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고 죽지만, 충분히 아름답다

[370호 책과 사람] 《이 정도면 충분한》 저자 조희선 목사

2021-08-31     조희선
조희선 목사는 40대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목회학, 목회상담)하고 영일교회 청년부 목사, 명지고등학교 교목, 새문안교회 파송 서강대 캠퍼스선교사로 활동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독립신문 〈CAMPUS RE〉를 발행했고, 은퇴한 2014년 3월까지 학원복음화협의회 기관지인 〈물근원을 맑게〉 편집장을 지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페이스북에 묻혀 있는, 엄마의 손과 조막만 한 이빨이 다 빠지고 입술이 안으로 밀려 들어간 엄마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엄마 손은 ‘전체 공개’로 묻혀 있고, 엄마의 얼굴은 ‘나만 보기’ 상태로 묻혀 있다.”

생로병사의 성장통으로 채워진 《이 정도면 충분한》(홍성사)의 한 대목. 저자 조희선 목사는 자신의 병듦과 나이 듦,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세세하게 기록한다. 일어나지 못해 누워 지낼 때도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에 끄적였다. 삶의 의지가 꺾여 죽음에 완전히 압도되었을 때도 적고 또 적었다. 늙고 병든 몸이 파편화되었던 지난 인생의 기억을 모아주었다. 흩어져 있던 기억과 메모를 모아 꿰자, 한 권의 책이 되었다.

- 60대 중반에 이르러서 낸 첫 책입니다. 책을 내게 된 과정이 궁금하네요.

말할 때보다 글로 쓸 때 제 생각이 더 또렷하게 전달되는 경험을 해왔어요. 가족들이나 아끼는 사람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더 진지하게 건네고 싶어서, 책을 써야겠다는 바람은 늘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출판사의 제안을 시작으로 첫 책을 내게 된 건 예상치 못한 일이죠. 지난 2월 〈복음과상황〉(363호)에 쓴 ‘예순다섯 나이, 여전히 남은 날이 있다’라는 글을 출판사에서 좋게 보시고 제안을 주셨어요. 복상이 제겐 참 고마운 곳이네요.

- 책에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나중에 내 무덤이 될 것”이라고 표현하셨어요. 

늘 연필과 노트를 손에 들고 다니다가 페이스북에 가입 후, 연필과 노트를 버리게 되었어요. 생각이 바뀔 때마다, 또 덧붙일 때, 정말 기록하기가 편해요. 아픈 중에도 누운 채로, 일기든, 단순 메모든, 깨닫게 된 것들을 꼭 끄적였어요. 제가 죽고 나면 가족들은 제 페이스북을 보며 저를 기억하겠다 싶어요.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이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을 알려줄 때마다 내 페이스북은 엄마의 무덤이기도 하구나 싶어요. 

- 글로 생각을 남기는 방법은 편지도 있고, SNS도 있고 다양할 텐데 굳이 책으로 엮은 이유가 있을까요?

책의 영향력을 믿기 때문에? 제 인생을 돌아보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변했어요. 책을 읽으며 제 삶의 방향성을 찾기도 하고, 저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가죠. 다만 SNS에 쓴 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파편처럼 흩어지는 것 같아 아쉬웠어요. 짧은 메모 형태의 글들이 불러오는 오해도 줄이고 싶었고요. 책으로 글을 쓴다면, 써가는 과정에서부터 글이 글을 불러오며 서로 다른 각 편의 글들이 하나의 커다란 주제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논문을 쓰지 않고 수료 단계로 있다가 논문을 쓰고 나면 하나의 체계적인 사고 내지는 사상을 갖게 되는 느낌과 같다고 할까요? 

- 가족들이 좋아하나요?

남편이 특히 좋아해요. 그동안 제가 쓴 글을 안 보여줬거든요. 세상을 보는 시각에서 좀 큰 차이가 있어서 혹여 걱정을 끼치거나 싸움이 될까 봐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복상에 쓴 아픔과 나이 듦에 대한 글은 무척 마음에 들어 했어요. 책으로 나오니까 더 좋아하죠. 

