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밤을 거닐며 알게 된 것들
[376호 커버스토리]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채로 10분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운전 중이었고 스피커폰 너머로 엄마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졌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입에 천 톤쯤 되는 돌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입이 열리질 않았으니까요. 있는 힘껏 말을 해보려 해도 아주 작은 소리만이 흘러나올 뿐이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 거니?”
“……”
“무슨 어려운 일이 있는 거니?”
“……”
아기는 엄마의 배 속에서 열 달을 한 몸으로 지낸다지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탯줄을 끊고요. 저는 한 달쯤 먼저 태어났으니 남들보다 더 일찍 떨어져 나온 셈이네요. 하지만 마음의 탯줄은 아직 그대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에서야, 마치 하나였던 몸이 탯줄을 끊고 분리되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때는 말을 잃어버릴 만큼 무거운 나의 무게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신 지고 갈 수 없는 것임을 자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철저히 완벽하게 낯선 타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지요.
돌이켜 보면, 나의 시선에 엄마는 항상 우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그런 엄마를 위로하려 애쓰던 아이였고 반대로 나의 무게를 더할 수 있었던 적은…. 글쎄요. 잘 기억나질 않습니다. 생을 이어가는 것이 버거울 만큼 힘들었던 시기, 한번은 겨우 용기를 내어 “엄마, 내가 좀 많이 힘들어요”라는 말을 내뱉었는데, 자전거를 끌고 함께 발을 맞춰 집으로 돌아오던 그 길, 20분 내내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엄마도 그 말을 듣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일까요? 탯줄이 끊어진 아기의 몸이 혼자인 것처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무게이겠거니 받아들일 뿐이었습니다.
‘빌런’의 재등장처럼 찾아오는 시간
나는 상태가 좀 중한 편이었습니다. 의사가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이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봤는지 아느냐고 반문하고는 다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1년 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펑펑 울어야 했는데 불면증이 심해서 울다 지쳐 겨우 잠이 들면 야속하게도 다시 새로운 날이 밝았고 또 그 하루를 버티는 시간이 반복되었습니다. 다른 병원을 찾아갔지만, 솔직히 진료는 별 도움이 되질 않았어요. 약의 양을 조절하고 처방해줄 뿐이었으니까요. 감기약을 오랫동안 처방받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태로웠던 그 시기를 지나올 수 있도록 나를 지탱해준 건 항우울제보다는 먼 타국에서 매일 안부를 물어준 친구였습니다. 두 아이를 돌보기도 바빴을 친구의 고마운 돌봄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약을 끊을 결심도 할 수 있었습니다.
영웅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 악당인 빌런도 꼭 함께 등장하는데, 보통 이런 빌런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가까스로 물리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에 꼭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지요. 이 글을 쓰는 지금, 달력을 들춰 보니 우울증 약을 끊은 지 오늘로 57일이네요. 그런데 아직도 이따금씩, 말을 잃어버리는 순간들이 빌런의 재등장처럼 찾아옵니다. 두어 번쯤, 사람들과 함께 일상에 머무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다시 약을 먹어야겠다는 고민을 신중하게 했었고요. 뭐, 이기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끝까지 싸우는 것이죠. 영화에서처럼 함께 싸워줄 동료들이 때마침 등장해준다면 금상첨화일 테고요.
그럼에도 영혼의 밤이 찾아온다
미국에서 지낼 때 한 달 동안 한집에 살았던 M이 얼마 전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사실은 그동안 내가 좀 힘든 시간을 보냈어”라고 했더니 자기도 우울증을 겪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정말 어려웠다며 지금도 다시 우울증이 돌아올까 봐 두렵다고 얘기하는 M에게 맞장구를 치며 말했습니다.
“나도 그 기분 알아. 불과 며칠 전에도 나에게 일어난 일이니까. 아직도 가끔 힘들 때가 있거든. 그렇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해처럼 밝은 빛이시니까. 올해는 반드시 행복한 해가 될 거야.”
맞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빛’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영혼의 밤이 찾아오더라고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온 땅에는 어두움이 임했고, 천지창조 이전 흑암이 깊었던 것처럼, 아주 캄캄한 밤이요. 부활을 기다리는 죽음의 시간처럼, “빛이 있으라”고 한 말씀만 해주시길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 영혼의 밤을 지나곤 합니다. 그 밤은 내가 숨은 건지, 하나님이 숨으신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사방이 캄캄한 밤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먼저 나를 찾아와 비춰주시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태로 어두움을 견디는 시간이기에 ‘밤’이라고 부릅니다.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 아마도 그게 영혼의 밤을 지나기가 가장 힘든 이유일 거예요.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되거든요.
