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문제를 중요하게 끌어안는 용기

[382호 무브먼트 투게더]

2022-08-31     김은선

본지는 ‘무브먼트 투게더’ 꼭지를 통해, 2022년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복음주의 진영의 다양한 입장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피고 있다. 이 글은 ‘이제는 ‘민주당 복음주의’를 떠나보내야 할 때’(구교형, 4월호)‘우리 사이에 흐르는 거대한 강을 건너자’(박현철, 5월호)정신 건강을 위한 정치’(윤환철, 6월호)대선이 우리를 속일지라도’(신하영, 7월호),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박제민, 8월호)에 이어지는 글이다. ― 편집자

“정치판에서 보자면 한 줌도 안 돼 보이는 복음주의, 그중에서도 선거에 아무 변수도 안 될 것 같은 활동가나 논객들은 왜 지난한 논의를 하고 있을까.”

‘정신 건강을 위한 정치’(6월호)에서 윤환철은 이 논의의 이유를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고 든다. 불의와 싸우지 않으면 우울함에 빠지거나 몸에 탈이 날 것이고, 불일치를 확인하고서도 서로의 맥락을 포용하고 미래를 기다려주는 일이 정치의 아름다움이라고. 나는 그의 결론에 일견 동의한다. 예전부터 익숙하게 들었던 ‘한 줌 복음주의’라는 자조적 인식에는 기꺼울 수 없지만, 기독교운동이 선거에 의미 있는 변수가 되리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던 2016년 12월에 지인의 소개로 문재인 캠프의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기독교계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민주당에 관계하게 된 듯 보였고, 탄핵안이 가결되면 바로 시작될 대통령 선거를 위해 운동원을 모으고 있었다. 그는 “우리 손으로 대통령 한번 만들어보자”고 했지만, 사실 그건 우리 손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 기독교계의 숟가락을 얹는 일이었다. 선거에서는 한 표를 귀하게 여기고 어떤 세력이든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지만, 운동에 뛰어드는 주체가 기독교운동일 때, 자기 역할과 그 효용에 대한 인식은 엄밀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과연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복음주의 운동계와 교회가 정해주는 대로 투표했을까.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김세윤 박사의 발언1)대로 이번 선거를 묵시문학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 대결로 인식했을까. 나는 무척 회의적이다. 같은 방송에서 진행자가 이야기했듯, 이제 교인들은 목사나 유명인사가 정해주는 대로 투표하지 않는다. 기독교계가 할 일은 양당 과점 구도에서 누가 더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지 가려내어 표심을 독려하는 게 아니라, 이번 선거에 대두되어야 하는 중요한 정치 의제가 무엇이고 소외되고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일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볼 때, 어느 영역이 가려지거나 왜곡되고 심지어는 이용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이를 비판했어야 했다.

많은 이들이 평가했듯 지난 대선은 정책 의제가 부각되지 않은 채 공론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후보 개인에 대한 공격 위주로 진행된 선거였다. 혐오를 이용한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하며 다른 이슈를 빨아들였기 때문이다.2) 혐오와 차별은 선거기간 동안 가장 주효한 전략이었고, 이 속에서 유권자들은 사회적 의제의 복잡성과 원인을 다뤄보지도 못한 채 거대 양당 구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했다. 그중에서도 페미니즘은 강력한 낙인이었다. 당시 윤석열 후보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의 문제”3)라고 발언하고,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올릴 때는 이 사람이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그것은 성별 갈라치기를 통해 20대 남성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이었고, 미류(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의 말대로 민주당이 깔아준 주단을 이준석이 밟은 격이었다. 2019년 초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20대 남성 지지율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대응 방안 보고서를 작성하면서부터 ‘이대남’이 정치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유의미한 집단으로 등장했고, 이 시점에 국민의힘이 ‘남자 편’의 자리를 선점했다. 미류는 이대남 현상을 두 정당이 공조한 결과라고 본다.4)

나는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페미니즘과 데면데면한 사이였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에 그의 지지자들이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에게 외쳤던 “나중에”는 그의 재임 기간이 끝나도록 영원히 오지 않았다. 또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고 출발했지만, 재임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김지은 씨가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다. 그때 민주당 지지자들을 위시한 김지은 씨에 대한 마녀사냥을 기억하는지. 안희정은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였고, 김지은 씨는 신변에 위협을 느끼며 재판에 임해야 했다. 2019년 9월 9일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기까지, 지겹도록 전형적인 꽃뱀 프레임과 2차 가해가 김지은 씨와 그에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따라다녔다.

2020년 7월 10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은 더 큰 충격이었다. 실종 소식을 먼저 듣고는 뉴스를 켜고 기다리고 있자니 박 시장에 대한 성폭력 고발이 준비 중이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 또한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였고 젊은 시절 권인숙 씨 성고문 사건,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등을 변론한 인권변호사였기 때문이다. 안희정에 이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민주당에서 또 발생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뒤이어 들려온 그의 사망 소식은 미뤄두었던 분노가 모두 터져 나오도록 만들었다. 이 시기에,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 나오는 문장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와, 2020년 3월에 출간된 김지은 씨의 《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은 성폭력에 분노한 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공유되었다.