-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인데 생각의 차이가 크면…

힘들죠. 무척 사려 깊고 헌신적인 사람이지만, 생각이 통하지 않고 답답해서 어느 순간 제가 벽을 쌓았죠. 부딪치기 싫으니까. 그러다 제가 몸이 아프면서, 서로 의지하고 함께 울면서 한층 더 성장한 것 같아요. 요즘도 가끔 정치 얘기로 부딪치는데, 결론은 그냥 서로 씩 웃고 말아요. 아픈 뒤로는 억지로 다른 이의 생각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어떻게 포용을 하고, 어울려 살아갈지 방법을 터득하려고 애써요. 누군가의 큰 잘못에 분노하기보다 긍휼의 마음이 솟기도 하고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 책에 아픈 이야기들이 참 많아요. 늙고 병들고 힘겨운 상황들…, 특히 어머니의 아픔과 죽음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3분의 1 이상이 엄마에 대한 글이죠. 시어머니와는 20년을 살았는데, 엄마와는 아흔이 되어서야 함께 살 수 있었어요. 원하던 일이었는데, 보행 보조기 없이는 화장실도 못 가는 아픈 엄마를 모시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초기에는 엄마와 함께하는 게 참 즐거웠는데, 나중에는 버겁다는 마음도 있었죠. 엄마를 돌보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버리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그때 제가 허리 시술 부작용으로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서로 살기 위해서라도 헤어져야 했죠.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정하고, 엄마와 부둥켜안고 많이 울었어요. 요양원에 가기 싫지만 갈 수밖에 없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참 아파요. 겨우 1년을 함께 살다가 엄마는 결국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었고, 3년 뒤 돌아가셨죠. 2019년 5월 31일에.

- 죽음을 앞둔 어머니 얼굴을 “이빨이 다 빠지고 입술이 안으로 밀려 들어간 엄마의 얼굴”이라 표현했는데요. 

엄마가 5남매를 키우셨어요. 억척스럽고 헌신하는 모습은 봤지만, 약한 모습… 죽어가는 모습은 가까이에서 처음 보는 거잖아요. 불쌍해진 엄마의 노화되는 과정과 죽음을 눈앞에서 본 거죠. 돌아보니 함께했던 1년의 시간이 제게 아픔이 무엇인지 제대로 일깨워 주었어요. 저도 많이 아프던 때였기에, 엄마의 아픔을 더 아프게 느낄 수 있었어요. 육체로 지어진 인간이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연민이 더 온전해졌다고 할까요? 엄마의 그런 진짜 모습이 저를 더 많이 가르친 것 같아요.

- 너무 몸이 아파서 극단적인 생각도 하셨다고 썼어요. 

아파서 죽고 싶을 때, 남편이 나으면 뭐하고 싶냐고 물어요. 그때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대답이 “마음대로 읽고, 마음대로 쓰고 싶어”였어요. 아파서 꼼짝을 못하면서도 일기를 끄적였어요. 오늘은 이렇게 아팠고, 어디가 더 아팠다 이런 걸 썼어요. 쓰다 보니까 이렇게 앓다가 생을 포기하면 내 삶이 너무 무의미한 거예요. 지금 내 상황이 광야라면, 이 광야를 자양분 삼아서 성숙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에 들어찼어요. 그때 읽은 책이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봄날의책),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문학과지성사),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등이었어요.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내 몸의 아픔과 엄마와의 동거 이야기를 반드시 책으로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야 아픔과 죽음, 삶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 손자의 탄생이 그 아픔과 죽음의 이야기 사이에 끼어있어요. 

어린것들의 역할이 참 대단해요. 엄마가 증손자와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참 힘들 때였는데 아기의 탄생으로 기쁨과 슬픔이 오묘하게도 한 쌍이 되었어요. 죽음도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봐요. 제가 죽을 때 제 가족은 울 테지만, 저는 웃으며 가면 좋겠어요. 

- 출생률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아이들 낳으라’고 권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 참 슬퍼요. 부모와 아이가 동반 성숙할 수 있도록 보장되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오히려 아이를 낳으면 현재보다 더 안 좋은 나락으로 빠질 확률이 높은 세상이에요.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며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국가 차원에서뿐 아니라 전 지구적인 대책 없이는 아이를 기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 육아는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실수를 참 많이 했어요. 때리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아요. 닦달하고 다그치고 혼내고. 나중에 제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고. 참 힘겨운 시간이었는데 그런 부족한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손자들을 보는 눈에는 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스럽죠. 딸들 키우면서 제가 참 많이 성장했고, 손자들 보면서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을 얻어요. 

- 무엇 때문에 자녀들을 다그치셨나요? 

성적이지요, 뭐. 사실 학교에서 성적을 받아오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책에 자세하게 썼는데요. 학교에서 시험 성적을 받아오면서, 대견해 보이던 딸이 열등생으로 보이는 거예요. 기대를 거두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 거죠. 강박이 생기고, 규율을 만들어 아이를 통제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읽은 양은순의 《사랑과 행복에의 초대》(홈)라는 책이 양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긴 했는데요. 성적에 대한 강박을 버리기까지는 참 오랜 세월이 걸린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도 참 불쌍해요. 눈을 반짝이며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의 차이점을 설명해주던 손자가,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데, 독후감 숙제를 하느라 진을 빼요. 아이 엄마도 보통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고요. 그냥 즐겁게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족할 텐데. 

- 주요 교단 신학대학원 졸업, 고등학교 교목, 교회 교역자, 캠퍼스 선교사 등 이력만 보면 전형적인 목회자 코스를 크게 벗어나진 않으셨어요. 그러나 책을 들여다보면 신앙의 결이 상당히 역동적으로 변해요. 

