러 필요가 맞물려져서 만들어졌다. 최주광 목사가 목수·인테리어 일로 세 자녀까지 포함한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매달 수입이 들쑥날쑥했다. 요청이 와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명절이 끼거나 일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면 일하는 날이 한 달에 열흘도 채 안 됐다. 마침 ‘교회, 흩어지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할 공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카페 공간이 있으면 수익이 많이 나오지는 않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벌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고민하면서 김포 주변을 탐색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마땅한 장소로 찾은 곳이 지금의 자리다. ‘동네책빵, 괜찮아’ 위치는 사우역과 가깝지만, 도로변이 아닌 주택가에 있다. 장사하기에는 다소 어정쩡해 보일 수도 있으나 최 목사는 상권을 분석했을 때 ‘점심 장사는 되겠다’고 판단했다. 근처에 김포시청이 자리해있고, 사무실도 제법 있었다. 예상대로 점심때가 손님을 받고 배달하느라 가장 바쁘다고 했다. 저녁에는 독서 모임, 사진 찍기 강좌, 비건 쿠킹 클래스, 기타 레슨 등으로 공간을 활용한다.
한편, 주택가라는 위치는 지역사회와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교회, 흩어지는 사람들’의 지향점과도 일치했다. 최 목사는 카페와 교회는 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물로서의 교회’ 역할도 하기 때문이란다. ‘동네책빵, 괜찮아’라는 이름을 뜯어보면, 이 공간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동네에 들어와 있는 공간으로서 ‘동네’라고 했고, 최 목사는 책을 좋아하고 아내는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하니 ‘책빵’이라고 썼다. 그리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아가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마음에 ‘동네책빵, 괜찮아’라고 이름 붙였다.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책을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방문한다면, 어느 정도 신뢰 관계를 쌓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주광 목사는 자신이 소장한 책을 비치해 카페에서 읽거나 빌려 갈 수 있게 했고, 판매 서적은 커피 한잔하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책 위주로 구성했다. 이곳에 있는 책은 주로 그래픽노블, 에세이, 인문학,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다. 앞으로는 그림이 있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은 ‘그래픽노블’ 위주로 책을 들여올 계획이라고 했다.
이곳 인테리어는 최주광 목사가 손수 진행했다. ‘책과 빵이 있는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 걸맞게 ‘초등학교 교실’ 느낌을 주려 했다. 그는 초등학교 마룻바닥에 쓰이는 것과 같은 자재로 바닥을 깔았고, 남은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 노출콘크리트 벽면은 칠판을 연상하는 녹색 계통으로 칠했다. 쉽게 질리지 않는 색깔이기도 하고, 비건 카페 정체성과도 어울린다. 기둥에는 자작나무를 붙여 보기에도 예쁘고 책을 꽂는 용도로도 쓸 수 있게 했다. 한쪽 벽에는 벽테이블을 설치해 추천 도서를 안내하는데, 전반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공간 구성이다.
‘동네책빵, 괜찮아’는 비건 카페다. 유제품·계란을 비롯해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메뉴가 비건에 맞춰져 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것을 지향하고, 종이컵 같은 용기도 자연 분해가 잘 이뤄지는 제품을 사용한다. 재료도 그렇고 용기도 그렇고 아무래도 단가가 조금 비싼 편이다. 아직은 ‘비건 카페’라는 사실을 모르고 오는 사람이 많아서 처음 오는 손님에게는 이해를 구한다. 비건과 관련한 안내를 듣고 난 이후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이게 된 손님도 여럿 있다고 했다.
