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자가 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377호 보수 정치학자의 국제 이슈 읽기 9]
필자는 본지를 통해 ‘전시작전권 연기로 통일은 더 멀어졌다’(2014년 12월), ‘보수 정치학자가 본 동북아 신냉전 기류와 통일’(2015년 6월), ‘대북정책의 실패, 대한민국의 좌절’(2016년 5월), ‘트럼프의 외교 공세와 한국의 대응’(2017년 4월) ‘멀고도 힘든 여정의 시작, 북미 정상회담’(2018년 7월), ‘멀고도 힘든 평화의 여정’(2019년 4월), ‘군사주권 확립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모험’(2019년 9월)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군사주권’(2020년 6월), ‘바이든의 외교정책과 한반도의 운명’(2021년 4월) 등 매년 보수 정치학자 관점에서 한반도의 안보 이슈를 다뤄왔다. ― 편집자 주
유럽의 가난한 나라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전쟁으로 화약 냄새가 전 세계에 진동하고 있다. 가난하고 약한 인접국을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서방 언론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전쟁광으로 규탄하면서 결사 항전을 외치는 우크라이나 젊은 대통령 젤렌스키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흥분이나 감정 혹은 도덕률로 결정되는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적 이익을 놓고 벌어지는 국가와 국가 간 치열한 힘의 투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감성이나 윤리 혹은 국제법의 기준이 아니라, 현실주의자의 눈으로 분석하며 한반도 상황까지 짚어보고자 한다.
러 - 우크라 침공 사태의 배경
1999년 정권을 잡은 후 비교적 이른 시일 안에 사회를 안정시킨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과거 소련이 누렸던 패권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군사 대국으로서 위상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꿈을 숨기지 않았고, 그의 꿈에 러시아의 대다수 국민도 동조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일차적인 국가 목표는 적 혹은 가상적(假想敵)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서방 제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서방 세력은 1990년 초 소련이 붕괴될 때에 소련 영향권 아래 있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제국들을 미국이 주도하는 방위 동맹인 나토(NATO)에 가입시키고, 과거 소련 영토였던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까지 나토 회원국으로 만들어 러시아 인접 지역까지 미국의 군사적 영향권 안에 편입했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은 나토의 동진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옛 소련 영토였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서는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국가 의지를 보여주었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그곳에 미국의 핵무기와 미사일이 배치된다면 러시아에는 생사가 달린 위협이 되리라고,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층들은 비합리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계산을 한 것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이데올로기·종교·인종은 물론이고 정치 영역에서도 친러시아파와 친서방파로 쪼개져 피비린내 나는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러시아의 침략을 더욱 쉽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서부에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살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정교회 신자들이 슬라브인 정체성을 지니고 살고 있다. 이 이질적 두 집단 사이의 분쟁이 러시아의 침략을 더욱 용이하게 만든 셈이다.
냉엄한 힘의 논리 속 우크라이나
이번 러-우크라 침공 사태의 뿌리로 우선 우크라이나 내부 갈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일찍이 2014년 유럽과의 통합을 강조하는 친서방 세력은 2010년 국민 투표로 당선된 친러시아 노선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반발하여 민중 시위를 주도하고 국회 탄핵을 통해 대통령을 실각시켰다. 러시아는 이 친서방파의 약진에 크림반도를 러시아와 강제 합병하는 것으로 맞섰다.
