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향한 시선들 1: 장애학
[장애와 신앙의 교차로에서]
이대로 생이 끝났으면, 목숨이 끊어졌으면, 하고 바랐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던 나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터진 사건 이후로,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일이 일상이었다.
서있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우리 반만 55점 먹고 들어간다.” 중간고사 한 주 전, 국어 수업이 끝나고 반장은 교실 앞문과 뒷문을 걸어 잠그게 한 후, 분필을 들어 칠판에 1번부터 11번까지 객관식 답안을 적어 내려갔다. 나는 그 과정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교실 안에서 권력을 지닌 아이들은 모든 문제의 답안이 적힌 종잇조각을 나누어 가졌고, 나머지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칠판을 보며 받아 적기 바빴다. 나는 돌연 조급증이 들어 당장에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단체 커닝을 막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평소 다른 아이들보다 도덕의식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충동에 이끌렸던 것 같다. 칠판이 지워지고 앞뒷문이 열린 뒤, 나는 조용히 아래층에 있는 교무실로 내려갔고, 평소 부드러운 분위기로 아이들을 대했던 담임선생에게 꽤 심각한 표정으로 모든 일을 알렸다. 담임은 비밀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고, 순진했던 나는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한 채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옆 교실로 올라왔다. 쉬는 시간에 종종 대화 상대가 되었던 친구 앞에서 열심히 아무 말이나 끄집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긴장을 가라앉히고 심장박동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알리바이도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다음 수업이 시작되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국어 담당인 체격 좋은 노(老)교사가 올라왔다. 그는 잔뜩 화가 난 기세로 ‘대체 누가 시험 답안이 유출되었다고 말했느냐’며 다그쳤다. 나는 약속을 믿고 잠자코 있었으나, 따라 올라온 담임선생은 나와 반장을 불렀다. 그것만으로 학급 내에서 딱히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던 내가 고발자로 밝혀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날 이후 나는 또래 관계에서 확실하게 배제되었고, 국어 시험 문제와 답안은 교체되었다. 반장과 주동자들은 자신들이 평소 부리며 괴롭히던 몇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 누구도 처벌받거나 책임지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낙인찍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혼자만 살기 위해 또래들의 공모를 깨뜨린 ‘배신자’였다. 비교적 온건하게 관계를 맺어왔던 많은 아이들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 험악한 괴롭힘은 없었다. ‘없는 사람’ 취급하는 정도였으니, ‘은따’에 가까웠을까. 나는 ‘근이영양증’이라는 이유로 체육 시간이면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있기 일쑤였고, 몸이 아픈 데다가 일러바칠 위험까지 있는 나를 괴롭히는 행위는 그들에게 여러모로 귀찮은 일을 만들게 분명했다. 자존심이 강했던 탓에 무슨 말이든 곧장 받아치는 내 모습도 거슬렸겠다. 종종 ‘강정직’이라고 비꼬아 부를 때도 있었지만, 그들의 무대응 원칙은 뜻하지 않게 내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피해의식 같은 것이었을까. 약한 몸을 가진 부적응자, 상대할 가치가 없는 딱한 녀석으로 여겨지는 듯해 저 스스로 비참함을 느꼈던 셈이다.
누구를 원망해야 했을까. 문제와 답안이 적힌 종이로 시험 범위를 짚어주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국어교사? 아니면,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담임선생? 그도 아니면, 조금 더 신중하고 지혜롭게 알리지 못한 나?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을 일러바친 행위 자체가 잘못이었을까? 나는 방학 때 가족 휴가로 유람선을 타던 날에야 바닷바람 맞으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모교회 담임목사에게 조언을 구했고, 오후 예배 때 청바지를 입고 드럼을 치던 젊은 집사를 소개받았다. 그는 동네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였다. 병원에서의 첫 상담 시간, 사건을 들은 그가 처음 던진 질문은 어수룩한 내 눈에 제법 인상적이었다.
