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도 지루한 자가당착의 세계

[372호 오수경의 편애하는 리뷰]

2021-10-29     오수경

어린 시절 나에게 동네 골목과 학교 운동장은 날마다 새로운 놀이가 펼쳐지는 흥미로운 세계였다. 골목에 굴러다니는 빨간 벽돌과 담장 아래 수줍게 핀 이름 모를 풀들도 우리에게는 놀잇감이었고, 어제 싸운 친구일지라도 오늘은 같은 편이 되어 골목과 운동장을 누빌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놀이가 재밌지는 않았다. 나는 특히 ‘얼음땡’처럼 쫓고 쫓기는 놀이나 과하게 경쟁하는 놀이에는 약했다. 그중 최악은 오징어 게임이었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놀이 중 가장 복잡하고 거칠어 나에게는 버거웠다. 나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랬다. 누군가 “오징어 할까?”라고 외치면 함께 놀던 친구들 사이의 공기가 금세 달라졌다. 결국 오징어 게임은 힘이 조금 더 센 아이들이 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찾아 흩어지곤 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스틸컷

〈오징어 게임〉이 재현하는 잔인한 세계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어릴 때 하던 게임을 모티브로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화제다. 〈오징어 게임〉은 억대 빚을 진 상태로 일용직 일자리와 경마장을 전전하는 해고 노동자 성기훈을 비롯하여 주로 거액의 빚을 져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상금 456억 원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하여 최후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 걸고 게임을 하는 이야기다. 참가자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 총 6개의 게임을 하는데, 참가자 456명 중 한 명이 죽을 때마다 상금 1억 원이 적립된다.

요즘 만나는 지인들마다 〈오징어 게임〉에 관한 대화를 하게 되는데 저마다 감상 포인트가 달라서 흥미롭다. 누군가는 참가자 1번 오일남 할아버지처럼 어릴 때 뛰놀던 동네 풍경이나 친구들과 하던 놀이를 회상하고, 어떤 이들은 해고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가정폭력 피해자, 탈북민 등 경쟁 사회에서 밀린 사회적 약자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가장이거나 자녀 정체성이 강한 이들은 가족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이돌 덕후’이자 MZ세대인 내 지인은 드라마 화면 구성이 마치 서바이벌 오디션 예능 〈프로듀스 101〉과 흡사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오디션’과 같은 시험과 경쟁이 일상이 된 세대에게는 〈오징어 게임〉 속 설정들이 단지 ‘드라마’로만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감상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오징어 게임〉은 의미 있는 텍스트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단지 흥미롭게만 즐길 수 없는 이유도 명확하다. 드라마에서 시민 456명을 게임장에 몰아넣고 끔찍한 게임을 운영하는 ‘프런트맨’이 자주 언급하는 말이 있다. ‘이 게임이야말로 여러분에게 기회이고, 이곳에서는 평등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 과연 그럴까? 직업·국적·나이·성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공평하게 게임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평등이 구현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어릴 때 운동장에 커다란 ‘오징어’ 그림이 그려지면 힘이 센 아이들에 밀려 나머지 아이들은 놀던 공간을 빼앗긴 채 밀려나야 했던 것처럼 단지 똑같은 기회를 받았다고 해서 평등이 실현되리라는 발상은 ‘VIP’와 ‘프런트맨’으로 대표된 강자가 만들어낸 세계관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스틸컷

우리는 ‘말’이 아니다

물론 드라마는 이런 세계관의 폭력성을 어느 정도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판하고자 한 그 강자의 세계관을 가장 적극적으로 재현하는 자가당착적인 매체가 되기도 한다. 실제 오징어 게임의 속성이 그러하듯 드라마에서 재현된 게임 세계 역시 결국 강자가 승리하는 구조다. 그렇기에 드라마는 주인공 성기훈을 비롯하여 게임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시스템 구성원(호스트, 프런트맨, VIP, 경비원) 역시 전원 남성인 남성 중심 세계일 수밖에 없다.

그 세계에서 여성은 어떻게 배치되는가? 참가자 무리에서 ‘빌런’ 역할을 한 한미녀가 섹스를 생존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가정폭력 생존자 지영이 ‘구슬치기’ 게임에서 다른 참가자인 새벽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패배하여 죽을 때를 제외하고는 여성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게임 바깥의 여성들은 어떤가? 성기훈의 엄마와 딸은 성기훈을 비롯한 남성들의 ‘가족애’를 드러내는 눈물겨운 서사를 위한 도구로 존재할 뿐이다. 이런 여성 배치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고 그저 악녀이거나 성녀로만 존재하는 남성 중심 세계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드라마는 “나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라고 결연하게 외치는 성기훈을 통해 승자 독식, 적자생존에 매몰된 경쟁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지만, 결국 힘이 강한 남성들이 살아남아 가족도 책임지고 정의도 실현한다는 남성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즉 ‘남성 바깥’의 존재들을 소외하거나 말처럼 활용한다. 도리어 자신들이 드러내고자 한 문제의식을 가장 강력하게 부정하는 셈이다.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공정한 기회, 평등 등 비교적 동시대적이며 논쟁적인 주제를 건드리며 주목받았으나, 남성 중심의 전형적이고 낡은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게으르고 빈곤한 상상력을 투명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라는 말에서 ‘나’는 누구인가? ‘우리’로 확장될 수는 없는가? 이에 관한 고민과 상상력이 없다면 그저 공허한 변명일 뿐이다. 위악스러운 냉소만으로는 이 잔혹한 게임과 같은 세상이 가진 문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없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로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