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회 관찰 일지

[380호 커버스토리]

2022-06-30     이규혁

관찰 #1 – 양 권사

양 권사의 주일은 새벽 3시에 시작한다. 사실 시작이라 할 것도 없다. 불면증 때문에 깊이 자본 적이 없다.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하거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일어나는 게 전부다. 운이 좋은 날은 한두 시간 정도 잠든다. 그런 날은 기분이 좋다.

양 권사는 6년 전 주방 봉사를 맡았다. 잠이 없는 게 봉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새벽 일찍 나와 5층 예배당에서 한 시간 동안 기도한다. 30대 아들이 둘 있는데,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믿음 생활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기도를 마치면, 4층 카페 겸 식당으로 내려와 주일 음식을 준비한다.

먼저 곤드레, 고사리, 시금치, 부지깽이 등속의 나물류를 삶는다. 이가 튼튼하지 못하고, 소화가 잘 안되는 어르신들을 위한 반찬이다. 삶은 나물에 소금 간을 하고, 깨와 참기름을 두르면 새벽 5시가 넘어간다. 그다음에는 햄, 소시지, 계란말이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한다. 어르신용과 아이용 반찬을 완성하면, 나머지 반찬을 만든다. 적어도 여섯 가지는 내놓으려고 한다. 교인 중 한 명이 지나가는 말로 무슨 반찬을 먹고 싶다고 하면, 기억했다가 남몰래 준비하기도 한다.

찌개와 국도 한약 달이듯 정성을 들여 만든다. 화학조미료는 한 숟가락도 넣지 않는다. 반찬을 만드는 동안 북어 대가리, 새우 껍질, 다시마, 밴댕이, 버섯, 멸치, 무 등속을 한데 넣고 육수를 우려낸다. 반찬을 다 완성하면, 우려낸 육수에 고추장이나 된장을 푼다. 찌개도 매주 얼큰한 어른용, 담백한 아이용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한다. 가끔 “지난주와 반찬이 같다” “나물이 질기다” 등 불평하는 교인이 있으면, 그 말을 들은 다른 교인들 얼굴이 화끈거린다. 정작 본인은 평온하다. “죄송해요. 더 잘할게요”라고 대답하는 게 전부다.

코로나 전에는 혼자 100인분을 준비했다. 지금은 60인분으로 줄었다. 음식도 한 그릇에 담아 먹을 수 있게 카레밥, 나물밥, 간장밥 등으로 바꿨다. 여섯 가지 반찬을 안 해도 되니, 조금은 편해졌다.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좀 편해지셨네요?”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200인분까지는 혼자 할 수 있어. 몸이 부서져도 좋으니 교인이 많이 오면 좋겠어.” 엄격하고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여 민망했다.

주일날 가장 늦게 돌아가는 사람도 양 권사다. 교인들이 다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방과 식당, 예배당 청소까지 끝내고 집에 간다. 불면증은 주일, 평일을 가리지 않는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간 주일 밤에도 깨다 말기를 반복한다. 월요일 새벽 예배당에 나온다.

관찰 #2 – 김 목사

김 목사는 매일 아침 8시면 교회 문을 연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해 예배당을 환기하고, 화분에 물을 준다. 얼마 전 교회 4층 테라스에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었다. 할 일이 배로 늘었다. 텃밭에 물을 주고 가지치기한다. 가지에 힘이 없으면, 대를 두르거나 흙에 거름을 뿌려준다. 이때만큼은 목사가 아니라 도시농부를 자처한다.

김 목사는 휴가도 가지 않는다. 교회에 부임한 지 9년째인데, 딱 한 번 10일간 파리 여행을 다녀온 게 전부다. 그가 교회를 비운 날은 그때 10일과 전 교인 수련회를 떠날 때뿐이다. 공휴일에도 어김없이 교회에 나온다. 설날과 추석 때 교회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다가 교인들에게 발각돼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다. 처음에 직원들은 불만이었다. 휴가도 가지 않고, 쉬는 날에도 출근하는 목사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동안 고민거리였다.

하루는 작심하고 물었다. “왜 휴가도 가지 않고, 월요일에도 나와 계세요?” 겉으로는 몸 생각해서 좀 쉬시라는 식으로 물었지만, 사실은 왜 그런 행동을 해서 직원들이 눈치 보게 만드시냐는 핀잔이었다. “그게 목사가 하는 일이지. 교회 문 매일 열어놓는 게.” 이유가 단순하고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딱히 틀린 말 같진 않아서 더는 묻지 않았다. 한 번은 취미 생활 좀 가지시라고 했더니, “목사가 취미 생활 시작하면 교회 망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로는 입만 아플 것 같아, “쉬시라” “휴가 좀 가시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다. 이젠 직원들도 눈치 보지 않는다. 쉬고 싶은 날 쉬고, 휴가철에도 마음대로 휴가 간다. 목사가 교회에 남아있으니 뒷일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주일 아침 교회는 늘 같은 풍경이다. 주방에서는 양 권사가 음식을 만들고, 카페 겸 식당 한편에 자리한 작은 사무실에서는 김 목사가 앉아 설교문을 들여다본다. 김 목사는 주일에는 평일보다 한두 시간 빨리 나와 설교문을 고치며 교인들을 기다린다. 김 목사 다음으로 직원들이 오고, 그다음으로 차량 운행하는 장로와 집사들이 온다.

