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민주당 복음주의’를 떠나보내야 할 때

[377호 무브먼트 투게더] 30년 기독교 사회운동 활동가의 충언

2022-03-31     구교형

대선이 끝났다. 대부분이 허탈하고 답답한 마음일 텐데, 이런 글을 쓰려고 하니 내 마음도 힘들다. 그러나 과거보다 미래를 위해 이 글을 쓴다.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는 계속되고, 새 역사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한 시대가 가야 또 다른 시대가 온다.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를 두고 ‘민주당 복음주의’ ‘아저씨 복음주의’라는 말이 떠돌았다. 나는 그 말이 아주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정의부터 하자. 민주당 복음주의란 우리가 존중해온 하나님 나라, 복음주의 사회선교를 이 땅에서 구현하기 위해 민주당을 적극 활용하자는 입장 정도로 정의해본다. 그 역사는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나 우리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참으로 의미 있었다.

사실 나야말로 전형적인 민주당 복음주의자였다. 1966년 태어나 1985년 대학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사회 인식이 생겨 학생운동 끝자락을 붙들다가, 1987년 겨자씨형제단을 통해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입문했다. 예수님으로 인해 지금, 여기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교회 울타리에 갇혀있지 않고 나의 온 삶과 세상 모든 영역에 두루 미치는 근본적인 회심과 변화임을 알았고, 이후 경제정의실천연합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회선교운동 단체 실무를 맡아왔다. 그 가운데 민주당은 정의로운 사회변혁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이라 믿어 열렬히 지지해왔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으로 인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일어났을 때는 같은 달 첫아이의 출생보다 더 기뻤다. 지금도 두고두고 아내와 딸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식품도, 물건도 유통기한이 있듯이 개념도 그렇다. 이젠 유통기한이 끝났다.

오해하지 말라. 더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말자거나 지지 의견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민주당 집권, 지지를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빈곤하고 편협한 사고를 이제는 버리자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충분히 의미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따라서 새 역사를 위한 과감한 선택으로 나는 감히 ‘민주당 복음주의’를 떠나보낼 것을 제안한다.

민주당은 1980년대 그 민주당이 아니다

민주당에 대한 엄연한 사실과 현실을 인정하자. 현재의 민주당은 1980년대 그 민주당 모습이 아니다.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에서 각종 자료와 통계를 통해 잘 보여주듯이, 그들의 삶의 자리 자체가 변했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86그룹은 1980년대 전두환의 대학 자율화 조치로 갑자기 증가한 대학 정원의 혜택을 받아 입학한 첫 세대이다(나를 포함해 복음주의 사회선교 진영 리더 그룹과 거의 겹친다). 그들 대다수는 명문 ‘SKY’ 대학을 다니며 사회과학 공부로 사회적 모순에 눈떴고 사회주의 변혁을 통한 개혁에 앞장섰다(1980년대에는 아주 일반적이었다). 개인의 헌신, 세대의 희생을 통해 민주화의 주역이 되었고, 1990년대 민간 대통령 시대가 개막하면서 합법적 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중앙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첫 세대였던 이들은 2000년대 초 IT산업과 벤처의 붐을 타며 날개를 달았고, 정치·경제계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1980년대의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며 인맥(네트워크)을 형성한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시대를 30-40대의 황금기로 맞이했고, 부모 세대와 선배 세대가 물러나기 시작한 2010년대를 지나면서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최정점을 찍고, 지금은 정치계의 핵심이 되었다.

