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에너지전환은 없다

[381호 커버스토리]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인터뷰

2022-07-29     김선교

화석연료 사용을 대규모로 줄이지 않으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1.5℃ 이내로 제한할 수 없다. 2021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가 밝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총배출량 세계 9위(2019년)인 한국은 석탄발전 비중이 35.6%(2020년)에 달한다. 30년 이상 사용할 신규 석탄발전소 7기가 들어서고 있고, 개발도상국의 석탄발전소 건설에도 투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1년 기준 전체 발전 비중의 27.4% 수준이던 원자력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하여 에너지믹스를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에너지전환을 위해 우리는 어떤 길로 가야 할까? 단순히 재생에너지를 많이 만들면 될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을 7월 7일 수원시 파장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서울대 전기공학부에서 미래 전력시장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전력공사 경제경영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으며, 쉬운 언어로 대중에게 에너지전환 관련 이슈들을 설명해왔다. 그는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 에너지전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짚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올해 6월 국제에너지기구(IEA)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5.8%에 불과하다(2020년 말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꼴찌였다. 왜 이렇게 낮은 것인가.

한국은 시작이 많이 늦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제대로 된 재생에너지 확장을 시작했다. 글로벌 관점에서는 10년 전부터 재생에너지가 본격적으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녹색 성장’이라는 방향은 수립했으나, 정책의 가장 큰 기틀이 4대강 사업이었다는 의견이 많다. 당시 유럽·미국 등 주요 선도국에서는 화석연료 고갈을 대비하는 대체에너지로 재생에너지 투자가 이뤄진 측면이 있다. 현재 많은 국가에서 가장 저렴한 발전원은 태양광과 풍력이다. 10년 동안 태양광은 90%, 풍력은 30-40% 저렴해졌다. 기술 발전과 적극적인 정책 추진의 결과이다.

- 한국에는 아직도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을 낮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에 관한 논쟁은 10년 전에 끝났다. 더 이상 논쟁이 돼서도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했을 때 원자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지나치게 과장하여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기후와 지형에는 재생에너지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는데, 상당히 잘못됐다. 재생에너지에 들어가는 비용은 꾸준히 낮아졌고, 산업·시장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충분히 확보됐다. 이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지리라고 기대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기술이 발전할 여지도 크다. 다만 정책적으로 늦게 시작했고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이 없어서 원가가 커진 부분이 있다.

문제로 지적되는 지점은 한계가 아닌 해소해야 할 과제다. 미래에 재생에너지가 제1에너지가 되는 흐름을 부인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과거에는 재생에너지가 기존 발전원(석탄·원자력·가스 등)과 성질이 달라 한계가 있다고 보기도 했다. 20%, 40% 같은 식으로 최대 달성 목표가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 이상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현재 독일은 40%를 이미 달성했다. 다수 국가들은 기존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100%를 지향하는 지역도 등장했다. OECD 국가 중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았을 때 재생에너지 비중이 50%가 넘지 않는 국가는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유엔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이 90% 정도 돼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 올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를 녹색경제 활동으로 인정하는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을 발표했고, 7일 이 결정을 EU 의회가 지지한다는 결론이 났다. 찬성 300, 반대 270으로 그 차이가 크지 않았는데.

프랑스를 비롯하여 원자력을 지지하는 국가들과 독일·이탈리아·스위스처럼 탈원전을 지지하는 국가들 간 구도가 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의 가치가 커진 결과로 해석한다. 다만 원자력발전에 제약 조건을 확실하게 걸었다. 방사능 폐기물을 엄격한 기준하에서 보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요건이다. 이 부분을 처리해야 원자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본 것인데, 바라보는 시각이 양분돼있다. 사실상 원자력 확대를 인정하지 않는 독소 조항으로 보는 쪽과, 모든 기술 및 산업의 발전은 도전 과제를 극복하는 데 있다는 쪽이다. 쉽지 않은 과제를 던진 상태로 보인다.

