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뭔가를 계속한다는 것은
[369호 그림책으로 우리의 안부를]
매일, 계속하는 일이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뭔가를 합니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것부터가 뭔가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매일 출근해서 일하고, 매일 집에 돌아와 잠을 잡니다. 매일 하는 일이라 지루하고 진부해 보이지만 매일 계속하는 일입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 없더라도 매일 카페에 앉아 종일 책을 읽기도 하고, 매일 공원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매일 낮잠을 자기도 하고, 매일 영화를 보기도 하고, 매일 놀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문득, 종일 괜한 일을 하진 않았는지 반성도 하고, 종일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다 허비한 것은 아닌지 자책할 때도 있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생산성 없는 일에 너무 몰입하진 않았는지 후회하며 조바심 낼 때도 있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매일 뭔가를 계속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충분히 잘한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삽질,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을 일컫는 속된 말인데요. 온종일 삽질을 하는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무슨 이런 책이 있지?’ 하고 읽다가 ‘오~’ 하고 마음 가득 기분 좋은 한가로움이 차오릅니다.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의 글과 와다 마코토의 그림이 어우러진 《구덩이》라는 책인데, 글도 그림도 아주 단순하지만 읽고 난 후엔 어느 책보다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기는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침, 한 아이가 아무 할 일이 없어서 구덩이를 파기로 합니다. 삽을 하나 들고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그리고 삽질을 시작합니다. 무엇을 심기 위한 생산적인 일이 아닌, 말 그대로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삽질로 보입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이 쓸데없는 짓을 너무도 진지하게 행하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엄마가 와서 “뭐 해?” 하고 물었을 때, 아이는 그냥 “구덩이 파” 하고 대답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묻는 “뭐 해?”라는 말속에는 정말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묻는 의미도 있지만, 한심해 보이는 그런 일을 왜 하고 있느냐는 지청구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의문에 상관없이 자기 구덩이를 파는 삽질을 계속해나갑니다.
쓸데없어 보이는 삽질이라도 누군가와 함께하면 의미도 찾고 일도 좀 수월할 것 같은데 아이는 같이해보고 싶다는 동생의 제안도 거절하고, 구덩이를 파는 목적을 묻는 친구에게는 “글쎄”라고 답하고, 서두르지 말라는 아빠의 충고에는 “흠…” 하면서 계속 구덩이를 팝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귀 뒤에서부터 땀이 흐르지만 쉬지 않고 구덩이를 팝니다. 오직 혼자서, 외롭기로 작정한 일에서 오는 희열을 벌써 알아버린 것일까요? 그러다가 구덩이 아래쪽에서 기어 나오는 애벌레 한 마리와 조우합니다. “안녕.” 아이의 다정한 인사에 애벌레는 잠자코 다시 흙 속으로 되돌아가고, 아이는 갑자기 파는 일을 그만두고 구덩이 안에 가만히 쪼그려 앉습니다. 자기처럼 묵묵히 구덩이를 파고 온 다른 존재와의 맞닥뜨림에 어떤 경애의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요? 나 같은 존재가 또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을까요? 조용한 구덩이 안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이건 내 구덩이야’라고 흐무뭇해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자기만의 목적지에 이른 대견함이 엿보입니다.
