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내리는 비를 맞지 않도록
[367호 이슈 톺아보기]
미얀마 난민 선교에서 만난 사람들
2011년 가을,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의 청년들과 함께 미얀마 난민 단기선교를 떠났습니다. 교회의 연간 일정 중 하나였고,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저는 일정을 잘 해내는 역할이면 충분했지요.
‘미얀마 난민 선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금 독특한 이 선교는 우리를 미얀마가 아닌 ‘태국’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치앙마이까지 비행기로 6시간 30분, 다시 승합차로 8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메솟’(Mae Sot)이라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매우 커졌지만 2011년만 해도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버마’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미얀마’에는 130개가 넘는 소수 부족이 한데 엉켜 살고 있습니다. ‘버마족’이 70% 이상이라고는 하지만, 들여다보면 수치상으로 계산할 수 없는 복잡함이 많습니다. 복잡한 사회구조와 통제·관리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부족 간 전쟁이그치지 않기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난민 발생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미얀마 군부의 공격을 피해 주변 나라들로 흩어진 사람들은 새로운 터전으로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난민촌’에 들어가고 이후 제3국으로의 망명이 가능한 난민 지위를 얻게 된 사람이 태국에만 수십만 명이 있었습니다.
난민촌에 거처를 마련한 사람이면 그나마 형편이 괜찮은 편입니다. 난민촌에 들어가지 못해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이 국경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남성은 노동착취로, 여성은 성 착취로, 아이들은 버려짐으로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이상의 위험에 내쫓긴 사람들도 넘쳐났습니다. 태국과 도시로부터 옮겨온 쓰레기 산을 뒤지면서 하루에 20밧(한화로 약 700원)을 얻으면 괜찮은 벌이인 사람, 들에 다니는 쥐도 식용으로 먹는 아이, 자기 아이의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다가왔던 13살의 엄마. 그들을 메솟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이 사는 땅은 태국이었지만, 국적을 물으면 ‘미얀마’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난민이라고 부르지만, 현실은 난민보다 훨씬 못한 환경에서 지내는 피란민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공적 증명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었지요.
꿈꾸는 아이들, 저릿한 마음
메솟 지역에 ‘난민촌’이 형성되고 피난민들이 들어와 살게 된 지도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미얀마에 있는 자기 터전을 떠나 국경지대에서 불안한 생활을 하면서 한 세대가 떠났고, 한 세대가 태어났습니다. 현재 이 지역에 있는 수많은 10대와 20대는 국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이들은 미얀마어도 잘 못하고, 태국어도 잘 못합니다.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기선교팀에서 초기에 했다가 이후 하지 않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어린아이들에게 미술 도구를 나누어주고 ‘꿈’을 그려보게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사용해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과 그림을 그렸고, 이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보여주었던 그림들은 ‘파일럿’ ‘가수’ ‘부자’ ‘군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한구석이 아팠습니다. 어떤 도움도 없이 자란다면 아이들이 꿈꾸는 모든 것은 한낱 종이에 그려진 그림에 불과할 테니까요. 출생 증명조차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이 태반이었습니다. 학교는 생각할 수도 없는 현실에 머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당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 하늘을 향해 많이 울었습니다. 그 무엇도 해줄 수 없어 무기력을 느꼈고 이런 상황 속에 아이들을 두신 하늘이 매정했습니다. 헤어지면 다시 오겠다고, 다음에는 학교를 세울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곳 ‘까삐반’이라 불렸던 4000여 명이 살던 미얀마 피난민 마을은 화재로 사라졌습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의 꿈도 함께.
다시 만난 사람들
2012년 여름, ‘다시 오겠다’라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저와 약속했던 아이는 교회를 떠나지 않겠다는 또 다른 약속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메솟 외곽의 쓰레기 마을을 돌아다니며 의료와 다양한 봉사를 함께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여전히 서툴렀고, 반복되는 단어와 몸짓으로나마 대화도 아닌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에 만족했습니다.
보통의 동남아 날씨가 그렇듯, 현장을 돌보던 아침과는 달리 점심 즈음엔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나누어줄 물건들을 대충 치워놓았지만 정작 우리는 미처 피할 곳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지요. 그때 누군가 준비한 우비 아래 서넛이 모였습니다. 내리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서로 젖고 헝클어진 모습에 키득키득 웃었지요.
작은 우비 하나에 서넛이 모여 비를 피하면서 문득, 제게 주어진 삶도 이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준비한 우비를 펼치고 곁을 내주어 비를 피하게 했던 그 아이처럼, 저 또한 누군가의 비 맞음을 피하게 하는 삶이기를 바랐습니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는 이토록 오래, 그리고 깊이 마음에 품게 될 줄 몰랐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그곳에서 그 사람들을 만날 용기가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눈물 나는 마음이 생길 줄 알았다면, 어쩌면 피하고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나 하나 존재하기도 버거운 현실에 누구 하나를 더 짊어져야 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쪽이 수월할 테니까요.
그 사람들과 그곳에 대한 마음은 훌쩍 자랐습니다. 처음 가르치고 함께 노래했던 제자들이 교회를 개척한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고, 함께 우비를 썼던 아이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정을 꾸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누군가를 돕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저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하나님 나라 길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지요. 지금 이 시각 어딘가에서 공평과 정의를 기대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서로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국경 지역 소식
2021년 2월 1일, 쿠데타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미얀마의 정치와 내부 복잡한 힘겨루기에 대하여 논할 사람은 못 됩니다. 다만 지금까지 함께했던 친구들, 즉 미얀마 소수 부족과 쫓겨난 난민들 입장에서 사태를 보면, 도시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많습니다. 소수 부족이기에 소외와 불평등을 겪고 배제되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적게 된다면 긴 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진행될 모든 과정과 결과가 아웅산 수치 여사 구명과 특정 정당의 승리만으로 마감되지 않고, 모든 미얀마 국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민주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지난날 만나 함께 울고 웃던 미얀마 사역자들이 이 모든 일에 앞장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합니다. 10여 년 전 처음 만날 때와는 달리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고 미얀마 땅에 공평과 정의를 세우려는 이들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다시 밀려오는 피난민들을 구호하고 어린이들을 돌보며, 수배자와 쫓겨난 이들과 함께하는 사역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빨리 현장에서 당신들과 함께할 날을 기다립니다.
미얀마 현지와 한국을 연결하다
몇 번에 걸쳐 미얀마 현지와 한국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일을 했습니다. 양곤에서 청년들을 이끌며 저항하고 있는 단체의 대표, 양곤에서 직접 시위에 참여한 청년, 새로운 정부의 관계자, 피난민에게 구호품을 전달해주는 포터, 여성들과 아이들을 구호하고자 나선 교수, 수배자를 안전한 태국으로 이송하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 양곤과 국경지대의 교회들. 매주 온라인으로 만나 현지 이야기와 기도 제목을 나누었습니다.
돕겠다고 나선 이들이 거짓 정보에 속지 않기를, 정말 필요한 곳에 돕는 손길이 닿기를, 생명을 살리는 곳에 우리의 도움이 효과적으로 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살아난 이들의 환호와 기쁨의 노래를 함께 듣고 싶었습니다. 이후로도 현장과 연결하고 현장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돕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버틸 힘조차 없는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기댈 곳이 없는 그들에게 어깨 한쪽을 내어주려고 합니다. 언젠가 그들의 손으로 그들의 땅을 경작하고 추수하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그들도 또 다른 누군가의 비 맞음에 우비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작은 사람이며, 특히 미얀마 소수 부족과 난민과 벗 되어 사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