- 실질적으로 방사성폐기물을 엄격한 기준하에서 보관·관리하는 국가가 있나.

지금 기준을 충족하는 국가는 없다. 프랑스는 원자력발전에서 가장 선두에 선 국가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기술 개발, 저장 시설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온칼로에서도 관련 연구와 시설 건설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다. 나머지 국가들은 역량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사고 저항성 핵연료 개발의 경우, 대다수 국가에서 연구 단계에 있다. 활용 가능하다고 속단하기 어렵다.

- 어쨌든 EU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앞당기기 위한 수단으로 원자력과 천연가스에 역할이 있다고 본 것인데.

에너지 안보 측면, 탈탄소 관점에서 원자력과 가스가 일정 기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의 결합은 기술적으로 정합성이 높지 않아,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이 기여할 수도 있지만 필수적이지는 않다. 원자력은 배터리, 수소, 양수 발전처럼 경쟁 기술 중 하나다. 원자력계에서는 원자력 소형 발전(SMR)이 차세대 기술로 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보완해줄 수 있다고 하지만, 개발 중이고 상용화조차 되지 않은 단계이다. SMR이 아닌 지금의 원자력은 적합하지 않다. 프랑스는 출력 제어가 자유로운 원자력발전기를 운영하고 있지만 나머지 국가들은 기술이 없다. 국내 원자력 엔지니어들은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역량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활용한 적이 없고 규정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데 가스발전이 가장 효과가 높은데 국제 상황 때문에 수급이 어렵다.

- 에너지 발전량을 재생에너지로 100% 충당하는 게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게 바람직할지는 불명확하다. 기업뿐 아니라 지역·국가 차원에서도 재생에너지 100%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에너지전환의 지향점이 될 수는 있지만, 지금으로는 각자 여건에 따라 비용이 많이 비싸질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 동네가 재생에너지 90%를 달성하면 전기요금이 200원인데, 100%를 달성하면 500원으로 오를 수 있다. 그러면 10%를 원자력·수력·천연가스 발전과 같은 다른 기술이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500원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다른 기술로 전기를 발전하면, 지역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 같은 것을 돌려야 하니까. 우리가 얼마큼의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재생에너지 100%인가 아닌가가 결정될 것이다.

김선교 부연구위원은 인류학자 그레천 바크가 쓴 《그 리드》(2021)를 공동번역했다. ‘그리드’란 전기 공급 시 스템 즉 전력망을 이르는 말로, 이 책은 21세기 전기 인프라 혁명에 따른 기술 및 산업의 지각변동을 예측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화석 에너지에 맞춰 건설된 기존의 대규모 중앙 집중형 단 방향 방식의 전력망을 재생에너지 특성에 맞게 가변 성·분산형 전원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로 제주도에 풍력발전소가 있는데, 가동을 멈추는 경우가 잦은 것으로 안다. 왜 그런가?

전력이 과잉생산되어 송·배전망 및 전력계통 한계치를 넘고 정전 등이 우려될 때 멈춘다. 전력을 육지로 공급하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지금의 송전선로는 육지에서 제주도로 전기를 공급하는 단방향 체계다. 재생에너지를 많이 생산해도 활용할 수 있는 동맥, 교통도로가 없는 셈이다. 전기가 넘치지 않도록 방향을 바꾸기 쉽지 않아 선로를 추가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육지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북한 때문에 에너지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섬으로 볼 수 있다. 육지도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는 수개월에서 1년 정도면 건설할 수 있다. 하지만 전력망을 구축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변전소 세우는 일도 3-5년이 걸리니 미스매치가 생길 수밖에. 지금도 국지적으로는 전남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독일·미국 등은 이미 경험했고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생산만 신경 쓰고 소비자는 그냥 사용하면 됐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발전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에너지를 생산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위한 백업(전원 예비력)을 많이 가져가는 경직된 시스템에서 생산과 소비 모두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라는 문제를 공유하고 있고, 새로운 산업이 형성되고 있기에 해소해야 할 문제이지 제약 조건으로 보진 않는다. 전기차도 내장된 배터리에 전력을 저장했다가 소비하는 분산형 발전 시설처럼 개발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나 산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지역별 화력발전소(2021년) 및 대기오염(2019년) 현황. (출처: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 기술이나 산업보다 중요한 것?