제 안의 여러 질문이 신앙의 결도 바꾸어온 것 같아요. 제 신앙을 바꾼 여러 책이 있는데요. 제가 몰랐던 내용을 만나면 무조건 쫑긋하면서 질문하기를 거듭하면서 생각을 키웠달까요? 또 거기에 머무르거나 의존하지 않고, 계속 질문하고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이면서요. 편견을 깨준 이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내가 믿는 신앙이 현실의 모순을 감당하지 못할 때마다 질문을 품고, 다른 말을 하는 분들에게 귀를 기울였던 것 같아요. 

- 나이나 직함에서 오는 권위를 내려놓으려 애쓰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봤어요.

20년가량 전도사, 목사, 선생, 편집장 같은 직함을 바꿔 달며 살았어요. 일을 그만두니 아파트 마당에서 ‘아줌마’ ‘할머니’ 소리를 듣기 시작했어요.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금방 적응이 되고, 오히려 재미있게 되었어요. 친족이 아니면 ‘언니’ ‘동생’ 해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저도 ‘○○ 언니~’ 하면서 지내요. 직함은 잠시 붙어있다가 떨어져 나가는 것인데, 그 직함이 지닌 권위에 익숙해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목사라는 직함에 신성을 부여한 결과를 우리가 보고 있잖아요. 교회의 타락도 그런 데서 시작된 것 아닐까요. 제 경우는 젊을 때부터 ‘권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처음 신앙을 가질 때 하나님을 친구처럼 생각했던 것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네요. 목사라는 직을 신성하게 여기지도 않았어요. 하나의 직업이라고 여겼어요. 전도사 시절 담임목사님께 “목사 안수 준다고 약속해놓고 왜 안 주시느냐?” 당당하게 따져서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겠죠?(웃음) 다만 목사라는 직업이 갖는 독특성이 있지요. 어쩌면 모든 신앙인의 독특성이겠지요. 자신의 독특함을 잊지 않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으려 노력하는…. 사실 저도 노력했지만, 형편없긴 했어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 인생의 굴곡을 마주할 때마다 책을 통해 큰 도움을 받으셨는데요. 특별히 아끼는 책이 있나요? 

사실 책을 한 번 읽으면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줘버려요. 한창 아플 때, 더는 책을 읽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수백 권의 책을 다 헌책방에 넘겼어요. 좋은 책들이 참 많았는데, 헌책방에서 트럭을 가져와 책장까지 실어 가져갔어요. “돈 더 드려야 하는데…” 하면서 5만 원 주시더라고요.(웃음) 책장이 없어졌으니, 책상에 책이 쌓이고, 복잡해져요. 그게 싫어서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요. 어쩌다 사게 되더라도 다 읽으면 처분해요. 특정 책에 머물거나 의존하지 않게 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 책의 프롤로그에 “인생 오후라서 글을 쓸 수 있었고, 오전과는 조금 다른 글을 쓰게 된 것 같다”라고 쓰셨어요. 

나이 듦에도 유익이 있다는 것을 나이 들어서야 느껴요. 인생을 원을 그리는 것에 비유하곤 해요. 젊은 날 최선을 다해 반원을 그린다면, 남은 날에는 나머지 반원을 그려야 원을 그릴 수 있죠. 그런데 이제 맞은편의 미리 그려진 반원을 보며 그릴 수 있으니 더 수월해요. 젊을 땐 늘 숙제가 있었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어요. 지금은 조급하고 불안한 게 없으니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아요. 경험의 폭이 넓어지다 보니, 살아오면서 쌓인 질문들이 마침내 글로 정리가 되었어요. 

인터뷰는 책이 인쇄 중이던 8월 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어떻게 정리가 되었나요? 

아, 정리가 끝났나? 하면 어느새 다른 생각이 들어와요. 아마도 완전히 정리되는 날은 없을 거예요. 세상이나 저 개인사에 새로운 사건이 생기고 또다시 의문이 생기면 그 앞에서 저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과정을 지금도 계속할 뿐이에요. 사람 앞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라면 솔직해질 수 있었어요.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고 바라보는 게 가능했지요. 어차피 속일 수 있는 분이 아니니, 죄를 지어도 편히 고백할 수 있고요. 그럴 때, 저 자신을 다독거리며 일어날 수 있었고, 남을 바라볼 때도 편견 없이 감싸줄 수 있게 되더라고요. 특성대로 생긴 대로 사는 나를 감싸주듯이 다른 사람도 더 감싸 주어야겠다, 그래야 세상의 아귀다툼을 줄이며 따뜻하게 살 수 있겠다 싶은. 

- 요즘은 어떤 질문을 던지시나요? 

책 제목이 ‘이 정도면 충분한’이잖아요. ‘이 정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질문을 던져요.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도 되나? 뭔가를 더 해야 하나? 더 버릴 수는 없나? 

진행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