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는 강한 성이요”
[377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독일에는 공식 명칭에 루터 이름이 들어간 두 도시가 있다. 루터가 태어난 고향 아이슬레벤(Lutherstadt Eisleben)과 그가 종교개혁을 펼치며 모든 것을 쏟아부은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로, ‘루터의 도시’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특히 비텐베르크는 루터 종교개혁의 요람이자 심장이다. 루터가 박사학위를 받고 신학과 성경을 가르쳤던 옛 비텐베르크 대학교, 지금은 종교개혁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루터 하우스, 파문을 위협하는 교황의 교서를 불태웠던 루터의 참나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95개 논제’를 게시했던 성(城) 교회, 루터가 목회했던 시(市) 교회 등 관련 유적지가 수두룩하다. 비텐베르크는 루터 당시 인구가 2천 명에 불과했고 도심의 중심거리도 1km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었지만, 교회 개혁의 진원지가 되었다.
〔그림1〕은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95개 논제’를 게시했던 성 교회이다. ‘성 교회’는 외관이 성처럼 높은 탑을 가졌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고, 정식 이름은 ‘모든 성인의 교회’이다. 현재는 교회 입구 옆 청동문 전면에 ‘95개 논제’가 조각되어있다. 루터는 ‘95개 논제’에서 로마가톨릭교회의 공로 부적이었던 면벌부를 비판하면서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촉구했다. 이후 루터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공로를 쌓아 벌을 면제받는 데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된 것임을 천명했다. 이렇게 하여 3대 표어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이 종교개혁의 기둥으로 서게 되었다.
성 교회 내부의 설교단 바로 아래에는 루터 무덤이 있다. 루터는 고향인 아이슬레벤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시신은 비텐베르크로 옮겨졌다. 관이 비텐베르크로 들어올 때, 모든 시민은 루터를 맞이하러 나갔고 마치 영주의 관인 것처럼 영접하여 성 교회에 안장했다. 평생의 동지 필립 멜란히톤은 조사(弔詞)에서, 우리에게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명확하게 전달해준 다섯 사람이 있는데 이사야, 세례 요한,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라고 말했다. 루터가 교회 역사에 끼친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멜란히톤도 죽은 후 성 교회 안 루터의 맞은편에 묻혀 나란히 잠들었다. 각자의 아내는 다른 곳에 묻혀있어서 루터와 멜란히톤이 나란히 묻혀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둘이 어떤 관계의 동역자였는지 알 수 있다.
성 교회를 밖에서 올려다보면 둥근 형태의 웅장한 탑 꼭대기에 독일어로 적힌 글자가 보인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가 되십니다.” 루터가 지은 찬송가 가사(새찬송가 585장)이다. 참으로 루터는 모든 환란과 공격에 맞서 주님만을 방패 삼아 교회 개혁의 험하고 좁은 길을 묵묵히 걸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루터는 이 찬송을 작시할 때 성 교회의 높은 탑을 보면서 ‘그리스도가 나의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라고 고백했을 것이다.
〔그림2〕는 루터의 목회 현장이었던 비텐베르크 성모 마리아 시립교회이다. 시립교회는 성 교회보다 훨씬 이전인 13세기 말에 건립되었다. 루터는 바로 이곳에서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복음을 설교하였고, 빵뿐 아니라 포도주까지 베푸는 성찬을 행했다. 교회 내부 제단화는 루터의 신학을 잘 보여준다. 루터에게 더할 나위 없는 친구였던 루카스 크라나흐 부자(父子) 작품으로, 신앙의 네 가지 핵심 요소를 담고 있다. 상단의 세 패널에는 유아세례를 베푸는 멜란히톤, 성찬을 받는 루터, 공적 고백을 듣는 부겐하겐이 그려져 있고, 하단 중앙 패널에는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자 루터가 그려져 있다. 복음 설교 위에 세례, 성찬, 공적 고백의 성례가 있음을 말해준다.
설교자 루터는 손가락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그림 속 청중도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복음의 본질이며 우리 신앙의 중심이다. 루터의 신학을 십자가의 신학이라 부르는 일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늘도 우리는 루터와 함께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라며 소리 높여 찬양한다.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글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