“이 컵의 뒷면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마주 앉은 그와 나 사이에 있는 책상 위에는 컵 하나가 놓여있었다. 나는 잠시 멈칫거렸지만, 짐짓 심드렁한 말투로 대꾸할 수 있었다. “컵을 이쪽으로 돌리면 되지 않나요?” “그래, 다른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까?” “글쎄요.” “네가 이 자리로 오는 방법도 있겠지.” “…” “네 선택을 후회하니?” “후회해요.” “다시 돌아가면, 똑같이 행동하겠니?” “아니요.” “나는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내 눈을 똑바로 보며 힘주어 말한 그는 나를 ‘신경쇠약’으로 진단했고, 약물을 처방해주었다. 몇 번의 상담 후에야 그 말이 ‘관점’1)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이는 웹툰작가 최규석 원작의 노동운동 드라마 〈송곳〉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인 ‘서있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로 설명되는 그 자명한 메시지와 맞닿는다.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중학교 3학년, 나를 상담했던 의사가 이후의 만남에서도 내게 계속해서 요청했던 것은 ‘관점의 전복’이었다. 나를 혼란 속에 빠뜨렸던 그 사건을, 주변 아이들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 마주하는 일이 필요했다.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그렇게 내 위치에서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그 선택을 했던 그때의 나 자신을 내치지 않고 다음 걸음을 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쉽지만은 않았다. 학교에서 몇 마디 말도 하지 않아, 집에 돌아오면 입에서 단내가 나는 날들이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당시 내 행동을 비난하던 아이들, 그러니까 그들의 지배적 시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넓게 사건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학’을 이와 연결해서 설명해볼 수 있을까. 같은 선상에서 놓일 수는 없겠지만 비슷한 측면에서 여러모로 환기해볼 구석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네 세상살이가 그렇듯 장애인을 둘러싼 인식들도 관점과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의 바탕이 될 ‘장애학’과 ‘장애신학’에 대한 이론적 이야기를 두 편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근대 이후 ‘장애인’으로 범주화된 존재들은 오래도록 비장애인들 시선에 포섭돼왔다. 여느 실천적 이론의 탄생이 그렇듯, 1980년대 이후로 본격화한 ‘장애학’은 ‘비장애중심주의’2)로 명명될 수 있는, 사회의 지배적 시선을 전복해,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 편에서 세상을 볼 것을 요청한다.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3)로 표현되는 장애인들의 삶과 목소리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 속에서 ‘장애’로 규정되는 조건들을 파고든다.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 발행인이자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 활동가인 김도현은 ‘시좌’(視座)라는 단어를 풀이하는 것으로 《장애학의 도전》(오월의봄)을 연다(10-12쪽). 시좌는 ‘관점’과 마찬가지로 ‘perspective’의 번역어이지만, ‘보는 지점’이 아닌 ‘보는 자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에 따르면, ‘장애학의 시좌’는 중심이 아닌 변방이다. 선두와 중심에서 뒷걸음질하여 뒤쪽 끝까지 물러서면 사각지대가 줄어들면서, 본래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던 상하좌우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변방으로 갈수록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영역과 만나게 된다. 그는 여기에 더해, 변방에 있는 다른 소수자들 시좌가 교차할 때 더 입체적으로 세계를 열어 보일 수 있다는 기대를 꺼내놓는다.
이렇듯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을 ‘장애’라는 렌즈로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이야기를 하려면, ‘장애란 무엇인가’ ‘장애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경유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의 관계와 의미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4) 이를테면, 시력 저하로 안경을 쓰지 않으면 바로 앞의 물건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시력 저하는 ‘손상’이 될 것이고, 안경이라는 기구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상황이 ‘장애’로 작용한다. 휠체어 이용자라면 어떨까. 엘리베이터 없고 계단만 있는 건물에서는 접근성 차원에서 ‘장애’가 발생한다.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이동에 있어 신체적 손상에 따른 제약은 없다.
장애 개념에 관한 최초의 국제적 정의로 알려진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손상·장애·핸디캡 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s, Disability and Handicaps, ICIDH)는 3단계 도식을 제시한다. ‘손상 → 장애 → 불이익(handicap)’. 한마디로, 질병에 의한 몸의 신체적·정신적 이상이 능력 상실 혹은 제약을 불러와서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입는다는 말이다. 말끔한 느낌을 주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설명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한국의 장애인복지법도 이에 영향을 받아, 제2조(장애인의 정의 등) 제1항에서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장애인을 정의한다.
