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존재를 안다는 것

[368호 커버스토리]

2021-06-30     김예원

2020년 6월 29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습니다. 성별, 장애, 종교, 성적 지향 등 23개 사유로 고용, 교육, 재화 이용, 행정서비스 분야 등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발의된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갖가지 이유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당하고 있는 이 법의 이름인 ‘차별금지법’. 이 다섯 글자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날 것 같다는 반응이 한국교회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무려 13년 전인 2007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시민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차별과 평등에 관한 법률은 4개뿐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외하면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법’),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제정 순서로 따지면 가장 나중에 제정된 법률이 장애인차별금지법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1987년에, 고령자고용법의 전신인 고령자고용촉진법이 1991년에, 양성평등기본법의 전신인 여성발전기본법이 1995년에 제정된 이후로 무려 12년이나 지나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죠. 제정법 하나를 통과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사회적 에너지가 필요한지를 고려하더라도 꽤 오랫동안 차별과 평등에 대한 법률이 입법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4년여에 걸쳐 전 장애계가 한마음으로 투쟁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훌륭한 입법 운동의 선례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닮아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그런데 과연 교회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구조와 내용이 어딘가 많이 닮아있는 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내용을 먼저 조목조목 살펴보겠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제1장 총칙, 제2장 차별금지, 제3장 장애여성 및 장애아동 등, 제4장 장애인차별시정기구 및 권리구제 등, 제5장 손해배상, 입증책임 등, 제6장 벌칙 등 모두 6개 장 50개 조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법은 법의 이름에 맞게 내용이 채워져 있습니다. 무엇이 이 사회가 하면 안 되는 ‘장애인 차별행위’인지를 제시하고, 차별행위를 당한 경우 어떻게 그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금지되는 차별행위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차별의 종류는 ‘직접차별’ ‘간접차별’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 ‘광고를 통한 차별’ 등 4가지입니다. 첫 번째 ‘직접차별’은 “장애인을 장애를 사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는 경우”(제4조 제1항 제1호)를 의미합니다. 두 번째 ‘간접차별’은 “장애인에 대하여 형식상으로는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지 아니하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고려하지 아니하는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제4조 제1항 제2호)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대놓고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로 인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조건이나 기준을 일방적으로 설정하면서 생기는 차별’을 뜻하는 것이죠. 세 번째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 대하여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제4조 제1항 제3호)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정당한 편의라는 말의 뜻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를 말합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제공되는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네 번째 ‘광고를 통한 차별’은 “장애인에 대한 제한·배제·분리·거부 등 불리한 대우를 표시·조장하는 광고를 직접 행하거나 그러한 광고를 허용·조장하는 경우”(제4조 제1항 제4호)를 말합니다.

이런 네 가지 차별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이행하는 것에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는 경우,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 실질적 평등을 위한 적극적 조치일 경우는 차별의 예외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요구해서 정당한 편의에 해당하는 시설을 설치하려고 기초공사를 시작했는데, 예상치 못한 거대한 수맥이나 국보급 문화재 더미를 만나서 공사를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것을 입증한다면 장애인 차별이 아니게 됩니다. 또한 운동선수를 채용하면서 100미터를 13초 이내에 뛰어야 한다는 기록을 요구하는 것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차별

교회에서는 이 차별이 어떠한 상황으로 펼쳐질까요? “우리 교회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예배, 프로그램이 없으니 다른 교회에 가서 예배하세요” 또는 “다른 교회에 부교역자로 지원하세요”라고 할 경우, 이런 제한이나 배제가 ‘직접차별’에 해당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상관없지만 정식 교인으로 등록하시려면 새 가족 성경 공부(오로지 음성을 통한 강의로만 진행되고 교재도 따로 없음)를 모두 수료하시고 간단한 평가를 마치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요?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직접적인 차별은 아니지만) 강의를 들어서 이해할 수 없는 청각장애 교인에게는 사실상 등록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니 ‘간접차별’이 되겠지요.

“저는 뇌병변장애가 심해서 소리를 내서 기도하기 어려우니 제가 쓴 기도문을 대독해주실 분을 함께 정해주세요”라는 정당한 편의 요청을 했다고 합시다. ‘기도를 대독한다니요? 그건 예배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행위라 불가합니다. 그냥 기도 순서를 취소해드릴게요’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그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는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방식의 차별입니다.

“이번 주에 새로 등록한 분이 있습니다. 나와 주실래요? (휠체어를 밀고 나오는 당사자를 향해) 장애라는 불우한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교회에 나올 용기를 보이다니 너무 감동스럽네요. 모두 박수를”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개념 없는 행위를 넘어서서 ‘장애’를 교회 공동체로부터 분리하여 제한하는 발언에 해당하므로 ‘광고를 통한 차별행위’가 될 수 있겠죠.

교회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이렇게 차별의 결을 나눠서 사례를 생각해보니 제법 많은 차별이 교회 내에서도 생길 수 있거나, 어쩌면 이미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특별히 차별 집단이라는 말이 아니라,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법률이 장애인의 모든 생애주기와 삶의 영역 전반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하는 차별의 영역은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과 성, 가족·가정·복지시설·건강권 등 6가지입니다.