목사의 인사법은 교인마다 다르다. 교회학교 아이들이 들어오면 무뚝뚝하던 김 목사 얼굴이 환하게 흐트러진다. 목소리도 행동도 아이처럼 변한다. 들어오는 아이들을 일일이 안아준다. 어떤 아이는 와서 안기고, 어떤 아이는 싫다며 도망간다. 어르신들이 들어오면, 가까이 가서 허리를 숙인다. 손과 어깨를 감싼다. 예배당에 가장 늦게 나타나는 건 청년과 장년들이다. 늦잠을 잤거나 주일 아침까지 일하다 겨우 예배당에 온다. 김 목사는 늦게 온 교인들에게 “교회에 안 나올 수 있었는데 나왔다”며 더 반갑게 인사한다.

〈복음과상황〉 4월호 주제가 ‘목사의 쓸모’였다. 김 목사에게 목사의 쓸모를 물으면, “뭐 별거 있나, 매일 예배당 문 열고, 교인들 오면 반갑게 맞이하는 거지”라고 대답할 것 같다.

관찰 #3 – 황 장로

황 장로는 우리 교회 비공식 전기, 분리수거 담당이다. 누가 일부러 정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황 장로는 주일 아침이면 교회 건물 1층에서 6층까지 운동하듯 오르내린다. 사람이 없는데 불이 켜졌으면 끄고,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의 코드가 꽂혔으면 가차 없이 뽑는다. 순찰이 끝나면 나를 찾아와 어디에 불이 켜졌고, 어디에 코드가 꽂혔다고 이야기한다. 나름 나를 혼내는 방식이다. 주중에도 시간 날 때마다 교회에 들러 불을 끄고, 전원 코드를 뽑고 간다.

예배가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뒤로 달려가 예배당 불과 에어컨을 끈다. 불을 끄는 문제를 가지고, 김 목사와 언쟁을 벌인 적도 있다. “사람이 다 나가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불을 픽픽 끄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지적하자, 황 장로는 “우리나라 사람들 부자병 걸렸어요. 에너지를 아낄지 몰라”라며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목사 고집도 만만치 않은데, 황 장로 고집은 아무도 못 말린다. 이제는 교인 모두가 황 장로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황 장로는 분리수거에도 열심이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교회의 온 쓰레기통을 4층 테라스로 가지고 나간다. 쓰레기를 붓고, 재활용 쓰레기는 재활용 쓰레기대로 일반 쓰레기는 일반 쓰레기대로 하나하나 골라낸다. 쓸 만한 물건이 버려져 있으면, 그날은 난리가 난다. 버려진 물건을 들고 사무실에 있는 나를 찾아와 ‘부자병 잔소리’를 시작한다. “이거 쓸 수 있는데 왜 버렸어? 누가 버렸어?” 잔소리에 익숙해진 나는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한다. “네, 네, 제가 잘못했네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기 전술을 펼친다.

잔소리가 심하긴 하지만, 마음 한편 황 장로가 있어 든든하다. 전깃불을 켜고 나왔는지, 끄고 나왔는지 고민한 적이 없다. 쓰레기 버리는 일도 걱정한 적이 없다. 소소하고 불편한 일들을 황 장로가 맡아 해준다. 황 장로의 에너지 사랑, 분리수거 사랑은 외부에서 빛을 발한다. 수련회에 가면, 보통 사람은 자기 물건 챙기기도 바쁘다. 황 장로는 어디를 가나 끝까지 남아 전깃불을 끄고, 쓰레기를 줍고, 분리수거를 완벽하게 한다. 수련회 장소와 숙박 시설을 빌려준 주인들에게서 “이렇게 뒤처리가 깔끔한 교회는 처음 봤다”라는 칭찬을 여러 번 들었다.

황 장로와 나의 불편한 동행은 매 주일 이어진다. 여름이면, 에어컨을 일분일초라도 멈추려는 황 장로와 어떻게든 에어컨을 켜려는 나의 싸움이 시작된다.

“창문 열어두면 이렇게 시원한데. 에어컨 틀면 선풍기 40대 돌리는 거랑 똑같아. 이 전기세 어떻게 할 거야. 에너지 하나 못 만드는 나라에서 부자병 걸린 거야?”

“네… 네… 그렇군요… 그런데 그대로 켜두세요. 아이들하고 어르신들 더워요.”