“이 말은 나에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아요”
그렇게 캄캄한 밤을 지나는 동안, 나는 아픈 나를 줄곧 감춰야만 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상처라면 달랐겠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아픔이어서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아픈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나의 상처는 피가 흘러내리는 모양이 아닌 말을 잃어버리는 모습으로 자주 드러났고 사람들은 고맙게도 걱정을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요.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는 빨리 나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붙들리게 되었고 말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최대한 힘을 내어 어떤 말이라도 하려고 했습니다. 아프다고 내 사정을 다 이해받을 수는 없는 건데 너무 내 입장만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하루는 교회에서 “사람을 가리더라”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괜찮은 척하려고 애를 썼던 것인데 더 많은 사람에게, 아니 모두에게 그랬어야 한다고 그 밤, 나는 다시 나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삶은 긴 여정이라는 걸 알고 있잖니? 매일매일 모든 어려움을 주님께 아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단다. 일생 수많은 어려움이 닥쳐올 텐데 더욱 주님을 깊이 만난다면 주님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지 않니?”
‘죄송하지만, 이 말은 나에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아요.’
마음속으로만 자판을 두드렸을 뿐, 나는 끝내 아무런 답장도 하지 못했습니다. 은퇴하고 텃밭을 가꾸는 목회자인 아버지가 목사 안수를 앞둔 예비 목회자인 나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으니까요. 다 맞는 말이었고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든 건지, 얼마나 어떻게 힘든지 물어온 적이 없는걸요. 가족들이 기도해준 덕분에 그래도 이만큼 이 밤을 견뎌온 것이라고 위안하면서도 혼자라는 무게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 곁에 영혼의 밤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미 다 알고 있고 옳은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괜찮냐”는 안부를 한마디 건네주세요. 얼마 전 낯선 도시의 거리에서, 또다시 빌런의 습격을 받은 것처럼 무방비로 울고 있었을 때 먼 나라에서 온 무슬림 친구 F의 “R U OK?”라는 메시지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 말 한마디가 캄캄한 밤을 걷게 하는 한 줄기 빛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이 우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야”와 같은 말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정말 소중한 인연이었음에도, 용기를 내어 기도를 부탁했다가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이상하게 먼저 연락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공동체를 꿈꾸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고 아픈 나를 감추게 되다 보면요, 자연히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채로 혼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돼요. 가족이든, 교회든, 친구이든 그게 어떤 공동체이든 떨어져 나와 영혼의 밤을 혼자 거닐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죠. 암 환자를 위한 광고는 주보에 매주 올라오지만, 마음이 아프다는 건 광고할 수가 없거든요. 그 사람이 예비 목회자라면 더 그럴 거고요. 내가 지나온 영혼의 밤은 그래서 더 칠흑 같은 어둠이었어요. 아픈 나를 대신해 촛불을 들어줄 공동체가 없었거든요. 나는 어두운 나를 계속 감춰야만 했어요.
한 달 전쯤, 멀리서 찾아와준 분들 덕분에 공동체로부터 영혼의 밤을 지지받는 게 무엇인지를 잠시 경험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정말 잠깐이었고, 그 경험은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죠. 그분들이 먼 나라로 돌아간 이후 한동안 다시 밤이 깊어지는 시간을 혼자 견뎌내야 했거든요. 끊었던 항우울제를 다시 먹어야 하는 건 아닌지 흔들렸던 것도 그때였고요. 그래도 그분들이 해주었던 말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요. 나의 슬픔을 그대로 받아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라는 얘기, 이제껏 그런 나를 감춰야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커다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얘기였죠. 요즘에는 ‘코로나 블루’라고 하잖아요.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니 그런 이들에게 부디 공동체가 되어주세요. 손가락질이나 어쭙잖은 조언 없이 오래도록 곁에 있어 주는 따스한 공동체 말이에요. 그럼 그 사람이 언젠가 영혼의 밤으로부터 완전히 깨어나서 누군가에게 다시 그런 공동체가 되어줄 테니까요. 제법 보람된 일이 될 거예요.
영혼의 밤을 거닐며 알게 된 것
2년 전 이맘때에 비하면 나의 밤은 많이 밝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이 글을 눈물로 쓰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었다고, 어느 시인이 ‘오래 만진 슬픔’에 대해 말해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사라지지 않는 이 슬픔을 나의 동력으로 삼아보려고 해요. 꽤 해야 할 일들이 많거든요. 나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나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 빛이신 주님께서 나의 슬픔도 기쁨이 되도록 환하게 밝혀주시지 않을까요? 주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는 건 당연한 얘기고요. 영혼의 밤을 오래 거닐며 알게 된 게 한 가지 있는데, 나를 정말 위로해줄 수 있는 건 바로 ‘나’더라고요. 나를 가장 모질게 비난하는 게 ‘나’이듯 말이에요.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에 나오는 대사 한 구절을 나누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해요. 곱씹어볼수록 참 좋은 말이네요.
“난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껴요. 슬픔이 웃음보다 더 좋죠. 그리고 천사는 슬픈 이들 가까이에 있고 때론 병이 우리를 치료해주죠…. 그러니 자연히 그런 게 그림을 탄생시키죠.”
익명
목사 안수를 앞둔 예비 목회자. 우울증을 겪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