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377호 커버스토리] 교계 여성들의 성장 플랫폼 ‘움트다’ 좌담회
교계에 흩어진 크리스천 여성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느슨하게 연결되는 곳. 2019년 발족한 ‘움트다’는 교계 여성 네트워크 커뮤니티이자 여성들의 연대와 성장을 위한 플랫폼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움트다의 활동은 ‘20대 대선 어떤 생각해?’ ‘채식주의’를 비롯해 한 주제를 선정해 이야기 나누는 ‘오픈움트다’, 사회 이슈나 페미니즘 서적 등을 함께 공부하는 ‘책트다’, 여성주의 예배 기획·진행, 유튜브 채널 운영이 있다. 이와 함께 네트워크 멤버가 지식을 나누며 서로에게 일자리도 제공하는 ‘배움트다’ 활동도 준비 중이다.
20대부터 60대, 목회자부터 평신도까지 다양한 움트다 멤버들을 이어주는 것은 평등 문화다. 멤버들은 직분과 나이 등 위계질서를 피하고자, 직분 대신 ‘움’을 붙여 서로를 ‘이름+움’으로 부른다. 움트다를 통해 여성들이 싹을 틔우고 열매 맺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영되었다. 움트다가 진행하는 여성주의 예배에서는 평신도와 목회자가 함께 설교하기도 한다. 움트다는 또한 ‘주변부의 목소리’를 추구한다. 여성 신학자, 여성 목회자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 평신도와 아시아 교회 여성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복음과상황〉은 움트다 멤버들을 2월 25일 영등포산업선교회 큰사랑방에서 만났다. 전수희 대표(41)가 개인 사정으로 줌으로 접속한 가운데, 박정하 목사(38), 평신도인 박지은 씨(32), 유에스더 씨(27)가 현장에 참석했다. 움트다 내부 문화와 이들의 활동 이야기가 ‘목사의 쓸모’라는 이번 커버스토리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았다.
- 움트다에 참여한 계기와 함께, 활동하면서 얻는 이점이 궁금하다.
전수희: 교계에서 여성 차별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을 함께 겪은 지인 두 사람과 움트다를 시작했다. 교계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뭐라도 해보자는 열의가 있는 사람 열두 명이 모였고, 오늘 모인 구성원도 그렇게 연결된 분들이다. 나는 ‘40대 싱글 여성 목사’인데, 청빙 게시판을 보면 대체로 ‘35세 전후 기혼 남성’이 자격요건이다. 하나님 부르심 가운데 헌신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 존재를 인정해주는 곳이 없다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런데 움트다에서 다른 여성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으면서 내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정하: 교단 신학생 자격으로 세계선교협의회(CWM)가 주최한 신학 훈련을 다녀와 보고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발표 결론이 ‘선교는 저항이다’였다. 그러자 한 목사님이 교회 내 여성들 목소리가 흩어져 있는데 “저항은 혼자 못 한다, 함께해야 한다”면서 움트다를 같이하자고 제안하셨다. 여성 목회자이지만 교회 사역하고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을 두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움트다를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만나면서 내 주변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쏟게 되었다.
박지은: 올해 초까지 6년여간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사무국에서 일해왔다. 함께 일하는 목사님께 이상하다고 생각해온 교회 모습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가 움트다를 소개받았다. 그전까지는 여성주의를 잘 몰랐는데, 여성들이 다양한 문제들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모임을 통해 자매애를 누리고 있다. 멤버들 대부분이 ‘프로 엔(N)잡러’(한 가지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여러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해서 자극도 받고 있다.
유에스더: 학교 선배 제안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정신적 지지뿐 아니라 정보를 얻고 새로운 활동으로 나갈 수 있는 장도 많이 알게 됐다.
- 움트다는 2060 여성 평신도와 목회자가 공존하는 네트워크다. 서로 생각의 차이를 발견할 때도 많을 것 같은데.
에스더: 교회 내 여성 문제라는 이슈로 모였지만 목회자, 평신도, 엄마 혹은 비혼자 등 각자 서있는 자리에 따라 다른 입장이 나온다. 나는 이런 생각 차이가 오히려 좋았다. 여성주의 예배를 준비하면서 경험했던 일화가 있다. 목회자가 말씀, 세례 순서를 맡는 게 목회자에게는 당연했지만, 일반 성도인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왜 꼭 그래야 하는가 의견을 냈고, 실제로 한 평신도와 한 목회자가 같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설교가 진행되었다. 움트다는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견들은 우리 활동에 쉽게 반영된다. 모두 자기 주관이 뚜렷한 분들이지만 다른 사람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줄 알고 수용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마음의 태도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하: 사회 이슈나 신학적 해석에 대해 서로 생각이 다름을 발견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문제를 인권으로 생각하시는 분도 있지만, 판단을 유보한 분도 있다. 이런 생각을 모두에게 오픈하시지는 않았고 개개인으로 만났을 때 들었던 고민이었다. 그분은 움트다 안에서 역할을 충분히 해내며 함께 잘 활동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의 차이를 어떻게 조금 더 여성주의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보기도 한다.
