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그리스도교를 재현하는 역사소설들

[367호 에디터의 책꽂이]

2021-05-31     강동석·이범진

어떻게 하면 초기 교회가 활동하던 시공간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라 역사소설 형식으로 1세기 교회와 그리스도교를 둘러싼 세계를 재현하는 책이 연이어 번역 출간되고 있다. 한국 기독 출판계에서 최근 반년 사이에 나온 책만 5권이다. 《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북오븐), 《이야기 뵈뵈》(에클레시아북스), 《예루살렘 함락 후 일주일》(CLC), 《에베소에서 보낸 일주일》(이레서원),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IVP)다.

주로 신약시대 배경에 박식한 학계 전문가들이 집필한 이 책들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보태어 가상·실존 인물을 주인공 삼아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그간 쌓여온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충실한 관찰자로서 당대의 사회·문화와 정치 역학 등을 지루하지 않게 담아내고 있다. 최신 연구 결과와 자료를 반영하면서도 쉽게 썼기에 전공자나 연구가부터 비기독교인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폭이 넓다.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효과적인 이야기가 담긴 교양서로, 교보재 성격이 강하다.

《바울의 공동체 사상 – 문화적 배경으로 본 초기 교회들》(IVP)을 쓴 노장 신학자 로버트 뱅크스의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는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IVP)에 이은 ‘1세기 기독교’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한국 기독 출판계의 역사소설 대중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 이 시리즈는 푸블리우스라는 인물을 내세운다. 1권이 초기 교회의 예배 이야기를 담고, 2권이 초기 교회 회심자의 일상에 일어나는 변화 과정을 살폈다면, 3권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생활과 사회 활동 및 정치 참여 등 삶을 통한 선교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번 편지가 워낙 급박하게 마무리되었음을 깨달았다. 유니아와 내가 로마 대화재 후에 황궁 친위대에게 체포된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이 화재를 그리스도인 탓으로 돌리려는 네로 황제의 시도는 충격적이고 기만적인 권력 행사였다. … 우리 역시 구금된 상태였지만, 그 도시의 한 유력 인사가 나서서 우리의 평판이 좋다고 보증해 준 덕에 가까스로 그런 화는 면할 수 있었다.

… 그가 자신의 궁궐을 더 호사스럽고 인상적으로 꾸미고, 궁정 내 측근들의 쿠데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집착하느라 우리와 같은 새로운 종교 집단을 추가 공격을 가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또 다른 재난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상존했고, 이는 곧 두 번째 박해의 파도가 밀려든다는 예고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곧 ‘새로운 정상’이다.”(《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 12-13쪽)

주목할 점은 ‘1세기 기독교’ 시리즈 2·3권은 일반적인 번역 출간과는 조금 다른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1권은 1980년에 원서가 나왔는데, 2·3권은 각각 2018년 10월, 2020년 12월에 한국에서 먼저 출간됐다. 저자의 구상과 출판사의 제안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세 권 모두 80쪽 전후 분량이고 특징적인 일러스트를 수록하고 있어 다른 저술들과 비교했을 때 대중적으로 가장 친숙하다.

올해 1월 《에베소에서 보낸 일주일》을 펴낸 이레서원은 지난해 1월, 같은 콘셉트의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을 출간한 바 있다. 각각 데이비드 드실바, 벤 위더링턴 3세라는 저명한 신약학자가 저술했다. 전자는 에베소서와 요한계시록을 배경 삼아 황제숭배를 둘러싼 교회의 갈등을 부유한 지주 아민타스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낸다. 후자에서는 노예였다가 자유민이 된 니가노르라는 인물을 내세워 바울이 사역했던 로마령 고린도의 풍습과 일상생활을 보여준다. 당대 사회와 그리스도교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두 권 모두 중간중간 박스를 통해 배경 해설을 곁들인다.

“아민타스는 요한이 이야기해 준, 유대에서 일어난 불행한 반란, 일반적인 전투에서 필사적으로 싸운 후에 일어난 대학살, 마지막 포위 기간에 죄 없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갇혀서 서서히 굶어죽은 일을 생각했다. 에베소 자체의 과거 역사도 떠올리자, 폰투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의 선동에 어떻게 에베소 사람들이 넘어가서 로마의 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거의 한 세기 반이 넘도록 비싼 대가를 치른 일도 생각났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로마를 수호 여신으로, 로마의 통치자들을 자비를 베푸는 신으로 떠받들고, 그들이 평화와 질서, 부와 법치를 가져왔다고 칭송하면서 시체들이 겹겹이 쌓여 제국의 벽돌을 붙이는 회반죽 역할을 한 사실은 못 본 체하고 있었다.”(《에베소에서 보낸 일주일》, 228-229쪽)

올해 5월 출간된 《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는 신약학자 애덤 윈의 저술로, 당대의 사회·정치 현실을 바탕으로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가 어떻게 일주일 만에 처형됐는지를 담았다. 예수와 제자들, 가야바, 빌라도와 가상 인물들의 입장과 정황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여러 학문적 근거에 기반해, 예수 처형에 관여한 이들의 정치적 딜레마와 복잡한 이해관계, 계략을 재구성하여 복음서에 드러난 내용 이면에 존재했던 역사적 진실을 추적한다. 부록으로 짧은 해설 ‘예수의 죽음과 반(反)유대주의의 역사’를 수록했다.