지역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역량의 문제다. 원자력발전소 확대가 대표적이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갈등 문제를 해결한 국가는 원자력을 확장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힘들다. 개발되지 않았던 지역을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자력발전소 안에 포화되어있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힘들다. 그곳은 평생 원자력발전소밖에 있을 수 없다.

한국은 ‘서울 공화국’이고, 모든 도시가 약탈성이 있지만 서울은 특히 심하다. 경기도도 거의 일정 부분 그렇다. 혐오 시설은 다 바깥으로 내보낸다. 원자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서울 시민 대부분은 변전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거다. 서울은 최소한의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최근 LNG 발전소를 지었고, 당인리에 지은 화력발전소도 세계 최초의 도심지 지하 발전소로, 지상은 공원으로 조성했다. 지방에서는 그렇게 못 한다. 땅값 때문이기도 하고 유권자들 힘의 차이도 있다. 정치인처럼 권력을 가진 이들 다수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잖나. 경제는 선진국이 됐지만 갈등을 조정하거나 이해관계를 다루는 부분에서 과연 선진국일까? 과거 권위주의 국가 성향에 의존하는 부분은 없을까?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지역사회 갈등 문제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밀양 송전탑 건설로 갈등이 무척 심했을 때 한전에서 근무했다. 송전탑을 지키려고 직원들을 밀양에 파견 보냈는데, 나도 갔다.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순번을 정해 경비 서는 일을 했다. 다행히 갈등이 심한 장소는 아니었다. 경찰이 오거나 대립하지는 않았지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곳 주민들에게 송전탑 설치는 기피시설을 떠안고 경로를 제공하는 일이고, 이득이 없다는 점이다.

정책을 논의하는 사람이나 엔지니어는 시뮬레이션할 때 그냥 선 하나 긋고 비용 계산하면 된다. 나도 전기공학을 전공했기에 예전에는 당연히 공급자 중심, 엔지니어 관점에서 문제를 봤다. 선진국에서 원자력발전은 비싼 에너지원이지만 한국은 어느 정도 경제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한국에서 원자력은 한수원 중심의 독점 산업이었고, 지을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같은 곳에 반복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 비용이 커졌고, 폐기물 처리에 대한 기존의 비용 산정이 충분한지는 학술적으로 이견이 있다.

예전에 학회에서 독일 엔지니어가 ‘한국은 좋겠다’고 하더라. 독일은 전봇대 하나 뽑고 이동하는 데도 오래 걸린다고. 지역사회 공청회도 열고 서명도 받아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이제는 한국도 선진국이 되었으니, 사회적 비용을 현실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 재생에너지 설치에도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다.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사회 갈등에도 과장된 부분이 존재하지만, 이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에너지전환이나 탄소 중립을 이뤄낼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재산권이다. 땅을 소유한 토지주, 외지인에게 땅을 판 기존 토지 소유주, 소작농의 이해 갈등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면 이익을 공유하지 못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국가적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한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풍력발전소의 경우에도 어업권을 침해할 수 있다. 유럽과 같은 선행 사례들을 찾으며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서울에서 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파트값 때문이다. 태양광을 달면 미관상 좋지 않다, 재산 형성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반대한 신축 아파트도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에 대응할 때 에너지 자립은 국가·지역·마을·가정 어느 곳에서든 중요한 문제다.