이들의 생각은 여전히 개혁적이고 정의롭다. 그러나 이들이 학생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마르크스 테제의 탁월한 분석처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자산 불평등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위기를 만들어내는지 너무 잘 알아 잇따라 부동산 대책을 내놓지만,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장관부터 이미 수도권 노른자 땅으로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이는 자산가이다. 사회적 불평등의 대물림에 불공정한 교육과 입시제도가 있음을 누구보다 과학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거나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도록 자기 기득권을 활용한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지방 출신이며, 지방에서 당선되었지만 이들의 삶의 자리는 수도권이기에 자기 지역이 아닌 수도권 확장을 위해 일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는 이러한 현실을 대변하는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다. 나는 조국을 파렴치한 인간이 아니라,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대표자로 본다. 이는 고위 공직자나 주요 정치인, 경제인들의 재산 상황과 혼·관계 인맥들만 살펴봐도 쉽게 확인된다.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민주당 정치인들은 훌륭한 이상과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더는 가난하지도(사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상 가난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약하지도, 탄압받지도 않으며, 따라서 그리 정의롭지도 않다.

정권 창출보다 더 중요한

2022년 한국 정치는 사실 아주 단순하다. 집권하면 다 얻고, 정권을 놓치면 다 잃는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이토록 망연자실한 이유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국회의 본래 기능인 정책 정치보다 집권과 자신의 당선을 위한 다음 ‘전쟁’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당연히 ‘무조건’ 상대 당 반대가 일상화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 30여 년 훈련된 습관에 따라 정치인뿐 아니라 운동 단체, 언론, 기관과 국민들에 이르기까지 딱 두 패로 갈라져 정책부터 단어의 토씨 하나까지 비난거리를 찾아내 1년 365일 전쟁을 치른다. 청와대, 국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사는 곳 어디나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전후방이 따로 없는 전면전이다. 그중에서도 양측 20%의 절대 지지층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모두가 패자인 정치 구조다. 무엇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면 독재를 하거나 군대를 동원해야 할 상황이다. 독재나 군대의 동원이 불가능한 시대에 독재와 군대가 있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정치 구조다.

똑똑하고 경험 많은 정치인들은 이미 문제와 답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꿀 의지가 없다. 왜? 양당 정치인들은 기득권자들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자는 바꾸는 것보다 붙들고 있는 게 좋은 사람들이다. 양당의 놓칠 수 없는 매력은 잘하면 집권당이고, 못해도 제1야당은 보장된다는 사실이다. 무슨 잘못을 해도 지지해주는 20%가 있고, 적당한 지역에 공천만 받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4년간 기득권이 보장된다. 지금까지 양당은 너무 쉽게 정치했다. 이번 대선 직전 민주당 국회의원 전원이 그러한 판 갈이 정치 개혁을 약속했으니, 민주당이 앞장서 다른 당과 함께 정치 개혁을 이끌기를 바란다. 선거가 끝났지만, 우리는 오히려 할 일이 많다. 특히 민주당을 사랑하는 분들이 앞장서 주시기를!

어떻게 ‘민주당 복음주의’를 떠나보낼까

우리 동네, 곧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합법적인 선거 혁명이 가능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출발했다. 특히 1987년 12월 치러진 대선이 그 절정이다. 관권 부정선거를 감시하고 군부독재에 분노를 느낀 국민들을 투표장에 끌어들이는 게 역사적, 신앙적 고백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큰 교회, 유명 목사들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독재자와 여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주일 설교에서도 노골적으로 이를 표현했다. 당시 피 끓는 젊은이로서 교회와 목사들의 그러한 행태를 참다못해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 역시 1992년 신대원 시절, 장로인 김영삼을 뽑아 기독교 국가를 만들자는 교계의 주장에 반대하여 그 기도회가 벌어지던 충현교회 예배당에서 ‘기독교후보란 없다’라는 유인물을 직접 만들어서 뿌리다가 연행되어 처벌을 받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일들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올해 대선에도 여전히 교회와 목사의 이름으로 특정인과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일들이 양측 모두에서 벌어졌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윤석열을 지지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민주당 지지의 문제로만 좁혀보자. 단순히 지지 의견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 오직 민주당 지지만이 애국이고 올바른 신앙이라는 주장은 민주적이지도, 신앙적이지도 않다. 내가 알던 하나님 나라 운동도 아니다.