하지만 ICIDH는 장애인 운동가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다. 몸에 주어진 손상을 장애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는 표현이라서다. 불이익 책임을 장애인 개인의 손상으로 돌리는 경향이 클뿐더러, 사회·문화·경제·정치 등 환경에서 오는 장벽을 간과하고 있다. 김도현은 《장애학의 도전》에서 손상은 특정한 관계, ‘차별과 억압’을 통해서만 장애가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장애학의 핵심 통찰로 꼽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명제와 함께 인종차별·성차별 등을 예시로 든다. 이를테면, 흑인이나 여성이 역사와 현실에서 차별과 억압에 직면해온 것을 타고난 조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ICIDH 이후 개정 작업을 거쳐 확정한 것이 2001년 세계보건총회(WHA)에서 공식 채택한 ‘국제 기능·장애·건강 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ICF)다. ICF는 ‘건강 이상’ ‘손상’ ‘활동 제한’ ‘참여 제약’을 포괄하여 ‘장애’ 개념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다. ‘불이익’을 뜻하는 ‘handicap’은 단어가 갖는 차별적 뉘앙스5) 탓에 ‘활동 제한’(activity limitations)으로 대체되었고, ‘장애화’는 특정 사람의 신체 조건과 상황 요인(‘환경적 요인’ ‘개인적 요인’) 등이 맞물린 결과로 제시된다. 요인들이 복합적이라 이를 생물심리사회적 모델(biopsychosocial model)이라고도 부른다. 장애를 설명하는 대표적 접근법이자 이론적 틀인 ‘개별적(의학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 사이에서 다소간 중립을 추구하기에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장애학’을 정의하려면, 장애를 이해하기 위해 제시된 모델들을 검토해야 한다. 이는 크게 개별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로 나뉜다. 이때까지 설명한 내용과 명칭을 통해 짐작되겠지만, 두 가지 중 장애학은 개별적 모델을 따르지 않는다. 사회적 모델을 채택하는데, 전통적으로 장애를 규정해온 개별적 모델이 ‘사회적 억압’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데 대한 반응으로 일어난 당사자들의 대안적 운동에서 ‘장애학’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개별적 모델은 질병으로 인한 손상을 ‘개인적 비극’이자 ‘의료적 현상’으로 한정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장애’를 개인의 경험으로 축소하고, 개별적 차원에서 치료하거나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보아 장애인 편에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 의존하고 적응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에 대한 반발에는, 기존에 장애인을 다뤄온 ‘의학’ ‘재활학’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 등에서의 논의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한몫했다.
앞서 설명했고, 아래에 여러 사례를 통해 언급하겠지만, ‘장애’에는 유동적 측면이 존재하고 ‘장애인’은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인식돼왔다. 사회적 모델은 장애인이 처한 구조와 맥락을 통해 장애를 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사회적 모델도 여러 한계를 지적받아 왔기에 이후 분화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글을 통해 다루기로 한다). 장애인의 개별적 손상이 아닌 장애인을 배제하는 각종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배경하에 조한진은 “장애를 개인의 결함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장애를 규정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요인 등을 탐구하며 장애인에 의한 적극적 참여를 중시하는 다학제적 학문”(《한국에서 장애학 하기》, 21쪽)이라고 ‘장애학’을 정의하고 있다.6)
‘장애인’의 발명
장애학에서는 어디까지를 ‘장애인’으로 인정할 것이냐 또한 중요한 논점이다. 지난 1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조사통계팀에서 발간한 보고서 〈2021년 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한국 장애출현율은 5.4%로 영국 27.3%, 영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27) 27개국 평균 24.5%와 견주면 확연히 낮다. 이는 행정적 측면에서 바라본 ‘장애인 정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은 “의사 판정을 통해 장애유형 및 정도를 판정하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사람”으로, 유럽연합은 “주관적 건강, 만성질환(오랜 질병이나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 보기, 듣기, 걷기, 의사소통 등 기본적 활동에 어려움을 가진 사람(또는 건강 문제로 인해 일상 활동에서 오랫동안 스스로 지각한 제한)”으로 나온다.