수희: 청년부 사역을 주로 해왔고 사역자로서 청년들을 만나왔지만 교회 바깥에서 20대와 구성원으로 함께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젊은 분들은 페미니즘을 익숙하게 듣고 자라온 세대다. 성소수자 인권이나 평신도 설교자 등의 주제는 이전에는 고민하지 못했던 영역이었지만 움트다를 통해 교류하며 생각도 더 깊어지게 됐다.
- 여성이 아닌 사람도 움트다 활동에 참여할 수 있나.
수희: 많이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 중인 부분이다. 멤버십을 모집하면서 남성분들이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많았다. 일단 여성들이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숨 쉴 안전한 공간을 추구했고, 올해까지는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 본인을 여성이라고 인식한다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 움트다의 차별성이 드러나는 활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에스더: 나는 여성주의 예배를 꼽고 싶은데, 예배 기획과 사전 준비에 공을 들인다. 예배 한 번을 진행하기 위해 7-8개월을 준비하는데, 참여자들이 예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예배 자료 및 성만찬 키트, 간식을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여성주의적 성서 해석뿐 아니라 공간 배치도 고민한다. 일반적인 예배의 공간 구성은 높은 단상에 십자가의 후광을 입은 목회자가 있고 그 아래 성도들은 침묵하거나 기도문을 따라 읽는 모습이다. 움트다의 여성주의 예배는 수동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이 아니라 둥그렇게 둘러앉아 한 사람이 오래 발언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얘기하고, 즉흥적으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수희: 지난 2년간 여성주의 예배를 진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성평등한 예배와 교회 문화를 만들기 위해 좀 더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여성주의 예배와 워크숍, 성평등 및 젠더폭력예방교육 등을 하기 위한 기관으로 ‘움트다연구소’를 작년 연말 설립했다. 한국교회가 여성들을 위한 안전한 예배 공동체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지은: 움트다의 차별성은 ‘오픈움트다’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주제 하나를 선정하고, 일회적으로 참여하는 분들도 오셔서 함께 이야기하는 장인데, 어떨 때는 다 같이 울면서 얘기하고, 어떨 때는 깔깔거리고 웃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비대면으로 만나서도 이렇게 친하게 교제를 나눌 수 있구나 싶었다. 나는 내향적인 성향인데, 참석하면서 그런 모습들이 좀 신기했다.
- 2월에 진행한 오픈움트다 주제는 ‘20대 대선 어떤 생각해?’였다.
지은: 아무래도 20대 대선 후보들이 각각 성평등, 여성 이슈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정책을 계획하고 있는지를 놓고 이야기 나눴다. 네거티브로 얼룩진 대선 관련 소식들 속에서 정작 듣기 어려웠던 대선 공약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오픈움트다에서 들을 수 있어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수희: 정치 참여 주체인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를 말하고 듣는 시간이었다. 오픈움트다 출발점은 ‘수다’인데, 참여자들은 모두 1/n의 발화권을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의 여성이 자기 목소리가 소외된 경험을 갖고 있어서 발화 주체로 서는 일 자체가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 움트다 활동을 외부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통로는 유튜브 채널이다. 지금까지 여성 신학자, 여성 목회자뿐 아니라 교계와 일반 사회 활동가 및 단체, 아시아 교회 여성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이런 채널은 교계에 없었던 것 같은데.
에스더: 과거나 현재나 교회에서 여성들 목소리가 없다고 하는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움트다의 차별성은 교회 내 여성 당사자가 직접 내는 ‘주변부의 목소리’다. 교회에서 가장 침묵당하는 존재인 여성 평신도가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려 했다. 서구 신학의 옷을 입은 기독교가 아니라 아시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시아 교회 여성들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와 함께 여성 목회자들이 어떤 신학과 사상을 갖고 어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지 담아냈고, 여성 신학자도 소개하고 있다. 아르굴라, 포레트, 카타리나, 잔 달브레 등도 루터나 칼뱅처럼 우리가 기억할 만한 인물이었음을 전하고자 했다.
