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을 읽는 시간은 마음을 챙기는 시간이다

[366호 책과 사람] 《마음챙김의 인문학》 저자 임자헌 한문번역가

2021-04-30     임자헌

옛사람들, 특히 역사나 국어 수업 때 들어봤을 법한 선현들의 글을 실제로 읽어볼 기회는 많지 않다. 더구나 옛글이 지금의 글과 다르고, 번역본은 있지만 고어투로 쓰였기 때문에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임자헌 한문번역가는 한문 고전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 역사문헌이나 옛글을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는 작업이다. 그는 옛글들이 그 외투가 낡았을 뿐 내용은 지금도 가치 있고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는 2월, 고전을 통해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과 지혜를 읽어내는 《마음챙김의 인문학》(포르체)을 출간했다.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닦은 정도전이 쓴 글로 시작하여 조선 후기 개혁과 대통합을 실현한 군주 정조가 쓴 글까지, 한국 고전 40편을 담아낸 이 책은 우리 삶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임자헌 한문번역가를 4월 1일 서울 마포구 한 스터디룸에서 만났다. 그는 요즘도 옛글을 현대어로 번역하느라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한국 고전의 매력, 옛글을 살펴보며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비롯해 《마음챙김의 인문학》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2014년 첫 번째로 집필하신 책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행성B)부터 올해 《마음챙김의 인문학》까지 벌써 7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이번 신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책인가요?

KBS1 라디오에서 매주 방송을 했어요. 중국 고전과 한국 고전을 격주로 이야기했는데, 그중 중국 고전 분량을 모아 낸 책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나무의철학)이고, 한국 고전에서 고른 게 《마음챙김의 인문학》이에요. 방송을 3년쯤 했으니까 이 책을 집필하기까지 꽤 오래 걸린 거죠.

‘마음챙김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님은 이 책을 쓰면서 마음을 챙기고, 위로받았던 경험이 있었나요?

옛글을 읽는 시간은 언제나 마음을 챙기고 위로받는 시간이에요. 선현들은 모두 철학을 업으로 공부했던 사람들이라 사유의 깊이가 대단하죠. 대다수 그 사유를 장황하지 않게 일상 속에서 풀어냅니다. 읽다 보면 잠잠해지고 고요해지고 내 시간과 내 삶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됩니다. 유학의 핵심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에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나아진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과업이죠. 공자는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었어요. 혼란한 세상을 내가 반드시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품고 움직인 게 아니라 그저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었죠.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자신은 최선을 다해 공부하며 그 공부로 세상에 도움이 되려고 힘 다하는 데까지 버둥거리며 애썼어요. 유학자들 글을 보면 해야 할 일을 할 뿐 결과를 손에 쥐려 집착하지 않아요. 이런 글들을 읽으며 내 공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이 책에는 개인의 마음을 챙기는 글도 있고, 사회와 공동체의 마음을 챙기는 글도 있어요. 개인의 성숙과 사회를 향한 꿈이 공존하는 것이죠.

작가님은 고전 작품들을 공부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달라졌나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웃음) 역사를 공부하면서 세상 보는 눈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세상과 역사를 짧은 호흡으로 보면 자칫 인간과 사회에 염증을 느끼게 될 수도 있어요.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며 빚어온 역사는 아름답지 않거든요. 힘을 가진 자들이 어리석은 모습으로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애쓰며 일으킨 문제들이 역사를 온통 메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조금 멀리서 보면 역사는 약자들의 승리로 흘러가는 면도 있어요. 왕정이 폐지되고, 조금씩 평등이라는 개념이 보편적 가치가 되어가고, 인권이 받아들여지고요. 역사를 공부하며 그런 것들을 봐요. 이런 점을 하나하나 톺아볼 수 있는 것은 제 공부의 큰 즐거움이에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책의 구성을 보면 ‘봄-여름-가을-겨울’ 계절 흐름대로 쓰셨습니다. 계절에 관한 고전 작품들이 실린 것이 인상적이에요. 특히 요즘 꽃이 활짝 피는 시기라 그런지 ‘봄’을 이야기하는 시를 흥미롭게 봤습니다.