먼저 인간 정치인(정당)이 마치 하나님 나라, 기독교적 가치의 대표인 양 ‘오해’되기 쉽다. 기독교적 가치를 내세워 공개 지지한 후보가 당선 후 책임을 방치한다면, 사람들은 그저 그 정치인이나 지지 인사 개인의 잘못을 넘어 기독교와 교회의 오류로 볼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공개 지지하는 이가 목사라면, 목사의 과도한 대표성으로 그런 오해는 더 커질 것이다.

또한, 지금은 명망 있는 지도자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말하면 함께 우르르 따라가는 시대가 아니다. 더욱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 과정에서 다음 세대가 느낄 혼란이다. 선거 직전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가 쓴 ‘[기자수첩] ‘민주당 기독교지부’라는 오명’(2022.3.7.)은 ‘민주당 복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잘 드러낸 글이었다. 이 글에 대해 ‘시기가 적절치 않다’ ‘거칠다’라는 반론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왜 거칠었을까? 그만큼 표현하지 못한 말들이 넘쳤고, 오래 참았기 때문이리라 예상한다. 내가 아는 젊은 운동가를 비롯한 후배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 ‘민주당주의’의 충정과 역사적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참기 힘들어진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좋은 일이다.

내가 청년 시절 시국과 관련해 어른들에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너희가 전쟁을 알아? 보릿고개를 알아?”였다. 안 겪어봤으니 당연히 잘 모른다. 그러나 그 역사적 의미를 존중하며, 그 위에서 우리 시대를 살아왔다. 그렇다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도 1980년 광주와 직선제 개헌 운동의 역사적 경험치에 기대어 운동하고, 정치하고, 신앙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들만의 기억과 경험이 있고, 그들의 방식과 언어가 있다. 나 역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있다. 존중하자.

민주당의 재집권 실패보다 더 걱정되는 점은 너무 멀어진 우리의 관계다. 여전히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 영역에서 가치를 발견하며 분투하고 있는 다음 세대와의 대화 그리고 관계 회복이, 훨씬 중요하고 시급하다.

민주당 집권보다 훨씬 큰 과제

모든 사회와 시대마다 하나님이 그 시대, 그 사회에 가장 우선으로 붙들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주신다. 보통 시대정신이라 부른다. 일제강점기 때 그것이 조국의 독립과 제국주의 극복이었다면, 전쟁 후 한동안은 새 나라 건설과 지독한 가난의 극복이었고, 1980-1990년대에는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화였다. 21세기도 벌써 20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지구(창조세계), 인류, 한반도, 대한민국 국민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존 과제다. 흔히 ‘지속가능성’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지만, 현실은 더 처절하다.

기후위기와 전면적인 환경재앙은 과학적 데이터로나 현실적 체감으로나 ‘슬기로운 지구생활’ 자체를 위협할 수준이다. 특히 미래 세대가 겪어야 할 뜨거운 지구의 폐해는 막대하고, 광범위하고, 전면적이다. 또한, 한반도의 분단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적대적 대치 중이다. 우리끼리 대한민국을 열심히 발전시켜봐야 지금처럼 군사적 위기는 계속되고, 한·미·일과 북·중·러의 신냉전 체제가 더 굳어지면, 우리 모든 국력과 성장 동력, 가능성은 창의적 발전 방향이 아니라 온통 안보와 대치 역량에 투입될 것이다. 이러다가 전쟁이라도 난다면?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더불어 사는 가장 기본적인 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2017년 평창 올림픽 이후 진행된 남북 및 주요국들 사이의 협상이 바로 그 기본 틀 만들기 작업이었다).