- 도시가 에너지 자립을 하면 농촌에서 에너지를 끌어오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도시, 특히 서울 같은 경우 무조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산업 시설은 많이 없지만 상업 시설이 많잖나. 공공시설, 옥상에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다. 요즘 BIPV(건물 일체형 태양광)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많이 나오고 있다. 태양광 패널이 10년 전에는 거의 안 보이다가 요즘은 어딜 가든 종종 마주하게 된다. 10년 후에는 모든 사람이 태양광을 이용하게 되라고 생각한다. 24시간은 아니겠지만 총량으로 봤을 때 에너지 소비와 생산을 0으로 만드는 제로에너지 건물을 공공기관과 대형 건축물부터 법제화하고 있기도 하다. 에너지 자립률은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흐름이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전기요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내가 에너지를 생산하면, 즉 분산 에너지원이 되면 얼마큼 에너지 자립에 기여하는지가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런데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저렴하면 에너지 자립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지 않겠나.

- 저렴한 전기요금은 왜 문제가 되나.

기후위기 대응에 동참하기 위해 일반 소비자든 산업이든 상업 시설이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에서 전기요금 원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전환’이라고 표현하는데, ‘평화로운 전환’ ‘공짜 전환’은 없다. 일반 소비자들은 전기요금을 공공재, 복지라고 생각하는데 같이 짐을 나눠서 져야 한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OECD 국가 중에서 네 번째로 낮다. 산업용과 가정용 모두 저렴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누진제를 완화한 것은 크게 잘못한 부분이라고 본다. ‘징벌적 요금은 적절하지 않다, 여름에 에어컨은 복지다’는 식으로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했다. 저유가로 에너지 공급 상황이 좋았을 때 일반 소비자에게 전기요금도 깎아주면서 가구당 1만 원 정도 이득을 봤다. 유럽은 기후위기에 동참하고 진정으로 우리가 함께할 미래를 준비한다면 전기요금 부담을 두 배까지 부담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변화를 이미 겪어냈다. 한국은 오히려 전기요금 부담을 덜어줬으니 누가 제일 이득을 봤을까.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상류층이다.

누진제가 기존에는 징벌적 요금으로 인식되어왔다. 이제는 에너지 적게 쓰기를 권장하는 측면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에너지의 효율적 활용을 권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는 따로 분리하되, 1인 및 다소비 가구는 더 부담하도록 해야 원가 관점에서 맞다고 본다.

- 올해 1분기 한국전력은 7조 8천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 손실을 냈다. 7월부터 연료비 조정단가가 직전 분기 대비 kWh당 최대 3원에서 5원으로 올랐고, 오는 10월 추가 인상할 예정인데.

전기요금은 전기 생산에 들어가는 연료비와 제대로 연동되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사업 모델들이 나올 수 있다. 에너지전환과 관련한 새로운 사업을 만들려면 경쟁이나 시장이 필요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난 20년간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상관없이 꾸준히 이야기했다. 국제에너지기구도 한국의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이 방향이 필수적인 요건이라 권고한다. 선행 사례도 많다.

- 한전이 중개하지 않고 발전 사업자와 기업이 일대일로 전력 거래를 체결하는 전력구매계약(PPA)이 시행되면서 민영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과거 IMF 때 겪었던 것처럼 고용 불안정이 늘고 대기업의 권력이 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린다고 그렇게 접근하는데, 그런 정치적인 이분법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민영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공 영역으로 남아있어야 하는 부분과 새로운 시장 창출력이 필요한 부분이 따로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시장이 창출하는 부분에서 한전이 다 감당할 수 없다고 보는 시선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주류적이다. 시장이 완벽한 해결법은 아니지만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정부 주도 시장이기 때문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장기적 발전 방향을 축적해서 만들어나가지 않고 상황에 따른 미봉책을 남발하여 땜질하게 되면, 경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낮아진다. 과거 전력 산업은 로컬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세계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다. 해외에 진출할 기회가 생기는 것도 맞지만, 우리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해외에 종속될 수 있는 리스크가 커지게 된다. 좁은 시야로 전기요금 인상과 민영화에 반대하는 것은 전반적인 발전 방향에서 볼 때 상당히 우려스럽다.

