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는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

[376호 내 인생의 한 구절]

2022-02-28     문혜인

언제쯤 후회 없는 밤을 보내게 될까

이제 육아 4년 차, 내 일상은 특별할 것 없이 아이들 컨디션에 따라 좌우된다. 지난주는 한파에 미세먼지가 최악이어서 아이들과 집콕, 이번 주는 아이들 감기로 집콕. 인생 38개월 차와 8개월 차인 두 아들과 보내는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날들이다. 내가 이렇게 웃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뚝뚝 흘리는 사랑스러움에 취했다가, 금세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와 짜증을 낸다. 밤이면 잠든 아이를 안고 왜 난 더 인내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날들이 반복된다. 아이들 밥을 챙기고 응가를 치우고 같이 놀고, 틈틈이 집안일을 하다 보면 속절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알고 있지만, 오늘도 나는 (많은 일을 했음에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한숨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이들이 잠든 뒤 에너지와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넷플릭스를 떠돌다 그냥 잠드는 (아쉬운) 날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언제쯤 후회 없는 밤을 보내게 될까.

첫째를 낳고 집으로 와서 보낸 첫날 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하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눈앞에 있는 이 작은 생명을 당장 먹이고 재워야 한다니! 두려움은 아이와 한 몸이 되어 매인 바 된 내 처지를 향한 것이기도 했고, 한 존재를 책임져야 할 내 역할의 무게이기도 했다. 아이가 처음 내 품에 안겼을 때의 낯섦이란! 넌 누구란 말이냐!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하는 날들이 쌓여가며 아이는 나에게 점점 중요하고 큰 존재가 되었다. 육아는 고단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존재로 인한 충만함을 맛보고, 돌보고 의지하는 대상이 있어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가 더해진 삶에서 내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일같이 내 한계와 바닥을 대면하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나 홀로 조용히 경건 생활을 하기도 어렵다. 소란스럽고 분주한 일상 중에 나는 신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이에게 악- 하고 소리 지를 때마다 은혜가 필요한 나의 날것 그대로의 본성을 마주한다. 아이의 사랑스러움은 그분께 받은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의 앞날을 생각하면 기도가 절로 나온다.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다. 아이로 인한 염려의 제목이 많아지는 만큼 나는 신 앞에 겸손해지고 간절해진다.

내 진짜 모습은 무엇이었나

아이들과 붙어있는 일상에서 내가 계획한 사소한 일조차 해내지 못하거나, 내 것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쌓여가면 어느새 남편에게 불만과 짜증을 쏟아낸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인데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았을 모습이다. 아이에게 내는 화와 짜증은 괜찮다고, 정당하다고 여겨버린다. 이런 날들이 쌓이면 지금 내 처지에 대한 불만족스러움과 무력감이 찾아온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내 삶의 경고등이다.

첫째 아이를 낳고 작은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를 반복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 시절 나를 숨 쉬게 했던 것은 SNS에서 글을 끄적이는 일과 작은 묵상집 《이 여인을 보라》(평화교회연구소)와의 만남이었다. 그때 내 관심은 성경 속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여인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나는 30대 초반까지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로 살았는데, 당시에는 사역자 자리에 있다 보니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강하고 의연하게 지나온 순간이 많았다.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에 늘 깨어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지만 나를 진정 나로서 받아주고 받아내는 경험이 부재하기도 했다. 사역자를 사랑하는 자리로의 부르심이라 여겼지만 두려움이 컸고 역할과 책임에 몰두하였다. 더 품지 못하고 놓쳤던 사람들이 떠올라 괴로움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잔뜩 힘주며 긴장되었던 마음을 풀어놓으니 내 진짜 모습은 무엇이었나 하는 고민의 연장선에서 성경 속 여인들에게로 나의 마음이 향했다.