“어떤 면에서 그 전략은 아주 재기 넘쳤다. 이 선지자는 자신의 야심을 공공연히 드러냄으로써 빌라도를 곤경에 빠뜨렸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평화를 위협하는 이 존재를 반드시 제거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해야 그자를 제거하면서도 여전히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 공공연히 그자를 체포하려고 했다가는 폭동의 도화선이 되어 평화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체포해도 망하고 체포 안 해도 망할 판이었다! 아주 잘했군, 선지자여. 빌라도는 또 혼잣말을 했다. 어쩌면 그자는 빌라도가 무력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병력을 동원해 폭력적 대응을 하게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환영과 처형 사이에 선 메시아》, 167-168쪽)

이 책은 북오븐 출판사가 계속해서 선보이고자 하는 ‘북오븐 히스토리컬 픽션’ 시리즈의 1권이다. 책의 뒤 날개를 보면, 《로마에서 보낸 일주일》(A Week in the Life of Rome)을 다음 예정 도서로 계획해놓고 있는데, 이를 포함해 앞서 언급한 이레서원 출간 도서 두 권과 CLC에서 펴낸 《예루살렘 함락 후 일주일》의 원서는 모두 같은 시리즈에 속하는 서적이다. 미국 IVP Academic의 ‘A Week in the Life Series’로 현재까지 총 7권이 출간됐다.

이 분야 고전은 원시 그리스도교를 연구한 세계적인 신학자 게르트 타이센이 쓴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비아)이다. 1986년 원서가 출간되고 2년 뒤인 1988년에 독문학자인 차봉희 한신대 명예교수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됐다가(한국신학연구소 역간), 책이 절판되고 2019년 비아 출판사에서 신약학자인 이진경 협성대 교수의 번역으로 재출간했다. 가상 인물 안드레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 책은, 긴 세월 동안 쌓여온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결과물과 자료를 통해 예수가 살았던 시대를 세심하게 묘사한다. 부록으로 짧은 해설 ‘예수와 그의 시대에 관한 주요 자료들’을 수록했다. 독일에서 원서가 75쇄를 찍고 19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공인된 저술이다.

“당신은 이 책을 통해 의도하는 것이 진정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제 목표는 하나입니다. 이야기 형식을 빌려 예수와 그가 살았던 시대에 관한 하나의 상을 그려내는 것,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때 그 시대를 표현해내는 것, 바로 그뿐입니다. 제가 이야기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는 역사 연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에게 학문 지식과 논증을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10쪽)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먼지 쌓인 돌들이 들려주는
1세기의 기억

바울과 함께 걸었네
함신주 지음 / 아르카 펴냄 / 2020년 10월

1세기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는 책들을 훑어보며 지난해 나온 이 책이 떠올랐다.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의 배경인 터키와 그리스를 여행하며 쓴 책인데, 사진들이 시원시원하게 들어가 있어 인상 깊었다. 갑바도기아, 안디옥, 라오디게아, 서머나, 에베소, 빌립보 등 모두 17곳의 성지가 소개된다.

1세기 분위기를 맛보려 사진만 슬쩍 훑을 생각이었는데, 담백하게 잘 정리된 정보에 덧붙여지는 저자의 고민들에 눈이 갔다. 저자는 1세기 유적지, 그 돌 위에 서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떠올리고, 그 시공간에서 전해지는 복음으로 자기 모습을 돌아본다.

“나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예배다운 예배는 데린쿠유의 지하 예배당에서 드리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으로 가기 위해 좁은 통로로, 깊은 곳으로 한참을 힘들게 내려가야 한다. 그것도 땅속 깊은 곳으로 말이다. 죽음을 경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둠과 죽음 같은 분위기에서 예배를 드리며 천상을 맛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땅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나라를 맛보는 것이다.”

여정의 짙은 감성이 성경·역사·문학 등 다양한 문헌과 어우러지며 균형을 이룬다. 신앙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여행에 함께하다 보니, 우리가 1세기 교회 이야기를 주목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키와 그리스의 순례지는 비록 대부분 돌만 남은 유적지에 불과하지만, … 먼지 쌓인 돌들이 우리에게 자신들의 옛 기억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 기억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고난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을 알아챘고, 그 무언가를 찾고자 1세기에 당도한 것은 아닐지. 먼지 쌓인 돌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