이렇게 장애인 삶의 다양한 영역에 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 구성원을 고용하는 문제와 교인을 교육하는 문제는 물론이고 교회 시설과 서비스를 이용함에 있어서도 교회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해야 합니다. 대단한 특권이 아니라 당연한 이야기겠죠.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모두 평등한 사람이니까요.

장애인 차별행위를 한 교회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그럼에도 “교회는 교회의 법이 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닌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룩한 구별됨이다”라고 하며 위에 언급한 장애인 차별행위를 행한 교회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요? 장애인 차별에 대한 권리구제를 위해 여러 방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업무를 전담하는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행위로 피해를 본 사람 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죠.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제3자도 진정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피해 당사자가 진정을 원하지 않을 경우 제3자의 진정은 각하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 결과 해당 행위가 차별로 인정되면 시정 권고를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법무부장관에게 알려주죠. 법무부장관은 차별에 대한 시정 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피해자가 다수인인 차별행위에 대한 권고 불이행이거나, 반복적 차별행위에 대한 권고 불이행이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고의적 불이행인 경우로 피해 정도가 심각하고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다고 인정되는 상황이라면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시정명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 차별에서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은 법원입니다. 우선 법원을 통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 법을 위반하여 장애인에게 손해를 입힌 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거든요. 다만, 차별행위를 한 자가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증명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다는 단서 조항도 있죠. 생각해보면 장애인 차별로 인한 손해 중 재산상 손해는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를 이유로 부교역자 면접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은 과연 얼마의 손해를 입었다고 봐야 할까요? 이런 경우까지 대비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손해가 발생한 것은 인정되나 차별행위의 피해자가 재산상 손해를 입증할 수 없을 때는 차별행위를 한 자가 그로 인하여 얻은 재산상 이익을 피해자가 입은 재산상 손해로 추정”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대방 이익의 손해 추정 규정’은 손해의 존재 및 손해액을 차별 피해자가 입증할 부담을 줄여줍니다.

더 획기적인 제도가 하나 더 있습니다. “법원은 차별행위에 관한 소송 제기 전이나 중에 본안판결 전까지 차별행위의 중지 등 임시조치를 명할 수 있고, 차별적 행위의 중지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적극적 조치 등의 판결을 할 수 있다”는 조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장애인 차별을 받은 사람은 법원에 적극적 조치 판결을 청구할 수 있고, 적극적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늦어진 기간에 따라 일정한 배상을 하도록 명해달라고 함께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의무이행명령과 같은 제도이기 때문에 ‘진짜 내가 이런 판결을 해도 되나?’ 의아해하는 판사님을 여럿 만나봤습니다. 네, 하실 수 있습니다.

장애인 차별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도 가능합니다. “차별행위를 행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차별을 한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악의적’임을 판단할 때 법원은 차별의 고의성, 차별의 지속성 및 반복성, 차별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차별 피해의 내용 및 규모를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사실상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으로만 처벌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죄질을 판단할 사항까지도 모두 성립요건처럼 넣은 이 ‘악의성’의 높은 벽 때문에 형사처벌 조항은 사문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여전히 필요하다

여기까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속해있는 교회의 사정은 어떤가요? 이 모든 규정이 교회라는 공동체에 스며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교회도 있을 것이고 과하다고 여기는 교회도 있겠죠. 분명한 사실은 이 법이 이제 막 시행된 아기 법률이 아니라 이미 시행된 지 만 13년이 지난 꽤 관록 있는 법률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나 구성원에게 이 법률이 아직 생경한 언어라면 그 언어에 이제 익숙해지도록 연습해야 하죠.

법으로 먹고살고는 있지만 이런 차별 관련법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도 많이 듣습니다. 법률로 차별을 다룬다는 것이 가능하긴 하냐고. 특히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질로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런 세상의 법률 언어로 된 차별금지법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고요. 한편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법률을 정교하게 만들어도 일상 속 장애인 혐오와 차별에 맞서려면 법률에 따른 일률적 금지가 아니라 일상과 문화에서의 작은 시도와 변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여전히 교회에 필요합니다. 법이 아무리 정교해도 장애를 가진 사람,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 공동체라는 ‘관계’에서 덜 배제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차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규범력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우리는 묻습니다. ‘교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알고 있는가?’ ‘알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질문들입니다.

‘비차별’을 향한 변화는 불편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변화라고 해도 당연히 흔쾌히 되지 않습니다. 특히 교회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빚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라 더욱 변화가 수월하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혐오 발언을 법률로 금지한다고 자연히 혐오 정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교회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느리더라도 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마음에서 ‘진심으로’ 차별과 혐오가 줄어드는 공동체를 원할 때 이 어려운 일이 가능해집니다. 불편하지만 작은 ‘새로 고침’을 만들어갈 방법을 각자 섬기는 공동체 안에서 나부터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예원
아이 셋 키우면서 살림하는 것과 일하는 것을 적당히 좋아하는 변호사이자 강연자.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소수자가 차별이나 범죄피해를 당했을 때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장애인권법센터’를 설립하여 운영 중이다. 책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와 《이상하지도 아프지도 않은 아이》를 썼다. 2020년 청년일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