구덩이에 앉아있는 아이에게 엄마가 와서 다시 “뭐 해?”라고 묻고, 아이는 “구덩이 안에 앉아있지” 하고 계속 구덩이 안에 앉아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우리가 뭘 하는지 몰라서 묻는 것일까요? 아니면 뭔가를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서 지금 뭐 하고 있느냐며 따져 묻는 것일까요? 사실은 나름 뭔가를 계속하고 있는데 말이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내가 한 일이 쓸데없어 보이는지 애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기왕 판 구덩이니 동생이 와서 연못을 만들자 하고, 친구가 와서 함정으로 쓰자 하고, 아빠가 와서 멋진 구덩이라고 칭찬까지 더해줍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저 “흠…” 하고 나서 계속 구덩이에 앉아있습니다. 그냥 앉아있다가 위를 올려다보니 구덩이에서 본 하늘은, 여느 때보다 훨씬 파랗고 훨씬 높아 보였습니다. 그 하늘을 폴폴 나는 나비가 참 아름답습니다. 아이는 일어서서 구덩이에서 올라오고 나서 깊고 어두운 구덩이를 들여다보며 ‘이건 내 구덩이야’ 하고 천천히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종일 판 구덩이에 가만히 앉아서 여느 때보다 높고 파란 하늘을 봤으면, 멋진 나비를 봤으면, 나비가 되기 전의 애벌레까지 만났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구덩이를 판 행복이 있지 않을까요? 굳이 그것으로 뭔가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진 못했더라도 내 구덩이를 파고 들어앉아서 나와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나만의 시야를 갖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탄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눈에는 시시하고 하찮게 보이는 일이라도 날마다, 뭔가를 계속한다는 것은 그로써 충분히 좋은 일입니다.
살라고 태어났으니 살아야죠
날마다, 뭔가를 계속한다는 것은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피곤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떠야 하고, 씻어야 하고, 먹어야 하고, 일해야 하고, 쉬어야 하고, 아파야 하고, 잠들어야 하고, 다시 일어나야 하고… 이런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부러워하며 고달픈 하루를 슬퍼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달래주고 싶을 때, 유쾌한 이야기꾼 사노 요코가 쓰고 그린 《태어난 아이》라는 감동적인 그림책을 읽습니다.
감동적인 책이라고 말한 이유는,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한바탕 엉엉 울었을 법한 생(生)의 송가가 경쾌한 리듬에 맞춰 한 장 한 장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여기,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우주 한가운데서 별 사이를 걸어 다니며 별에 부딪혀도 아프지 않고, 태양 가까이 다가가도 뜨겁지 않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지구에 왔는데 사자를 만나도 무섭지 않고, 모기가 물어도 가렵지 않고, 강아지가 핥아도 간지럽지 않고, 빵집에서 구수한 빵 냄새가 나도 먹고 싶지 않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바삐 걷는 사람들도, 달리는 소방차도,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도, 향기로운 빵 냄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는 달리, 한 여자아이는 강아지에게 물려서 “아파! 아파!” 하며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품에 안겨 울먹입니다. 엄마는 “괜찮아, 괜찮아” 아이를 달래며, 약을 바른 다음에 반창고를 딱 붙여 주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그 반창고를 붙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반창고! 반창고!” 외치다가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마침내 태어났습니다. 마침내 태어난 아이는 “엄마! 아파!” 울기도 하고, “배고파, 엄마!” 부르기도 하고, 모기한테 물려 가려워하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깔깔깔 웃기도 합니다. 태어난 아이는 어느 날 공원에서 여자아이를 보고, “내 반창고가 더 크다!” 소리치며 손을 흔듭니다.
“내 상처가 네 상처보다 더 크고, 내 반창고가 네 반창고보다 더 크다”라는 말은 내 하루의 곤경이 그 누구보다 크고 아팠다는 고백일 텐데 마치 자랑하듯 소리칩니다. 이는 우리의 살아있는 날이 죽어있는 날보다 더 소중해서이겠지요. 태어났으니 살고, 살다 보니 다치기도 하고, 다친 상처에 커다란 반창고도 붙이고 다녀야 합니다. 그래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아무 상관 없는 맥없음보다 태어난 아이의 이런저런 성가신 일들이 오히려 명랑합니다. 비록 태어나서 울기도 하고 소리 지르는 일도 있지만 산다는 것은, 날마다 다친 자리와 그 위에 덧댄 반창고를 자랑하며 몸도 마음도 한 뼘씩 자라는 일일 겁니다.