최주광 목사는 녹색당 당원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성경을 다시 읽고 사회에도 눈길을 돌려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불평등 문제를 살피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쏟게 됐다. 불평등을 겪는 존재는 사람만이 아닌지라, 이것이 착취당하는 환경을 향한 관심, 동물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당장에 비건의 삶을 선택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지구를 지키는 실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일환으로 녹색당에 마음을 보태고 비건 카페도 하게 된 것이다. 비건 카페가 없는 김포에서 비건 시장을 개척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공동체
‘교회, 흩어지는 사람들’은 2016년에 출발한 교회 공동체다. 최 목사가 세월호를 기점으로 제도권 교회를 뛰쳐나온 후, 한국에 있는 거의 모든 교단의 교회를 탐방하고 나서 시작했다. 그는 본래 북한 선교를 준비하면서 제도 교회에서 교역자로 사역하고 있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큰 슬픔을 느꼈다. 자신이 사랑하는 교회가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볼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다수 교회는 세월호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했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교회의 관심 영역에서 밀려난 사람들, 제도 유지를 위해 필요한 사람만 챙기는 한국교회 모습을 보게 됐다. 교회가 사람들을 도구화하는 것만 같았다. 애써 외면해온 모습들이 세월호를 기점으로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2014년 마지막 주 일산 한 교회 예배에 참석한 이후로 더 이상 제도권 교회에 가지 않는다. 그 교회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영상을 틀었는데,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여러 사건 사고를 언급한 후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식으로 끝을 맺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선교한답시고 나가서 이런 교회를 하나 더 세우는 일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최 목사는 ‘교회란 무엇인가’ 질문하며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회, 메노나이트, 가정 교회 등 다른 교단들의 다양한 교회를 탐방하고 다녔다. 아버지가 목사이기는 했지만 기독교대한감리회 배경에서 계속 성장했던 탓에, 한국에는 감리교와 장로교만 있는 줄 알았다. 교회를 탐방하면서 제도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다양한 그리스도교 전통이 다름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본질을 붙들고 나아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모이기만 힘쓰는 제도 교회에서 나와 ‘교회가 또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여러 차례 되물은 그는, ‘믿음을 찾아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시작하기로 했다. 잘 모이는 교회가 아닌 잘 흩어지는 교회를 해보기로 했다. 사도행전에서 부흥하던 예루살렘교회를 성령께서 흩으셨듯, ‘교회는 잘 흩어지는 것이 본질이겠구나’ 싶었다. 사후 천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존재로서 모인 이들이 서로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배우고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모이는 것은 잘 흩어지기 위함인데, 그러려면 서로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자유롭게 꺼내놓으면서 상대 모습을 존중하는 ‘안전한 교회’여야 했다. 비건 카페 ‘동네책빵, 괜찮아’가 내세운 모토와 맞물리는 지점이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려면 사람이 많이 모여서는 안 될 것 같았고, 작은 교회는 목회자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우니 이중직으로 목회를 해나가기로 했다. 2019년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해 가장으로서 책임을 감당하고자 몇 달간 예배를 멈춘 적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지금까지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최주광 목사에게 목회란 ‘상호 돌봄’이다. 교회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돌봄과 섬김이 필요하다. 이는 제도 교회처럼 목회자나 특정한 사람이 주체로 나서서 하는 일이 아니다. 각자가 가진 달란트를 통해 ‘상호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다. 최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고 성서를 해석하고 사람을 위로하는 목회자로서의 달란트를 구성원 한 사람 몫으로 내어놓는다. 각 사람은 자신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로 섬길 따름이다. 그는 예수를 ‘사이-존재’로 정의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하면 예수의 모습을 발견해나갈 수 있다.
예배 순서는 ‘웨슬리 주일예배서’를 토대로 만들었다. 목사가 일방적으로 강론하는 설교 시간은 없다. ‘교회, 흩어지는 사람들’에는 ‘공동체의 해석’이라고 부르는, 본문을 읽고 구성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최 목사가 전통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온 본문인지 설명하고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 서 있는 삶의 자리가 다르면 읽기도 달라지니, 매우 다채롭게 해석되는 풍성한 성경 이야기와 만나는 시간이라고 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 중 한 사람의 말에 다 같이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잘 모이는 교회보다 잘 흩어지는 교회를 추구하다 보니, 주일에 딱 한 번 모인다. ‘주일에 한 번 모이는 신앙 공동체를 잘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오히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비대면 예배로 전환하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목회자 의존적이지도 않다 보니, 비대면 권고를 처음 받았을 때 혼란을 경험한 제도 교회 모습과 달리 문제가 발생할 지점이 없었다. ‘교회, 흩어지는 사람들’ 구성원들은 ‘사람들 사이의 교회’, 비조직적 공동체로서의 연결을 추구하고 있다.
건물도 교회의 중요한 요소
‘동네책빵, 괜찮아’를 시작하기 전까지, ‘교회, 흩어지는 사람들’은 공간이 없는 작은 교회로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 다른 단체의 공간을 빌리기도 하고, 가정에서 모인 적도 있었다. 떠돌아다니다 보니, 그 장소였기 때문에 모였던 사람들이 장소가 바뀌자 떠나가는 일이 반복됐다. 에너지 소모가 적지 않았다. 결국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최주광 목사는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건물을 갖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 모른다고 했다. 공동체를 이룰 때 ‘건물로서의 교회’가 갖는 역할도 중요하다.
교회 공간을 놓고 이야기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최 목사에게 목수·인테리어 일을 하는 입장에서 한국교회 예배당의 공간 구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많은 이들이 ‘교회 공간은 이래야만 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천장은 하얀색으로 쳐야 하고, 십자가가 달려야 하고, 강대상이 놓여야 하고, 필경대가 있어야 한다. 정해진 형식에만 맞추는 것이다. 교회 공간을 채울 때 개별 교회의 특징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가 교회는 전통 교회 공간과 다른데도, 특정 형식에 맞춰 공간을 꾸미는 곳이 적지 않다고 했다. 최주광 목사가 생각할 때 교회 공간을 구성할 때 중요한 것은 그 교회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이다. 그렇기에 교회 공간을 디자인할 때 교인들과 의견을 공유하는 일이 중요하다.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 교회만의 상징, 그 공간에 맞는 배치와 구성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한마디로 교회 공간은 모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곳이다. 최 목사는 교회의 중요한 요소로서 건물을 가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행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