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예배당

[366호 커버스토리]

2021-04-30     서영처

그동안 산사나 수도원, 성당을 순례하는 책들은 많이 출간되었지만 교회 안팎을 순례하는 책은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기독교 관련 교양서는 일반 독자가 두루 공감할 만한 보편적 내용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해서일까. 지난해 출간한 《예배당 순례》는 이런 생각에서 썼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는 교회 밖의 것에 관대하지 못하고 아집과 독선, 편견에 사로잡혀 시야가 넓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어느 정도 있고 내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장거리 운전을 하지 못해 전국 예배당을 순례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막상 길을 나서면 삼천리 방방곡곡마다 오래된 예배당이 솥단지처럼 앉혀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골짜기나 과수원 한가운데, 또는 경사진 산록에 서 있는 예배당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목적지로 가기 바빠 매번 지나쳤다. 진정 순례해야 할 곳은 유럽의 화려한 대성당이 아니라 들꽃처럼 피어있는 우리의 이름 없는 예배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알고 보면 저곳에도 눈물겨운 믿음의 역사와 신앙인들 이야기가 만만치 않게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고향 예배당과 유년 시절

《예배당 순례》 원고를 쓰는 내내, 기억상자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고향 예배당의 장면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크지 않은 교회였지만 아이들이 넘쳐 시끌벅적했고 유년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학생회 활동이 활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는 몇 차례 갈라지고 교인들이 흩어져 나가고는 했지만 그곳에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으니, 유년의 예배당은 내게 소우주이며 축소된 천국이나 다름없다.

옛 예배당의 기억 중에는 화문석으로 짠 방석과 실내화가 정갈하게 놓여있던 기도실과 그곳에서 처음 본 밀레의 그림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난생처음 들어가 본 기도실은 어둡고 차가우며 깨끗하여 마치 성소에 들어온 것 같았다. 높이 걸린 그림에서는 가난한 부부가 어두워가는 밭에서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자세히 볼수록 그들의 발치에 놓인 자루에는 죽은 아이가 담겨 있고, 아이를 묻기 전 부부가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모습 같았다. 당시 시골 사람들은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죽는 일이 흔한 때라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만종〉이라고 했다. 서너 살 무렵이었지만 표현할 수 없는 무거움이 느껴졌다. 이 슬픈 영혼들은 어둠이 내리는 넓은 들 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유년주일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말씀을 대신하는 그림이었다. 경험의 세계 없이도 아이의 눈은 인간이라는 왜소한 존재와 삶의 비애를 그대로 뚫어보았던 것 같다.

밀레(Millet, Jean-François)의 〈만종(El Ángelus)〉.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유년주일학교와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성경공부 외에도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 합창과 연극, 율동 시간 등이 있었다.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합창을 할 때면 우리 앞에 놓인 깊고 푸른 바다를 느꼈다. 예배당이 방주처럼 넓은 대양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었다. 작은 예배당이었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이 속에서 무한과 초월을 꿈꾸었다. 또 성경 암송대회와 퀴즈대회가 열렸고 이런 일들을 통해 각자의 재능과 관심사를 알게 되었다. 나는 연말 시상식에서 받은 두꺼운 노트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까지도 여기에다 일기를 썼다.

예배당은 공부방이 되기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학생회 선배들이 후배들을 모아 영어 기초, 국어 수사법 같은 것을 정리해주었다. 중3 선배가 우리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가르쳤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도 교회의 허락을 받아 합판을 사서 책상을 만들어, 우리들을 따로 불러 수학 공부를 시켰다. 이 일을 주도한 중학생 선배를 교인들은 선생이라 부르며 어른으로 대우했다. 감사의 뜻이 담긴 호칭이었다. 이외에도 학생회에서는 마을 청소, 꽃길 가꾸기, 노방전도 운동 등을 펼쳤다.

교인들은 대부분 근면했으며 자녀 교육에 열성이었다. 면 소재지의 시골 교회였지만 대학 가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진취적 사고와 근면성 덕분에 대부분 국가 주도 경제발전에 편승해 일반인들보다 나은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그 시절 교회는 나름의 이상을 추구했고 믿음의 공동체를 유지했다. 1960~1970년대는 타협이나 중도가 통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했다. 당대 대표적인 사회 구호라 할 수 있는 ‘하면 된다’ ‘잘 살아 보세’와 같이 예수 믿는 일도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매진하는 방식이었다. 신앙을 지키는 일은 전통적 충절과도 통하는 것이라 믿었다.