정하: 유튜브에서 ‘애덕움’(움트다에서 유에스더 씨를 부르는 호칭)이 목소리 출연을 맡고 있다면, 나와 ‘수희움’은 영상 편집을 맡고 있다. 남성 신학자 중심의 신학 공부를 해왔고, 여성신학이나 여성 신학자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할 기회가 없었기에 새로운 경험이었다.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이 다분히 남성 중심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는 것, 주기도문 등 교회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기도문이나 예배문을 여성 시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이번 커버스토리 주제가 ‘목사의 쓸모’다. 이 질문이 주제와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목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가.
수희: 아무래도 성도들 삶 가운데 함께하고 있을 때다. 교회 성도 가족분의 장례식에 많이 가게 되는데, 그때 가장 깊이 느낀다. 이전에 만났던 분들은 아니고 영정 사진으로만 뵙는 것이지만, 그분을 위해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 때, 슬픔 가운데 있는 가족들을 마음으로 위로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교회 청년들이 결혼이나 취업 등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 제게 기도를 부탁하고 함께해주기를 바랄 때 같은 감정을 느낀다. 슬픔을 나누거나 기쁨이 있는 자리에서 위로하고 축하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움트다를 하면서도 목사 정체성을 다시금 명확하게 다지게 된다.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 중심적 구조의 한국교회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억압을 받아온 여성들이 움트다를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었다는 고백을 들을 때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음을 인식한다.
정하: 지난해 봄부터 보호종료아동, 학교 밖 청소년 돌봄을 하는 민간 사회복지기관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나는 어느 곳에서보다도 이 현장에서 목사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있다. 소년범이었던 아이들, 학교 폭력 가해자, 학대 피해자이기도 한 아이들을 만나며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슬픔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끝까지 곁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교회 현장에서 분명 목회로의 부르심이 있었지만 사실 한 파트의 목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교회에서 요구되는 역할인 찬양 인도를 오랫동안 맡아오면서 내가 기능적으로만 존재한다는 생각에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전임 목사님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설교, 찬양 인도, 운전, 영상 편집 등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삶의 현장과의 만남 속에서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기에는, 현실적으로 교회가 한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기능적 역할이 너무 많다고 본다.
- 이번엔 일반 성도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어떨 때 목회자의 역할을 발견하나.
에스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기독교적 돌봄 노동자의 측면인데, 앞서 두 움들께서 말씀해주신 부분이다. 지속적으로 안부를 물어주고 신앙에 대해 환기해주는 경험을 했는데 특별히 코로나 시국에 더 빛을 발하는 부분인 듯하다. 두 번째로, 전문적 ‘예배 퍼포머’ 역할이 있다고 본다. 움트다에서 여성주의 예배를 기획하며 모든 평신도가 매번 예배를 기획하는 것 자체가 진 빠지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 상징적 의미를 담아 잘 기획된 예배를 전문적으로 진행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일반 성도의 삶에 밀접한 이야기와 언어로 풀어서 성서와 신학을 설명해줄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지은: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또 있다.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는 일. 말씀을 전하는 이의 삶을 전부는 아니라도 조금이나마 알 때 설교가 와닿는 경우가 있어서다.
그 밖에 개인 일화를 말하면, 교회에서 일 많이 하고 봉사에 대한 기대를 받으면서 소진만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부터 청년부 예배를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다 올 초에 청년부 담당 목사님이 바뀌었는데, 주중에 살아갈 힘을 얻는 공동체가 지은 자매에게도 있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꾸준히는 아니지만, 올해 다시 청년부 예배를 나가기 시작했다. 줌으로 교제할 수도 있지만 이런 목양이 이 시기 더욱 요구되는 목회자 역할이고, 어떤 온라인 예배로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일반 성도들은 아무래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끼리 교류하게 되고, 각자 삶이 있는데 모든 사람을 다 아우를 수도 없잖나.
- 앞서 말한 역량만 갖추면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
정하: 이전까지 ‘좋은 목회자’라 하면 말씀 잘 전달하고, 품성이 좋고, 성도들 처지를 잘 공감해주고, 이웃을 위해 무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목회자’로 보였던 사람들이 성폭력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세습을 감행하고, 교회 재정을 남용하고, 권위로 성도들을 억누르거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대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안전한 목회자를 기르고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건 교육과 지원이 아닌 악한 목회자를 양산하는 교회나 교단의 구조 변화다. 지금처럼 구성원의 다양성이 없고 배타적 사안들을 결정하는 교단 환경에서는, 생각 있는 담임목사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뻔한 답변일 수 있지만, 교단이 달라져야 하고, 교회 구성원들 의식이 함께 변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고민하고 갈등하던 목사들도 결국 자기 신념이나 신학이 고려되지 않은 목회를 하게 되어, 심하면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자기도 남도 속이면서 살아가는 선택을 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