한국은 장애인복지법 자체가 ICIDH에 가깝게 장애인을 정의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의학적 손상’ 여부에 방점이 찍힌다. 따라서 ICF를 염두에 둔 국가들 통계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2019년 10월 발간한 〈한국 장애출현율 개편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는 국내 최초로 ICF에 근거한 조사 도구로 장애출현율을 산출했더니 현행보다 3배 가까운 수치인 18.7%가 도출되었다고 밝힌다.) 또한 일반적으로 질병과 장애의 경계는 지속성과 치료 가능성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장애 이슈는 치료가 아닌 관리에 치중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문제는 질병과 장애 사이에 선이 명확히 그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성질환 또한 계속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 이를 포함할 것이냐에 따라서도 숫자가 달라진다. ‘병적 비만’, 알코올중독, AIDS, 당뇨를 장애에 포함하는 국가도 있고, 스웨덴은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 이민자’를 장애인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국의 현행 장애 범주를 수정하여 더 많은 만성질환자가 포함된다면 장애인을 향한 낙인이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간단치 않은 것은 장애와 질병을 둘러싼 쟁점 때문이다. 아픈 몸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차라리 장애인으로 등록되기를 원하는 질환자들도 있지만, 낙인을 피하고자 장애인으로 인정받는 것을 꺼리는 질환자들도 적지 않다. 질병은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고, 나이가 들면 노화로 활동에 제약받기 마련이지만, 장애와 질병을 당사자 편에서 헤아리고자 하는 시도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왜 그러한지 살펴보기 위해 근대 이후 주목받아온 비장애인의 ‘능력 있는 몸’(able-bodiedness)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좋겠다. 이는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범주의 탄생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김도현은 200년 전만 하더라도 ‘장애인’이 없었으며, 그 개념은 자본주의가 태동한 근대 이후 ‘발명’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7) 이는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야기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정신질환으로 환청을 경험하는 사람 등 특징이 달라도 너무 다른 이들이 한데 묶이는 점이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서구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19세기, 전환기의 공장 임금노동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부랑자로 ‘구빈원’(workhouse)에 가게 됐는데, 빈민을 분류하면서 ‘일할 수 없는 몸’과 ‘일할 수 있는 몸’을 분리했다고 한다. ‘일할 수 있는 몸’은 구빈원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었고, ‘일할 수 없는 몸’은 ‘불인정 노동자’(unrecognized worker)로서 다른 시설에 보내졌다. 이로부터 오늘날 ‘장애인’ 범주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국내외 장애인 관련 사회보장 체계를 보면 ‘취업’ ‘고용’ ‘노동’의 문제와 관계가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학과 장애학을 연계하여 미국사를 ‘장애’로 꿰뚫는 킴 닐슨의 《장애의 역사》 또한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장애인’ 개념을 만들었음을 언급한다. 이때 ‘장애’는 유동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17세기 유럽에서부터 ‘노동 수행 능력’이 장애를 정의하는 일차적 기준이었다고 지적한다(67쪽). 유럽계 북아메리카 정착민들은 이에 따라 법과 질서를 세우고자 했는데, 이 시기에는 노동을 방해하지 않는 신체적 장애는 일상적으로 여겨졌기에 실질적 정책을 만들 때는 심리·인지장애에 주목했다. 킴 닐슨은 신체적 손상이 주목받지 않은 여러 이유를 든다. 당시에는 갖은 질병과 사고로 인한 신체적 장애가 드물지 않았고, 북아메리카로 항해하는 가운데 온갖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손상을 입기도 했다. 이 시기 ‘능력 있는 몸’의 신체적 형상은 제법 다양했다. 저자는 이 형상이 어떤 식으로 재현되고 변화를 겪었는지 추적한다. 미국 자본주의 체제하에 이등 시민으로서의 장애인에 대한 규정8)은 ‘독립’ ‘자치’라는 미국의 이상과 관련되었으며, ‘강인함’ ‘독립성’ ‘자율성’ ‘자수성가’ 등으로 수식되는 일등 시민 모습과 여러모로 대조적이었다. 흑인과 여성의 몸 또한 ‘백인 남성’과의 신체적 비교를 통한 잘못된 의료적 진단으로 오랫동안 손상이 있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이 책은 산업재해와 잇따른 전쟁 등이 장애를 수반해온 상황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북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역사를 다루면서는, 과거 이들의 문화 가운데 ‘장애’(Disability)에 해당하는 단어나 개념이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청각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다채로운 수어들이 일상에서 사용되었으며, 몇몇 토착민 부족은 신체적 손상보다 공동체와의 ‘관계’가 약하거나 없어져서 공동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을 ‘장애’로 인식했다. 