옛날 선인들을 보면, 지금 우리는 풍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없이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풍요로운 것들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때로는 부족하고 유한할 때비로소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명(銘), 사물에 새긴 선비의 마음》(한국고전번역원)을 쓰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는 소비의 시대에 살죠. 유행하는 제품을 보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쇼핑을 막 즐기곤 하잖아요. 그런데 옛날에는 물건 하나 갖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래서 내 곁에 있는 사물의 소중함을 알죠. ‘銘(명)’이란 그 사물에 관련해서 내 생각이나 결심을 새기는 건데요, 이렇게 하면 그 물건은 내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겠죠. 해소의 도구가 아니라 손때가 묻을수록 더 소중한 벗이 되었을 거예요. 이 문체로 쓰인 글들을 보면서 물건 하나에도 인생을 눌러 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어요.우리는 가끔 계절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껴요. 그런데 그건 한 걸음도 꾹꾹 눌러 걸어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거든요. 시간에 쫓기며 마구 달리면서 살아가니까요. 내가 지나온 걸음을 돌아보면서 내 걸음이 어땠는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어떤지 차분히 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는 갖지 못하거든요.

율곡 이이가 독서의 자세를 말할 때 ‘함영’(涵泳)이라고 표현했어요. 물속에서 팔다리를 놀리며 떠올랐다 잠겼다 하는 것처럼 책 내용을 이해하고 세상을 호흡하며 책과 대화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죠. 작가님도 추천하고 싶은 독서 태도가 있는지요.

고전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마음에 새기는 말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이에요. 옛것도 지금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면 낡은 것은 없어요. 인간은 오류투성이라서 과거의 지혜 없이는 오류를 극복해나갈 수 없거든요. 우리는 새로운 것만 좋아하지만, 온고지신해야만 비용을 덜 지불하면서 미래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인간이 매우 보편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특별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다 비슷하거든요. 배고프면 밥 먹어야 하고, 혼자 살면 외롭고, 아프면 서럽고, 그게 모든 인간이 겪는 일이죠. 보편성의 영역은 ‘온고’, 개인의 특수성은 ‘지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고’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각자의 ‘지신’을 꽃피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겠죠. ‘파격’이라는 말도 좋아하는데, 그 말은 격을 파한다는 뜻이거든요. 즉 격이 없으면 깰 것도 없다는 말이에요. 일단 인간 사회의 어떤 틀, 세상에서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학습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할 수 있는 일이죠. 이전 사람들이 오랜 경험과 고민을 통해 만들어놓은 각종 사회적 제도와 이론들을 무시한 채 새로운 것만을 얘기하는 건 교만한 태도인 것 같아요.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엔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방법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시간적 간격이 있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접하다 보면 현실감각을 놓치게 되진 않나요?

그런 어려움과 부작용에 빠지지 않으려면 작품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눈이 필요해요. 작품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건 그런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시대를 뚫고 나온 고전은 그렇게 나약한 존재가 아니죠. 천년의 세월이 지나서도 전해지는 현인의 그 지혜는 우리 정도 평범한 사람들이 마구 질문을 던져도 쉽게 깨지지 않아요. 고전을 대할 때 그 내용으로 나를 누른다고 생각하기보다 이 사람은 당시에 어떤 격을 배웠고 어떻게 파했을지 살펴보는 게 중요해요. 당연하다고 예단하지 않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여기면 그 작품이 내게 건네줄 지혜가 하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책에 등장한 고전 작품들은 다 작가님이 번역한 것이죠? 현대어와 일상어를 과감하게 사용한 표현이 몇 개 보였어요. 장흥효의 시 내용 중에는 “쪼잔한 꼰대”, 무시옹의 잠(훈계하는 뜻을 적은 글의 형식)에는 “정우성이 잘생긴 것이야 … 고든 램지가 만든 음식이야”라는 파격(?)적인 표현도 나옵니다.