관찰 #4 – 이 사무장

주일 나의 첫 업무는 담배꽁초 치우는 일이다. 우리 교회는 상가 건물 4층과 5층을 쓴다. 건물 입구가 대로변에서 십 미터쯤 골목 모양으로 들어와 둥글게 퍼진 형태여서, 사람들이 담배 피우기 딱 좋은 장소다. 토요일 밤이면 취객들과 배달원들, 동네 주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고 간다. 주일 아침 교회에 오면 담배꽁초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매주 보는 데도 적응이 안 된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속으로 욕지거리가 날 정도다. 꽁초만 있으면 그나마 참겠다. 가래침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먹다 만 도시락과 과자, 음료수도 버려졌다. 어떤 날은 환경미화원이 치우게끔 놔두고 싶지만, 교인들에게 이 모습을 보이기 민망해서 청소하고 만다. 나도 담배를 피울 때는, 꽁초를 자주 길바닥에 버렸다. 청소할 때마다 그때의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예배 준비에 나선다. 4층에 교회학교 예배 화면과 마이크를 세팅하고, 5층으로 올라가 오전 예배를 준비한다. 코로나 이후 할 일이 많아졌다.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를 함께 준비한다. 찬양대 소리가 방송에 들어갈 수 있게 방송용 마이크 2대를 더 설치한다. 마이크 소리가 잘 들어가는지, 카메라 화면이 잘 나오는지 점검한다. 정신없이 준비하다 보면 11시가 다 된다. 방송실에 들어가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를 동시에 진행한다. 도와주는 청년이 있지만, 가끔 못 나오면 혼자 양쪽을 컨트롤한다. 수년째 해오는 일이지만, 예배 진행은 언제나 긴장된다. 작은 실수가 교인들에게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예배가 끝나면 교인들 민원이 밀려온다. 증명서를 떼달라고도 하고, 어디에 필요하니 서류를 만들어 달라고도 한다.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졌다느니, 커피가 없다느니, 얼음이 안 나온다느니 하는 자잘한 민원도 들어온다. 늘 점심 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이다.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주는 달이나 유난히 민원이 많은 날에는 아예 식사를 포기한다. 황 장로는 어떻게 그런 날만 골라 아는지, 어디 복도에 쓸데없이 불이 켜졌다며 내게 한 소리 한다. 그럴 때는 나도 짜증이 나서 싸늘한 말로 응수한다. “제가 사찰 집사입니까? 왜 그런 것까지 제게 말하세요.”

교인들이 돌아간 예배당은 재해 현장을 보는 것 같다. 예배당에선 뭘 드셨는지 의자 밑에 부스러기들이 잔뜩 떨어졌고, 휴지, 마스크, 주보 등이 바닥에 나뒹군다. 아이들이 놀던 마당에는 먹다 만 아이스크림, 과자 봉지, 젤리 껍질 등이 날아다닌다. 물컵, 성경책, 크레파스, 색연필, 스케치북, 장난감도 온갖 데 처박혀 있다. 물건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예배당과 식당을 주일 아침 모양으로 깨끗하게 청소하면, 그때야 나의 주일은 마무리된다.

내가 청소하고 정리하는 동안 김 목사는 주일 교회 풍경을 글로 써서, 전 교인 단체 카톡방에 올린다. 교회에 못 나온 교인들을 위해서다. 양 권사는 주방에 있는 물건을 다 끄집어내 대청소한다. 황 장로는 아침때처럼 1층에서 6층까지 순찰하며, 불을 끄고 전원 코드를 뽑는다. 주일 밤, 예배당을 나설 때 나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고된 육체노동을 마친 후 밀려오는 보람 같은 것이 솟구친다. 아… 그런데 건물 입구에 담배꽁초가 또 쌓였다. 20대 때 교회 다니는 게 죽기보다 싫었는데, 그 벌을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하고 싶은 말

원고 청탁을 받고 우리 교회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언급한 사람들 말고도 꽤 많았습니다. 지방 출장이 잦은데도 찬양대에 서기 위해 밤새 차를 몰고 와 출석하는 찬양대 지휘자, 장애를 가져 걸음이 불편한데도 이른 아침 택시를 타고 출석하는 교회학교 교사, 일흔이 훌쩍 넘었는데도 더 나이 드신 권사님들을 위해 운행 봉사하는 집사까지…. 예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가 헌신하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가 요구하는 헌신과 책임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부디 자유로움과 균형을 얻길 바랍니다.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든 당신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은혜를 누립니다.

몇 년 전, 한 개신교 언론사가 기획한 특집 기사를 봤습니다. 제목이 ‘20세기 세계 기독교를 만든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명 신학자들을 소개하는 꼭지였습니다. 제목을 보자마자 고개가 저절로 가로저어졌습니다. 기독교를 만든 사람들이 신학자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옥한흠, 조용기, 한경직 등 유명 목사들일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누구냐’ 굳이 물으신다면, 저는 오늘도 예배를 준비하는 무명의 권사, 집사, 장로, 청년들이라고 말하겠습니다. 1세기든 2세기든 21세기든 기독교를 만든 사람들은 언제나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규혁
서울 청파동에 있는 한 교회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