- 탄소 배출을 많이 한 기업이 전기요금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현대제철 등이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상위 기업이다. 삼성의 경우 전기요금이 전체 생산 비용의 2% 수준이다. 인상된다고 해서 치명적이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경계선에 있는 기업들이 있다. 전기요금이 전체 생산 비용의 6-8% 달하는 에너지 다소비 기업이나 산업의 경우 영업이익이 박한 상황인데, 전기요금을 올리면 운영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 일을 하고 관련 정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일반 가정용 요금보다 산업용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도 욕먹더라도 일반 가정도 같이 부담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국제적으로 비교해봐도 일반 가정용 전기요금에 비해 저렴하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에는 산업 쪽에서 전기요금을 적게 부담했지만 이를 꾸준히 올리고 일반 소비자 요금을 통제했기 때문에 차이가 메워졌다. 세계적으로는 산업용 요금이 일반 가정용 요금보다 저렴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기 공급 원가 측면에서 보면 당연히 한곳에 많은 전기를 전송할 때 원가가 적게 든다. 산업용 전기는 고전압으로 전기를 수신받기에 송·변전 비용이 적게 든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경우 전기 인프라를 구축할 때 한전이 맡아서 많은 투자를 해서 일반 소비자들도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고품질 전기를 쓰고 있다. 전기는 차별화가 매우 어려운 상품이다. 대기업과 산업이 요구하는 전기 수준에 맞추다 보니, 일반 소비자들은 그 정도 수준이 필요 없지만 고품질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에너지 효율이라는 측면이나 에너지 수급 위기가 왔을 때 대기업이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산업이 생산 스케줄을 조정하고 수요를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맞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전력 수요, 즉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게 왜 중요한가.

수요를 줄이는 게 발전기를 늘리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일 년 중 특정 시기에 몇 차례 수요를 줄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지 않으면 전기 설비를 지금보다 더 건설해야 하지 않겠나. 최근 고급 인력들이 지방 근무를 기피한다는 이유로 지방에 있던 산업 시설, 반도체 공장 등이 수도권으로 오고 있다. 분산시켜야 된다.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정말 많이 소비한다. 지금은 IT 업계가 전체 산업에서 3-4%의 전력을 쓰지만, 앞으로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전환이 되면 10%를 쓰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산업들이 수도권에 형성되면 전기요금을 어마어마하게 내야 한다고 본다. HVDC 해저케이블 등의 기술을 일부 적용할 수 있다지만, 그전에 수요의 분산이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가장 효율적인 것은 전력을 생산한 곳에서 소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여건은 지방이 더 좋다. 태양광을 생각하면 당연히 위도가 낮을수록 좋다. 수도권 복귀와 같은 역전 현상을 감내하려면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해 기피시설인 송전 설비를 더 설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 사안이 일자리 문제다. 정치권이나 기업들은 그린 뉴딜을 하면 녹색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화석연료 발전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경제정책 짜는 사람들은 일자리 증감을 놓고 결과값에서 증가 폭이 더 크다고 하면 전환 효과가 크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개별적인 차원으로 내려가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교육이나 제도가 필요하지만 직접적인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말 그대로 직업이 사라지면 5년 동안은 어느 정도 보조해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석탄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했던 사람이 재생에너지 산업으로 넘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에서 공기업을 만들어서 직접 고용해 교육시킬 게 아니라면 그렇게 말하는 게 적절하지는 않다. 실현 여부를 따지는 건 무척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희생당하는 지역과 사람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전환은 무서운 얘기라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단순히 전환 노동자들에 대해 일자리를 보상하는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 시민들이 아래서부터 연대하며 풀어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메꿀 것이냐의 문제인 것 같다.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어려운 거고. 연대와 공동체 의식이 상당히 필요한 지점이다.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