시선을 국내로 더 좁혀보자. 우리나라는 수도권만 벗어나면 다 ‘시골’이고, ‘오지’가 된다. 이름 있는 웬만한 중소 도시에 살아도 임산부가 갈 산부인과가 없고, 공부하려 해도 학교가 없고, 응급 상황에 갈 큰 병원이 없고, 변변한 일자리가 없다. 정부도, 국회도, 대기업도, 대학교도, 큰 병원들도, 첨단 산업 단지도, 은행과 금융기관도… 거의 모든 인프라는 수도권에 몰려있고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국토의 10%밖에 안 되는 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광역시라고 하는 부산, 광주 등도 수도권에 비교하면 역시 ‘시골’이다. 지하철만 해도 수도권에는 이미 23개 노선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데도 수도권 순환 철도망을 다시 건설 중이다. 이에 비해 부산은 6개 노선, 대구는 3개 노선, 광주와 대전은 각각 1개씩일 뿐이다. 그러니 중소 도시는 ‘오지’가 아닌가? 경상도와 전라도가 서로 싸울 게 아니라 수도권 기득권을 향해 총궐기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코로나 이후 결혼율은 더 크게 줄었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한 조사에 의하면 올해 35세인 1988년생의 비혼율(결혼하지 않은 비율)이 남자 72.9%, 여자 52.1%다. 올해 2월 발표한 기획재정부 자료에 의하면 2020년 합계출산율은 0.86명이며, 2020년 5,184만 명인 총인구가 50년 동안 1,418만 명 감소하여 2070년경에는 3,766만 명이 될 전망인데, 이는 1979년 인구 수준이다. 활기차게 일하고 꿈꾸며 살아야 할 젊은이들은 줄어들고, 인구는 점차 소멸해간다. 이는 결코 젊은이들 탓이 아니다. 그럼에도 기성세대는 오랜 세월 함께 살아가야 할 젊은 세대를 ‘이대녀’ ‘이대남’으로 나눠 원수로 만들어놓고서, 결혼·임신·출산·양육만 외친다. 20대인 내 딸도 “이런 상황에서 결혼하고, 아이 낳는 건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 예고된 비극을 물려주는 잔인한 일 아닌가?”라고 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사활을 걸고, 지구 위기, 인류 위기, 국가 위기, 다음 세대와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특히 우리 다음 세대의 현실이기 때문에 그들의 우선 관심사다. 그러니 이 일에 더 힘쓰는 일이 세상도 바꾸고, 다음 세대도 살리는 길이 아닌가? 누군가는 이 큰 과제를 이룰 현실적인 수단이 민주당 집권뿐이라 여기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끼리 싸울 여력을 아껴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지속적인 논의와 만남을 제안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로 줄인다. 이 글을 쓰면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앞으로도 함께할 수많은 선배, 동역자들에게 참 미안하다. 진정 어린 활동이 ‘민주당 복음주의’로 치부되는 게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렇게 비치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여러 해 전부터 이러한 딜레마에 부딪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후배들과 20대인 자녀들과 대화하면서 더더욱 확신했다. 민주당의 안경으로만 세상을 보는 ‘민주당주의’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잃는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민주당 복음주의’로는 복음주의와 다음 세대를 잃는다. 우리, 계급장(이라는 게 있었다면) 다 떼고 다음 세대들과 함께 만나 밥부터 먹으면 좋겠다.

■ 기독교운동과 정치 : 대선 이후의 대화 ― 집담회

행사 내용은 아래 포스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가 신청 링크: https://bit.ly/기독정치집담회(클릭)

구교형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목사.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의 공동대표이며, 십자가로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기독청년학생협의회를 시작으로 남북나눔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평화누리, 성서한국 실무자로 일했다. 늘 세상 변화를 사명으로 알고 살다가, 어느 날 십자가와 부활의 기본적 은혜도, 인생도 모르는 초보임을 깨닫고, 인생 초보, 신앙 초보, 목회 초년생을 좌우명으로 여겨 다시 살아가고 있다. 저서로 《뜻으로 본 통일한국》과 한국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 30년사를 기록한 《하나님나라를 응시하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