그렇게 번역한 이유는 고전을 독자들이 별다른 주석 없이 바로 속도감 있게 읽어내도록 하기 위함이었어요. 작품 내용에 주석을 달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건 학자가 논문에서 할 일이죠. 제가 만약에 그렇게 책을 쓰면 독자들은 제 책을 읽다가 졸려 하겠죠.(웃음)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성현들 모습이 너무 엄숙하다고 느껴요. 더러운 세상에 먼지 폭풍이 몰려와도 일 점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하루에 욕망에 휩싸일 때가 얼마큼이고, 외로워하고 절망할 때가 몇 번인데요. 하루에도 다양한 감정을 수십 번씩 경험하면서 망가지고 일어나면서 사는데요. 고전 속 인물들이 그다지 크게 웃지도 않고 크게 슬퍼하지도 않으면서 지혜를 줄 수 있는 그런 행적과 글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해요. 그냥 웃는 사람보다 더 크게 웃고, 아파하는 사람보다 더 크게 아파하고 분노했던 사람이어야, 그 들끓는 마음이 있어야 세상을 위해 나가겠다고 결심할 것 같아요. 제가 엄숙주의를 벗겨내고 글을 쓰려고 노력했던 것은 고전 속 인물들을 보면서 이들이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았는지 보였기 때문이에요. 고전을 깊고 대단한 무언가라고 생각하기보단 당장 오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글로 바로 가지고 오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이 제 번역을 과감하게 만드는 거죠.

작가님에게 성경은 어떻게 읽히는지도 궁금합니다.

세계관을 공부하면서부터 성경을 읽는 방식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당시 배경이나 맥락을 아는 것도 중요하죠.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니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얘기도 많이 하는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에게도 궁금한 건 질문해도 되거든요. 구약시대 신탁은 그야말로 ‘신의 말’이었겠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했을 때 아브라함이 갔잖아요. 당시 신의 개념으로 신탁이 내렸는데 안 갈 사람이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그때부터 시작해서 질문해도 되고 반항해도 되는, 함께하는 존재인 신이라는 개념을 아브라함에게 가르쳐주느라 애썼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삭을 바칠 때도 시간을 주잖아요. 이삭을 바치는지 아닌지 보려고 그랬던 게 아닌 것 같아요. 아브라함이 실컷 질문할 수 있게, 왜 내게 이렇게 하는지 물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당시까지만 해도 신이란 거대한 신전이 있으면 거기에 임하는 존재로 여겨졌잖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후에 신전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나타나고 언제나 함께하는 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신 거죠. 당시로는 파격적인 신 개념이었을 거예요. 저는 하나님을 정말 내 일상에서 동행하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존재로 받아들이는지 생각하면서 성경을 봐요. 모든 게 정해져 있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많은 질문을 건네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선 주변 지식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공부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지혜를 주셨겠지만 지금은 그런 핑계를 대기에는 찾을 수 있는 자료가 많잖아요. 조금 더 부지런히 공부해야겠죠.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상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고전 작품이 있나요?

음, 제가 쓴 책들?(웃음) 제가 쓴 책을 보시면 여러 고전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집필하신 책도 꽤 많은데요.

동양고전을 보고 싶으시다면 《공자를 버린 논어》(루페)와 《오늘을 읽는 맹자》(루페)를 보면 좋을 것 같고요. 오늘의 시선으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고민하신다면 《10가지 키워드로 읽는 시민을 위한 조선사》(메디치미디어)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고전을 현대적으로 이해하고 오늘의 지혜로 보기 원하신다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와 《마음챙김의 인문학》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이나 주제가 있나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고전을 쉬운 입말, 그러니까 아주 친숙한 현대어로 번역하는 일을 계속 해나갈 생각이에요. 고전에 접근하기가 조금 더 쉬워지고, 사람들이 보기 편해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리고 유학에 관해서도 쓰고 싶어요. 유학이 가지고 있는 오해를 조금 새로운 관점에서 해소해주는 책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사료를 보고 있으면 여기서 얻은 것들로 소설을 써보고 싶기도 해요. 앞으로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글을 써야겠네요.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