그때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은 ‘박원순, 당신마저!’였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를 비롯한 민주화운동 세대들의 마음은 달랐던 것 같다. 감히 ‘우리 박원순’을 잃게 만든 마녀로서, 피해자 및 변론을 맡은 김재련 변호사에게 날아든 2차 가해와 인신공격은 그 상스러움과 폭력성, 치졸함이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 이후 이재명 후보 또한 성차별 구조 자체에 대한 대안을 만들지 못했고, 그가 윤석열과 다른 태도를 보이도록 견인한 것은 “정의당은 강령에서부터 페미니스트 정당이 맞다”고 표방한 심상정 후보였다.5) 김소희에 따르면 이재명이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윤석열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리에 심상정이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다.6)

심상정이 해낸 바로 이 일을, 어째서 우리 기독교운동계가 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재명 캠프에 영향을 미치는 면에서가 아니라, 이번 선거에 대표적으로 부각된 반페미니즘과 성별 갈라치기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유해한 방식으로 정치적 땔감이 되고 있는지 지적하고 비판하는 지점에서 말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혐오와 차별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 같은 전략은 논란의 여지 없이 악하고, 공동체에 더없이 해롭다. 그런데 각각의 분야에 따른 정책 비교를 내놓으면서도7) 결국엔 민주당에 표를 던질 것을 호소한다거나, 주술 및 신천지 개입 논란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심지어 후보자의 여성 배우자에 대한 비난에 동참하는 등의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나는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성별 갈라치기, 차별과 혐오를 활용하여 여타의 이슈들을 납작하게 흡수해버린 우익 포퓰리즘 기획에서, 복음주의 운동사회가 유의미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구별과 악마화, 그리고 약자들을 향한 혐오는 사실 교회의 오래된 생존 전략이었다. 어느 때는 이단과 사이비일 때도 있었고, 타 종교 및 무속일 때도 있었으며, 여성의 섹슈얼리티이거나 여성 그 자체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특정한 소수의 세력뿐 아니라 보수적인 교회들을 중심으로 교인들을 응집하게 하고 자본을 끌어들이는 땔감이 되고 있다. 복음주의 운동사회는 이러한 교회사의 맥락 안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여성 및 소수자 차별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토론하고, 이를 전면으로 내세워 강력하게 저항해본 경험이 부족하다. 또는 심심치 않게 이 의제를 다루면서도, 우리 내부에 불편함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만, 페미니즘의 급진성이 드러나지 않고 모두를 안전하게 환기할 수 있을 정도로만 거리를 유지해왔다.

신나(가명)는 〈뉴스앤조이〉 칼럼에서, 양혜원 박사가 2018년 출간한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을 통해 페미니즘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비쳤는데도 복음주의 진영이 유독 양 박사를 통해 페미니즘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며,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에게만 마이크를 주는 복음주의 아저씨의 권력”을 비판한 바 있다.8)

페미니즘과 성적 소수자 이슈에 대한 역량이 복음주의 기독운동 안에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는 자산이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설립 초기부터 교회문제상담소를 운영하며, 빈번하게 발생하는 교회성폭력 사안에 대응해왔다. 2015년에는 ‘교회 성폭력의 현실과 과제’ 포럼을 열고9), 2016년에는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제안 포럼’을 열었으며10), 2018년에는 개혁연대가 인큐베이팅한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출범하기에 이른다. 또한 청어람ARMC는 페미니즘 강좌와 세미나, 페미니즘 이슈 북클럽, 여성신학과 여성주의 영성 강좌 등 기독교와 페미니즘 분야에서 활발한 아카데미 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퀴어성서주석 읽기 챌린지 등 성소수자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성서한국은 전국대회에서 여성 강사를 주강사로 세우거나 여성 섹션 주제별 강의를 개설하는 등의 노력을,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는 여성 신학자를 강사로 세울 뿐 아니라 전임연구위원인 김근주 교수가 성경 본문에 따른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성서해석학 관점에서 비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운동 자산이 쌓여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복음주의 기독운동 진영이 유의미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나는 여성과 성소수자 의제가 복음주의 기독운동 진영에서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고, 중요도를 획득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한국 사회가 요동치고 마침내 대선의 주요 이슈와 전략이 되었는데도, 기독운동 활동가들이 여전히 이 의제에 대해 모른 척, 또는 알지만 다루고 싶지 않기에 짐짓 못 본 척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나는 성서한국에서 간사로 일했다. 여러 단체와 교회가 연합하는 운동의 특성상 특정 의제에 대한 온도가 다르고 각각의 입장을 조율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사회참여적이지만 다소 보수적인 신앙을 베이스로 하는 복음주의 기독운동이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이슈를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간사 시절에 사랑의교회 건축 반대 시위에도 참여한 바 있다. 당시 사랑의교회는 성서한국의 공동대표가 속해있고 이사와 집행위원을 파송한, 매우 비중 있는 운동 파트너였다. 이미 운동을 함께하고 있는 연대 교회에 건축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때 복음주의의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이 그 일을 했다. 예상되는 여러 파장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문제를 중요하게 끌어안는 어떤 용기, 어떤 충직함, 어떤 신실함을 기독운동의 동료와 선배들에게 요청하고 싶다.


김은선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기독교 단체에서 일했다. 현재 믿는페미 활동가로,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연구원으로,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멤버로 활동한다. 복음주의운동 진영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갖고 있다.