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이다!”
[379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취리히 그로스뮌스터(대성당) 가까이에 바서 교회(Wasserkirche)가 있다. 〔그림1〕은 1885년 교회 앞에 세워진 츠빙글리 동상이다. 이 동상은 오른손에 든 성경을 가슴에 대고, 왼손에 쥔 칼로 땅을 짚고 서있다. 동상 아래에는 로마숫자로 그가 1484년 1월 1일 출생하여 1531년 10월 11일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적혀있다. 동상은 츠빙글리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는 1884년에 계획하여 이듬해 공개되었다. 제막식에 참석했던 교회사학자 필립 샤프는 이 동상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음을 전해준다. 동상 건립위원회의 중요한 일원이었던 알렉산더 슈바이처 박사는 츠빙글리가 칼을 든 형상에 불만을 표하고 위원회를 탈퇴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현재 모습으로 동상이 세워진 것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이 교회뿐 아니라 사회의 개혁까지 포괄하는 성격을 지녔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교회(성경)와 국가(칼) 모두를 하나님 말씀에 따라 바르게 세우기를 열망했던 츠빙글리의 개혁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개혁교회 의장 게오르크 핀슬러는 동상이 든 물건을 두 개의 칼, 즉 성령의 칼인 말씀과 츠빙글리가 살해당한 칼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림2〕는 츠빙글리가 전사한 카펠에 세워진 기념비이다. 16세기 스위스는 로마 가톨릭 주와 프로테스탄트 주로 나누어져 대립했다. 그러던 중 1529년 5월 로마 가톨릭 주에서 복음을 전하던 프로테스탄트 설교자 야콥 카이저가 공개 화형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제1차 카펠전투가 벌어졌다. 취리히를 중심으로 한 프로테스탄트 진영이 우세를 잡았지만, 보름 만에 평화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1531년 10월 제2차 카펠전투가 발발했다. 이번에는 로마 가톨릭 측이 우세했다. 이때 츠빙글리도 전쟁터로 달려가 다음과 같이 병사들을 격려하였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고통당하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옳은 편에 서있다. 여러분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분께서 우리뿐 아니라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보시리라. 오직 하나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이다.”
1531년 10월 11일 카펠 평원에서 군사들을 돌보던 츠빙글리는 적에게 사로잡혀 47세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츠빙글리는 “내 몸을 죽일 수는 있어도, 내 영혼을 죽일 수는 없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전승에 따르면, 츠빙글리 몸은 네 토막으로 찢겼고 화형에 처했다. 불에 탄 재는 돼지의 재와 뒤섞여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1838년, 츠빙글리가 숨을 거둔 현장에 그의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졌다. “바로 이 자리에서 츠빙글리가 진리와 그리스도교 교회의 자유를 위해 영웅적 죽음을 맞이하면서 ‘육체는 죽일 수 있지만, 영혼은 죽일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츠빙글리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하인리히 불링거, 장 칼뱅과 같은 스위스 종교개혁자들에게로 전해졌다. 지금도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츠빙글리는 우리에게 세 가지 유산을 남겨주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이다. 그의 정신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개혁교회 표어에 잘 반영되었다. 그는 자기 마음 전부를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자 했던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둘째, 성경에 대한 강조이다. 연속적 강해 설교, 예언 모임, 자국어 성경 번역에서 보듯이 성경이야말로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심장이요 원동력이었다. 셋째, 공동체의 구원에 관한 관심이다. 츠빙글리는 개인 구원을 넘어 취리히 시민과 스위스 국민의 구원을 열망하였다.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의 제도를 개혁하고 정치 구조를 새롭게 하는 노력으로 나아갔다. 츠빙글리의 《참 종교와 거짓 종교에 관한 주석》 마지막 문장은 그의 삶과 사상의 핵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나라와 양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글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