모든 요일의 이야기
노란 선 하나로 시작해서 우리의 모든 요일을 때로는 흔들흔들, 때로는 출렁출렁, 때로는 머뭇머뭇, 때로는 폴짝폴짝, 때로는 아등바등, 때로는 시원시원하게 펼쳐놓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명애 작가의 《내일은 맑겠습니다》는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반짝 추위가 찾아올 예정이라는 일기예보와 함께 시작합니다. 노란 선 위에서 사람들이 하루의 삶, 한 주간의 삶을 기다립니다. 이어서 노란 선은 횡단보도가 되기도 하고, 계단이 되기도 하고, 공중에 걸리기도 하고, 절벽이 되기도 하고, 물결이 되기도 하고, 링이 되기도 하고, 지하철 손잡이가 되기도 하고, 국수가 되기도 하고, 책이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하면서 사람들 삶의 궤적을 다양한 사물과 함께 변주합니다.
노란 선과 함께 사람들은 걷고, 건너고, 매달리고, 짊어지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앉고, 뛰고, 버티고, 쉬고, 잡고, 먹고, 싸우고, 자고, 놀고, 일하고, 즐기고, 그리고 다시 이어갑니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하루하루의 삶이 우리 앞에 펼쳐지지만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감당할 만큼씩 걷고 뛰고 버티며 살아갑니다. 곳곳에서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리면 깊숙이 내려앉기도 하고, 해상에서 발달한 저기압의 영향을 받은 날에는 끈기 있게 버텨 서기도 합니다.
버티다. 사람들의 다양한 몸짓이 무수히 등장하는 이 책에서 버티고 있는 장면만큼은 혼자서, 자기 모습을 직면하면서 버텨 있는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내일은 맑아지겠다고 하니 이렇게 조금 더 버텨봅니다. 내일의 맑음을 기대하면서 마음을 화사하게 단장해보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는 날 동안 수많은 일기(日氣)를 만나겠지만 그래서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기(日氣)에 당황하기도 하겠지만 날마다, 그 하루를 어떻게 걷고, 쉬고, 걸었는지 모든 요일의 이야기를 일기(日記)로 쓰고 그리면서 우리 다음에 오는 사람에게 건네주면 좋겠습니다.
구덩이
다니카와 슌타로 글 / 와다 마코토 그림 / 김숙 옮김 / 북뱅크 펴냄 / 2017년
어른이든 아이든 자신만의 구덩이가 필요한 이유를 알려주는 그림책으로, 쓸데없어 보이는 일까지도 경애의 마음으로 보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지음 / 황진희 옮김 / 거북이북스 펴냄 / 2016년
“태어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삶에 대해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사는 것, 삶이 주는 기쁨과 고통, 그리고 자존과 치유를 노래합니다.
내일은 맑겠습니다
이명애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020년
노랗고 둥근 무언가부터 출발한 이야기가 역동적으 로 펼쳐지면서, 64쪽에 이르는 작품 속에서 사람들의 모든 삶의 궤적들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1. 안녕, 안녕
2. 어서 와. 여기가 네 자리야
3. 걱정이 있지만, 지낼 만해요
4. 날마다, 뭔가를 계속하는 것은
5. 나여서, 나니까
6. 눈물이 나고, 실수도 많지만
7. 이야기를 지어. 낱말을 모으고 글을 이어서
8. 말해줘. 조용한 소리로라도
9. 같이 밥 먹자. 우리
10.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다보면
11. 혼자라도 괜찮아
12. 조금씩 게으르게 딴짓하면서
13. 꿈꾸는 어른으로 늙는 것도
※ 이 순서는 글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김주련
글도, 그림도 ‘긁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늘을 보며 땅 위에 서 있는 내 마음의 어떠함과 생각의 어떠함을 긁어 쓰고 그리면서 오늘은 더 그리움을 쌓아가고 싶다. 지은 책으로는 《좋게 나쁘게 좋게》 《어린이를 위한 신앙낱말사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