이번 2022년 사태 때도 친서방파 젤렌스키 정부는 나토 가입 조건을 만족시키고자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반군 세력 축출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에 러시아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개입이라는 극단적인 대응을 택했다. 이들 분리주의 세력은 2014년에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세웠음을 선포하였고, 러시아가 2월 21일 두 국가를 독립국가로 승인하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사적 갈등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마침내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무자비한 군사 침공을 감행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집권 세력의 기대와는 달리 서방측, 특히 미국에게 우크라이나는 전략적으로 핵심 이익이 있는 곳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핵 국가인 러시아와 무력으로 대치하는 위협을 감수할 만큼 우크라이나 근방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보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나 크림반도를 합병할 때도 서방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저지하지는 않았다는 데서 이미 증명되었다. 러시아를 응징한다는 서방측은 경제제재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고 오래갈 수도 없는데, 경제제재는 서방세계에도 큰 피해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최대의 가상적국이 아시아에 있는 중국이라고 믿고 중국 견제에 더 많은 자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제 역시 유럽에서 대러시아 전쟁을 수행할 만큼 여유롭지 않은 상태이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합병하거나 장기간 점령하는 일이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명토 박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무력화하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친서방 정책을 포기하게 만든 후에는 돈바스, 크림반도를 제외한 지역에서 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국 군대를 장기간 외국에 주둔시킬 수 없음은 러시아도 미국과 다를 바 없다.
우크라이나가 전장이 되고 참혹하게 파괴되었지만 미국이 러시아의 군사 위협으로부터 제대로 방어막이 되어주지 않는 현실에서, 러시아와 인접하면서 최근에 나토의 일부가 된 발트 3국과 폴란드, 루마니아, 터키 등의 불안은 커질 것이다. 독일같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나라는 자체 군사력 강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미국의 관심이 유럽으로 집중된 사이에 숨을 고르며 러시아 편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의 수습에 한몫하여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영향력을 증대하려 할 것이다.
일찍이 존 미어샤이머 같은 현실주의적 정치학자들은 미국이 유럽에서의 세력 균형을 무시하고 우크라이나를 서방측에 편입시키려는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다. 1960년대 초반에 미국이 지역적으로 인근에 있는 쿠바가 소련과 군사동맹을 맺을 권리가 없음을 천명했듯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들어갈 권리가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국제정치 현실을 무시한 채 나토 가입을 공개적으로 추진했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위험을 무릅쓴 친서방 정책이 러시아의 침공을 불러온 측면도 분명히 있다. 아마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 등 서방의 도움과 개입을 기대했고, 특별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가치 동맹 정책이 많은 신뢰를 주었으리라. 그러나 냉엄한 힘의 논리는 국제정치가 젤렌스키의 기대나 바이든의 이상주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 곧 국가 안보
강대국에 둘러싸여 강대국 사이의 충돌에 많은 희생을 치른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은 기억해야 한다.
첫째, 국제정치를 단순히 선과 악의 투쟁으로 생각하고 감상적일 뿐 아니라 선동적이기까지 한 근시안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의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
둘째, 친미 정책을 택하고 있으면 외세의 침략이나 위협으로 위험에 처할 때 미국이 언제나 그 무장력을 사용하여 지켜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가 서방과의 동맹이 없기 때문에 침략을 당했다고 보는 것은 제대로 된 판단이 아니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동맹이나 조약을 어기는 것은 대다수 나라에서 아주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뿐 아니라 한미동맹도 유사시에 미군의 개입이 자동으로 보장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적으로 약한 나라가 아니기에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방어력을 준비해야 하고 군사 주권, 외교 주권을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셋째,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이해관계가 교차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한쪽 편에 너무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외교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런 면에서 미국이 일본과 더불어 동북아시아에서 형성하려는 새로운 패권 질서의 일부가 되어 전초기지 역할을 하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넷째, 국론의 분열, 국민 통합의 상실이야말로 민족적 비극과 외세의 간섭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대한민국도 남남갈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분열을 극복하고 이념적으로, 또 계층, 성별, 나이, 지역 간의 사회 통합을 이루는 길이 국가 안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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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규
미국 시카고 대학, 아이다호 주립대학에서 공부한 정치학자다. 오랫동안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널 대학(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가르쳐왔다. 저서로는 남한의 현대 정치를 논한 《뜻으로 본 한국 정치》가 있으며, 최근엔 북한의 정치적·경제적 변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