물론 재해, 야생동물의 공격, 전염병, 전쟁 등에 쉽게 노출되어 신체적 장애가 흔했던 당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손상된 몸은 오늘날보다 생존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악재로 작용하기도 해서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덧붙여, ‘장애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보여주는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그린비)에는 보르네오·케냐·소말리아·우간다·니카라과 등 비서구 지역에서의 연구가 제시된다. 다양한 문화적 상황에 따른 인식 차이가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데, 쌍둥이나 치아를 갖고 태어난 이들을 ‘비인간’으로 여기는 부족도 있고, 시각적 손상을 입고 태어난 이들을 ‘신의 선물’로 여겨 축복하는 부족도 있다. 가족 공동체 중심의 노동이 이뤄지는 일부 환경에서는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이 ‘쓸모없는 존재’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각자 가정 내에서 가치 있게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범주로 묶여지는 ‘장애인’ 개념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 경계가 흐릿하고 애매모호하기도 했다. 산업화 등으로 노동의 양상이 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1)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단어들은 그곳의 지배적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김승섭은 킴 닐슨의 《장애의 역사》 (동아시아) ‘옮긴이의 말’에서 번역에 관한 고민을 토로한다(12쪽).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라는 말이라든지, ‘Perspective’를 옮길 때 쓸 수밖에 없었던 ‘관점’ ‘시각’이라는 단어가 “맹인이 배제된 비장애중심주의적 표현”임을 돌아보게 되었으며, “의심하지 않고 바라보면 삶의 모든 자리에 당연한 듯 존재했던 비장애중심주의적 언어가 …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접근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 자체가 비장애중심주의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2) 단순하게는 ‘장애가 없는 상태에 대한 선호’이다. 장애가 없는 몸과 정신은 ‘정상’으로, 그렇지 않은 몸과 정신은 ‘비정상’으로 인식하면서 전자를 지위상 우월하게 여기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장애학은 이것이 하나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사회에 작동하여 노골적이거나 보이지 않게 제도적 장벽을 만들어 차별을 수반한다고 보고, 이를 해체하고자 한다. (로널드 버거, 《장애란 무엇인가 - 장애학 입문》(학지사), 48-49쪽 참조.)
3) 제임스 찰턴이 쓴 책 제목(《우리 없이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울력))으로, 장애인 운동의 ‘당사자 원칙’을 드러내는 슬로건으로 유명하다.
4) 아래 설명은 《장애학의 도전》, 김홍덕의 《장애신학》(대장간), 조한진 편저의 《한국에서 장애학 하기》(학지사)에 담긴 관련 내용을 주로 참고해 풀어냈다.
5) 일라이 클레어는 《망명과 자긍심》(현실문화)에서 ‘핸디캡’(handicap)이라는 단어에 담긴 뉘앙스를 다음의 장면 묘사로 드러낸다. “핸디캡handicapped. 한 장애 여성이 길거리에 앉아 끼니를 구걸하고 있다. 도시가 성장하고 토지 기반 경제에서 산업 기반 경제로 이동하던 유럽과 미국에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다. 우리는 손에 모자를 caps in hand 들고 있는 거지였다.”(151쪽) ‘손에 모자를 들고’ 구걸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여 때때로 비하의 의미로도 쓰인다고 한다.
6) 박정수는 《‘장판’에서 푸코 읽기》(오월의봄)에서 미셸 푸코의 사유를 빌려 장애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장애학은 ‘장애란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에 그런 물음이 제기되는 인식틀(에피스테메)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장애(인)에 대한 지식이 구성되는 인식틀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생성되며, 그 권력 효과는 무엇인가? 영국의 장애학 1세대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장애인에 대한 지식이 구성되는 장을 ‘사회’로 보았고, 그 지식의 권력 효과를 ‘억압’으로 규정했다.”(54쪽)
7) ‘장애인’의 발명과 구빈원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김도현의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 66-76쪽, 《장애학의 도전》 303-307쪽 참조.
8)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보통이 아닌 몸 - 미국 문화에서 장애는 어떻게 재현되었는가》(그린비)에 나오는 내용은 관련해서 참고할 만하다. “공식적으로 그리고 동정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의 의무를 면하게 되는 것, 다시 말해 공적 경제 영역에서 벗어나 사적 자선 영역으로 보내지는 것은 또한 노동이 대니엘 로저스(Daniel Rogers)가 “도덕적인 삶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던 사회에서 일할 특권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이기도 하다. 신체적인 다름을 보상하려 하는 도덕적 관대함은, 신체적 다양성을 수용하기 위해 사회적 환경을 재구성하기보다는 개인의 몸이 제도적 표준에 순응해야 한다고 상정함으로써, 그 관대함의 수혜자들을 문화적으로 따돌림받는 자들로 만드는 것이다.”(91쪽)
강동석
본지 기자. 베커근이영양증을 진단받은 경증장애인이다. 학부에서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을 공부했으며, 기독교 독립 언론 〈뉴스앤조이〉에서 편집기자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