교인들의 생활 중심에는 늘 예배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일예배 외에도 수요예배와 구역예배, 금요기도회가 있었고,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맺었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삶이 윤택해지면서 신앙이 삶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그곳에서 함께 자란 선후배들은 대부분 대도시로 나와 바쁘게 살아가느라 연락도 되지 않고 서너 명만 고향에 남아 쇠퇴해가는 교회를 지키고 있다. 현대인의 삶이 그렇듯이 어느새 신앙보다는 다른 것이 삶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 형제들은 늙은 아버지가 홀로 계신 고향집에 순번을 정해 주말마다 돌아가며 방문한다. 아버지를 모시고 주일예배에 참석하면 1970년대에 신축한 예배당도 교인이 줄어 썰렁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옛 예배당은 무너지고 내려앉아 형체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폐허 위에서도 은행나무는 예전의 자리에 그대로 서서 순수하던 시절의 빛을 희미하게나마 비춰주고 있다. 고향의 교회가 쇠퇴한 한국교회를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개축과 재건축으로 사라진 옛 예배당들

순례를 다니며 확인한 것은 옛 교인들이 흙벽돌을 찧어 지은 낡은 예배당과 종각을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보존이라는 이름 아래 개축과 재건축이 이루어져서 옛 자취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옥 예배당과 표준화된 종각이 세워져 있거나 아니면 옛것은 없애버려 그곳에 번듯하고 화려한 새 건물이 들어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새 하늘’ ‘새 땅’ ‘새 사람’을 문자 그대로 건축에도 적용해 옛것을 철저히 버렸다.

가난의 흔적을 지우는 바람에 여러 세대를 포괄하는 기독교 역사의 토대가 단절되고, 기억해야 할 기독교 문화 기반들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위 세대의 신앙을 다음 세대와 그 아래 세대는 알 길이 없어졌다. 앞 세대는 사라져도 교회의 전통 속에는 살아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런 정체성 위기는 계속 진행 중이다. 지금이라도 지나간 시간과 망각의 그늘 속에 묻혀있는 빛을 산 채로 건져내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해외여행이 보편화하면서 유럽의 명소와 유적을 관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전국 각지에 숨겨져 있는 우리 예배당을 찾아보고 이 예배당이 지켜온 유구한 역사와 정신을 살펴보는 운동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기독교의 침체와 위기 속에서 코로나 사태는 한국교회에 내적 성찰을 위한 의미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대성당들처럼 텅 빈 건축물로 남지 않으려면 기독교가 이 땅에 올 때 보여주었던 처음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년의 예배당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기억상자를 열면 지금도 금모래 반짝이는 강과 측백나무 울타리, 키 큰 나무들이 보이고 아이들의 정겨운 찬송 소리가 들린다. 그곳은 고치 속과도 같은 곳이었지만 세상을 향해 눈을 뜰 수 있는 창문을 열어주었다. 또 그곳은 커다란 날개의 보호 아래서 일생의 가장 평온한 시간을 보낸 둥지이기도 했다. 유년의 예배당에서 뜻도 모르는 채 외웠던 다윗과 솔로몬의 시편들을 지금도 이따금 읊곤 한다. 세월이 갈수록 구절구절 담긴 뜻이 뼛속 깊이 사무친다.

시간적 거리든 공간적 거리든 멀어질수록 그곳에서의 기억들은 퇴색되지 않고 더 생생해진다. 워즈워스 시처럼 미래를 위해 과거의 영혼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내 속에 숨은 나를 발견해주고 나를 만들어준 곳, 최선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곳, 삶의 무게에 지칠 때마다 유년의 예배당이 그리워진다.

서영처
시인,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시집 《말뚝에 묶인 피아노》,  문화 연구서 《노래의 시대》를 비롯해 여러 저작이 있으며, 지난해 9월 우리나라의 옛 예배당이 품고 있는 문화와 역사를 돌아보는 《예배당 순례》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