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세계’를 끝내려면
[371호 편애하는 리뷰]
꽤 오래전 일이다. 남성 A와 군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을 풀어놓으며 군대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곳인지 설명했다. 비록 군 복무 경험은 없었지만, 그의 경험과 주장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한참 이어지던 대화가 ‘어떻게 해야 군대가 바뀔까’에 관한 주제로 옮겨가려던 순간, 그는 선을 그었다. 군대도 안 다녀온 네가 무얼 알겠냐며 군대는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군대 문화 개선에 관한 진지한 대화가 아닌 자신의 (억울한) 경험에 관한 공감과 인정일 뿐인가 싶어 허탈했다. 결국 군대 문제가 당사자의 사적 경험을 넘어서는 이야기로 확장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 대화는 찜찜하게 종료되었다. 그날 이후 이런 의문이 생겼다. 군대 문제는 왜 ‘사회문제’가 될 수 없는가?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 되는 군대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치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청년, 안준호가 입대하여 D.P.(Deserter Pursuit)에 합류하면서 본격 전개된다. D.P.는 탈영병을 잡는 군탈체포조를 의미한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과 사회에서의 멸시와 갈굼을 피해 도망치듯 입대한 안준호는 군대에서 더 강력한 불합리와 폭력을 만나게 된다. 코를 곤다는 이유로, 만화를 좋아하는 ‘오타쿠’라는 이유로, 그냥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선임병들은 후임병들을 잡는다. 방독면을 쓴 채 잠들게 하거나, 못이 박힌 벽 앞에 세우고 구타하거나, 사적인 편지를 공개해 망신을 주거나, 성추행을 일삼는다. 누구도 그런 폭력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까라면 까’야 하는 건 간부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관리하는 동안 그곳에 ‘사건’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문제를 축소하거나 감추는 은폐의 연대를 형성한다.
〈D.P.〉는 특이하게도 2014년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왜 하필 2014년일까? 그해에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비극이 연달아 발생했다. 먼저는 ‘윤 일병 사건’이 발생했다. 윤 일병이 선임병에게 구타를 당하다 사망했는데, 간부들은 그동안 가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저질렀던 가혹 행위를 알고도 은폐했다.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따돌림과 괴롭힘을 견디다 폭발한 임 병장이 동료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한 뒤 탈영한 것이다. 5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두 사건 후 한때 “참으면 윤 일병이 되고,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된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D.P.〉에서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봉디’ 조석봉 사건은 ‘임 병장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D.P.〉가 2021년에 굳이 2014년을 배경으로 삼은 건 군대 내 폭력이 계속되는 문제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 드라마를 본 군대 경험자들의 반응을 봐도 그렇다. 군대 내 불합리와 폭력은 ‘육이오 때 쓰던 수통’을 아직도 사용하는 것처럼 시대와 세대를 넘어 공유하는 문제다. 또한 ‘군대’라는 한정적 공간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다.
〈D.P.〉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이 있다. 안준호가 영창 근무를 서다가 그 안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하는 환영을 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군대 내 폭력이 단지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사회의 폭력성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후임병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며 군림하던 황장수 병장이 제대 후에는 편의점 사장이 쏟아내는 폭언에 한마디도 못 하는 ‘알바생’일 뿐이라는 설정도 인상 깊었다. 즉, 우리 사회 자체가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는 강한’ 폭력적 세계관으로 구성된 ‘군대’라는 것.
‘그래도 되는’ 세계에서 방관자로 살지 않기 위하여
이렇게 드라마는 사회에 만연한 폭력적 세계관의 기원으로서의 ‘군대’뿐 아니라 확장된 군대로서의 ‘사회’를 일관되게 증언한다. 그렇다면 이 폭력은 왜, 어떻게 끊어지지 않는 것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직접적으로는 방관과 은폐 때문이다. 황장수 병장의 폭력이 후임병사에게 이어지는 동안, 그리고 “우리는 저렇게 되지 말자”던 ‘봉디’가 폭주하게 되기까지, 간부들뿐 아니라 사병들로 이어지는 무수한 방관자들이 존재했다. 그랬기 때문에 황장수 병장 말처럼 ‘그래도 되는’ 폭력이 지속된 것이다.
드라마가 드러낸 이 문제의식은 나의 오랜 질문 ‘군대 문제는 왜 사회문제가 될 수 없는가’로 이어진다. 그때 A는 정말 군대가 변화하길 원했던 것일까? “국방의 의무랑 병신 짓거리 참는 거는 연관 없지 않냐?”는 웹툰 속 안준호 이병의 말처럼, 군대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과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사회문제’로 드러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물론, 어떤 문제를 드러내는 일에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증언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너무 앞서면 문제를 은폐하거나 방관하는 데 기여하는 결과를 낳는다. 개인 경험을 말하는 일을 넘어서 폭력을 적극적으로 끊어내려는 질문이 형성되지 않는 한, 불합리와 폭력이 지배하는 군대와 사회는 지속될 것이며 ‘봉디’와 같은 피해자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군대 문제는 단지 남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폭력과 ‘2차 가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 군인들, 학교나 회사 등을 가리지 않고 재현되는 위계 문화, 폭력으로 짜인 가부장 체계의 문제가 결국 ‘군대’로 연결된다. 즉,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주제이고, 체제의 문제라는 말이다. 그래서 〈D.P.〉는 시종일관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대사를 반복하면서 우리가 ‘방관자’에서 ‘뭐라도 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강력하게 요청한다. 그래야 안준호 이병이 무사히 전역할 수 있고, 그가 만나는 세계가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겠는가.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로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