마음속에 남은 수넴 여인의 만족 어린 대답

그러나 그 여인은 대답하였다. 저는 저의 백성과 한데 어울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왕하 4:13, 새번역)

기적을 일으키는 선지자가 자신에게 베풀어준 호의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 물었다. 이에 수넴 여인이 내놓은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과 긍정의 대답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길 꿈꿨지만 결국 내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면 소심하게 움츠러들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일이 지금 아이들과 토닥거리는 내 작고 작은 삶과는 상관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수넴 여인의 고백과 그녀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가치를 알고 마음의 따뜻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임을 배웠다. 오늘 나에게 찾아온 사람에게 인색하지 않고 넉넉함으로 베푸는 것, 상대의 필요를 살뜰히 챙기는 것, 오늘 한 날에 감사하며 성실히 내 자리를 지키는 것,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잘 지내는 것,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귀와 마음을 기울이는 것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내 앞에 있는 아이에게 오늘은 덜 짜증 내는 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은 똑같은 일과의 지루한 반복이면서도, 생명이 가진 에너지로 인해 새롭고 역동적이다. 어떤 날은 설거지하는 시간, 혹은 아이를 안고 재우는 그 순간에 깊은 충만함을 누린다. 하지만 어떤 날은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고, 내 안의 허기와 궁핍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오랜 시간을 무력감과 빈 영혼의 상태로 지내기도 한다. 내 삶의 경고등이 켜지고 내 영혼의 안녕을 물을 때마다 다가오는 단어는 자족함이다. ‘예수님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다른 것을 더하지 않고 ‘네’라고 답할 수 있는가이다. 그것은 나의 취약함, 한계, 민낯을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며 이런 나에게 예수가 진정 필요한 존재임을 붙드는 시간이다.

이제 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정말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하고, 많은 것을 가지고도 적은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합니다. 나는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많이 가졌거나, 빈손이거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지,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11-13, 메시지 신약)

사람들과 늘 부대끼며 살아가다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은 시간을 꽤 오래 보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30대 중반, 다시 진로 고민이 시작되었다. 현재 내 위치에서 이룬 것도 준비된 것도 아무것도 없는 나를 볼 때마다 염려와 후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은 세상 모든 염려가 나를 휘감을 때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어떻게 일하셨는지가 분명히 새겨진 시간이었다. 내 삶은 점점 더 불확실함 속으로 들어가겠지만 이전만큼 두렵진 않다. 어떻게든 살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지난 시간처럼.

지난 7년의 시간들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사역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어려움 안에는 늘 원가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이라는 체계 속에서 영향받는 관계에 대한 관심이 ‘가족상담’으로 이끌었다. 이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대학원 첫 학기를 다니면서도 기혼에 30대 여성인 내가 지금 공부를 시작해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현실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 과연 취업은 가능할까,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 아직은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을 양육하며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업 직전까지 육아 모드로 정신없이 지내다 노트북 앞에 앉는다. 아기 띠로 아이를 안은 채다. 집중도 성찰도 쉽지 않은 상태로 멍하니 있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속에서 쉽게 주눅이 든다.

이런 복잡한 마음과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를 이끈 것은 사람을 돌보고 세우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고, 관계 안에서의 충만함과 회복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 동시에, 맡겨진 역할을 책임 있게 잘 감당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그칠 때가 많았다. 나를 실패감과 불만과 두려움으로 이끌었던 순간들. 

하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되고, 그저 함께하는 것이 사랑임을 가르쳐준다. 밤마다 나는 아이에게 쉽게 짜증 냈던 순간들을 후회하지만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엄마를 찾고 엄마 품에 폭 안겨 잠든다. 나도 그렇게 하나님 품에 안겨 그 안에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내 하루가 주님 안에서 안녕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두려움과 취약함을 아시고 나를 진정한 관계와 사랑에 머무르는 여정으로 초대하시는 것 같다. 아이들과의 전쟁 같은 하루하루도, 학업도, 공동체와의 함께함도 그 안에 있다. 여전히 내 삶에 경고등이 켜지겠지만 지금–여기에 자족하는 하루가 나를 가장 나다운 자리로 이끌 것임을 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아이들과의 일상을 오늘도 살아갈 뿐이다.  

문혜인
사랑스럽고 개구진 해민, 해든과 기승전 ‘공동체’를 말하는 남편 병호와 수원에서 살면서 육아 동지들과 아울교회로 모인다. 마지막 학기를 앞둔 대학원생이나 현실은 육아가 전부인 엄마 노릇 중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